로드 짐 열린책들 세계문학 266
조셉 콘래드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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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자리나 모임에서 다수의 관심을 끄는 것은 어떤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주도권을 지닌 사람은 흐름에 따라 분위기를 좌우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인원이 모이는 일이 줄어들었을 때, 사람들이 눈을 돌린 것은 OTT와 유튜브였다. 그들은 이야기의 바다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선택하고, 또 언제든지 중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체험이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을 때 느꼈던 감정보다 더 강렬하지 않음은 분명하다. 내가 이야기를 이끌거나, 그 흐름에 완전히 따라가야 몰입이 잘 되는 법이다. 만들어진 이야기가 재생되는 것을 사용자가 주도하는 경험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서로에게 컨텐츠를 추천하고 관람하는 이유는 이야기에 대한 갈망이 있기 때문이다. 


 『로드 짐(Lord Jim)』은 이야기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작가인 조지프 콘래드를 알게 된 계기는 잭 런던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그들은 서로에게 공통점이 있었다. 가장 큰 공통점은 두 사람이 선원 생활을 겪었다는 점이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서로의 작품에 담긴 뱃사람의 면모에 감탄했고, 특히 잭 런던은 공개적으로 그의 작품에 찬사를 남겼다. 게다가 『암흑의 핵심(Heart of Darkness)』의 명성은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본 소설 아닌가? 그래서 그의 작품들 중 무엇을 먼저 읽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아마 많은 독자들은 전반부의 이야기를 보고 이끌리듯 책을 집었을 것이다. 뛰어난 항해사 짐은 파트나호를 타고 가던 중, 배가 침몰할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승객은 800명이지만, 구명정은 일곱 척뿐이었다. 짐은 고민하다가 승객들을 깨우지 않고 구명정으로 몰래 빠져나간다. 하지만 배는 침몰하지 않았고 선장을 비롯한 다른 선원들은 행적을 감춘다. 결국 짐만 재판정에 서서 증언을 한다. 당연하게도 유죄가 선고되고 짐은 항해사 자격을 잃은 채 고국을 떠나게 된다. 그러던 그가 파투산에 정착하고 그곳 원주민을 다스리는 '로드 짐'으로 발견된다. 하지만 속을 종잡을 수 없는 행적으로 방문자들과 원주민들 모두의 원성을 산 그는 총에 맞아 쓸쓸히 사망한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말로라는 서술자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 콘래드는 이것을 소설이 아니라, 어떤 구전된 이야기로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전반부 이야기의 중심 소재인 파트나호 사건을 실화에서 끌어온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후반부 이야기는 기존의 제국주의적 가치관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상상력의 한계가 엿보이기도 한다. 또한, 작가 자신도 인정했듯이, 전반부의 이야기와 후반부의 사건들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느냐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정확히 말해 말로의 증언을 끝까지 경청하고 나면 알게 된다. 그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어떤 사람들은 영화나 책의 서평에 적힌 대략적인 줄거리와 감상, 비판점을 보고 난 후, "그 작품을 봤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실제로 말이 통하기도 한다. 직접 작품을 감상한 사람도 사소한 사항들은 놓치기 마련이고, 대략적인 평가는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이야기를 봤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야기는 흐름이 있고 고유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났을 때 작품에 대한 인상은 희미해지겠지만, 이야기에 대한 기억은 더 오래 남으리라. 조셉 콘래드는 짐이 <우리 중의 한 명>이라고 자신있게 표현하지만, 말로야말로 독자가 주목해야 할 대상이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끈기있게 기억하고, 시작한 말을 끝마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진심으로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있다. 

 

 이야기는 인생과 같다. 시작된 이상 반드시 끝난다.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짐의 고민과 선택, 후회와 도피, 지배와 최후는 각자의 매력적인 지점이 있다. 독자는 원하는 만큼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흥미가 떨어진다면, 즉시 책을 덮고 한쪽 구석으로 치워버린 다음, 먼지가 쌓일 때까지 내버려둘 수도 있다. 만약 계속 읽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하루만에도 가능하다. 누군가의 인생을 그토록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독서의 큰 특권이다. 모두에게 이야기가 가진 힘을 다스릴 주도권이 있다. 컨텐츠가 넘치다 못해 만연하는 지금의 세상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그에 대한 인식이다. 이야기가 가진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그것이 우리가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이유이다. 


 이 소설이 처음 책의 형태로 나왔을 때, 작품이 나를 이끌었다는 말들이 있었다. 어떤 평론가들은 단편소설로 시작된 이 작품이 급기야 작가의 통제를 벗어나 버렸다고 주장했다. 그 가운데 한두 명은 그 사실을 뒷받침하는 내적 증거를 찾아내고 흥미로워하는 듯했다. 그 사람들은 서술 형식의 한계를 지적했다. 한 사람이 그토록 오랜 시간 혼자서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은 내내 그 이야기를 듣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런 상황은 그리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약 16년을 이 문제로 숙고해 보았지만, 아직도 그 주장에 수긍이 되지 않는다. 열대와 온대 지역 사람들은 밤늦게까지 자지 않고 모험담을 주고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소설에는 하나의 모험담만 담겨 있으며, 숨 돌릴 시간을 주기 위해 몇 차례 중단되기도 한다. 듣는 이들의 참을성에 관해 말하자면, 이야기가 <흥미로워야 한다>는 조건만 충족하면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는 처음부터 가정되는 필수사항이다. 재미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나는 애초에 이 이야기를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p.577~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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