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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비소리 - 조선의 거상 신화 김만덕
이성길 지음 / 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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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3년 <대장금>을 시작으로 2009년 <선덕여왕> 그리고 올해 <거상 김만덕>까지 여성들을 전면으로 내세운 사극들이 끊임없이 발표되고 있다. 궁궐에서 뒤에 앉아 음모를 꾸미는 악랄한 모습보다 이렇게 시대에 앞서거나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여성들이 사극에 등장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한때 남자들의 전유물이라 불리던 사극에 여자 시청자들을 끌어들였을 뿐 아니라 좀 더 풍부해진 이야깃거리를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장금과 김만덕은 국사책에도 등장하지 않은 인물이라 더 의미가 있다 하겠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많은 부분을 채울 수밖에 없는 작업이지만 그로 인해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이 많아졌을 테니 말이다.

이번에 읽은 책 <숨비소리>에서 김만덕이라는 여인은 부끄럽지만 내게 생소한 인물이었다. 드라마로 방영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볼 기회가 오지 않았다. 즉, 이 책이 내게 김만덕이라는 사람을 알려준 첫 번째 선생님인 셈이다. 도대체 어떤 여인이기에 그 엄하다는 조선 사회에서 상인이 되어 거상으로까지 불리게 된 것인지, 책을 통해 다소나마 그녀의 삶을 느낄 수 있었다.
 

설움과 시련 속에 소녀의 꿈이 자라나다.
 

조선 중기에 ‘출륙 금지령’이란 제도가 생겼다. 제주도민들이 살 길을 찾아 유랑하자 군액[軍額]의 감소, 특산물의 감소를 우려한 정부가 제주도민들의 출륙을 금지한 것이다. 육지와의 단절된 고립된 삶, 농사짓기에 부적합한 척박한 땅과 힘든 바다일은 섬사람들의 한을 더욱더 키워갔다.
김만덕은 그런 제주에서 태어났다. 부모님, 오빠들과 함께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았던 어린 만덕에게 너무나 큰 시련이 찾아오는 데, 시작은 바다에 나갔던 아버지가 영영 돌아오지 않은 일이었다. 그 후 전염병으로 어머니를 잃은 만덕은 설상가상으로 오빠들과도 헤어져 월중선이라는 퇴기의 집에 몸종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짧은 시간에 온 가족을 잃고 몸종 일을 하게 되었지만 만덕은 예전부터 꿈꾸던 상인이 되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꿈은 월중선의 수양딸이 되어 관기가 되었을 때에도 꺾이지 않았다. 그렇게 만덕은 관기 생활로 모은 돈으로 객주를 열어 육지와 물건을 거래하고 배를 구입해 점차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하지만 그녀가 돈만 벌었다면 거상으로 까지 불리진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훌륭한 점은 그렇게 모은 돈으로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는 것이다. 흉년이 들어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던 제주에 자신이 모은 재산을 선뜻 내놓았던 것. 그 일이 당시 왕이었던 정조에게 알려져 결국 그녀는 ‘출륙금지령’ 이후 제주에서 나가게 된 최초의 여인이 되었다. 그리고 조선 후기 최고의 학자들에게 칭송을 받으며 몇 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에게 김만덕이라는 이름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사실 변화의 물결이 넘실대던 조선 후기였다지만 여인의 몸으로 상인의 일을 훌륭히 해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또 다른 매체에서 찾아본 그녀의 삶은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참 쉽지 않은 길이고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삶을 담기엔 책이 너무 짧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만덕이 상인이 되기로 한 계기와 상인이 되고 나서 거상이 되기까지 좀 더 많은 일화가 들어있지 않은 것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 속의 인물을 되살려 우리에게 보이기까지 많은 자료를 찾아 연구하고 글을 썼을 작가의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앞으로도 많은 역사소설을 보여주기를, 또 발굴 되지 않은 많은 역사 속 인물들을 찾아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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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시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침묵의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61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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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이라는 단어에 떠오르는 감정들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달콤할 수도 씁쓸할 수도 아플 수도 있지만 공통적인 것도 있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물론 결과에 관계없이.

처음 <침묵의 시간>이라는 책을 들고선 좀 당황했었다. 요새 읽었던 책들과는 다르게 가벼운 무게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작가의 역량을 확인 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되었다. 짧은 이야기 속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려면 이야기꾼 기질을 한껏 발휘해야하기 때문이다. 읽고 나서야 말하지만 책은 쉽게 읽힌다.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여정이었다.

“우리는 눈물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누군가의 추모식. 13학년에 재학 중인 크리스티안은 강당에서 영정사진에서 친숙한 미소를 짓고 있는 슈텔라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다. 바로 그가 사랑했던 사람이다. 책은 추모식과 과거의 크리스티안, 슈텔라 선생님의 이야기가 교차하여 진행된다. 그들의 과정과 결과를 보여주는 셈이다. 해변에서 채석 일을 하는(독일 학제는 1년이 더 길기 때문에 13학년은 성인 대우를 받는다고 한다.) 크리스티안과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인 슈텔라. 그 둘이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가 않다. 크리스티안의 관점에서만 책이 진행되기 때문에 더 그런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점에선 조금 불친절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어쨌거나 둘은 소위 선생과 제자 커플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선생과 제자가 서로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이해 받기 힘든 일인데 그래서인지 둘의 사랑은 은밀하게 진행된다. 부모님도 같은 반 친구들도 모르게.

하지만 처음부터 나왔듯이 스텔라의 죽음으로 둘의 사이는 예정되어 있다 할 수 있다. 그저 과정에서 크리스티안이 바라본 스텔라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을 뿐이다. 그토록 정열적으로, 사랑에 빠진 십대의 눈에 비친 스텔라는 온화한 미소를 지니고 우아한 몸짓을 하고 빼어난 수영 실력과 지성까지 갖춘 그야말로 완벽한 여인이다. 앞서 말했듯 그들이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 충분한 이야기가 없어서 감정이입은 힘들었지만 오히려 예전 추억들을 불러일으켰다고 할까. 아무 계산 없이 온전한 마음으로 스텔라를 좋아하는 크리스티안은 내가 지나왔던 옛 모습을 생각나게 했다. 그래서 말미에 스텔라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 상실의 아픔을 통해 어른이 되어가는 크리스티안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노천카페에서는 벌써 살아 있는 자들의 삶이 시작되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종업원들이 음료수와 음식을 식탁으로 바쁘게 나르고 있었다. P. 150

책 뒤편에 역자 후기를 보고나서야 이 책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사랑의 영원성이라는 걸 알았다. 한 사람이 죽음으로써 그들이 서로 나눴던 감정들과 시간들은 영원 속에 간직된다는 것이다. 뜬금없지만 후기를 읽고 얼마 전에 종영한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이 떠올랐다. 멈춰 버린 그들만의 시간, 뭔가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다른 점이 있다면 책은 감성적이었지만 드라마는 음산했다는 것?

요 근래에 스릴러 소설만 줄곧 읽어댔었다. 오랜만에 읽은 사랑이야기는 처음에 조금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읽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내 감성도 약간이나마 촉촉해졌겠지. 문득 궁금한 점은 스텔라의 동료선생인 쿠글러가 왜 추모식에서 “스텔라 왜,왜,왜 그래야 했어” “다른 방법은 정말 없었던 거야?” 라고 말했냐는 것이다. 나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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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 스타를 부탁해
박성혜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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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많은 직업이 있다. 실제 가질 수 있는 직업이 한정되어 있는 만큼 타 직업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적은데 그래서 더 신비롭거나 베일에 가려져있는 것같이 느껴지는 직업들이 있다. 나에게 그 중 하나는 매니저라는 직업이다. 그것도 스타를 전담으로 하는. 살면서 스타들을 직접 보기란 어려운 일인데 매일매일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스타와 함께 지내야하는 매니저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또 스타들을 보면서 떨리지는 않은지, 반대로 스타와 편한 친구사이가 된 적이 있는지 궁금증이 피어나기도 했다. 그런 내 궁금증을 다소 풀어주는 책이 있었으니 바로 박성혜의 <별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 스타를 부탁해>이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 저자의 이름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 할 수밖에 없었는데 소위 그쪽 세계에 문외한인 나에게 박성혜라는 이름이 생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맡았던 스타들 - 김혜수, 전도연, 지진희, 황정민, 임수정, 공효진 등-을 보니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내로라하는 스타들을 맡아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그녀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져갔다.

여걸 박성혜, 그녀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

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했던가. 4년제 대학의 영문학과를 다니던 그녀는 분명 연예계와 멀어보였다. 하지만 박성혜 본연의 힘이 그 길로 인도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소위 끼가 있었다. 옆에서 보면 무모한 도전이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일을 크게 벌이고 좋은 결과로 이끄는 끼가 말이다. 평범한 이력의 소유자에서 나만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들어간 영화동아리와 그 뒤에 관심을 갖게 된 사진(몇몇 에이전시와 모델들이 단골이 되기도 했단다.) 20년 역사상 재학생을 단원으로 뽑지 않았다던 산울림 극단에 들어간 일, 이벤트 회사, 만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린 학우를 돕는 초대형 콘서트 이벤트까지. 대학생이었던 그녀가 벌인 일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입이 떡 벌어지는 것이었다. 대학생 특유의 열정이었을까, 아님 그녀의 도전이 이루어낸 쾌거였을까.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고 지금도 평범하게 살고 있는 나에겐 정말 꿈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시련 없이 철이 어떻게 단단해 질 수 있으랴. 그녀에게도 시련은 다가왔다. 먹고 살기 위한 일, 바로 취업이다. 첫 회사였던 논노가 입사한 지 6개월 만에 문을 닫고 모아놓은 돈으로 차렸던 학사주점에도 흥미를 잃고서 재취업을 노렸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것. 그러던 중 논노에 다니던 시절 사수였던 팀장님의 전화 한통이 바로 그녀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바로 스타 서치라는 대기업에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니 어서 지원해 보라는 전화였다.

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나는 사람에게 운이 좋다고 말을 한다. 물론 노력을 하지 않고도 좋은 일을 겪는 사람이 있지만 그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운을 만들어가는 사람은 다르다. 운도 실력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초짜 매니저였던 박성혜가 느닷없이 대스타인 김혜수의 개인 매니저가 되긴 했지만 운만으론 15년을 함께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함께 일을 해나가면서 쌓아온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 매니저로서의 노력. 어느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은 결과다. 그러면서 그녀의 울타리는 점점 튼튼해져 수많은 스타들을 그 안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스타가 아니면서 스타보다 매력적인 사람이 인간 박성혜였다.

두툼한 책을 읽으면서 처음엔 내가 잘 모르는 분야, 또 내가 잘 모르는 인물에 대한 책이라 자칫 지루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느새 고개가 끄덕거려지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하면서 읽은, 배울 점이 참 많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감초처럼 등장한 스타들의 사생활도 재미에 한몫했지만 말이다. 또 매니저라고 해서 얼마 전 물의를 일으켜 뉴스에 등장한 -여학생 팬들을 때린 아이돌 가수의 매니저- 매니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스타와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이 맡은 일에 성심을 다하는 매니저가 있다는 사실도 내게 새롭게 다가왔다.

한 사람의 인생을 돌아보는 책은 언제나 내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나는 열심히 살았나 하는 자학과도 같은 감정과 함께. 내 이야기는 아무리 쥐어짜도 몇 페이지도 안 나올 것이다. 하지만 남은 페이지를 채우는 것은 앞으로 어떻게 사느냐가 아닐까. 언젠가 뒤돌아봤을 때 열심히 살았다고, 후회 없는 삶이었다고 적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오늘도 한 권의 책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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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균형 아시아 문학선 3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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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소설 <적절한 균형>을 알게 된 건 어느 블로그에서였다. 그 블로그에서 읽은 소설에 대한 극찬은 내가 이 책에 궁금증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작가의 이름 그리고 만만치 않은 책 두께. 하지만 글 말미에 있던 꼭 읽어보라는 추천은 책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이 없으면 결코 쓰지 못하는 말이다. 대체 어느 정도기에 이렇게 입소문이 대단한건지  작년에 읽은 <6인의 용의자>와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작가 비카스 스와루프로 안해 생긴 인도소설에 대한 애정이 다시금 솟아나는 듯 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적절한 군형>을 읽는 데에 꼬박 5일이 걸렸다. 800여 페이지가 넘는 두께 때문은 아니다. 마음만 먹었다면 이틀정도 만에 끝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던건 자꾸만 가슴이 답답해 졌기 때문에, 또 자꾸만 한숨이 입술 밖으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때마다 책 읽기를 멈추고 다른 즐거운 일을 했다. 괜히 인터넷 기사를 뒤적거리고 만화책도 보고. 책 표지 뒤에 있던 "이 소설로 인해서 당신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플 것이다" 라는 글은 허언이 아니었다. 책을 읽는 시간 동안 가슴이 여러번 찢어졌다. 이렇게 비참하고 괴로움만 가득한 내용인데 또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있을 수가.


소설은 1975-1977년 사이 인디라 간디가 선포한 국가비상사태 체제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이시바와 옴, 디나와 마넥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작가가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을 어루만져 주기 때문인지 딱히 주인공을 누구라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저 네 명을 큰 줄기로 하는 건 틀림 없다. 카스트 계급 중 낮은 계급에 속하는, 가죽세공일을 하는 차마르 카스트 소속 이시바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동생과 함께 재봉일을 배우게 된다. 그 일이 성공해 동생 나라얀은 고향에 돌아가지만 고위 카스트 계급에게 살해당하고 이시바와 나라얀의 아들 옴을 제외한 모든 가족이 몰살 당하고 만다. 그 후, 재봉일로 돈을 벌고자 도시로 나간 이시바와 옴은 고생 끝에 디나를 만나 고정적인 일을 맡게 되고 디나의 집에 하숙생인 마넥이 찾아 오면서 나이도 성별도 성장배경도 다른 네 사람 사이에 점차 유대감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이렇게만 끝났다면 읽으면서 가슴이 찢어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특히 이시바와 옴에게는 끊임없는 불행들이 찾아온다. 그들이 행복한 가운데서도 언제 또 불행한 일들이 찾아 올지 불안했다.


삶은 사람들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다루며, 좋은 것들은 갈기갈기 찢어 놓고 나쁜 것들은 냉장되지 않은 음식의 곰팡이처럼 계속 자라도록 만드는 걸까?  P. 633


그들의 삶에 딱 맞는 글귀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집주인이자 고용주인 디나가 재봉사들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어 그들이 가족처럼 변해 갈때엔 - 그 기간이 잠깐일지라도- 마음이 따스해졌다. 이시바와 옴, 디나, 마넥이 비로소 같은 집에 살게 되어 함께 요리를 만들거나 함께 고양이를 돌보는 이야기는 비록 그들은 서로에 대해 낱낱이 모를지라도 앞으로는 다를 거라는 희망이 엿보인 대목이기도 했다. 또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는 독자로선 세세히 알 수 밖에 없는데 그들이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게 서로에게 큰 의미가 된다는 걸 알기에 뿌듯해지기도 했다.


이 책 제목인 <적절한 균형>은 무엇일까? 이 책엔 적절하기엔 한참 모자라는 행복과 적절하기엔 넘치는 불행들이 존재한다. 큰 권럭 앞에 모든 것을 빼앗길 수 밖에 없는 사람들, 가난의 고통 , 그들을 둘러싼 부조리한 상황들. 작가는 독자들에게 우리가 사는 세계에 어떤 것이나 적절한 균형이 있어야만 함을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책을 다 읽고서도 그들 네 사람이 함께 요리를 하고 고양이를 키웠던 부분을 돌아가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만약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그들은 계속 행복하게 가족처럼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랬다면 이 책은 그냥 괜찮은 소설로만 남아 있었을 것이다. 꼭 읽으란 말이 다른 독자들에게 어떻게 와닿을진 모르겠다. 읽고나서의 괴로움은 있을 망정 이 책이 훌륭한 책임은 틀림없다. 또 거대한 권력 앞에 희생되는 사람들이 계속 존재하는 한 계속 내 기억 속에 남아있을 책이 될 것도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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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위해 사는 법 - 삶과 죽음의 은밀한 연대기
기타노 다케시 지음, 양수현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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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고3이었을 때는 요즘처럼 인터넷 사용이 그리 활발하지 못할 때였다. 지금이야 개봉영화 정보는 검색 몇 개로 얻을 수 있었지만 예전에는 신문광고를 보고 개봉관과 시간을 확인한 뒤에 영화를 보러가곤 했다. 어느 날, 신문을 휙휙 넘기다 발견한 영화 광고가 내 눈을 확 사로잡았는데 바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키즈리턴>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날 사로잡았는지 모르겠다. 넓은 포스터 공간 중 하필 귀퉁이에 자리 잡은 두 사람이었을까? 아님 쉽게 접하지 못한 일본영화라는 이유였을까? (내가 학생이었을 땐 아직 일본문화가 개방되기 직전이라 음반과 영화, 애니메이션까지 용산에 가서 구해볼 때였다) 어쨌거나 친구들을 꼬드겨 대학로까지 달려가 본 <키즈리턴>은 대만족이었다. 수험생활에 지쳐있기도 했고 끝없이 정체된 기분이 들 때였다. 나름 각자의 분야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다 한순간에 밑바닥으로 추락해버린 두 주인공이 그렇게 탈출하려했던 학교로 돌아와 예전처럼 자전거를 타면서 다시 일어서려는 그 모습이 자꾸 내 수험생활과 겹쳐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3은 인생고난의 서두에 불과했지만- "우리 이제 끝난 걸까?" "바보,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키즈리턴>의 주인공 마사루와 신지의 대화는 그 이후로도 내가 힘들다고 느낄 때마다 날 위로해준 명대사였다.

  <키즈리턴>을 좋아했다 해도 감독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것이 없었다. 영화를 보며 막연하게 아,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좌절 속에서 희망을 발견한 사람이구나 생각했을 뿐이다. 감독이 아닌 배우로서 기타노 다케시를 발견한 건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과 <자토이치>를 통해서였다. 무뚝뚝한 인상의 아저씨라는 것이 솔직한 첫인상이었지만 어느 샌가 일본배우하면 떠오르는 일 순위가 되어있었다. (인기 코미디언에서 영화배우로 그 뒤 영화감독으로 전향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죽음 앞에서 자신의 성찰하다.

개인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건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타인의 방에 주인 없이 앉아 있는 낯선 느낌이랄까. 설령 그것이 쓰인 글일지라도 말이다.
기타노 다케시가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썼다는 이<죽기 위해 사는 법>이라는 책은 1994년 그가 오토바이 사고를 겪은 후에 쓴 자전적 에세이다. 병상에 누워 힘든 재활치료를 받으며 그때그때 느꼈던 감정들과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쓴 글들을 모아놓았다. 하지만 가족의 사랑을 새삼 느꼈다든지 소설처럼 극적인 감동은 들어있지 않았다. 그의 무뚝뚝한 얼굴처럼 하나같이 독한 글들을 뱉어놓았다. 아마 병상에서의 여러 가지 감정이 고스란히 들어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치료의 어려움과 홀로 견뎌야하는 고독함, 재기에 대한 불안, 초조함 등이 아니었을까. 독자로선 오히려 다듬어지지 않고 토해낸 그 감정들이 당시 저자의 급박한 상황을 이해하기에 더 좋지 않았나 생각된다. 

 혼자 누워 있다 보면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하물며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하는 병상에서는 오죽할까. 책에는 저자가 과거의 자신과 앞으로의 자신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곳곳에 들어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더 건강해지면 그는 다시 오토바이를 타겠다고 한다. 보통 큰 사고를 겪고 나면 그 원일을 피해야 정상인데 배포가 큰 건지 아님 겁이 없는 건지 걱정할 찰나 이런 글이 눈에 띄었다. 
  

사고를 일으키고 잠시 멈추었다가 한동안 속도를 늦출 수는 있어도, 평소대로 돌아가면 다시 원래의 빠르기로 달린다. 그것이 삶이고, 다른 방향을 향해 다른 속도로 달리게 되면 그것은 이미 그의 인생이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의 인생이다. p.70

나도 과연 인생의 큰 굴곡 앞에서 저자처럼 생각 할 수 있을까? 완전히 끝내려면 사고를 당한 장소에서 오토바이에 올라 넘어지지 않고 조심히 커브를 도는 것이라니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내를 두고 따로 애인을 뒀다는 일화나 일부일처제 망국론 같은 글들은 상당히 나와 맞지 않았다. 뭐, 사람이 백이면 성격도 생각도 백일 테니까 이해는 못해도 받아들일 순 있었지만. 또 일본의 현주소에 대해 쓴 글과 연예계에 대한 비판은 그의 독설과 함께 재밌게 읽혔다. 독특한 사상도 한몫했고.

사실 이 책은 인간 기타노 다케시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참 불친절한 책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포커스> 밀회사진이나 <프라이데이> 습격사건도 나에겐 생소했기 때문이다. 일본 연예계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인지 그 일이 어떤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는지 잘 모르겠다. 간단한 개요라도 있었음 했지만 뭐, 인터넷 검색이 이럴 때 필요하지 언제 필요하겠는가.

책을 읽다보니 갑자기 기타노 다케시가 나오는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그가 만들거나 출연한 영화는 그 강렬함 때문인지 한번 보면 다시 찾지 않는 영화가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그토록 피해 다니던 <피와 뼈>에 도전해볼까 생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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