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위해 사는 법 - 삶과 죽음의 은밀한 연대기
기타노 다케시 지음, 양수현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고3이었을 때는 요즘처럼 인터넷 사용이 그리 활발하지 못할 때였다. 지금이야 개봉영화 정보는 검색 몇 개로 얻을 수 있었지만 예전에는 신문광고를 보고 개봉관과 시간을 확인한 뒤에 영화를 보러가곤 했다. 어느 날, 신문을 휙휙 넘기다 발견한 영화 광고가 내 눈을 확 사로잡았는데 바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키즈리턴>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날 사로잡았는지 모르겠다. 넓은 포스터 공간 중 하필 귀퉁이에 자리 잡은 두 사람이었을까? 아님 쉽게 접하지 못한 일본영화라는 이유였을까? (내가 학생이었을 땐 아직 일본문화가 개방되기 직전이라 음반과 영화, 애니메이션까지 용산에 가서 구해볼 때였다) 어쨌거나 친구들을 꼬드겨 대학로까지 달려가 본 <키즈리턴>은 대만족이었다. 수험생활에 지쳐있기도 했고 끝없이 정체된 기분이 들 때였다. 나름 각자의 분야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다 한순간에 밑바닥으로 추락해버린 두 주인공이 그렇게 탈출하려했던 학교로 돌아와 예전처럼 자전거를 타면서 다시 일어서려는 그 모습이 자꾸 내 수험생활과 겹쳐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3은 인생고난의 서두에 불과했지만- "우리 이제 끝난 걸까?" "바보,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키즈리턴>의 주인공 마사루와 신지의 대화는 그 이후로도 내가 힘들다고 느낄 때마다 날 위로해준 명대사였다.

  <키즈리턴>을 좋아했다 해도 감독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것이 없었다. 영화를 보며 막연하게 아,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좌절 속에서 희망을 발견한 사람이구나 생각했을 뿐이다. 감독이 아닌 배우로서 기타노 다케시를 발견한 건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과 <자토이치>를 통해서였다. 무뚝뚝한 인상의 아저씨라는 것이 솔직한 첫인상이었지만 어느 샌가 일본배우하면 떠오르는 일 순위가 되어있었다. (인기 코미디언에서 영화배우로 그 뒤 영화감독으로 전향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죽음 앞에서 자신의 성찰하다.

개인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건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타인의 방에 주인 없이 앉아 있는 낯선 느낌이랄까. 설령 그것이 쓰인 글일지라도 말이다.
기타노 다케시가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썼다는 이<죽기 위해 사는 법>이라는 책은 1994년 그가 오토바이 사고를 겪은 후에 쓴 자전적 에세이다. 병상에 누워 힘든 재활치료를 받으며 그때그때 느꼈던 감정들과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쓴 글들을 모아놓았다. 하지만 가족의 사랑을 새삼 느꼈다든지 소설처럼 극적인 감동은 들어있지 않았다. 그의 무뚝뚝한 얼굴처럼 하나같이 독한 글들을 뱉어놓았다. 아마 병상에서의 여러 가지 감정이 고스란히 들어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치료의 어려움과 홀로 견뎌야하는 고독함, 재기에 대한 불안, 초조함 등이 아니었을까. 독자로선 오히려 다듬어지지 않고 토해낸 그 감정들이 당시 저자의 급박한 상황을 이해하기에 더 좋지 않았나 생각된다. 

 혼자 누워 있다 보면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하물며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하는 병상에서는 오죽할까. 책에는 저자가 과거의 자신과 앞으로의 자신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곳곳에 들어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더 건강해지면 그는 다시 오토바이를 타겠다고 한다. 보통 큰 사고를 겪고 나면 그 원일을 피해야 정상인데 배포가 큰 건지 아님 겁이 없는 건지 걱정할 찰나 이런 글이 눈에 띄었다. 
  

사고를 일으키고 잠시 멈추었다가 한동안 속도를 늦출 수는 있어도, 평소대로 돌아가면 다시 원래의 빠르기로 달린다. 그것이 삶이고, 다른 방향을 향해 다른 속도로 달리게 되면 그것은 이미 그의 인생이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의 인생이다. p.70

나도 과연 인생의 큰 굴곡 앞에서 저자처럼 생각 할 수 있을까? 완전히 끝내려면 사고를 당한 장소에서 오토바이에 올라 넘어지지 않고 조심히 커브를 도는 것이라니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내를 두고 따로 애인을 뒀다는 일화나 일부일처제 망국론 같은 글들은 상당히 나와 맞지 않았다. 뭐, 사람이 백이면 성격도 생각도 백일 테니까 이해는 못해도 받아들일 순 있었지만. 또 일본의 현주소에 대해 쓴 글과 연예계에 대한 비판은 그의 독설과 함께 재밌게 읽혔다. 독특한 사상도 한몫했고.

사실 이 책은 인간 기타노 다케시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참 불친절한 책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포커스> 밀회사진이나 <프라이데이> 습격사건도 나에겐 생소했기 때문이다. 일본 연예계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인지 그 일이 어떤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는지 잘 모르겠다. 간단한 개요라도 있었음 했지만 뭐, 인터넷 검색이 이럴 때 필요하지 언제 필요하겠는가.

책을 읽다보니 갑자기 기타노 다케시가 나오는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그가 만들거나 출연한 영화는 그 강렬함 때문인지 한번 보면 다시 찾지 않는 영화가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그토록 피해 다니던 <피와 뼈>에 도전해볼까 생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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