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균형 아시아 문학선 3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 <적절한 균형>을 알게 된 건 어느 블로그에서였다. 그 블로그에서 읽은 소설에 대한 극찬은 내가 이 책에 궁금증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작가의 이름 그리고 만만치 않은 책 두께. 하지만 글 말미에 있던 꼭 읽어보라는 추천은 책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이 없으면 결코 쓰지 못하는 말이다. 대체 어느 정도기에 이렇게 입소문이 대단한건지  작년에 읽은 <6인의 용의자>와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작가 비카스 스와루프로 안해 생긴 인도소설에 대한 애정이 다시금 솟아나는 듯 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적절한 군형>을 읽는 데에 꼬박 5일이 걸렸다. 800여 페이지가 넘는 두께 때문은 아니다. 마음만 먹었다면 이틀정도 만에 끝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던건 자꾸만 가슴이 답답해 졌기 때문에, 또 자꾸만 한숨이 입술 밖으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때마다 책 읽기를 멈추고 다른 즐거운 일을 했다. 괜히 인터넷 기사를 뒤적거리고 만화책도 보고. 책 표지 뒤에 있던 "이 소설로 인해서 당신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플 것이다" 라는 글은 허언이 아니었다. 책을 읽는 시간 동안 가슴이 여러번 찢어졌다. 이렇게 비참하고 괴로움만 가득한 내용인데 또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있을 수가.


소설은 1975-1977년 사이 인디라 간디가 선포한 국가비상사태 체제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이시바와 옴, 디나와 마넥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작가가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을 어루만져 주기 때문인지 딱히 주인공을 누구라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저 네 명을 큰 줄기로 하는 건 틀림 없다. 카스트 계급 중 낮은 계급에 속하는, 가죽세공일을 하는 차마르 카스트 소속 이시바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동생과 함께 재봉일을 배우게 된다. 그 일이 성공해 동생 나라얀은 고향에 돌아가지만 고위 카스트 계급에게 살해당하고 이시바와 나라얀의 아들 옴을 제외한 모든 가족이 몰살 당하고 만다. 그 후, 재봉일로 돈을 벌고자 도시로 나간 이시바와 옴은 고생 끝에 디나를 만나 고정적인 일을 맡게 되고 디나의 집에 하숙생인 마넥이 찾아 오면서 나이도 성별도 성장배경도 다른 네 사람 사이에 점차 유대감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이렇게만 끝났다면 읽으면서 가슴이 찢어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특히 이시바와 옴에게는 끊임없는 불행들이 찾아온다. 그들이 행복한 가운데서도 언제 또 불행한 일들이 찾아 올지 불안했다.


삶은 사람들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다루며, 좋은 것들은 갈기갈기 찢어 놓고 나쁜 것들은 냉장되지 않은 음식의 곰팡이처럼 계속 자라도록 만드는 걸까?  P. 633


그들의 삶에 딱 맞는 글귀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집주인이자 고용주인 디나가 재봉사들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어 그들이 가족처럼 변해 갈때엔 - 그 기간이 잠깐일지라도- 마음이 따스해졌다. 이시바와 옴, 디나, 마넥이 비로소 같은 집에 살게 되어 함께 요리를 만들거나 함께 고양이를 돌보는 이야기는 비록 그들은 서로에 대해 낱낱이 모를지라도 앞으로는 다를 거라는 희망이 엿보인 대목이기도 했다. 또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는 독자로선 세세히 알 수 밖에 없는데 그들이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게 서로에게 큰 의미가 된다는 걸 알기에 뿌듯해지기도 했다.


이 책 제목인 <적절한 균형>은 무엇일까? 이 책엔 적절하기엔 한참 모자라는 행복과 적절하기엔 넘치는 불행들이 존재한다. 큰 권럭 앞에 모든 것을 빼앗길 수 밖에 없는 사람들, 가난의 고통 , 그들을 둘러싼 부조리한 상황들. 작가는 독자들에게 우리가 사는 세계에 어떤 것이나 적절한 균형이 있어야만 함을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책을 다 읽고서도 그들 네 사람이 함께 요리를 하고 고양이를 키웠던 부분을 돌아가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만약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그들은 계속 행복하게 가족처럼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랬다면 이 책은 그냥 괜찮은 소설로만 남아 있었을 것이다. 꼭 읽으란 말이 다른 독자들에게 어떻게 와닿을진 모르겠다. 읽고나서의 괴로움은 있을 망정 이 책이 훌륭한 책임은 틀림없다. 또 거대한 권력 앞에 희생되는 사람들이 계속 존재하는 한 계속 내 기억 속에 남아있을 책이 될 것도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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