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촌에서>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서울, 북촌에서 - 골목길에서 만난 삶, 사람
김유경 지음, 하지권 사진 / 민음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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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즘도 꿈을 꾸면 어릴적 살았던 한옥집이 배경으로 나온다. 지붕에서 내려다 보면 'ㄱ'자를 좌로 돌려 놓은 모양이었는데 가운데 마루가 있고 큰방과 건넌방이 마주보고 있었다. 'ㄱ'자의 양 끝에는 방이 하나씩 더 있었고 대문 옆으로는 창고, 욕실, 화장실이 나란히 위치했다. 아마 이 구조가 한옥집에 대한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통으로 떠올리는 모양일 것이다. 하지만 그때만해도 한옥이 하나 둘씩 허물어지고 반듯한 양옥이 들어서던 시절인지라 불편한 한옥집이 부끄럽기도 했다. 

 

 한밤중에 화장실 한 번 갈려면 잠든 언니를 깨워 잔소리를 들어가며 볼일을 봐야 했고, 여름철 마당을 풀쩍 거리며 뛰어 다니는 귀뚜라미도 도무지 정이 가질 않았다. 당시만 해도 연탄으로 난방을 하던 때라 해마다 겨울이면 연탄가스 때문에 긴장하곤 했다. 그런데 이제와 유년을 돌아보니 한옥집을 떠올리지 않고는 어린시절을 이야기 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최근에 전원주택이나 친환경에 관심이 많아지면서는 그 시절이 더욱 그립다. 나무 냄새 솔솔 풍기던 마루도 그립고 너른 마당에 화단이며, 여유롭게 공상을 즐겼던 다락방도 너무나 그립다.

 

 <서울, 북촌에서>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서울의 북촌과 북촌 사람들에 관한 내용을 글로 엮은 것이다. 솔직히 서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63빌딩 같은 고층 건물이나 화려한 야경 처럼 번화한 도시의 이미지라서 과연 서울에도 전통이란 것이 남아있긴 한 걸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북촌의 한옥촌을 중심으로 여전히 전통의 멋을 간직한 곳이 있고, 그곳을 지켜온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뜻밖이었다. 

 

 북촌은 청계천을 중심으로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조선시대 세도가들, 왕실의 종친들이 거주했던 곳이다. 왕조가 막을 내리면서 넓은 평수의 집들이 조각으로 팔리기 시작하고 북촌의 영화가 막을 내리는가 싶더니 일제 강점기때 주택회사가 땅을 사들여 대량으로 분양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전통적인 한옥과 비교하면 구조부터 많이 다르긴 하다. 하지만 전통의 멋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결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 것도 사실이다. 북촌 한옥의 특징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움인 것이다.  

 

 <춘향뎐> <서편제> <취화선> 이 영화들의 특징이 무엇일까? 임권택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 국제 무대에서 인정받은 작품이라는 것.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가장 한국적인 내용이라는 사실이다. 다시말해서 한국의 미를 영상예술로 승화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국제 무대에서 통할 수 있었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고, 한국에서만 즐길 수 있는 문화일 것이다. 그렇다고 북촌에는 한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책에는 북촌만의 다양한 볼거리, 먹거리, 서울의 상징물, 조상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유적지 및 종묘 대제, 영산재 같은 무형문화에 이르기까지 북촌에 관한 거의 모든 정보가 들어있다.

 

  하지만 전통을 보존하고자 하는 의지도 개발의 유혹 앞에서는 참으로 무력하다. 개인이야 사유 재산이라며 큰 소리 친다지만 전문가들조차 경제적인 면에 치우친 의견을 내놓음으로써 전통을 훼손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니 안타깝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다. 전통과 현대의 공존이라는 가치는 지금 당장의 경제적 이익만으로는 따질 수 없는 것이다. 한번 허물어진 것은 복원에 성공한다고 하여도 원래의 '그것' 과는 결코 같은 것일 수가 없기에 매사를 결정함에 있어 신중 또 신중하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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