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폰, 잔폰, 짬뽕>을 읽고 리뷰해주세요.
차폰 잔폰 짬뽕 - 동아시아 음식 문화의 역사와 현재
주영하 지음 / 사계절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지난 주말에 '키즈 카페'란 곳을 처음 갔었다. 아이가 같은 반 친구의 생일 파티에 초대되었는데 저학년이다 보니 엄마들도 함께 모이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의 취향에 맞춘 실내 놀이 시설부터 깔끔하게 서빙되는 음식까지 어른인 내가 봐도 정말 신기한데 아들의 마음이야 오죽하랴 싶었다. 머리카락 끝에서 땀이 뚝뚝 떨어질 만큼 신나게 노는 아이들을 보니 문득 옛생각이 떠올랐다. 그 시절엔 생일이나 입학, 졸업 등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면 특별식을 먹으면서 축하하곤 했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빠지지 않았던 0순위가 바로 자장면과 짬뽕이었다. 얼굴에 검은 칠을 해가면서, 때론 매워서 호호 거리면서도 맛나게 먹었던 중국음식은 유년의 추억과는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요즘 아이들은 특별한 날에 무엇을 먹을까 하고 물으면 하나같이 입을 모아 '피자'를 외친다. 엄마 세대에 최고의 특별식이었던 중국음식이 그렇게 왕좌를 내어주는 것을 보는 순간, 세월의 흐름과 변화된 음식 문화를 느끼게 된다. 따지고 보면 고된 노동(정신적, 육체적)을 하고 아둥바둥 사는 것도 기본적으로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보니 어느 사회든지 먹고 사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면 문화가 보이고 역사가 보이고 의식이 보이는 것이다. 

 

 <차폰 잔폰 짬뽕> 일단 내용은 뒤로하고 올들어 읽은 100여권의 책들 중에서 제목 만큼은 가장 잘 지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동아시아 음식 문화의 역사와 현재'라는 부제목과 비슷한 수준의 제목을 달았더라면 여느 인문서적과 다를 것이 없는 외모를 가졌을 터이지만 삼국의 음식 문화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고, 상호 영향을 주고 받았다는 내용까지 함축하고 있는 제목이라서 참 마음에 든다.

 

 내용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한국인과 '매운 맛'에 관한 것이다. 요즘도 해외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중에는 필수품처럼 가방 가득 된장, 고추장, 김치, 컵라면 등을 챙겨가는 분들 있을 것이다. 외국을 여행한다는 것은 그 나라의 전통과 문화를 느끼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음식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마땅하다고 하면서도 기름지거나 혹은 덜 자극적인(닝닝한) 음식을 먹게되면 김치 생각이 간절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저자가 우려한 대로 '한국 맛'과 '매운 맛'이 같은 의미로 알려지게 된 것인데, 세계화에 성공할 가능성을 가진 음식들이 많음에도 특정한 이미지로 굳어진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국의 어느 호텔에 가든지 지방을 대표하는 토속 음식은 없고 획일화된 외국의 요리만 선보인다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특히 제주도의 경우 고유의 음식은 점차 사라지는 반면 육지에서와 같은 횟집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니 관광문화 활성화로 봐서도 바람직하지 못한 부분이다. 토속 음식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져서 체계적으로 정리되는 날이 오기를, 손맛도 중요하지만 레시피를 통해 누구나 만들어 즐길 수 있을 만큼 보편화 되기를 기대해 본다. 

 

 흔히들 인간의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 세 가지를 의식주라고 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나 세 가지 중에서도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초반부에 짬뽕의 발생과 전파 경로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한국인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식재료인 고추의 보급과정, 일본 가고시마의 고구마 소주, 중국의 경우 구조 조정하듯 소수 민족을 몇 개라고 규정해 버림으로써 그들의 문화마저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 등을 대할 때, 음식이란 것이 생계를 위한 조건을 넘어서 정치, 경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결국 '모든 길은 음식으로 통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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