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 (양장)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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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순간 소중한 이를 지키고 떠난 지극한 사랑,
본능적으로 타인을 구하고 불구가 된 영웅적인 의인,
죽은 친구의 가족들에게 변함 없는 애정과 관심을 기울이는 선함,
기적과 희망과 그러므로 살만한 세상에 대한 믿음..
떠올리면 마음 따뜻해지는 그런 것들의 보이지 않는 이면에 얼마나 처절한 인내와 분노와 무책임, 무지와 고통이 가득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소설.

매순간 내가 원한 적 없었던 헌신과 희생으로 얻어진 삶의 가치를 증명하며 살아야 한다면, 그 시간들은
얼마나 버겁고 끔찍할까..
동전에 앞뒷면이 있듯 우리가 쉽게 판단하고 믿는 이야기들 속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수많은 고통과 아픔이 있을 수 있다는 것,
누군가의 어깨에 그가 원치않는 희망이니 기대니 하는 짐을 함부로 올려놓는 것은 선의도 관심도 아닌 또다른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작가의 깊은 시선이 놀랍다.
섣부르게 응원을 가장한 부담을 주지 말것,
타인의 기적과 희망을 쉽게 단정하지 말것,
누군가의 삶의 가치를 함부로 매기지 말것.
그저 변치않는 마음으로 조용히 지켜봐주는 것만 하자고 다짐하게 만들어준 소설의 잔잔하지만 강한 울림이 진심으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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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언수 소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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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와 주먹에 힘을 빼고, 툭 툭, 주먹으로 치는게 아니라 냉장고에서 방울토마토를 재빨리 꺼내 온다는
느낌으로 팔을 뻗는거야. 툭 툭, 스탭을 밟으면서 기계적이고 반복적으로, 툭 툭, 발의 움직임을 따라 목에 리듬을 타면서 툭 툭, 상대가 짜증이 나도록, 상대가 초조해지도록, 상대의 얼굴에서 서서히 분노가 차오르도록 툭 툭, 계속해서 날리는거야. 그럼 알아서 무너져. 잽으로 다 무너뜨린 다음 한방에 보내는 거지.
이게 잽이라는 거다.‘
소설 ‘설계자들‘로 암살자와 설계자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냈던 김언수 작가의 단편집.
권투의 공격 기술인 잽의 설명에서 짐작 되듯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않는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잽을 날리는 이들의 평범하면서도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무작정 권투를 배우는 반항기의 고교생, 머리 나쁜 여자와 금고를 털다 갇혀버린 금고털이범들, 단란주점 아가씨와 웨이터, 깡패들의 기싸움, 첫 섹스를 꿈꾸는
32살의 동정남, 아버지를 부양하느라 빈털터리가 된 동생과 아내의 눈칫밥을 먹고 사는 실업자 형의 갈등..
그렇고 그런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공감과 안타까움, 연민을 오가며 나름의 재미와 감동을 주는데, 개인적으로 특히 좋았던 작품은 ‘잽‘과 ‘참 쉽게 배우는 글짓기 교실‘이었다.
‘잽‘은 교사라는,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일종의 폭력적 행동에 권투 기술인 잽으로 대응하는 고교생의 이야기다.
교사에게 순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게 된 고교생이 반성문 쓰기를 거부하고 매일 화장실을 청소하는 체벌을 선택한다.
하교길에 우연히 본 권투 전단지에 혹해 체육관을 찾아간 주인공은 관장에게 권투의 기술 중 하나인 잽을 배우며 일년동안 말없이 화장실 청소를 수행 해내고, 결국 졸업 직전 벌을 준 교사에게서 사과를 받아낸다.
잘못이 없으니 반성문은 못쓰겠다, 교사라는 지위를
앞세워 벌을 주겠다면 받겠다. 하지만, 당신이 옳아서
벌을 받는게 아니다..
반성문 대신 화장실 청소를 하는 주인공의 침묵은 끊임 없이 날리는 잽이 되어 결국 자신의 부당함을 알면서도 권위를 지키기 위해 체벌을 한 교사를 쓰러뜨린 것이다.
무조건 어른의 뜻대로 따르라는 권위에 맞서
힘없는 위치의 미성년이 할 수 있는 저항은 일년이란
시간동안 자신의 부당함을 매일 목격하게 만드는
잽의 연속일 뿐이라는 것.
권위를 행사하기보다 부당하게 당하는 입장이 될 확률이 더 높은 평범한 우리들에겐 일면 통쾌하면서도 조금은 씁쓸한 이야기다.
‘참 쉽게 배우는 글짓기 교실‘은 어느날 밤 귀가길에 누군가에게 납치되어 사방이 막힌 방에 감금된 주인공이 간첩이라는 사실을 털어놓고 그간의 활동을 고백하는 자술서를 쓰라는 그들의 어이 없는 요구를
받으며 시작된다.
처음엔 뭔가 착오가 있을거라는 믿음으로 강하게 자신의 혐의를 부정하던 주인공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 상황에 개선의 여지가 없음을 깨닫게 되고,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고문을 받으며 조금씩 그들의 요구에 맞춰 자술서를 쓰기 시작한다.
그들의 수정 요구대로 순순히 수정을 시작한 주인공은 자신의 요청대로 기꺼이 물적 지원을 해주고 수정한
진술서를 칭찬하는 그들에게 동화되며 점점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간첩활동 진술서를 작성하게 된다는 이야기.
어이 없고 유머러스한 상황과 대사들이 이어지며 웃음도 터지고, 흥미로운 몰입으로 순식간에 읽게 되지만 뒷맛은 잽보다 훨씬 쓰다.
자신의 정체성마저 누군가의 의도대로 기꺼이 바꾸게 되는 이야기는,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대로 자신의 꿈과 소망마저 자발적으로 각색 해가며 맞춰가는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에 대한 조롱이 아닐까..
나의 꿈이라고 믿어왔던 미래의 소망은 정말 오롯이 내가 키워온 나만의 꿈이었을까?

이야기들은 쉽게 술술 읽히고 재미있다.
그렇지만, 모든 단편들은 가볍기만 하지 않고 각기 다른 여운을 남기며 생각의 단초를 던져준다.
‘설계자들‘이 빼곡히 채워진 퍼즐 같았다면, 이 단편집은 적당히 여백이 있는 그림같은 느낌이랄까?
장편과 단편은 호흡이 달라 모두 잘 쓰기란 쉽지 않다던데, 그 말이 맞다면 김언수 작가의 필력은 그 어려운 걸 해내는 경지에 도달해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다음에도 단편을 낸다면 기꺼이 읽을 생각.
그러니 장르 구분 말고 부디 열심히 작업 해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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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사전
김소연 지음 / 마음산책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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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착시하기 때문에 나는 당신이 아름답다.
노을이 아름답게 타오르는 것이 우리 눈의 착시이듯이.
내가 보고있는 당신이 허상인 줄 알면서도 나는 당신을 믿는다. 노을을 믿듯이.˝
‘착시‘라는 단어에 대한 마음 사전의 정의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우리 마음 속 여러 감정들을
단어로 표현 해놓은 사전이다.
마음 자체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일 수밖에 없는만큼, 시인인 저자의 정의에 공감되는 마음도 있고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표현도 있지만, 단어 하나를 모래밭에서 찾아내듯 고통스럽게 고르고 골라 시를 쓰는 그녀의 신중하고 깊은 사고 덕에 대부분의 정의에 공감하고 감탄하게 된다.

가끔 국어사전에 정의된 단어들을 읽어보면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과 함께 아쉬움이 들 때가 있다.
명료하게 표현될 수 있는 명사나 사물, 현상 등에 대한 설명도 이럴진데 하물며 당사자조차 확신하기 힘들만큼 변화무쌍하고 오묘한 감정의 빛깔을 지닌
우리들의 마음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책에서 시인이 정의한 마음들은 그 섬세함과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공감,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의미의 무게 만으로도 놀랍다.
특히 감탄스러운 부분은 얼핏 그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힘들 것 같은 단어들에 대한 정의다.
처참과 처연과 처절, 은은하다와 은근하다, 자존심과 자존감, 솔직함과 정직함 등..
비슷한 듯 다른 이 단어들에 대한 그녀의 정의를 읽다보면 저절로 내 마음이 그런 감정들과 마주했던 순간이 떠오르며 나도 모르게 탄식과 함께 공감을 하게된다.
십대부터 사십대까지 자신의 삶을 통해 깨달은 그 나이들의 의미와 그즈음의 고통과 가치에 대한 고찰,
인간의 영원한 과제이자 열망인 사랑에 관한 단상,
미묘하고 때론 치사하고 구차하고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수많은 감정들의 빛과 어둠, 어딘가의 중간 자리에 서있는 복잡한 마음들의 익숙치 않은 생김새까지..
마치 돋보기를 대고 몇날 며칠을 들여다 본듯한
섬세하고 치밀한 사고를 통해 그녀는 이런 마음들에 자신만의 이름표를 붙이고 설명을 덧붙였다.
그렇게 그녀가 씨실 날실을 엮어 옷을 짓듯 꺼내어 표현해 놓은 이 모든 마음들에 우리는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소중하다와 중요하다의 정의였다.
˝소중한 존재는 그 자체가 궁극이지만, 중요한 존재는 궁극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이다.
돈은 전혀 소중하지 않은 채 가장 중요한 자리에 놓여있다. 너무 중요한 나머지 소중하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어느샌가 소중했던 당신이 중요한 당신으로 변해가고 있다. 조금씩 덜 소중해지면서 아주 많이 중요해지고
있다.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
소중하기 때문에 중요한 존재가 되는 게 당신과 나의 소망이었다.
이세상 애인들은 서로에게 소중하지만 아직은 중요하지 않다. 이세상 부부들은 서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미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은 어디론가 스며들고 있다.
우리는 중요한 것들의 하중 때문에 소중한 것들을
잃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약속과 소중한 약속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중요한 약속에 몸을
기울이고 만다.˝

어린 나이에 이 글을 읽었다면 이정도로 공감할 수 있었을지 확신 할 순 없지만, 지금 나에겐 아플 정도로 공감 되는 문장이었다.
나는 소중한 것과 중요한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소중한 것을 지키며 살고 있는가?
한참동안 이 질문이 내 삶의 중요한 화두가 될 것 같다.
삶을 잘 경영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는 김소연 시인.
섬세하고 따뜻한 그녀의 마음이 빚어내는 놀라운 문장들의 힘을 다음 책에서도(시든 수필이든 또다른
사전이든)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그녀의 건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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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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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특히 장편보다는 단편을, 단편보다는 에세이를 좋아하는데, 이 책은 최근 읽었던 단편집들 중
손에 꼽을만큼 좋았다.

각각 다른 이야기들이지만, 다 읽고나니 결국 이 책 속의 단편들을 통해 작가가 하고싶었던 이야기는
타인을(그의 마음을, 지난 시간을) 제대로 바라보게 되는 것, 특히 이미 누군가를 이해 하기엔 늦어버린 순간에 깨닫게 되는 이해의 순간과 그 마음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헤어진 연인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선배, 불량 학생,
한때 뜨겁게 사랑했던 기억으로 위로 받으며 살아가는 어떤 마음, 그저 자식들의 엄마로만 평생을 살아오신 우리 모두의 엄마..
어쩌면 이해보다는 오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익숙했던 그들에 대해 다른 시각과 마음을 갖게되는
이해의 순간을, 그 마음들을 들여다 보며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가족과 주변 지인들에 대해 난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생각 해보게 되는 글들.
어떤 작품은 아주 쉬운 일상어 표현으로 공감이 되게 풀어놓았고, 어떤 이야기들은 추상화처럼 난해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로 이해를 확신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작품은 책 제목과 같은 ‘사월의 미, 칠월의 솔‘.
미모의 여배우였던 이모가 유부남인 감독과 사랑의 도피처로 선택한 제주도의 작은 집에서 뜨겁게 사랑하며 보냈던 오래전 어느 해 4월부터 7월까지 석달, 그때의 기억을 간직한 채 그 마음에 기댄 그리움으로 평생을 견디며 살아온 이모의 쓸쓸한 사랑을 이해하게 된 조카의 애잔한 마음이 담겨있는 이야기다.
비가 많이 내리는 제주도에서, 서로의 사랑만으로 충분하다 믿었던 그 작은 집의 지붕을 때리며 땅에 떨어지던 빗소리가 사월에는 미, 칠월에는 솔의 음으로 들렸다는 이모의 말.
달이 바뀌며 달라진 빗소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쳐 온 두사람이 조금씩 현실을 깨닫고 자신들의 미래엔 함께 한 수 있는 선택지가 없음을 받아들이게 된 그 마음의 변화가 만들어낸 다른 음이 아니었을까..
지나버린 사랑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더
많고, 또다른 사랑으로 쉽게 잊혀진다.
하지만, 뜨겁게 사랑했던 그사람과 그 시절의 내 모습보다, 지붕을 두드리며 내리던 빗소리의 음으로
기억 속에 남은 추억은 평생 하나뿐인 사랑으로 단단하게 각인 되기도 한다.
단편을 읽고나니 제목도 너무 좋았지만 그 속에 담긴 쓸쓸한 여운이 내 마음에도 오래 남게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엄마의 재혼을 반대했던 딸이 성인이 되어 엄마를 다시 바라보게 되면서 자신과 다른 어법을 가진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도,
쌍둥이 딸과 자폐를 가진 아들을 둔 엄마의 좌절과
희망을 오가는 마음도,
늙은 엄마가 부끄러워 졸업식에도 오지 못하게 했던
아들이 늦은 밤 괴성을 낸다는 터널을 찾아 뒤늦게
돌아가신 엄마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느끼는 자책도,
이혼만이 살 길이라 생각하며 살다가 늦은 나이에 소설가가 된 엄마의 책을 읽으며 이혼을 삶의 실패로
여기다 쓸쓸히 돌아가신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아들의 마음도,
결손가정에서 자란 문제아를 이해 하기위해 남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 담임의 노력도..
모두 다 그럴법 하다는 공감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여지 없이 쓸쓸해진다.
결국 삶이란 어쩌면 끊임없이 타인들을 내 식으로
오해하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마음 때문에.

엄마가 돌아가신 뒤엔 엄마가 나오는 이야기에는
여지 없이 갑자기 눈물이 터져서 힘든데, 이 책 속엔
유난히 엄마가 자주 등장해서 많이 힘들기도 했다.
‘딸과 엄마는 어쩔 수 없는 애증의 관계‘라는 말이 무색하게 친구처럼 자매처럼 딸들에게 더없이 친밀한
존재였던 엄마.
상실의 고통보다 그리움이 더 커지는 날이 오면 그땐
좀 더 편하게 이 책을 다시 읽을수 있을까?
다시 한번 김연수 작가의 단편을 좋아하게 만든 책.
성실한 작업으로 다작하는 그의 다음 작품(에세이라면 더 좋겠지만^^)을 기대하며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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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 요조와 임경선의 교환일기
요조.임경선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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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인 작가 임경선과 가수 요조의 교환일기.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여자인 두 사람이 자신들의 삶에서 중요한 키워드인 몇가지 주제들에 관한 각자의 생각을 편지 형식으로 주고받은 책이다.
여자이면서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직업을 가진 프리랜서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그녀들은,
주제에 따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자신들의 생각을 솔직하게 주고 받으며, 심각한 토론과 가벼운 논쟁, 깊이 있는 공감과 부드러운 반발을 오가며 다른듯 비슷하고 같으면서 조금은 다른 위치에 서있는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풀어놓는다.

임경선의 글은 자타공인 다작 하는 작가답게 노련하고 직설적이며, 은유와 서사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문체로 자신의 확고한 가치관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반면에 요조는 음정과 운율, 가사를 통해 노래하는 가수답게 임경선에 비해 서정적이면서 생활적인 감성이 드러나는 글로 그의 성향을 짐작하게 한다.
많은 지점에서 공통점을 가진 두사람은(그렇기에 하루에도 여러번 연락을 주고받는 절친이 되었으리라) 이처럼 글만 봐도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조금씩 다른 목소리로, 여자로서 프리랜서 예술가로서 강연자로서 비슷한 모습으로 살고있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때론 과감하게 내보이며 독자들에게도 한번쯤 그 주제에 대해 함께 생각 해보고싶게 만든다.

굳이 꼽자면 나는 임경선보다는 요조의 성향과 더 비슷한 사람인 것 같다.
소극적이고 낯을 많이 가리며, 소심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영향도 상처도 많이 받는 타입.
반면 이 책 속 글에서 느껴지는 임경선의 성격은 좀 더 직설적이고 좋고 싫음이 명확하며, 순간의 감정에 솔직한 자기 확신형 스타일..?
(돈이 제 1조건이라는 솔직함이 너무 시원했고,
업무 청탁 메일에서 양아치를 선별하는 구분 팁은
정말이지 백배 공감의 핵사이다였다!)
어쩌면 서로 완전히 다른 위치에 놓여있는 듯한 이 ‘다름‘이 그녀들이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게 만들어 절친이 되도록 이끈 게 아닐까?
누가 봐도 다르지만 두사람이 주고 받은 글들을 읽다보면, 서로의 차이를 틀림이 아니라 다름으로 받아들이고 서로의 그 ‘다름‘에 깊이 공감하고
깨닫고 배우며 조금씩 비슷해져가고 있는 두 사람이 보인다.

여자로 사는 삶과 프리랜서로서의 장단점,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도 지옥으로도 만드는 연애, 누구도 대놓고 얘기하진 않지만 너무나 중요한 섹스에 관한 솔직하다 못해 거침없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에 주눅 들고 눈치 보느라 꺼내지 못했던 우리 마음속 응어리들이 조금씩 고개를 드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녀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생각으로 살아온 나도 좀 더 큰 목소리로 나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볼까 하는 욕심이 생긴다.
특히 내가 공감했던 부분은 나이가 든다는 것, 신체의 노화에 관한 이야기.
나이에 대해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 얼마나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는지,
나이에 대한 자각이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의무와 부담을 갖게 하는지 나 역시 자각하지 못한 채
스스로 일정 부분 나를 정형화 해버렸음을 깨달았고, 단지 숫자일 뿐인 나이 때문에 아직 내게 열려있는 수많은 가능성과 새로운 기회의 문들을 적어도 내 손으로 닫아버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됐다.

그리고, 읽는 것만으로 너무나 공감이 되어 가슴 아팠던 이야기는 죽음에 대한 다르면서 같은 두 사람의 생각 부분이었다.
여러 차례 암의 재발을 겪으며 미래 계획은 세우지
않고 매년 정기검진을 기점으로 년간 계획만 세운다는 임경선의 해탈 모드도,
동생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어느날 갑자기 소멸될 수 있는 존재라는 인간에 대한 자각으로 늘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둔 채 산다는 요조의 이야기도 너무 이해가 되었기 때문에.
엄마가 돌아가신 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나 역시 그 엄청난 상실의 아픔을 언제든 다시 겪게 될 수 있다는 불행한 짐작을 늘 마음 한켠에 둔 채 살고 있으며, 엄마를 제외한 행복한 미래를 꿈꾸기 싫어 눈앞의 근미래만 염두에 둔 채 사는 중이기 때문에.
상실의 아픔을 염두에 둔 채 사는것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지를, 티없이 완벽한 무결점의 행복을 누리는 세계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음을 자각하는 삶의 쓸쓸함을 너무나 잘 알기에, 담담하게 고백하는 그녀들의 마음이 더 아프게 느껴졌고, 조용히 따뜻하게 꼭 안아주고 싶었다.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지라도 시간과 함께 조금씩 더 무디어지고 옅어지기를, 그래서 조금씩 더 많이 웃게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 해주고싶다.

제목은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지만,
그녀들이 나눈 이야기들은 여자만이 아니라 어떤 이들에게도 해당되는, 독립적인 한 사람으로서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 길을 걸어가는 모든 개인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을 더 하고 더 괴로워할 것인가?
사랑을 덜 하고 덜 괴로워할 것인가?‘
그녀들에게도 쉽지않은 질문이었던 ‘연애의 기억‘ 속
이 문장이 어쩌면 연애뿐 아니라 결국 우리 삶에서
스스로 가장 많이 하게되는 질문이 아닐까?
살면서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에는 예외 없이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함께 따라온다.
어디에 방점을 찍고 어떤 것을 플러스라고 생각하는 지가 결국 나를 드러내주는 나의 가치관일 것이다.
수많은 편지와 여러 질문을 주고 받았지만 아직도 삶의 많은 길목에서 답을 찾고있을 임경선과 요조를
응원하며, 나도 나다운 나만의 답을 좀 더 열심히 찾아봐야겠다.
그러려면 그녀들처럼 교환일기를 주고 받으며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를 한명쯤 찾아야할까?
매일 수많은 대화를 나누고도 아쉬울만큼 좋은 친구를 만난 두 사람이 어떤 것보다 가장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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