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스마트폰 하나로 개인의 일상부터 취향, 가치관, 정치성향 등 거의 모든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빅브라더의 시대.
정보도 지식도 기술도 없는 그저 선하기만 한 사람이 권력자들의 음모로 인해 범죄자로 조작되는 누명을 쓰게 된다면, 그는 과연 어떻게 그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평범한 택배 기사인 청년 아오야기는 어느날 총리 암살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쫒기는 처지가 된다.
누가 봐도 아오야기의 얼굴인 남자가 총리를 암살하는 모습이 전국에 방송되고, 졸지에 수배범이 되어 도망치는 그의 처지는 당연히 체포되는 것으로 귀결이 되는 길밖엔 없어보이는데..
이때부터 이 소설은 헐리웃 추격 영화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의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처음엔 그저 순진하고 어리버리 해보이지만 쫒기는 동안 사태를 파악하고, 숨겨져 있던 영웅의 본능을 깨워 내재 되어있던(혹은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던) 능력을 드러내며 멋지게 대항해 누명을 벗겠지.. 라는
헐리웃식 스토리와는 1도 접점이 없는 전개가 펼쳐지는 것.
누가 봐도 공개된 범인의 얼굴이 아오야기이니 시작부터 그에겐 승산이 없는 싸움이지만, 그의 유일한 장점인 선함이 그를 돕는 가장 큰 무기가 된다.
오래된 그의 친구들은 범인으로 찍힌 얼굴을 보면서도 절대 그런 짓 할 리 없는 그의 선함을 믿고 진실을 의심하게 되고, 아오야기가 도망치다 만난 사람들 역시 직접 마주쳐 상대한 그의 선함을 겪은 후 뉴스나 정부보다 그를 믿고 도주를 도와준다.
어쩌면 판타지라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 한사람의 선한 인성과 그를 믿는 힘없는 개인들의 선의가 모여
결국 거대한 권력을 이기는 기적을 만드는 이야기.

출구도 해법도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누명을 쓰고
도망치기 시작하는 아오야기를 응원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정신 없이 따라가게 되는 고타로 특유의 스토리적 긴장감과 빠른 전개는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고,
오랜 친구의 사소한 습관으로 가짜를 구별하고 무한 신뢰로 위험을 무릅쓰며 아오야기를 돕기위해 애쓰는
친구들과, 도망자인 아오야기의 선함을 믿고 기꺼이 그를 도와주는 각양각색의 사람들 이야기는 소설적 재미를 넘어 뭉클하기까지 하다.
순진한 환상이라 할 지라도 힘없는 개인들이 거대 권력과 맞서 통쾌한 한방을 날리는 장면을 보는건 언제나 너무나 즐겁다.
물론 현실과의 싱크로를 완전히 무시하진 못했기 때문인지 결론은 완벽한 승리와 조금 거리가 있긴 하고, 그 결말에 독자들의 호불호가 갈라질 수도 있을테지만..
나 역시 개인적으로 아오야기의 마지막 선택이 서글프긴 했음에도 그것이 최선이라고 인정 할 수밖에 없는 공감 가는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음모론이란 단어가 더이상은 지나친 망상만은 아니란 사실이 곳곳에서(특히 정치판이라는 곳) 증명되고 있는 시대.
아오야기가 겪은 비극적 상황이 우리들에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을법한 일이라는 자각에 무섭고 끔찍하단 생각도 들었다.
지나치게 빠른 과학문명의 발달과 소수 권력자들과 부자들에게 집중된 힘의 불균형이 언제든 평범한 개인을 잔인하게 짓밟을 수 있다는 것.
단순히 재미난 소설의 소재를 넘어 반드시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할 과제임을 잊지말고 해법을 찾기위해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소설 하나 읽고선 비약이 너무 심하다고?
한때 비약이 심하다고 평가 받았던 과거 공상과학 영화들 속 세상 모습이 지금 우리의 일상임을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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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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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펠링 하나를 잘못 쓰는 바람에 엉뚱한 이에게 보내진 메일.
두번이나 메일을 잘못 보낸 여자와 그 메일을 받은
남자가 사과를 주고 받으며 대화를 시작하게 되고,
메일을 통해 서로 마음을 털어놓으며 친해지다가
결국 사랑의 감정까지 느끼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두사람이 주고 받는 메일로만 진행되는 소설의 독특한 전개가 신선하고,
농담과 진심을 오가는 센스 가득한 대화 속에 조금씩 설레며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는 남녀의 감정 변화는
잊고있던 지나간 사랑의 과정을 떠올리게 만든다.
남편과 자식이 있는 유부녀임에도 대책 없는 열정으로 레오를 그리워하게 된 에미의 설레임은 부적절한 감정이지만, 어쩔수 없이 당연히 그렇게 될수밖에 없겠구나 라는 공감과 함께 이미 사랑이 식은 사람과의 의무적인 관계를 유지하느니 운명처럼 만나(잘못 보낸 이메일로 사랑에 빠지게 되다니!) 사랑하게 된 사람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게 낫지않을까, 그런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서로를 향한 에미와 레오의 뜨거운 열정이 최고에 달한 시점에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진행되는 전개와 갑작스런 결말은 허무함을 넘어 배신감마저 느끼게 하지만..
서로의 머리와 마음에 각자 바라는대로 그려진 상대의 모습을 사랑했던 그들에겐 어쩌면 이런 결말이 가장 좋은 것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 인정하게 된다.

가끔 가족이나 친한 지인들이 아닌 얄팍한 관계의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는 게 더 쉽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 우울에 어떠한 영향도 받지않고 깊이 고민 하지도 않을 사람이기에 무거운 마음의 짐도 편하게 내보일 수 있는 것이겠지.
외롭지만 씩씩한 척 살아야 하는 우리이기에 낯선 이와의 대화에서 자신을 모두 드러내는 에미와 레오의 연애에 공감 하게되는 게 아닐까..
유부녀인 에마의 현실에 대한 불편함을 외면 할 수만
있다면, 더없이 설레고 간질간질한 연애소설.
두사람의 대화는 너무나 재치 넘치고 말랑말랑 달콤하며, 서로에게 빠져드는 감정은 읽는 사람까지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
좋게 말하면 열린 결말, 나쁘게 봐선 어이 없는 황당 결말이란 걸 작가도 알았는지 그 뒷얘기가 후속 소설로 나왔다는데 전혀 읽고싶진 않다.
기대와 다른 전개이긴 했지만 두사람의 열정은 딱
여기까지가 정답인 듯해서.
그래도 읽는 내내 한때 누군가를 향해 더없이 뜨거웠던 내 마음과 그시간들이 떠올라 말랑말랑
설렐 수 있어 충분히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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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7-19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읽고 괜히(부러워서)심통냈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ㅎㅎ

바다그리기 2020-07-19 11:24   좋아요 1 | URL
저도 사실 좀 그랬는데.. (뜨끔^^)
 
2019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윤성희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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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나면 쓸쓸해지고 인간의 민낯에 대해 생각 해보게 되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소설집.
(수상작들이라니 이때 심사위원들 취향이 대체로 이런 쪽이었나보다)
아파트 단지 안의 놀이터에서 누군가의 보드를 훔쳐(주워) 밤마다 그 보드를 타고 다니며 남편에 대한 미움과 삶의 공허함을 위로받는 중년의 여자,
자신의 선함과 성숙한 인격을 믿으며 살던 베르타가 외롭지만 의연하게 혼자만의 죽음을 맞은 성당 신자 마리아와의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여전히 미성숙하고 이기적인 자신의 실체를 깨닫게 되는 아픈 자각,
가문에서 존중 받지 못한 삶을 살아온 엄마와 함께 조상들의 파묘를 하게 된 딸이 그 시간동안 되돌아 보게 되는 가족의 의미와 여자로서 엄마의 삶,
암으로 죽어가는 친구를 간병하다 그녀가 남긴 아파트에 살게 됐지만 언젠가 돌아올 친구의 아들에게 돌려주기로 한 약속과 아무도 모르는 아파트에서 살고싶은 욕심 사이에서 겪게되는 갈등,
차별과 무시로 기억되는 일본유학 시절 유일한 위로였던 옛연인 유키코와의 재회를 기대하며 찾아간 자신과 달리 만남을 피하는 그녀의 태도에서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변화의 간극을 느끼는 남자의 쓸쓸함..

책 속 모든 이야기들 속 주인공들은 모두 허약하고
쓸쓸하다.
그래서 평범한 우리 모두에게도 있었던 어느 시절 그 마음들은 이해되고,
언젠가 다가올 미래의 공허함은 담담히 짐작하게 된다.
우리 안의 여러 얼굴들을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좋은 소설들이지만 개인적으로 지금은 좀 더 희망적이고 밝은 이야기들을 읽고싶은 욕심 때문인지
많이 아쉬웠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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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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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만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복받은 작가중의 한명인 저자가 소설가가 되고자 하는 아마추어 작가들에게
지난 20여년간 글을 쓰며 깨달은 소설 작법에 관해 참으로 친절하게, 상세히 알려주는 책.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의 분량에 비해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마치 입구를 찾기 어려울만큼 울창한 나무들로 가득한 숲처럼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작정하고 나온 지인이 태풍처럼 몰아치는 수다에 정신 없이 휩쓸렸다 깨어난 기분이랄까..
(쓰고보니 그와 만나 수다를 떨면 밤도 가뿐히 새울 수 있을 것같은 느낌적인 느낌^^)

개인적으로 그의 장편소설보다는 단편이 좋고, 단편보다는 산문이 월등히 더 좋다.(고 생각한다)
곳곳에서 지뢰처럼 불쑥 나타나는 그의 유머가 좋고, 걸리는 곳 없이 줄줄 읽히며 공감되는 내용의 흐름도 좋고,
무엇보다 맛깔나게 수다 떨 줄 아는 재주를 가진 지인과의 만남처럼 힘들이지 않아도 시간이 훌쩍 가는 매끄러운 문장을 읽는 즐거움이 좋다.
(장편소설로 가면 신기하게도 이런 산문의 장점들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나에겐 그렇다)
특히 이 책은 그런 그의 산문적 장점들이 가장 집약적으로 뭉쳐져 만들어진 작품같은 느낌.

다 읽고난 첫 느낌은 소설이라는 건 아무나 쓸 수도 없고 써서는 안되는 거구나, 라는 새삼스런 깨달음이다.
(소설을 잘 쓰고싶은 이들을 위한 소설작법 안내 책의 감상이 이런 비관적인 결론이라니. ㅜㅜ)
책 속에 펼쳐진 그의 모든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동의가 되지만 머리로 안다고 해서 반드시 할 수 있는건 아닌데다가,
일단 올바른 인간이 된 후에 ‘왜‘와 ‘어떻게‘를 비롯해 많은 것을 치열하게 고민해서, 성실하게 제대로 된 문장을, 그것도 지칠만큼 여러번 써야만 하는 것이 소설이라니..
‘내 인생 소설로 쓰면 대하소설이야‘라는 자신감 넘치는 고백들을 여기 저기서 수없이 들으며 사는동안 소설을 내심 우습게 알게 되었나보다 하는 자각과 함께 반성이 밀려오고, 언젠간 나도 한번.. 이라는 막연한 계획으로 꼽아오던 소설에 대한 섣부른 로망을 그만 접어야하나 라는, 지극히 자연스럽지만 쓸쓸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 엄청난 부작용(?) 외엔 그간 내가 읽은 김연수 작가의 책들 중 베스트3 안에 넣을 수 있겠다 싶을만큼 좋은 내용과 문장으로 가득한 훌륭한 산문집.
여러번 수정했다는 고백을 하긴 하지만, 감탄이 나오는 문장들과 마음에 새기고픈 글들이 정말 많아서 책에 메모를 절대 하지않는 원칙을 깨지않기 위해 포스트잇으로 책장이 빽빽해져버렸다.
다작 하는 작가이고 그의 책을 많이 읽은 독자임에도
이 책을 읽고서야 폴 오스터가 한 말에 그도 해당되는 작가라는 데 동의하게 됐다.
‘작가는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직업중 단명하는 직업 1위라지만
선택된 자들에게만 허락된 재능 없인 결코 얻을 수 없는 작가라는 이름.
그런 면에서 작가들에게 재능은 천형일까 축복일까..
한동안은 산문을 읽는 것을 자제해야겠다.
그의 현란한 문장과 비교되어 어떤 산문도 한동안 밍밍하게만 느껴질것 같으니.
독자에게 이런 감상을 느끼게 만드는 그의 작가적 재능이 그저 부럽고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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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7-19 1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이랑 작가 단편 딱 한 권 읽어봤는데, 단편보다는 산문이 월등히 더 좋다.(고 생각한다)에 동의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밤의 기별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춘미 옮김 / 하늘연못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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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된 전후 일본을 배경으로 전장에서 다리를 잃고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온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15세 소년의 성장을 그린 소설.
전쟁통에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떠나버린 엄마,
다리를 잃은 고통을 핑계로 매일 술에 의지한 채
점점 더 망가져가는 아빠.
어른의 보호 아래 자라야 마땅할 나이에 사창가에서 아버지를 돌보며 삶의 희망보다 절망과 체념에 더 익숙해져 가는 소년의 고통스런 날들이 마음 아프다.
패전 후 모든 것을 체념한 태도로 비관적인 삶을 살아가는 어른들의 모습은 섬세하게 묘사된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과 대비되어 더욱 서글프게 느껴진다.
다음 세상을 이끌어갈 세대로서 성장 해가는 아이들에게 아무 관심도 책임도 보이지 않는 어른들,
그런 비루한 일상 속에서도 삶의 끈을 놓지않고 미지의 미래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소년은 어떤 어른으로 자라게 될까..

전쟁이란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큰 비극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삶을 이어가기 위해선 고통과 인내의 시간들을 견디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담담하지만 힘있는 문장으로 들려주는 소설.
비록 소설이지만 ‘천벌 받아 마땅하다‘는 주민들의 말을 통해 전범국 국민으로서의 자각과 반성을 드러내는 작가의 용기가 반가웠고,
전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의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책장을 덮었다.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 땅이 통일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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