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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지니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평점 :
비교적 일찍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고 제법 능력있는 사육사가 된 진이와
반대로 부모와 형제에게까지 무시 당하는 청년백수
민주.
영장류센터 근처에서 노숙을 하려던 민주는 보노보를 포획하기 위해 출동했다가 사고가 난 영장류센터 직원들의 차를 발견한다.
침팬지 출몰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진이는 보노보를 발견해 포획에 성공해서 센터로 돌아가던 길에 사고를 당했고, 잠시 후 자신의 영혼과 보노보인 지니의 영혼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누구도 믿어주지 않을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 마주친 민주.
그런데 이상하게 그는 자신이 보노보가 아니라는 걸 눈치채고 있는 것 같다.
진이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민주와의 소통을 시도하고 결국 그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데 성공한다.
민주의 도움으로 자신의 육체는 중상을 입고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이며,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진이.
그사이 보노보의 몸에 갇혀있지만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의지하는 진이에게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된 민주는 진이가 보노보의 몸속에 있더라도 사는 것을 선택하길 바라지만 진이는 혼란스런 감정으로 고민하게 된다.
보노보의 육체를 빌어 삶을 이어갈 것인가,
인간으로서 죽음을 선택 할 것인가.
솔직히 고백 하자면 정유정의 소설은 내가 좋아하는
스토리 전개나 주제등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어쩌다 보니 악의 3부작이라는 그녀의 전작들도 다 읽었지만 암울한 사람들의 헤어나올 수 없는 고통과 불행은 읽는 것만으로도 힘겨웠고, 공감의 재미보다는 꺼림칙한 여운을 훨씬 더 많이 남겨주었으니까.
그녀의 소설에 대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있는 독자들 중 꽤 많은 분들이 이 책은 다르다고 하는 것을 보았고, 일단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둡지 않으며 전작들과 달리 정유정 작가의 의도가 쉽게 이해되고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감동적인 책이란 평들에 고무되어 기대하며 책을 읽었다.
그런데.. 그녀의 전작들은 암울한 분위기와 등장인물들의 고통이 느껴져 읽으면서도 힘겨웠다면
이 책 ‘진이, 지니‘는 읽는 내내 그다지 공감이 되지도
감정의 휩쓸림으로 힘겹지도 않았다.
보노보 지니와 영혼이 바뀐채 자신을 포악한 유인원으로만 대하며 공격하는 사람들에 맞서 자신을 찾기위해 노력하는 진이의 심리가 그다지 깊게 와닿지 않았고, 유일하게 자신을 믿어주는 민주와의 관계도 기대치만큼의 깊은 교류가 느껴지지 않아 아쉽기만 했다.
민주의 시각에서 진행되는 부분에서도 역시 민주가 조금의 의심도 없이 진이를 믿고 위험을 자처하면서까지 그녀를 돕는 그 마음의 흐름이 저절로 이해되고 공감하게 되진 않았다.
그런 까닭에 마지막에 그녀가 내린 결정 역시 고귀한 선택이라기보다는 어쩔수 없는 것으로 느껴졌고,
마치 유인원인 지니를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한 것처럼
묘사되는 것에 약간의 반발심마저 들었다.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흘러온 스토리가 없다해도
보통의 인간들이라면 그 상황에선 누구나 진이와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하고싶었던 이야기가 진이의 마지막 선택에 있다면 조금 다른 방식으로 풀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진이는 쉽지 않은 결정을 했고 그 선택이 지니를 위한 포기라는 것도 맞긴 하지만, 지니의 몸을 선택해 수명을 유지하는 것이 인간인 진이에게 더 나은 선택은 결코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니까.
사고후 보노보의 몸에 들어간 후부터 마지막 선택에 이르기까지 진이가 느껴야했던 감정의 변화 과정,
진이를 돕는 민주와의 유대관계 등 여러 면에서 좀 더 깊이 공감 할 수 있는 의식의 흐름이 어딘지 부족하게 느껴져 아쉬웠다.
그래서 이 책은 내게 정유정 작가의 책 중 가장 아쉬운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