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 홍승은 폴리아모리 에세이
홍승은 지음 / 낮은산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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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을땐 솔직히 궁금증과 호기심이 컸다.
폴리아모리라는 단어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어떤 관계를 지향하는 것인지, 실제로 어떻게 유지하고 어떤 방식으로 함께 하는건지에 대해선 거의 아는 게 없는 무지상태였으므로.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이분법적 사고로 남녀관계를 이해하는 사람이었는지 깨닫게 되었고,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편견이 없다고 생각해온 것 역시 교만이었음을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반대와 비난을 하는 사람들 반대쪽에 서서 아무 반박도 평가도 하지않는 무심함(혹은 무지) 정도의 방관을 내딴엔 썩 괜찮은 이해의 자세라고 오해하고 있었다는걸.
나이가 들면서 이세상엔 무수히 많은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성격과 가치관이 있으며, 그 엄청난 다양성들 중 어떤 것도 나의 잣대로 쉽게 단정하거나 비난해선 안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음에도 어떻게 그 많은 인간들의 연애나 사랑 방식에 있어서 무한한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고려해본 적이 없었을까?
동성이든 이성이든 사랑에는 일대일의 관계가 당연하다는 것이 나의 기본 사고였고, 한 사람을 사랑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과의 사랑도 욕망하는 건 이기심을 감추기 위한 괘변일 뿐이며, 무책임한 만큼 존중 받을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 해왔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조금 혼란스럽긴 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동안 내가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마음과 관계와 지향들이 반드시 옳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하게 되었고, 내가 믿어온 가치들이 내가 받아온 교육과 성장환경의 결과로 내게 주입된 것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편향된 자리에 서있던 나를 자각하고 나니
‘아무리 그래도 여러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건 솔직히 이기적인 욕심 아닐까? 진심이라 해도 결국
상대보다 나의 욕망을 우선하는 마음을 포장하는 것일 뿐인거 같은데..‘라는 생각에서,
‘하긴, 이 세상에 이렇게나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있는데, 그들이 각자 다른 사랑을 원한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라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생각이 바뀌었다.

처음엔 ‘폴리아모리‘라는 생소한 단어에 집중해서 한 여자와 두 남자라는 낯선 조합의 남녀관계에 관심을 기울이며 읽기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서로의 생각과 요구에 귀 기울이고 이해와 포용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평화롭게 어울려 살아가는 그들의 이상적인 ‘동거 형태‘에 더 집중하며 읽고있는 나를 발견했다.
일때문에 얼결에 독립 한 뒤로 자유로운 혼자만의 삶을 누리며 사는동안 해가 갈수록 확실해지는 것 중 하나는, 이제 누구와도 억지로 맞추려 애써가며 살기 싫다는 마음이 강해진다는 거였다.
정리강박이냔 소릴 들을만큼 모든 물건은 쓴 뒤에 바로 제자리에 두어야 하고, 저질체력인만큼 한꺼번의 노동에 지치지 않기위해 하루에도 몇번씩 가볍게 쓸고 닦고를 실천하며, 말의 내용보다 태도가 중요한 성향상 거칠게 함부로 던지는 말에 상처받는 나이기에 서로 스트레스 받으며 나와 다른 생활방식에 맞춰가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시간은 상상만 해도 피곤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세명이 함께 살면서도(게다가 연인과 연인의 연인이라는 미묘한 관계라니!) 섬세하게 서로의 기분을 살피고 맞춰가며, 성숙한 협의와 배려, 존중을 통해 누구 한명이 더 많이 양보하거나 그로 인한 불만이 생기지 않는 안정적인 동거를 유지하고 있는 그들의 생활이 대단해 보이기도 했고,
‘나의 평온‘을 최우선의 기준으로만 생각해서 무조건 혼자이길 원했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한사람과 (동거나 결혼이 아닌) 연애만을 하려 해도 서로 다름으로 인해 수없이 부딪히고 싸우며 언제 깨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는데, 두명의 연인과 한집에서 살며 심지어 라이벌이랄 수 있는 두사람이 서로를 좋아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니..
저자인 홍승은이라는 사람과 그녀의 연인들에 대한 놀라움과 감탄은 너무나 당연할 밖에.
이렇게 보수적인 나라에서(특히 페미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여성에 대한 혐오는 심각하다 못해 공포스러울 지경인) 익명도 아닌 자신의 실명을 내세워
폴리아모리임을 당당하게 공표한 그녀가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왜 굳이 그렇게 스스로의 삶을 오픈해 듣지 않아도 되는 악의적인 비난과 염려로 포장한 주제 넘는 참견의 말들에 상처받는 쪽을 선택했을까 안타깝기도 했었는데, 책을 읽는동안 변화하는 내 마음을 느끼면서 저자가 다른 이들에게 바라는게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성적인 측면의 남녀관계에만 집중해서 자신들을 바라보지 말기를, 그저 한 공간에서 함께 살며 서로의 생활과 가치관과 욕망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모두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세사람의 삶 그 자체를 편견 없이 바라보고 받아들여주길 바라는 마음.
바로 그것이 수많은 오해와 비난 속에서도 승은과 우주, 지민 세사람이 자신들을 감추지 않고 당당하게 다른 이들과 눈을 맞추며 계속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있는 이유가 아닐까?

책을 읽은뒤 평소 가장 보편적인 가치관으로 평균적인 삶을 살고있다고 주장하는 언니에게 이 책을 보여주며 내용 설명과 함께 엄청난 비난과 혐오를 받고있다는
얘기를 해줬더니 언니의 첫번째 반응은 이랬다.
‘어떻게 살든지 자기 맘인데 굳이 욕을 왜 하냐. 인간들 참 할 일도 없다‘
그 말에 곧바로 이어진 두번째 반응.
‘근데 그럼 잠은 어떻게 자냐? 오늘은 얘랑, 내일은 쟤랑 자는건가? 그건 좀 아니지 않나? 그 여자도 대단하지만 남자들 진짜 대단하다. 우리나라에서..
그 여자, 진짜 난녀다 난녀.‘
역시 성적인 호기심이 가장 먼저고, 이 보수적인 세상에서 보편적이라 믿는 남녀 역할에 대한 차별적 편견이 이어진다.
그나마 누구에게든 대체로 무심한 편인 언니인지라
혐오나 욕은 표출하지 않았지만, 언니의 저 정도 시선도 관대함에 속할 법한 폭력적인 편견 속에 무수히 상처 받으며 살고있을 세 사람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우리는 보통, 평균, 정상이란 단어를 앞세운 무례함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무심히 상처를 주며 살고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게 해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었고,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다.

책을 읽는동안 세 사람이 궁금해(이놈의 호기심^^)
검색을 해봤고, 상상과는 조금 달랐지만 느낌 있는 외모의 승은과 지민을 보았다.
(사실 우주가 제일 궁금했는데 끝내 확인 못해서
섭섭했다는 건 안비밀. ㅎㅎ)
내 공간에 쓰는 나만의 독서감상조차 이 글을 읽을지 모르는 익명의 이웃들에게 받게될 비난까지 고려해서
무의식적 자기 검열을 통해 조심스럽게 쓰게 되는 나와 비교만 해봐도 그들은 얼마나 용감한가.
이기심이나 교만이 아닌 선한 마음에서 비롯된 용기는 응원 받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응원한다는 이유로 이 글을 읽은 누군가가 나를 비난한다면 그 정도는 기꺼이 감수할
수밖에.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성실하며 사랑하는 그들이 서로에게 받는것이 사랑과 그로 인한 안정과 행복이라면, 타인인 우리가 그들에게 감히 무언가를
요구해선 안되는 것이라 믿으니까.

나는 단 한사람과의 연애도 늘 버겁고 힘겨워 차라리
비연애 지향이 낫지 않을까를 고민 하기도 하는 어설픈 모노가미이지만, 내가 속한 쪽이 다수라는 이유만으로 정상이라 단정하는 태도는 소수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폭력과 차별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으로서 우리 모두가 행복 할 수 있는 ‘권리‘에는 나 아닌 남과 다른 방식의 삶을 선택 할 수 있는 ‘자유‘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으므로.
꽤 괜찮은 사람이라 믿었던 나의 오만과 부족함을
깨우치게 해줄 또다른 책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이 책을 만나게 해준 저자인 승은님과 이 책을 소개 해주신 이웃님께도 감사를..
마지막으로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요즘 나의 모토이기도 한 이 문장으로 대신한다.
‘인생 뭐 있어? 걍 내맘대로 행복하게!‘


* PS : 별 다섯개는 80~100점 구간이 아니라
100점을 의미하는 것 같아서 나에겐 늘 별 네개가
가장 만족한 점수다. (당연히 아직 한권도 다섯개를
준 책은 없다.ㅜㅜ)
그러므로, 아쉬운 점도 있었던 책이기에 별 네개는
망설여져서 어쩔수 없이 세개로.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별 세개를 주기엔 너무
필요한 생각과 질문을 하게 해준 책이기에 네개로
수정했다.
별 하나를 가지고도 이렇게 고민하는 나는 대체
얼마나 까다롭고 소심한 인간인 건지..
모든 책에 별을 하나도 안주는 것도, 다섯개씩
똑같이 주는것도 불공평한 것 같은데 가장 좋은
방법은 뭘까?
할 일도 많은데 윤동주 시인도 아니면서 별 하나
별 둘..가지고 이러고 있다. 나 뭐지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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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7-26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스레 쓰신 리뷰 잘 읽었습니다. 이 분들 삶과 또 다르게 에이섹슈얼(무성애)의 삶도 있으니 굳이 모든 걸 성애와 이성애와 동성애로 나누는 것조차 이제는 의미가 있나 싶습니다 ㅎㅎㅎ막 점점 투머치인포메이션으로 괴롭히는 기분 ㅋㅋ

바다그리기 2020-07-26 13:49   좋아요 1 | URL
ㅎㅎㅎ 어쩐지 즐거운 괴롭힘이 아닐까 라는 매저키스트적인 생각이.. ㅎㅎㅎ 저야말로 요즘 에이섹슈얼의 단계로 가고있는듯 해요. ㅜㅜ

반유행열반인 2020-07-26 13:52   좋아요 2 | URL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사랑을 포기하지 말아요! 막 이랬을 거 같은데 이제는 사랑을 강요하지 강박하지 말아요! 해야 할 거 같은...기운 닿는 만큼 하고 아님 말아도 주눅들지 않기로 ㅎㅎㅎ 저는 아직 많이많이많이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은 혼자 하나....그냥 저 하나라도 제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죽는 게 제 목표요 ㅎㅎㅎ아직은 제가 미워요 ㅠㅠ

바다그리기 2020-07-26 13: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를 사랑하는 게 제일 힘든 사람인데.. 다시 한번 반갑네요^^ 자신도 사랑하고 멋진 사랑도 많이많이많이 하실 수 있길 격하게 응원합니다. 화이팅!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하야마 아마리 지음, 장은주 옮김 / 예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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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타임용 영화 한편을 본 느낌.
‘제1회 일본 감동대상‘(감동 받을 일이 너무 없어서 이런 상까지 만든건가?)에서 무려 대상을 받았던,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라고 한다.
스물 아홉살 생일에 3평 원룸에서 생일을 자축하던
아마리는 땅에 떨어진 딸기를 줍다가 뚱뚱하고 못생긴 데다 비정규직에 애인도 없고 미래의 희망도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순간 티비에 나오는 라스베거스의 화려한 풍경에 시선을 뺏긴 그녀는 이렇게 비참하게만 살다 죽긴 억울하다며 1년 후 서른살 생일에 라스베거스에서 생의 마지막 시간을 후회 없이 화려하게 보내고 죽으리라 결심한다.
다음날부터 라스베거스 여행경비를 모으기 위해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하는 아마리.
심지어 긴자의 호스티스와 누드모델까지도 서슴 없이 하면서 틈틈이 영어까지 배운다.
그렇게 1년이 지나는 동안 아마리는 예전과 전혀 다른 적극적이고 두려울 것 없는 성격으로 변하고, 목표했던 돈을 모아 생의 마지막 시간을 불태울 라스베거스로 떠난다.
고급 객실에서 6일간의 사치와 호사를 맘껏 누린 그녀는 마지막날인 자신의 생일이 되자 남은 돈을 전부 들고 카지노로 가 자신이 가진 모든것을 건 처음이자 마지막 도박을 한다.
그날밤, 객실로 돌아온 그녀는 남은 돈을 계산 해본 뒤
아직 5달러가 남아있는 것을 확인하고 자살 하지 않기로 한다.
남은 돈이 있으니 자신이 승리 한거라고 믿으면서.

쉽고 재미있는 내용이라 술술 읽히는데, 솔직히 책을 추천 해주면서 후배가 강조했던 감동은 느끼지 못했다.
무엇보다 충동적인 자살 시도를 포기한 그녀가 1년동안 오로지 ‘라스베거스에서 화려하게 죽겠다‘는 목표로 열심히(긴자 유흥가의 호스티스까지 하면서) 사는 것에 공감 하기가 쉽지 않았고, 자살을 포기한 그날 이후 이미 이전과 다른 삶의 의지를 갖게 되었음에도 기승전 라스베거스만 생각하며 달려가는
모습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냥 그렇게 계속 살아!
그 마음으로 잘 살면 되는건데 왜 자꾸 죽는대!!
그렇게 안 가리고 뭐든 열심히 할거면 죽을 이유가 없잖아!!
이런 답답함이 읽는 내내 마음 한켠에서 계속 부글부글..
그래서였을까, 마지막으로 정산 한 뒤 5달러가 남았다며 계속 살기로 하는 그녀의 모습에선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이런 마음?

무엇보다 감동실화임을 강조 했음에도 예전에 익명의 제보자를 앞세운 자극적인 수기로 판매 부수를 늘렸던 여성지의 ‘충격실화‘를 읽는듯한 느낌 때문에, 과연
이 중 얼마나 진실일까? 각색이란 미명 아래 얼마나 많은 에피소드가 만들어진 걸까? 하는 의심을 계속 품고 읽었으니 공감이나 감동은 언감생심일 밖에.
굳이 분류 하자면, 실화 소설과 수기와 자기계발서의 교집합 어딘가 낯선 자리에 놓일법한 장르의 이야기.
그래도 ‘죽을 힘으로 살면 뭐든 할 수 있다‘고 하셨던 어르신들의 말씀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에선 점수를 줄 수 있는 책이다.

ps. 감상을 쓰며 검색 해보니 인생책이라는 엄청난 호평부터 감동의 쓰나미, 영원히 못잊을.. 등의 예상 못했던 칭찬들이 넘쳐서 당혹스럽네.
이웃님의 말씀처럼 나에게 좋은 책이 누군가에겐 안좋을 수도 있는 거긴 하지만, 이렇게나 심하게 다른 온도 차는.. ㅜㅜ
어쨌거나, 그러므로(?) 이건 순전히 나만의 감상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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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창문 - 2019 제13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편혜영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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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다섯개만으로 독서감상의 만족을 표현 하라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특히 별 세개는 좀 후하지만 두개를 주는 야박함은 망설여지는 어제의 책(스물아홉~)과,
별 네개는 망설여지지만 어제 읽은 책과 똑같이 세개를 주긴 미안한 이 책을 연이어 읽은 어제와 오늘같은 날은 더욱 그렇다.
두 책에 똑같이 별 세개를 주는 건 진짜 아닌데..
그런 생각을 하다 문득 부끄러워진다.
내가 뭐라고, 누군가 수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수없이 고치고 다시 쓰며 고통스럽게 만든 작품에 별 몇개
줄까 따위를 (감히) 고민하고 있는건가, 싶어서.

단편소설을 읽고나면 성격도 개성도 말하는 태도나 표정도 모두 다른 여러 사람들과 조근조근 이야기를 나눈듯한 기분이 든다.
나와는 그닥 맞지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한 책은 아쉽고 피로하지만,
어딘지 내가 좋아하는 성향의 사람들로 채워진 이야기들을 만나면 괜히 반가움으로 마음 한쪽이 따뜻하게 말랑거리기도 하고..
어쩌면 그런 느낌이 좋아서 단편소설집을 자꾸 찾게되는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
이 책은 나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듯도 한
사람들이 고루 섞인 모임같은 느낌이었는데, ‘한사람을 위한 마음‘이라는 소설 때문에 그냥 무조건 다 좋은 걸로 결정 해버렸다.
제목도 좋았고, 외할머니와 이모와 어린 조카가 서로를 의지해 살아가는 소소하고 알콩달콩한 일상도 좋았고, 작은 동네 골목에서 착한 마음으로 서로의 하루를 함께 하는 사람들도 좋았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의 고통을 나눠 가진 사람들이 슬픔에 비틀거리면서도 서로에게 기대어 일어나 각자의 삶을 단단하게 붙잡고 함께 나아가는 모습이 눈물나게 아름다웠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이제 햇수로 4년째.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모든 게 무너질까봐
엄마, 라고 소리 내 부르는 것조차 아직 나는 제대로 하지 못한다.
책을 읽다가도 누군가의 죽음이 나오면 반사적으로
심장이 오그라들고, 그 부분을 편하게 읽고 지나가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그런 장면이 나오면 최대한 감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도망치듯 빨리 읽어버리려고 노력 하는데, 이 단편을 읽는동안은 주인공인 지영과(한국 소설엔 지영이들이 왜이리 많은건지), 아이의 귀여움에 순수한 맹랑함을 함께 가진 조카 송이, 지영의 엄마이자 송이의 외할머니, 세사람이 그들의 언니이자 엄마이자 딸이었던 사람을 잃은 뒤 흔들리는 서로의 삶에 빛이 되고 온기가 되고 희망이 되기위해 애쓰는 날들을 보면서 정말 큰 위로를 받았다.
먼저 떠난 이의 사진을 보며 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을 건네다 우는 장면에선 세사람 눈물을 다 합한 것보다 더 많이 울긴 했지만. ㅜㅜ
하루도 더 버틸 수 없을것 같았던 순간이 그럼에도 견디며 살아내야지 하는 시간이 되고, 언젠가는 일어나서 다시 걷고 뛸수도 있는 날이 된다는 것,
겨우 겨우 살아지다 보면 결국은 살 수 있게 될 거라는 것을 다시 또 가슴 아프게 깨닫는다.

자신을 구하고 죽은 사촌형의 죽음으로 불량하기만 했던 그에게 속죄를 강요 당하며 사는 운오,
나이 어린 제자를 향한 사랑으로 이혼을 선택 했다가 결국 혼자가 된 선생님을 이해 할 수 없는 윤령,
자유로운 한비와 친구가 되면서 새로운 삶이 펼쳐졌다고 믿었지만 모든게 허상임을 깨닫는 수영,
학교 폭력의 목격자인 딸이 피해를 유도했을 지 모른다는 의심으로 혼란스러운 엄마,
제3자인 친구로 인해 연인과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는 성소수자 커플,
sns를 통해 친구가 감추고 싶어하는 비밀을 알게된 후 오히려 자꾸 그녀와 멀어지는 영지..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평화로운 관계와 자유로운 소통을 간절히 원하지만 현실에선 어느 것도 맘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어떤 이는 결국 관계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자유를 얻고자 하고,
누군가는 이별의 상처를 감내하며 기다리기로 하고,
또다른 누군가는 끝끝내 오해와 불화를 선택하기도 한다.
그렇게 어긋나기도 하고 또 다시 만나기도 하는게 결국 우리의 삶이므로.
소설 속 이야기들은 희망과 절망, 불안과 평온이 서로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누군가의 말처럼 어쩌면 이해는 오해의 다른 쪽 얼굴이고, 이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이해란 없을 지
모른다.
하지만, 나를 이해 할 수 없어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 뜯으면서도 원활한 소통을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는 누군가가 옆에 있어준다면 내 삶은 조금 덜 외롭지 않을까?
그러니 우리가 끝없는 오해를 반복하고 상처 받으면서도 사람들 속에서 다시 한번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되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것.
그러고 보면 사는 건, 참 쉽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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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7-21 1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맨 첫 소설 보다 말고 내내 잠재우고 있어서 ㅋㅋㅋ저도 조만간 읽어야 겠어요.
사는 건 말씀대로 참, 쉽지않네요.

바다그리기 2020-07-21 17:11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열반인님이 좋아하시는 김금희 작가님 단편도 있어요. 독서 목록추가 저도 성공이네요^^
 
암리타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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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지인들 중 요시모토 바나나를
‘여자 하루키‘라고 부르는 친구가 있었다.
두 작가의 작품을 꽤 많이 읽은 나로선 선뜻 그 의견에 동의가 되지않아 고개만 갸웃 했었는데,
이 소설을 읽고나니 그 친구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는 기분.
이 소설은 하루키 작품의 비현실적 세계와 달리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익숙한 일상들의 평범한 세계에서 펼쳐지지만, 그 현실을 살아가는 인물 중 평범한 사람은 별로 없다.
예전에 어떤 잡지에서 작가인 요시모토 바나나가 오컬트와 신비주의에 빠져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그런 자신의 믿음을 바탕으로 해서 작정하고 이 작품을 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설 속 인물들은 다들 조금(혹은 많이) 별나다.
(죽은 사람의 혼을 느끼는 능력 정도는 아주 평범해서
특별하게 여겨지지도 않을 정도^^)

계단에서 구르는 사고를 당한 후 이전의 자신과 지금 자신은 뭔가 분리 됐다고 생각하며 혼란을 겪는 주인공 사쿠미.
자신 만큼이나 독특한 능력과 가치관을 가진 범상치 않은 지인들과 평범한듯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일상을 함께 보내는 동안 조금씩 아픔을 치유하고 혼란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그녀의 어느 한 시절의 이야기가 이 소설의 내용이다.
자신이 분리 되었다고 믿는 사쿠미부터 미래를 내다보고, 의식의 순간 이동을 하고, 죽은 이들을 느끼고 볼 수도 있는 사람들이 가득하지만 그들의 일상은 자극적인 에피소드나 사건 없이 평범하고
잔잔하고 심지어 가끔 무료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400페이지에 달하는 적지않은 분량이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엄청난 가독성에 감탄 할만큼 빠른 속도로 읽힌다. (당연히 재미도 있다)
하루키의 많은 작품들이 평범하고 별볼 일 없는 인물들이 겪는 판타지적이고 몽환적인 유니크한 세상(하루키 월드)으로 독자들을 유혹 한다면, 이 작품은 그와 반대로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며 자기 나름의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소설적 매력을 느끼게 만든다.

제목인 암리타는 인도 신화에서 신이 마시는 불사의 물이라고 한다.
‘살아간다는 건 물을 꿀꺽꿀꺽 마시는 것‘이라는
표현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물은 우리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소중한 자원이지만
그 소중함을 모른채 당연하게 여기며 누리다가
잃었을 때에야 그 가치를 알게 되는 것.
요시모토 바나나가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는
건 어떤 상황에서든 물처럼 평범하지만 소중한 우리 삶의 가치를 잊어버리지 말고 감사하며 열심히 살자는 게 아닐까..
라고 마음대로 생각 해본다.
그나저나 신이 마시는 불사의 감로수라는 암리타의 맛이 갑자기 너무 궁금해지는 이 뜬금 없음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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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7-19 1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빈곤한 제 상상력은..담담한 단맛의 토레타 정도를 떠올리게 되네요. 비슷한 이름 탓?!

바다그리기 2020-07-19 11:22   좋아요 1 | URL
우와, 빠른 답글도 감사한데 놀러까지 와주시고 댓글까지..^^ 토레타 안 마셔봤는데 함 마셔봐야겠네요. 댓글 감사해요~
 
설레는 일, 그런 거 없습니다
쓰무라 기쿠코 지음, 박정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반어적인 의미일 거라는 기대를 안고 독특한 제목에 끌려 구입한 책.
그런데 제목 그대로 설레는 일이라곤 1도 없이 녹록치 않은 현실의 막막함과 무기력함에 짓눌려 하루 하루를 그저 버티듯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이야기 두편이 실려있는 소설집이라 좀 당황스러웠다.
(반전을 너무 좋아하다보니 이런 패착을.. ㅜㅜ)
이름과 나이, 1월 4일생이라는 생일까지 같다는 사실을 알게된 거래처 직원인 남자와 여자.
불과 20분 정도의 업무 미팅후 각자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간 맛집에서 다시 마주친 그들은 옆좌석에서 어색한 대화를 주고 받으며 각자 혼밥을 하고 헤어진다.
그후 각자 바쁜 업무와 일상 속에서 무료한 삶을 버티어 나가는 두사람은 주변 사람들과 부딪히고 상처 받는 과정에서 불현듯 자신과 이름이 같은 상대방을 습관처럼 떠올린다.
그러다 결국 어느날 우연히 다시 재회하게 되면서 서로를 통해 이제껏 무생물처럼 살아온 자신의 일상에 뭔가 새로운 변화가 생길 것임을 본능적으로 짐작하게 된다.

다른 한편은 유급휴가조차 회사의 눈치를 보며 맘대로 쓰지 못한 채 기업의 부속품같은 생활을 이어가던 직장인인 주인공이 어느날 회사 내에서 자신이 유일하게 존경심을 갖고있던 상사가 유급 휴가를 많이 썼다는 이유로 해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시작된다.
평소 후배들에게 진정 필요한 조언과 관심을 주던 유일하게 어른같은 선배의 위기를 보며 분노한 주인공과 동료들은 회사의 감시를 피해 어떻게든 그를 도울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게 되는데..
그러나 이런 간절함과 노력에도 결국 그 선배는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하게된다.
하지만 그를 위해 분노하고 고민하던 시간동안 자신의 내부에서 뭔가가 이전과는 달라졌음을 깨달은 주인공은 더이상 상사들의 눈치를 보며 부당함을 참고만 있지 않고, 꽤 긴 유급 휴가도 당당히 쓸 수 있게 된다.

일본 작가의 작품인만큼 소설 속 인물들도 모두 일본인이고 일본 사회의 젊은 세대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이름과 지명을 한국인으로 바꾸어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을만큼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이시대 젊은이들의 이야기들이다.
조직의 이익을 위해 나를 희생하며 자신의 욕구는 뒷전으로 미룬채 기계처럼 하루 하루를 버티어가는
직장인들.
나의 의지와 개성을 집단에 맞춰가며 나자신을 잊은 채 살아가는 그들의 무미건조한 일상이 너무나 익숙하고 공감 되면서도 그래서 더 안쓰럽다.
펭수의 지적처럼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나때는 말이야‘를 시전하는 꼰대나때들이나 공감하는 헛소리일 뿐.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단 한번뿐인 삶에서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야 할 젊은 청춘들이 조금이라도 더 자유롭게 자신의 소망을 쫒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무엇보다 자신의 기쁨과 만족을 최우선 조건으로 한 삶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스토리도 구성도 문장도 내용도 모든 면에서 아쉬운 점 투성이인 소설이었지만, 진심을 다해 후배들의 자유와 일탈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을 한번 더 갖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만족.
아프지 말고 부당하게 참지도 말고, 나의 권리와 자유를 누리는데 망설이지 않는 젊은이들이 좀 더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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