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 원고지를 앞에 둔 당신에게
금정연 지음 / 어크로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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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일기를 읽은 후부터 독서에 관한 책은
늘 선호 도서 목록의 상위에 올라오게 되었다.
책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고 그 책을 통해 무엇을 느꼈을까?
다른 사람들의 ‘독서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것은 비밀일기를 훔쳐보는 것처럼 언제나 흥미진진하고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건, 그때까지 세상에 있는줄도 몰랐던 좋은 책들을 알게 된 순간의 흥분과 설레임.
잡문같은 가벼운 독서감상이든 꽤나 진지하고 예리한 비판이 첨부된 서평이든, 남다른 글솜씨와 시각으로 소개된 책들은 당장 사서 읽어보고싶은 욕망을 통제불능 수준으로 마구 샘솟게 만들었으니까.

저자가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책들의 서평을 모아 만든 이 책 속에도 그런 책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어떤 책은 저자의 생생하고 웃픈 생활 에피소드에 묻혀 존재감도 없이 이야기가 끝나버리고,
다른 책은 거의 안드로메다급으로 아무 관련도 없는
이야기 속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가 허무하게 사라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나면 저자가 읽었다는 그 책들이 읽고싶어 제목을 검색하고 장바구니에 담고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좋은 책을 대상으로 서평을 쓴다는 건 얼마나 큰 용기와 자신감이 필요한 일일까?
그저 책을 읽고 난 감상을 일기처럼 끄적이는 수준인 나에게 ‘서평‘이라는 방식으로 책을 이야기하는 건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저자 금정연은 서문에서부터 책들에 대한 존중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막 대하겠다는 식의 선언과 함께, 형식도 일관성도 없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책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럴싸한 책 속 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각 책의 서평을 책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놓는데,
주로 마감 앞에 초조하면서도 게으른 서평가로서의 자신의 일상을 책의 스토리 혹은 주제와 결부시켜 웃픈 자기성찰을 하거나,
각 책의 전개 방식을 보란듯 대놓고 빌어와(편지나 수필 혹은 일기 등) 그 책을 해부하는데 이용하며,
어떤 방식을 차용하든 모든 서평의 핵심 키워드는
유머다.
사실 유머만큼 개인적 취향에 좌우되는 것도 없기에 나와 비슷한 코드가 아니라면 그 유머는 독서를 방해하거나 거슬리게 하는 치명적 단점이 될 뿐일텐데, 다행히 저자의 유머는 내 취향과 잘 맞는 편이었고,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도 꽤 잘 먹히는 쪽일거라고 생각한다.
유머감각은 타고나지 않으면 후천적 연마로는 절대 향상될 수 없다고 믿기에, 가끔씩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오게 만드는 저자의 유머감각엔 약간의 질투와 부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그렇다고 무조건 유머를 무기로 한 가벼운 서평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서평만 읽어봐도 감히 읽겠다는 욕심조차 내선 안될것 같은 책도 있고, 나라면 읽다가 벌써 포기하고 던져버렸을 것 같은 난해한 책들에 대해서도 꽤나
집요하고 성실한 태도로 진지한 서평을 하고있다.
개인적으로는 스스로를 거침없이 디스하는 듯한 태도로 책들을 샅샅이 드러내고 해부하는, 조금 낯설지만 감탄스러운 유머감각과 평이한듯 예리한 달필의 글솜씨로 포장된 재기발랄한 서평이
기대만큼 많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하지만, 며칠전 읽었던 이슬아 작가의 서평에 이어
또다른 낯설지만 신선한 서평을 발견한 즐거움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독서였음은 인정.
그의 서평들이 아직도 여러권 남아있다는 사실이
정말 다행스럽고, 다음엔 또 어떤 책들과 유머를 만나게 될 지 아주 많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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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
김하나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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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다가 갑자기 울컥하게 되는 당황스런 순간이 있다.
저자의 고통이나 감정에 깊은 공감이 될 때나,
스토리에 푹 빠지게 만드는 상상 이상의 아름다운 문장이 주는 감동에 휩싸이는 순간,
그리고 이 책처럼 그저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뿐임에도 마음 가득히 차오르는 울림으로 생각과 마음이 저절로 차올라 크게 공명할 때.

이 책은 유기동물을 구조하고 보호하는 단체인 카라에서 유기동물들과 결연을 맺고 후원중인 작가들이 자신이 키우고 있는 반려동물과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와 동일한 생명으로서 소중한 가치를 지닌 동물들에 대해 함께 생각 해보자고 따뜻하게 권하는 책이다.
한번도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은 없지만 인간에게 양식으로 제공되기 위해 태어나고 길러지는 많은 동물들에게 죄책감을 갖고 살아왔기에 책 속의 모든 이야기는 나를 부끄럽게 했고, 잘 알지못해 오해와 무지로 살아온 시간들이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얼마전에 읽었던 한나 아렌트의 책에서 무사유가 얼마나 악한 것인지 공감했지만 나 역시 동물에 대한 의식에선 제대로 사유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에.
이세상에 가치 없이 태어나는 생명은 없다.
무슨 권리로 인간들은 동물을 가축화 하고 그들의 자유를 빼앗으며 심지어 그들의 존재를 우리의 양식과 소유물로 당연하게 인식하는 것인가?
약자의 권리와 동등한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예전과는 달라지고 있다지만, 동물을 소유나 양식으로 여기고 생명으로서 존중하지 않는 시각은 여전한 것이 사실이다.
사람이 먼저라는 말, 사람 중에도 약자가 많은데 동물에게까지 신경써야 하냐는 사람들의 주장이 많은
이들에게 동의를 얻고 타당하다 인정 받는다.
하지만, 생명의 가치에는 순위도 경중도 없으며, 사람이든 동물이든 더 약하고 소외된 존재에 대한 관심과 배려, 보호는 결국 지구상의 모든 생명들을 더 안전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최선이자 최고의 방법이다.

아홉편의 이야기들 하나 하나가 다른 사랑의 빛깔로
마음을 뜨겁게 데우고 눈물을 흘리게 만들며, 깊은 공감과 함께 큰 깨달음을 준다.
책을 통해 이렇게 큰 감동과 깨달음을 느낀것도 꽤 오랜만이었지만,
반려동물들과의 관계를 통해 최고 경지의 사랑을 느끼고 배우며 더없이 행복한 순간을 경험하는 작가들의 이야기에선 또 질투가 날만큼 부러움과 동경을 느꼈다.
‘개들은 왜 인간 따위를 이토록 사랑하는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잠깐의 권태도 변심도 무시도 없이 모든 순간 자신들의 반려인을 지극히 사랑만 하다 떠나는, 그래서 먼저 떠난 그들을 만날 희망으로 고단한 삶을 버틸수 있게까지 해주는 소중한 존재와의 만남이라니..
나도 언젠가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
동물학대를 결사반대하고 유기동물들 이야기만 들어도 마음 아프다 했지만, 나 역시 마음 한켠엔 불우한 아이들, 빈곤국의 국민들을 먼저 도와야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을 진심으로
반성한다.
생명의 가치에는 우선 순위가 없다는 것,
인간들이 매긴 가치 순위로 동물들의 고통을 미뤄두는 잔인함을 더는 용인해선 안된다는 것,
사랑을 하게되면 불편하고 힘든 것들과 마주하게 될 수밖에 없지만, 생명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내게 오는 아프고 힘든 것들은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임을 절대 잊지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 해본다.
일단, 카라의 후원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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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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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글로 쓴다는건, 그것을 사용하는 것과 비슷해서 결국에는 그것을 망가뜨리게 된다.
생각이 엷어지고 모서리는 닳아서 글로 적어놓은 것들은 결국 희미해지고 사라져버린다. 특히 장소에 관한 글이 그렇다.‘ - p108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올가 토카르추크의 소설 ‘방랑자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의 책을 읽고나면 늘 나의 부족한 독서력과 어설픈 통찰력을 깨닫게 되었기에
망설였으나 책 소개 문구 중 ‘여행 소설‘이란 표현에 혹해 희망을 품고 용기를 내어(?) 구매했다.
하지만, 역시 노벨 수상 작가와 나의 어긋난 감상은 이 작품도 역시 피해가질 못했다.
일단, 무엇보다 이 소설은 내가 기대했던, 우리가 흔히 짐작하는 일반적인 여행소설과는 거리가 멀다.
아니, 그런 여타의 여행소설과 같은 기준에서 분류한다면 이 책은 여행소설이 아니다.
게다가 어찌 보면 소설도 아니다.
백여가지의 이야기가(어떤 이야기들은 고작 한 두페이지 정도일 뿐이다) 각각 독립적으로 혹은 약간의 연관성을 갖고있지만, 모든 작품들이 익숙한 소설적 화법을 쓰고있지 않으며, 어떤 것들은 수필 같기도 하고 편지이기도 하며 때론 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도 많으며 적지않은 이야기들은 무슨 얘기가 하고싶은 건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굳이 이해를 하려는 마음으로 찬찬히 들여다보면 왜 제목이 방랑자들이며, 여행소설이라고 분류 하는지
짐작되는 부분들은 물론 있다.
첫번째 이야기에서 고작 세살 정도인 아기는 어둠이 내릴 무렵의 거리 풍경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가 불현듯 뭔가가 달라지는 순간을 경험한다.
나의 관념을 떠나 다른 시각을 가진 존재가 되는 순간.
찰나에 불과할지라도 그 잠깐의 시간을 저자는 여행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여행중 사소한 말다툼 끝에 차에서 내린뒤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아내와 아들을 찾아 나서는 남자,
잘려버린 다리의 고통에 집착하는 사나이,
신체에 집요하게 천착하는 해부학 박사,
심지어 아무도 없는 빈 방까지..
백편이 넘는 길고 짧은 에피소드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만의 여행을 이야기 한다.
우리가 흔히 여행이란 단어에서 쉽게 떠올리게 되는 낯선 장소로의 여행이 아니라, 각 편의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는 자신들만의 어떤 것을 향한 여행이라는 점이 다를 뿐.
어떤 이는 인체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향해,
다른 이는 자신이 버렸다고 생각한 가족을 찾는동안 그들이 자신을 버린것을 깨달으며 그 마음이
변한 이유를 찾기위해 고통 속에 고민을 거듭하고,
또 어떤 이는 사라진 자신의 일부에서 동시에 느껴지는 상실과 고통의 감정에서 진정한 자신의 현재를 알려줄 답을 찾는다.
이 모든 것들이 그들에겐 여행과 같은 것이며, 그런 이유로 ‘여행자들‘이 아니라 ‘방랑자들‘이라고 한 것이 아닐까?
장소의 이동을 목적으로 삼아 외부적 환경을 바꾸는 ‘여행‘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실과 고통의 답을 찾으려는 내적 요구를 따라 떠도는 자들의 이야기이기에.

각 편의 이야기는 독자적으로 시작되었다 끝이 나기도 하고, 한참 뒤에 다른 이야기와 만나기도 하며, 끝이 난줄 알았던 이야기의 다음 과정이 진행되기도 한다.
어떤 이야기 속 사소한 문장이 어느 편의 제목이 되기도 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여행(방랑)을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익숙하지 않은 방식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변주하면서도 결국 인간의 내적 방랑 이야기로 우리들에게 쉽지않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작가의 능력에 내심 감탄이 느껴진다.
결국 작가가 백여편의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에게 건네고픈 말은, ‘당신은 지금 어떤 방랑을 하고 있나요?‘가 아닐까?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다 익숙한 전개방식도 아니고, 소위 재미라고 부를만한 익숙한 미덕도 부족한 까닭에 솔직히 읽기가 그리 쉽진않다.
그래도 중간에 덮고 포기하기엔 다 읽고 난 뒤의 여운이 적지않게 남는 책임은 분명하다.
재미 위주의 쉬운 독서에만 익숙해져 있던 나를 반성하게 해준 책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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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1-01-24 1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신은 지금 어떤 방랑을 하고 있나요?” 아 이렇게 한 문장으로 정리하시다니 ^^ 반가운 흔적 찾아서 메모 남겨요. 바다그리기님이 “나 여기 있었다.”고 적어 두신 흔적을 찾아서!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셔야 해요!

하나 2021-01-24 20:26   좋아요 1 | URL
아, 저조차 저의 하루를 응원하지 못하는 날들이 많은데 - 눈물 버튼 ㅜㅜ 저도 그런 날들이 이어지다가, 다잡다가 그러고 있어요.

바다그리기님께서 매일매일 조금 더 행복하고 기뻐야 한다고 좀전에 그렇게 결정해주셨으니, 정말 그럴 수 있을 거 같고 그러고 싶어지네요 ^^

바다그리기님 마음 넘 따듯해서 매번 말씀 남겨주실 때마다 눈물 핑, 우리 책친구 바다그리기님의 하루는 제가 응원합니당 :)

오늘 밤부턴 조금 추워진다니까 더 따숩게 해서 주무셔요! 🙈

바다그리기 2021-01-24 2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늘 따뜻한 마음 한자락으로 불쑥 제 마음을 흔들어 놓는 하나님!
저도 잊고있었던 제 흔적을 찾아내
이렇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주시니 저는 또 이렇게 뭉클한 기쁨을 느낄 수밖에요. ㅎㅎ
저도 하나님이 이 책 읽으신 감상 쓰신 거 읽고 반가웠어요^^
방랑자들은 쉽고 편한 소설 읽기에 익숙해져 있던 제게 쉽지않은 책이었지만 많은 질문을 던져주었고, 하나님같은 친한 이웃님과 이렇게 반가운 인사를 나누게도 해주니 분명 좋은 책이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가 아니라 보내셔야 해요라는 인사가 너무 따뜻해서 감동이예요.
저조차 저의 하루를 응원하지 못하는 날들이 많은데 저의 좋은 하루를 당연한 것처럼 생각 해주시는 마음이 너무 감사해서요.
(잉잉.. 나이 드니 마음의 수도꼭지가 터져버렸나봐요 ㅜㅜ)

언제나 따뜻한 시선과 마음으로 바람직한 방랑만 하실 것같은 저의 책친구 하나님!
하나님도 매일 매일 조금 더 행복하고 기쁘셔야 해요!
제가 좀전에 그렇게 결정 했거든요^^
오랜만의 인사 반갑고 감사해요~
 
총 균 쇠 (무선 제작)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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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생은 운7 기3‘이란 말이 있다.
내가 가진 기운보다 소위 적절한 타이밍과 운빨이란 것이 우리 삶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
인류문화사를 다룬 최고 명저 중 한권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 책을 읽고나면 그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노력과 열정, 선한 마음으로 살면 복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믿으며 살아온 사람들을 힘 빠지게 만드는
말이지만 이 책은 700페이지 가까운 분량 속에서 아주 분명하게 주장하고 있다.
잘난 척 하지 말라고, 너희가 잘 사는 건 잘나서가 아니라 요행히 다른 사람들보다 운이 아주 좋았던 거라고.
반대로 빈국의 국민들에겐 힘 빠지는 말이지만 어차피 그 나라에서 태어난 이상 당신들의 가난과 불평등은
이미 결정되어 있던 것이니 어쩔 수 없다는 것.
어찌 보면 열받는 주장이지만 엄청난 분량의 통계와 자료들을 통해 그의 논리는 객관적으로 제시되어 있고, 읽는동안 어쩔 수 없이 수긍과 인정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20여년 전에 쓰여진 이 책이 아직까지도 인류문화사적으로 최고의 책 중 한권으로 인정받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저자가 세계의 국가간 발전 불균형의 원인을 생물학적 민족 차이가 아닌 대륙간의 조건에 따른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처음 이 책이 나왔을 무렵까지만 해도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유전학이나 생물학적인 원인에서 비롯된다는 설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학설을 보란듯 뒤집으며 특히 백인우월주의까지 만들어낸 대륙간 발전 불균형의
원인이 다름 아닌 지리적 위치와 그로 인한 여러 현상들에서 기인한 것일 뿐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결론을 내린 것.
한마디로 ‘너희 백인들 잘난척 하지마! 그 땅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니들은 그저 찌질이였을거야‘라는 빅엿을 먹인 셈이니 당시 이 책이 서방 국가들에 준 충격은 익히 짐작 되고도 남는다.
그러니 책이 출간된 후 적지않은 반발과 수많은 반론들이 제기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을 터.
하지만 많은 반론들은 이 책의 일부 내용에 의문을 제기하는 수준에 그쳤고, 수많은 통계와 자료, 여러 장르에 걸친 저자의 해박한 지식으로 중무장한 이 책의 주장은 점차 문화인류학적으로 중요한 학설임을 인정받게 된다.

명저로서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에게 읽혔고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에게 읽히게 될 이 책의 시작은 아주 단순한 질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어느날 저자의 뉴기니 원주민 친구가 물은 ‘왜 우리(아프리카인들)는 너희(백인들)처럼 발전하지 못한걸까?‘라는 궁금증.
그 질문을 두고 두고 떠올리던 저자는 결국 그 답을 직접 찾기로 했고, 그렇게 시작된 책은 이제 전세계인들이 읽는 중요한 문화인류학 도서가 된 것이니 학자로서 사소한 질문도 놓치지 않는 예리함과 답을 찾기위한 엄청난 노력과 집요한 열정은 정말 놀랍고 존경스럽다.
엄청난 양의 통계와 수치들, 각 분야의 해박한 지식을
근거로 한 여러 논리와 주장들이 펼쳐지지만 결국 저자가 이 책을 통해 하고있는 이야기는 단순명료하다.
‘위도가 같아 기후와 토양이 비슷하며 동서로 연결된 지형에 장애물도 없는 유럽대륙이, 남북으로 연결되어 서로 다른 기후와 풍토를 지닌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보다 문화나 식량의 전파와 확산이 더 빠르고 농경의 발달을 시작으로 더 부유한 국가를 이룩할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것.

물론, 이러한 지리적인 특성만으로 발전의 차이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일찌기 서양보다 훨씬 빠른 발전으로 풍요로운 제국을 이루었던 중국의 경우, 오히려 통일로 한명의 지도자가 오랜 세월 통치했던 것이 그들에겐 유럽에 뒤쳐지는 이유가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국가로 분열되어 경쟁하던 유럽은 바로 그 경쟁이 서로를 더욱 발전시켜 부강한 대륙이 될 수 있었지만, 한명의 지도자가 모든 권력을 쥐고있었던 중국은(모든 지도자가 옳은 결정만을 하는 것은 아닌만큼) 견제나 경쟁을 통한 상호발전을 할 수가 없어 필연적으로 뒤쳐지고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대륙간 발전 불균형에 대한 이런 기본 전제를 바탕으로, 저자는 인류역사의 흐름 속에서 총과 균, 쇠로 대변되는 무기와 병균, 문명의 발달이 그 불균형을 어떻게 심화시켜 왔는지를 수많은 통계와 자료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이 그의 이론을 수긍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솔직히 너무 많은 통계와 자료들은 독서를 버겁게 만들 지경이라 굳이 이렇게.. 라는 생각까지 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탄탄한 근거를 모으고 제시하는 그의 집요함과 수많은 학문적 지식으로 무장한 그의 해박함과 치밀함은 감탄을 넘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고작 160여명의 스페인 군대가 숫적으로 우세한 잉카인들을 물리치고 병균을 퍼뜨려 잉카제국을 결국 멸망 시킨것과,
자급자족 하며 욕심 없이 소박하게 살아온
모리오리족이 마오리족에게 몰살 당해 멸종 됐지만 그 두 종족의 조상은 같은 폴리네시안으로 다른 지역에
정착해 사는동안 각기 다른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종족으로 변화 되었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결국 저자의 주장대로 강대국과 약소국의 불균형은
생물학적 원인이 아닌 지리적 요인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 책은 지리적으로 불리한 땅에서 태어난 이들에게 적지않은 실망감과 박탈감을 느끼게 만들고, 출생 시점부터 결정되어 평생동안 지워질 운명의 굴레에 대한 억울함도 느끼게 만들지만 부정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서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한 채 강대국의 알력싸움이라는 태생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가진 우리나라도 어쩔수 없는 불리함을 극복하고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위상을 갖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를 고민하며 함께 노력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일 것이다.

초반에는 엄청난 지리적 설명과 통계, 수치들의 압박감에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아 힘들었지만
전반적으로 어려운 문장이 없는데다 이해를 돕는 역사적 사례들은 재미있고 흥미로워 쉽게 읽힌다.
구매후 쉽게 읽히지 않는 초반부를 극복하지 못해 다시 책장에 넣어두길 두차례, 세번만에 결국 완독을 하고 보니 역시 오랜 시간동안 명저로 인정 받으며
수많은 독자들의 지지를 받고있는 책에는 그만한 이유와 가치가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게다가 서문에서부터 드러나는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한국에 대한 호감과 관심, 한글의 우수성과 우리나라의 지리적 중요성을 높이 인정하는 그의 친한 성향은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책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를 갖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출간 된 지 20년도 넘은 이 책이 끊임없이 읽히고 회자
되며 인문학적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 해준다.
인류학적으로 중요한 명저 또 한권을 독파 했다는 뿌듯함과 함께 두꺼운 책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며
독서력도 성장하는 기분.
이 책의 두께와 초반의 어려움으로 포기할까 고민중인 독자분들이 있다면 조금만 참고 끝까지 완독 하시기를 진심으로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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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 이슬아 서평집
이슬아 지음 / 헤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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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란 신선한 깨달음과 함께 그간의 독서감상에 대한 부끄러움이 몰아치게 만든 책.
쉽게 잘 읽히고 어렵지 않으며 옆에 앉아 눈을 마주치고선 다정하게 조곤조곤 이야기 하는듯한 문장으로 그녀가 좋아하는 책들을 들려준다.
책을 읽은 저자의 느낌에 맞춘 것인지, 책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방식을 고민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각 서평들을 제각기 다른 방법으로 들려주고 있다.
어떤 것은 내밀한 속내를 끄적인 일기같고, 어떤 건 친밀한 편지같고, 또 다른 것들은 담담한 산문같고,
수필같고, 책소개 기사같기도 한 다양한 얼굴로 책
이야기들이 펼쳐져있다.
아쉬울 정도로 얇은 책 속의 모든 글들은 묘하게 따뜻하며,
볕이 잘 드는 어느 봄날 오후의 한옥 대청마루처럼 어딘지 나른하고 포근하면서도 마음 한켠을 몽글몽글하게 만드는 따스하고 깊은 친절함이
묻어있다.
그래서였을까?
그저 저자가 좋아하는 책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순간 순간에 나도 모르게 왈칵하며 눈물이 맺혔고 불쑥 가슴이 저리고 아팠으며, 마음이 찡해지는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전태일의 희생은 ‘그들의 전체이자 일부‘인 나를 태워 또다른 나를 지키기 위한 사랑의 이야기가 되어 나를
울렸고, 별것 없는 젊은 미경에게 쓴 편지는 희생을
사랑이라 여기며 온 생을 다 주고 가신 내 엄마의 이야기가 되어 나를 아프게 했으며, 다른 모든 이야기들은 나를 깨우고, 사랑을 되새기게 해주고, 어떤 이야기로 글을 만들어야하는지를 다시 고민하게 만들었다.
내가 이미 읽은 책도 있었고 관심을 가지고 읽을까 말까를 저울질 하던 책도 있었는데, 마지막 장을 넘긴 순간 읽었던 책은 당장 다시 읽고싶어졌고 저울질 하던 책은 사야 할 도서 목록에 바로 올라갔다.
잔잔하게 던지는 이야기에 온 마음으로 깊은 파장이 번져가는 느낌..
책의 페이지 수나 두께가 절대 그 책의 깊이와 감상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것,
겸손한 태도만큼 낮은 자세로 따뜻하게 풀어놓은 쉬운 글은 큰 감동과 깊은 공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을 또한번 깨닫게 해준 좋은 책을 만나서 정말 기뻤다.
세상엔 좋은 책만큼이나 이렇게 훌륭한 서평책들이 많아서 너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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