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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그레이트북스 8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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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완독.
요즘 읽었던 책들에 비해 번역 스타일도 쉽지않고, 저자의 문장 자체도 장문(어떤 문장은 아홉줄이나 되며, 중간에 괄호 안의 문장도 너무 많고 길다)과 이중부정, 긍정등이 너무 많다.
한 문장이 끝난 후 의미를 되새기며 이해해야하는 경우가 많아 가독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성격이 급해 책 한권을 여러날 읽지 못하는 나조차 하루만에 읽기 버거워 며칠간 틈틈이 읽어야했다.
하지만, 다 읽고나니 이책이 왜 오랜 시간동안 명저로
손꼽히며 수많은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던 정말 좋은 책이다.
히틀러의 나치가 독일과 유럽지역에서 위세를 떨치던 시기에 유대인들의 이동과 학살을 주도적으로 행했던
나치 친위대원 중 한명인 아이히만.
그는 전후 15년동안 신분을 바꾸고 숨어 살다가 유대인들에게 체포되어 예루살렘으로 납치 되었고,
그곳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된다.
미국 일간지의 의뢰로 그 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기고했던 저자 한나 아렌트의 기록을 모은 것이 바로 이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다.

저자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이지만, 자신의 민족을 학살한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기록하는 동안 놀라울 정도로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으며, 철학자로서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냉정하게 아이히만과 그가 저지른 행위, 재판을 받는 그의 태도와 재판에 관계된 인물들을
총체적으로 관찰하고 면밀히 파악한다.
그리고 그 관찰을 토대로 하여 지금까지 수많은 철학자들과 언론인들, 저자들에게 회자되는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예리한 표현으로 피고인 아이히만의 정체성을 설명한다.
아이히만은 희대의 악인이 아니고 사악한 악마도 아니며, 그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인간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않는 무사유의 죄를 저지른 자이며, 그를 통해 평범한 인간들이 얼마나 쉽게 희대의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 그야말로 무서운 ‘악의 평범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고 내린 결론이었던 것이다.
그에 덧붙여 그녀는 예루살렘에서 행해진 아이히만 재판에 대한 세가지 측면의 비판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그 논리들을 열거하고, 아이히만 재판이 그러한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몇가지 측면과 위험성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지적했다.
전후 독일 법정에 세워졌던 다른 전범들의 경우, 아이히만보다 높은 계급자로서 더 악랄하게 수많은 유대인 학살을 주도적으로 행했음에도 너무 가벼운 징역형을 받았던 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예루살렘이라는 유대인들의 법정에 세워진 아이히만은 그들보다 훨씬 낮은 계급이었고, 심지어 그의 주장처럼 유대인들에게 호의를 베풀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정해진 수순처럼 이어진 재판을 통해 당연한듯 사형을 선고 받았고, 너무나 빨리 형이 집행 되었다.
한나 아렌트는 공소시효를 무시하고 아이히만을 체포해 납치한 소환절차 문제부터,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허술하기 짝이 없는 변호로 아이히만을 돕기는 커녕 사형이 구형되는 데 일조한 듯한 아이히만 변호사의 무능함과, 피고 아이히만에게 유리한 증언이나 자료들은 무시하고 사실 확인도 없이 불리한 증언이나 자료만을 취사 선택한 예루살렘 법정의 부당함을 지적했다.
피해자들의 법정에서 벌어진 아이히만 재판은 바로 그 특성 때문에 유대인들의 복수를 위한 재판으로 인식됨으로써, 인류 전체의 비극을 다루는 재판으로 인식되지 못할 우려가 있다는 한나 아렌트의 통찰은
정말 놀랍다.
더구나 유대인인 그녀가 재판을 지켜보는 내내 민족적 분노나 동족의 비극에 대한 공감은 배제한 채 객관적이고 학자적인 시선을 끝까지 유지한 것,
피고 아이히만은 악마가 아니며 예루살렘 법정에서
이루어진 그 재판에 얼마나 많은 오해와 비난의 소지가 있는지까지도 냉철하게 지적한 것은
정말이지 놀라움을 넘어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물론, 그녀의 이런 태도는 (특히 그녀가 유대인이기에) 유대인들에게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그때문에 이 책이 가장 늦게 출간된 곳이 이스라엘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그녀의 태도는 사회 풍조나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손바닥을 뒤집듯 수시로 다른 주장을 펼치는 수많은 학자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 책은 악의 평범성이라는 놀라운 통찰 외에도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고, 그래서 읽는동안 충격과 분노의 순간도 많았다.
나치만이 아니라 수많은 독일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종족이 독일인이라는 히틀러의 주장에 고무되어 그를 추종하고 유대인 학살에 동조 했다는 것, 독일뿐 아니라 수많은 유럽 국가들이 자국의 유대인들을 학살하는데 자발적으로 동참하고(심지어 폴란드는 히틀러가 학살을 시작하기도 전에 열심히 살인을 저지르고) 유대인들의 재산을 몰수 했다는
사실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무엇보다 큰 분노를 느끼게 한 부분은 유대인 지도층들이 자신들의 목숨과 지위를 보전하기 위해 자발적인 협조로 유대인들의 명단을 만들어 기꺼이 독일에 건넸고, 학살될 자들과 생존할 자들을 선택하기까지 했다는 것.
그랬던 그들이 전후 이스라엘의 지도층이 되어 아이히만과 같은 전범을(동족들에게 저지른 자신들의 죄보다는 훨씬 가벼울지도 모르는) 재판하고 처벌 하다니 너무나 파렴치하고 뻔뻔하지 않은가!
어느 나라나 고통의 시기에는 변절자나 배신행위들은 있다지만 지도층이라는 자들의 부패와 타락은 반드시 죗값을 치러야한다.

나치가 선동에 능하다는 것은 알고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무서울 정도로 뛰어난 책략을 펼쳤는지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학살이란 표현 대신 ‘최종해결책‘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학살을 저지르는 자들조차 스스로를 어쩔수 없는 해결책의 수행자일 뿐이라고 인식하게 만든 점이나, 살상된 유대인의 사체를 봐야만 하는 낮은 계급의 병사들에게 ‘내가 이렇게 잔인한 짓을 저질러야 하다니‘가 아니라 ‘내가 이런 끔찍한 것까지 보며 일해야하다니‘라는 관점으로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고 스스로를 안타깝게 여기도록 사고의 전환을 하게 했다는 부분에선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한나 아렌트의 지적처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려는
노력 없이 어떤 사고도 하지않는 무사유의 태도는 인간에게 얼마나 큰 죄인가.
그럼에도 나치스에 가입해 죄없는 사람들을 죽이느니 차라리 이렇게 죽는것이 훨씬 행복하다며 징집을 거부하고 기꺼이 총살 당했다는 독일 시골의 이름도 모르는 어린 농부 형제 이야기는 감동 그 자체였고,
독일의 학살을 반대하며 전시의 부족한 상황에도 십시일반 가진 돈을 모아 돈없는 하층민 유대인들의 탈출자금을 마련해주었다는 네덜란드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는 뜨거운 감동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렇게 좋은 책을 난해한 직역의 아쉬운 번역 때문에 안읽을뻔 했다니.. ㅜㅜ
나처럼 쉬운 인문학 도서를 찾는 많은 독자들을 위해 좀 더 매끄럽고 쉽게 이해되는 좋은 번역서로 재출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진심으로, 간절하게 가져본다.
그래서 이 좋은 책을 좀 더 많은 독자들이 읽게 되기를..
오랜만에 정말 많은 것을 깨닫고 생각하게 해준,
감사한 독서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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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지니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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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일찍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고 제법 능력있는 사육사가 된 진이와
반대로 부모와 형제에게까지 무시 당하는 청년백수
민주.
영장류센터 근처에서 노숙을 하려던 민주는 보노보를 포획하기 위해 출동했다가 사고가 난 영장류센터 직원들의 차를 발견한다.
침팬지 출몰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진이는 보노보를 발견해 포획에 성공해서 센터로 돌아가던 길에 사고를 당했고, 잠시 후 자신의 영혼과 보노보인 지니의 영혼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누구도 믿어주지 않을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 마주친 민주.
그런데 이상하게 그는 자신이 보노보가 아니라는 걸 눈치채고 있는 것 같다.
진이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민주와의 소통을 시도하고 결국 그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데 성공한다.
민주의 도움으로 자신의 육체는 중상을 입고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이며,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진이.
그사이 보노보의 몸에 갇혀있지만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의지하는 진이에게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된 민주는 진이가 보노보의 몸속에 있더라도 사는 것을 선택하길 바라지만 진이는 혼란스런 감정으로 고민하게 된다.
보노보의 육체를 빌어 삶을 이어갈 것인가,
인간으로서 죽음을 선택 할 것인가.

솔직히 고백 하자면 정유정의 소설은 내가 좋아하는
스토리 전개나 주제등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어쩌다 보니 악의 3부작이라는 그녀의 전작들도 다 읽었지만 암울한 사람들의 헤어나올 수 없는 고통과 불행은 읽는 것만으로도 힘겨웠고, 공감의 재미보다는 꺼림칙한 여운을 훨씬 더 많이 남겨주었으니까.
그녀의 소설에 대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있는 독자들 중 꽤 많은 분들이 이 책은 다르다고 하는 것을 보았고, 일단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둡지 않으며 전작들과 달리 정유정 작가의 의도가 쉽게 이해되고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감동적인 책이란 평들에 고무되어 기대하며 책을 읽었다.
그런데.. 그녀의 전작들은 암울한 분위기와 등장인물들의 고통이 느껴져 읽으면서도 힘겨웠다면
이 책 ‘진이, 지니‘는 읽는 내내 그다지 공감이 되지도
감정의 휩쓸림으로 힘겹지도 않았다.
보노보 지니와 영혼이 바뀐채 자신을 포악한 유인원으로만 대하며 공격하는 사람들에 맞서 자신을 찾기위해 노력하는 진이의 심리가 그다지 깊게 와닿지 않았고, 유일하게 자신을 믿어주는 민주와의 관계도 기대치만큼의 깊은 교류가 느껴지지 않아 아쉽기만 했다.
민주의 시각에서 진행되는 부분에서도 역시 민주가 조금의 의심도 없이 진이를 믿고 위험을 자처하면서까지 그녀를 돕는 그 마음의 흐름이 저절로 이해되고 공감하게 되진 않았다.
그런 까닭에 마지막에 그녀가 내린 결정 역시 고귀한 선택이라기보다는 어쩔수 없는 것으로 느껴졌고,
마치 유인원인 지니를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한 것처럼
묘사되는 것에 약간의 반발심마저 들었다.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흘러온 스토리가 없다해도
보통의 인간들이라면 그 상황에선 누구나 진이와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하고싶었던 이야기가 진이의 마지막 선택에 있다면 조금 다른 방식으로 풀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진이는 쉽지 않은 결정을 했고 그 선택이 지니를 위한 포기라는 것도 맞긴 하지만, 지니의 몸을 선택해 수명을 유지하는 것이 인간인 진이에게 더 나은 선택은 결코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니까.
사고후 보노보의 몸에 들어간 후부터 마지막 선택에 이르기까지 진이가 느껴야했던 감정의 변화 과정,
진이를 돕는 민주와의 유대관계 등 여러 면에서 좀 더 깊이 공감 할 수 있는 의식의 흐름이 어딘지 부족하게 느껴져 아쉬웠다.
그래서 이 책은 내게 정유정 작가의 책 중 가장 아쉬운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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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7-19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사 놓고 앞부분 읽다가...일년 째 잠재우고 있어요. 작가 다른 책 다 읽었는데 이 책 쯤 오니 단점들이 너무 극명하게 보여서,,,,

바다그리기 2020-07-19 11:56   좋아요 1 | URL
다른 분들의 평이 좋아서 가끔 별로라는 개인적 감상조차 조심스러운 책이 있는데 이 책과 작가도 저에겐 그랬어요. 저와 비슷하게 느끼신다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기운 나는 느낌이네요. ㅎㅎ 댓글 감사합니다~
 
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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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라는 존재는 일상적이지 않음에도 신기하게 소설이나 영화에선 식상하다 싶을 정도로 익숙하다.
어릴 때 버려져 도서관에서 살아가는 너구리영감에게 양아들처럼 키워진 주인공 래생은 꽤 솜씨가 좋은 킬러다.
표면적으로는 도서관을 운영하는 너구리 영감은 설계자들이라 불리는 집단에게서 전달된 살인 청부를 킬러들에게 나누어주고 돈을 버는 중개인.
킬러에 적합한 과묵함과 냉정함을 갖춘 래생은 너구리영감의 도서관에서 아무도 읽지않는 책을 읽으며 글씨를 익혔고,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지 않으며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살고있다.
그런데 어느날 살인 목표인 어느 노인을 바로 죽이지 않고 망설이다 그 노인에게 발각돼 그의 집에서 저녁을 얻어먹고 잠까지 자고 오게되는 예외의 상황을 만든 래생에게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멘토같던 훈련관 아저씨와 젠틀한 동료 암살자 추, 그리고 살벌한 바닥에서 그나마 속을 터놓을 수 있었던 친구 정안까지 설계자들에 의해 버려져 이발사라는 잔인한 킬러에게 살해되자 래생은 가만 있을수 없게된다.
게다가 자신의 집 화장실에 수제폭탄을 설치한 미토라는 여자를 찾아내고 그녀가 살인계획을 창조하는 설계자들 중 한명이라는 것을 알게된 래생은 그녀를 도와 설계자들에게 복수를 하게 되는데..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이 언젠간 버려지고 죽음을 당하게 될 운명인 킬러들의 세상에서 죽은 친구들과
가족의 원수를 갚으려는 설계자 미토를 위해 목숨을 건 공격을 감행하려는 래생의 계획은 성공 할 수 있을까?

세계 각지에 번역되어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는 책 소개를 보고 기대를 너무 많이 한 탓이었을까?
얼핏 레옹이 연상되는 주인공 래생부터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들에선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익숙함과 식상함이 느껴지고, 스토리 전개 역시 새롭거나 신선하다는 느낌보다는 늘 보아온 킬러영화의 전개와 유사하게 느껴져 아쉽다.
무엇보다 킬러의 집에 폭탄을 설치해 자신을 찾아내게 할 정도로 당돌하고 복수 의지에 불타있던 미토라는
흥미로운 인물이 후반부로 갈수록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캐릭터로 변질되는 것과, 스토리 전개가
클라이막스를 향해 가는 와중에도 주인공 래생의 감정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것은 정말 아쉬웠다.
특히 모두의 목숨을 걸고 치밀하게 준비한 계획이 무색하게 느껴지는 마지막 엔딩은 정말 허무하다
싶을 정도.
그래도 우리가 흔히 살인청부업자라고 부르는 자들의 뒤에 건축 도면을 그리듯 모든 살인의 계획을 섬세하게 직조하는 설계자들이 있고, 또 그들의 뒤에는 막대한 권력의 힘을 가진 이들이 숨어있다는, 거대한 먹이사슬 식 설정은 인상적이었다.
한사람의 생명을 뺏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암살자, 그들도 결국 잔인한 먹이사슬의 아래에 위치한 불행한 존재들일 뿐이라는 설정은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의
냉정한 본질을 의미하는 듯해 씁쓸함까지 느껴졌다.
결국 래생은 설계자들의 카르텔을 만천하에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쳤지만, 엔딩 이후에 벌어질 일들은 그와 미토가 바라던대로 복수를 완성시킨 것이었을까?
어쩐지 설계자들 뒤에 숨은 최고 권력자들에 의해
래생과 한의 죽음 역시 전혀 다른 내용으로 포장되어 잊혀져버리고 미토와 래생이 무너뜨리려던 그들의 권력은 무너지긴 커녕 더욱 더 견고하게 지켜진 게 아닐까 하는 씁쓸한 짐작.
그러니 나같은 회의주의적 독자를 위해 조금 유치하더라도 확실한 엔딩이었으면 좋았을텐데..
영화로 제작 된다니 시나리오에선 통쾌하고 확실한 결말을 기대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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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1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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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 부검의이자 의과대학 교수인 저자가 매주 시체들을(특히 변사체) 부검 하면서 했던 죽음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의 단상들을 모은 책.
제목에서 느껴지는 독특함으로 자연스럽게 갖게된
기대에 비해 내용은 진지하며 생각할 꺼리들을 많이 던져준다.
삶은 선택할 수도 준비할 수도 없는 것이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맞게 될 수밖에 없는 죽음만은 스스로의 의지와 희망대로 미리 대비하고 준비해 가능한 한 보다 존엄하고 가치 있는 마지막을 맞아야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읽으며 많은 것을 깨달았고 고민하게 되었다.
갑작스런 사고로 혹은 불치병으로 언제든 갑자기 나에게 죽음이 찾아와 삶이 정지 될 수 있음을,
그렇게 내가 세상에서 사라진 후 남겨질 이들을 위해 내 삶의 마무리를 제대로 준비 해두는 것이 필요하단 생각을 왜 나는 하지 못했을까?
정기적으로 자신이 죽은 뒤의 뒷처리와 남겨진 이들에 대한 마음을 적은 유서를 수정하고 다시 정리한다는
저자는 언제라도 다가올 마지막 순간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않고 살고있다고 한다.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 후 예상치 못했던 상실감에 대책 없이 무너졌고 지금까지도 일어나려고 발버둥 치고있는 나로선 저자가 주장하는 죽음에 대한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너무나 공감한다.
남겨질 이들에 대한 배려이자, 이 세상에서 살다 간 자로서의 당연한 권리이며 의무인 죽음의 준비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해야 할 마지막 과제이리라.
죽은 후에 슬퍼해줄 이조차 없는 무연고 사체와 외롭게 혼자 죽음을 맞은 독거인들, 불행한 사고나
범죄로 사망한 변사체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당연하다 믿고있는 생명의 존엄과 가치가 사실 누구에게나
적용되고 있지 않다는 씁쓸한 삶의 현실을 일깨운다.
그러니 내곁에서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이들이 있음이 얼마나 큰 행운이며 감사할 일인지도.
의학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수명이 연장 되면서
소위 숨만 붙어있는 채로 의료기구에 의존해 삶을 지탱하고 있는 의학적 연명치료의 윤리 문제,
줄기세포와 복제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젊고 건강한 몸을 계속 바꿔가며 영원불멸의 존재로 죽지않고 살려는 백만장자의 이야기는 다양한 관점의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영원한 삶이 가능해진다면 나는 그것을 원하게 될까?
복제된 젊은 신체에 내 뇌 속의 기억과 추억과 나의 정보들을 모두 옮긴다면 그건 진짜 나라고 할 수 있는걸까?
죽음 없이 매일 아침 일어나 하루를 살아야하는 삶이
영원히 이어진다면 그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책의 두께는 얇고 문장들은 쉬워서 금방 읽히지만,
책 속의 내용들은 한번 읽고 말기엔 적지않은 고민거리들을 남겨준다.
죽음으로 대변되는 인간의 삶의 가치,
우리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고 해야하는 마지막 모습,
영원한 삶을 원하는 인간들의 욕망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하는 길과 방향..
죽음이 삶의 끝이라고 믿는 내게도 이 책의 이야기들은 쉽지않은 생각의 단상들을 남겨주었고
지금도 나는 생각중이다.
죽음을 제대로 잘 맞기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가.
죽음 후에 남겨진 이들을 위해 무엇을, 어떤 마음과 이야기를 두고 떠날 것인가.
이렇게 중요하지만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자각하고 생각하게 만들어준 저자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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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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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인 비행운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고 한다.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에 흔적으로 남은 구름,
그리고 운(행운)이 없다는 뜻.
책에 수록된 단편들을 읽고나니 두개의 뜻을 가진
‘비행운‘을 제목으로 정한 이유를 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각 단편의 주인공들은 평범하면서 그다지 운이 없거나 꽤 불행한 사람들이고, 그들은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구름처럼 마음 속에 아픔이 새겨진 채 살고있다.
자신의 존재를 알아봐준 선배를 오랫동안 짝사랑 했으나 그에게 믿음을 배반 당하고, 그렇게 아픈 마음으로 돌아오던 길에 불현듯 어린 시절 자신을 짝사랑해서 상처 받았던 남학생을 떠올리며 새삼스런 자책으로 아파하는 여대생,
한밤중에 재개발 공사 구역에 떨어뜨린 결혼반지를
찾으러 들어갔다가 쓰러진채 썩은 나무자재에서 나오는 벌레들을 보며 아무도 듣지 못하는 허공을 향해 도움을 요청하는 임신부,
철거 아파트에 유일하게 남아있다가 태풍과 함께 아파트를 삼킬듯 차오르는 폭우를 피해 엄마의 시신과 함께 뗏목을 타고 달아나는 백수 청년,
함께 여행을 떠났다가 기대가 분노와 다툼으로 바뀌어가며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친구들,
친구 결혼식날 좀 더 멋지게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 네일숍에 들렀지만 카드 발급 사은품인 여행트렁크를 들고 다니느라 결국 비싼 돈을 들인 손톱도 외모도 망가져버리고 마는 사회 초년생,
다단계에 휘말려 착한 후배의 삶을 망가뜨린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선배 언니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고있는
어느 후배까지..
평범하지만 누리는 기쁨보다 상실의 아픔에 더 익숙한 그들은 되새길수록 아픈 과거의 상처로 고통 받고,
녹록치 않은 현실의 고난에 조금씩 무너지며,
자신들의 기대와 다르게 흘러갈 것이 뻔한 미래를 짐작하면서도 버티듯 살아간다.
담담하지만 온통 잿빛인 그들의 이야기는 서글프고 막막하며, 나아질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다.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밀도 높은 문장 때문인지 그들이 겪는 이야기가 생생하게 느껴져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다.
그럼에도 결국 오늘과 다를리 없는 내일을 또 견디며
살아가게 될,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
마침표 다음에 이어질 그들의 이야기가 조금은 더
편안하고 기쁠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렇게 뛰어난 묘사력과 현실감 있는 문장력을 지닌 작가가 보여줄 다음 작품은 좀 더
밝고 따뜻한 이야기였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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