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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창문 - 2019 제13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편혜영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평점 :
별 다섯개만으로 독서감상의 만족을 표현 하라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특히 별 세개는 좀 후하지만 두개를 주는 야박함은 망설여지는 어제의 책(스물아홉~)과,
별 네개는 망설여지지만 어제 읽은 책과 똑같이 세개를 주긴 미안한 이 책을 연이어 읽은 어제와 오늘같은 날은 더욱 그렇다.
두 책에 똑같이 별 세개를 주는 건 진짜 아닌데..
그런 생각을 하다 문득 부끄러워진다.
내가 뭐라고, 누군가 수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수없이 고치고 다시 쓰며 고통스럽게 만든 작품에 별 몇개
줄까 따위를 (감히) 고민하고 있는건가, 싶어서.
단편소설을 읽고나면 성격도 개성도 말하는 태도나 표정도 모두 다른 여러 사람들과 조근조근 이야기를 나눈듯한 기분이 든다.
나와는 그닥 맞지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한 책은 아쉽고 피로하지만,
어딘지 내가 좋아하는 성향의 사람들로 채워진 이야기들을 만나면 괜히 반가움으로 마음 한쪽이 따뜻하게 말랑거리기도 하고..
어쩌면 그런 느낌이 좋아서 단편소설집을 자꾸 찾게되는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
이 책은 나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듯도 한
사람들이 고루 섞인 모임같은 느낌이었는데, ‘한사람을 위한 마음‘이라는 소설 때문에 그냥 무조건 다 좋은 걸로 결정 해버렸다.
제목도 좋았고, 외할머니와 이모와 어린 조카가 서로를 의지해 살아가는 소소하고 알콩달콩한 일상도 좋았고, 작은 동네 골목에서 착한 마음으로 서로의 하루를 함께 하는 사람들도 좋았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의 고통을 나눠 가진 사람들이 슬픔에 비틀거리면서도 서로에게 기대어 일어나 각자의 삶을 단단하게 붙잡고 함께 나아가는 모습이 눈물나게 아름다웠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이제 햇수로 4년째.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모든 게 무너질까봐
엄마, 라고 소리 내 부르는 것조차 아직 나는 제대로 하지 못한다.
책을 읽다가도 누군가의 죽음이 나오면 반사적으로
심장이 오그라들고, 그 부분을 편하게 읽고 지나가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그런 장면이 나오면 최대한 감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도망치듯 빨리 읽어버리려고 노력 하는데, 이 단편을 읽는동안은 주인공인 지영과(한국 소설엔 지영이들이 왜이리 많은건지), 아이의 귀여움에 순수한 맹랑함을 함께 가진 조카 송이, 지영의 엄마이자 송이의 외할머니, 세사람이 그들의 언니이자 엄마이자 딸이었던 사람을 잃은 뒤 흔들리는 서로의 삶에 빛이 되고 온기가 되고 희망이 되기위해 애쓰는 날들을 보면서 정말 큰 위로를 받았다.
먼저 떠난 이의 사진을 보며 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을 건네다 우는 장면에선 세사람 눈물을 다 합한 것보다 더 많이 울긴 했지만. ㅜㅜ
하루도 더 버틸 수 없을것 같았던 순간이 그럼에도 견디며 살아내야지 하는 시간이 되고, 언젠가는 일어나서 다시 걷고 뛸수도 있는 날이 된다는 것,
겨우 겨우 살아지다 보면 결국은 살 수 있게 될 거라는 것을 다시 또 가슴 아프게 깨닫는다.
자신을 구하고 죽은 사촌형의 죽음으로 불량하기만 했던 그에게 속죄를 강요 당하며 사는 운오,
나이 어린 제자를 향한 사랑으로 이혼을 선택 했다가 결국 혼자가 된 선생님을 이해 할 수 없는 윤령,
자유로운 한비와 친구가 되면서 새로운 삶이 펼쳐졌다고 믿었지만 모든게 허상임을 깨닫는 수영,
학교 폭력의 목격자인 딸이 피해를 유도했을 지 모른다는 의심으로 혼란스러운 엄마,
제3자인 친구로 인해 연인과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는 성소수자 커플,
sns를 통해 친구가 감추고 싶어하는 비밀을 알게된 후 오히려 자꾸 그녀와 멀어지는 영지..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평화로운 관계와 자유로운 소통을 간절히 원하지만 현실에선 어느 것도 맘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어떤 이는 결국 관계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자유를 얻고자 하고,
누군가는 이별의 상처를 감내하며 기다리기로 하고,
또다른 누군가는 끝끝내 오해와 불화를 선택하기도 한다.
그렇게 어긋나기도 하고 또 다시 만나기도 하는게 결국 우리의 삶이므로.
소설 속 이야기들은 희망과 절망, 불안과 평온이 서로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누군가의 말처럼 어쩌면 이해는 오해의 다른 쪽 얼굴이고, 이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이해란 없을 지
모른다.
하지만, 나를 이해 할 수 없어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 뜯으면서도 원활한 소통을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는 누군가가 옆에 있어준다면 내 삶은 조금 덜 외롭지 않을까?
그러니 우리가 끝없는 오해를 반복하고 상처 받으면서도 사람들 속에서 다시 한번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되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것.
그러고 보면 사는 건, 참 쉽지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