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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사전
김소연 지음 / 마음산책 / 2008년 1월
평점 :
˝당신을 착시하기 때문에 나는 당신이 아름답다.
노을이 아름답게 타오르는 것이 우리 눈의 착시이듯이.
내가 보고있는 당신이 허상인 줄 알면서도 나는 당신을 믿는다. 노을을 믿듯이.˝
‘착시‘라는 단어에 대한 마음 사전의 정의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우리 마음 속 여러 감정들을
단어로 표현 해놓은 사전이다.
마음 자체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일 수밖에 없는만큼, 시인인 저자의 정의에 공감되는 마음도 있고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표현도 있지만, 단어 하나를 모래밭에서 찾아내듯 고통스럽게 고르고 골라 시를 쓰는 그녀의 신중하고 깊은 사고 덕에 대부분의 정의에 공감하고 감탄하게 된다.
가끔 국어사전에 정의된 단어들을 읽어보면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과 함께 아쉬움이 들 때가 있다.
명료하게 표현될 수 있는 명사나 사물, 현상 등에 대한 설명도 이럴진데 하물며 당사자조차 확신하기 힘들만큼 변화무쌍하고 오묘한 감정의 빛깔을 지닌
우리들의 마음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책에서 시인이 정의한 마음들은 그 섬세함과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공감,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의미의 무게 만으로도 놀랍다.
특히 감탄스러운 부분은 얼핏 그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힘들 것 같은 단어들에 대한 정의다.
처참과 처연과 처절, 은은하다와 은근하다, 자존심과 자존감, 솔직함과 정직함 등..
비슷한 듯 다른 이 단어들에 대한 그녀의 정의를 읽다보면 저절로 내 마음이 그런 감정들과 마주했던 순간이 떠오르며 나도 모르게 탄식과 함께 공감을 하게된다.
십대부터 사십대까지 자신의 삶을 통해 깨달은 그 나이들의 의미와 그즈음의 고통과 가치에 대한 고찰,
인간의 영원한 과제이자 열망인 사랑에 관한 단상,
미묘하고 때론 치사하고 구차하고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수많은 감정들의 빛과 어둠, 어딘가의 중간 자리에 서있는 복잡한 마음들의 익숙치 않은 생김새까지..
마치 돋보기를 대고 몇날 며칠을 들여다 본듯한
섬세하고 치밀한 사고를 통해 그녀는 이런 마음들에 자신만의 이름표를 붙이고 설명을 덧붙였다.
그렇게 그녀가 씨실 날실을 엮어 옷을 짓듯 꺼내어 표현해 놓은 이 모든 마음들에 우리는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소중하다와 중요하다의 정의였다.
˝소중한 존재는 그 자체가 궁극이지만, 중요한 존재는 궁극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이다.
돈은 전혀 소중하지 않은 채 가장 중요한 자리에 놓여있다. 너무 중요한 나머지 소중하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어느샌가 소중했던 당신이 중요한 당신으로 변해가고 있다. 조금씩 덜 소중해지면서 아주 많이 중요해지고
있다.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
소중하기 때문에 중요한 존재가 되는 게 당신과 나의 소망이었다.
이세상 애인들은 서로에게 소중하지만 아직은 중요하지 않다. 이세상 부부들은 서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미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은 어디론가 스며들고 있다.
우리는 중요한 것들의 하중 때문에 소중한 것들을
잃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약속과 소중한 약속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중요한 약속에 몸을
기울이고 만다.˝
어린 나이에 이 글을 읽었다면 이정도로 공감할 수 있었을지 확신 할 순 없지만, 지금 나에겐 아플 정도로 공감 되는 문장이었다.
나는 소중한 것과 중요한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소중한 것을 지키며 살고 있는가?
한참동안 이 질문이 내 삶의 중요한 화두가 될 것 같다.
삶을 잘 경영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는 김소연 시인.
섬세하고 따뜻한 그녀의 마음이 빚어내는 놀라운 문장들의 힘을 다음 책에서도(시든 수필이든 또다른
사전이든)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그녀의 건필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