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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박정호 지음 / 나무수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책 제목을 보는 순간 마음이 덜컹하고 움직였다.
누군가에게 나의 속마음을 들킨 것처럼 두근두근 떨리는 기분이었다.
지금의 내 마음이 딱 그랬다.
떠나지 않고 있어 견딜수가 없다.
두툼한 책 안에 얼마나 많은 유혹이 도사리고 있을지 걱정이 앞서지만, 뭐 유혹에 넘어가면 어때, 하고 호기롭게 책장을 넘긴다.
여행은 <내 이름은 빨강>, 오르한 파묵의 나라 터키에서부터 시작된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나라. 그래서 더 다양한 볼거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터키.
이국적인, 그렇지만 정이 넘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터키의 사진에 마음을 빼앗긴다.
한번도 여행책을 통해 만나 본적이 없는 듯한, 그래서 더 신비롭게 다가오는 시리아와 요르단을 거쳐, 별들의 들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순례길이 소개된다.
순례길 역시 내가 꼭 가보고 싶어 관련책이 나올 때마다 꼭 찾아 읽는 장소인데, 익숙한 지명들이 반갑기만 하다. 순례 여행객이 점점 많아져서 알베르게가 부족하여 힘들었다는 이야기나 새로운 알베르게를 알게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순례길은... 내가 갈때까지... 그렇게 잘 있었으면 좋겠다.
스페인과 포르투갈도 반갑다. 직접 여행을 다녀온 곳이기에 풍경도 익숙하고, 읽으면서 추억에 잠길 수 있다.
직장 생활은 내게도 지옥이었지만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악몽이었으리라 (p209)
시장의 경쟁 원리가 왜 나에게만 항상 불리하게 작용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p296)
아프리카에서 단지 돈 몇 푼을 벌기 위해 인간을 사냥했던 후예들은 21세기에 들어서도 주인 행세를 한다. (p312)
여행 에세이를 읽으면 좋은 점은 바로 이런 점이다.
공통된 생각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세상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또 한명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의외로 안도감같은 것이 생긴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게 아니야.. 뭐 이런 동질감도 생기고..^^
또, 다른 사람의 독특한 생각을 알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점이다.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랄까? 여행을 통해 얻게 된 다른 사람의 인생 노하우를 얻는 행운을 누릴수 있다.
세네갈 농부들은 땅콩을 심을수록 가난해졌다. 아이들은 아무 데서나 땅콩을 판다. 한 줌에 50원. 땅콩을 먹다 보면 목이 멘다...... 세상에는 땅콩 때문에 슬픈 나라도 있다. (p327)
슬픈 나라 세네갈. 하지만 이런 세네갈도 아프리카에서는 잘 사는 축에 드는지 그 나라 사람들은 고되다고 힘들다고 안 하는 일이 있어, 옆의 말리라는 나라의 사람들이 몰려와 그 일을 한다고 적혀 있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일도 너무 많았다.
그리고 여행은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어지간히 사막을 좋아하나 싶다. 사막의 적막함, 고요, 그 고독의 시간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사막에 대한 두려움도 보인다. 좋아하면서 두려워한다니..
여행의 모순이랄까... 어쩌면... 인생의 모순일지도 모르겠다.
난 딱 한번 사막을 본 적이 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을 사막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모래 언덕일수도 있다. 하여튼 꽤 넓게 펼쳐진 그 모래 언덕이 너무 싫었다.
푹푹 빠지는 모래가 싫었고, 바람에도 모래가 섞여 있어 몸 안으로 들어와 간질이는 느낌도 싫었다. 사막= 모래= 싫음.
뭐 이런 식이었달까.
누구에게나 ‘여행의 시작’이 있을 것이다. 여행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는 계기 말이다. 저자의 경우 NHK 다큐 ‘실크로드’였다고 하니, 사막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다. 여행은 이렇게 건조한 타클라마칸의 사막에서 끝나고, 마지막에는 일상으로, 한국으로 돌아온 여행자의 불안감이 팽배한 독백으로 마무리된다.
아마 또다시 떠나게 되겠지?
역시 ‘떠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여행자이다.
세계 곳곳 여행지의 아름다움과 여행을 통한 이야기의 재미 뿐만 아니라 여행자의 마음을 함께 공감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