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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의 축제 2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2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트루히요, 도미니카 공화국, 독재정권......
이 책을 읽기 전에 미리 알고 있다면 좋을 단어이다. 그렇다면 세가지 시점에서 복잡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지도를 펼치고, 미국 마이애미를 찾고, 쿠바를 찾고, 아이티를 찾다보면 보이는 도미니카 공화국. 그 곳에 32년에 걸친 독재정권이 있었다. 독재 정권을 펼친 사람이 바로 라파엘 네오니다스 트루히요였다.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에 보면 트루히요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트루히요는 독재자도 그냥 독재자가 아니라 ‘도미니카 독재자’였으며, 그건 그가 국내 최고의 악한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는 도미니카의 토토란 토토는 글자 그대로 모두 제 것이라 여겼다.” 여기서 토토란 여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말이고, 이처럼 트루히요가 정권을 잡았던 시기에는 트루히요와 그의 측근들에 의해 행해진 강간이 많았고, 트루히요는 각료의 아내와 딸도 ‘자기 것’인 양 여겼다고 한다. <염소의 축제>에서는 트루히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트루히요가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이 없었다. 그는 능히 물을 포도주로 만들고, 빵을 수없이 늘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p35-6)
어디선가 본듯한 익숙한 일이 아닌가? 자신을 예수님과 같은, 신과 같은 사람이라 여긴 트루히요,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그는 정말 신처럼 군림했다. 자비로운 신이 아닌 ‘독재자’의 의미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 사악한 신으로 말이다. 검색창에 트루히요에 대해 검색하면 "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며.. “ “ 폭력, 잔인성” “ 아이티인 무차별 학살 ” “ 공포분위기 조성” “ 언론 통제” 이런 단어가 눈 앞에 펼쳐질 것이다.
이 책의 제목에 쓰인 ‘염소’ 라는 말도 트루히요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염소는 독재자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던 별명인데, 염소같은 번식력과 생명력- 다시 말하자면 성욕을 가졌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또한 염소는 악마성을 지칭하기도 하는데, 그에게 이처럼 딱 어울리는 별명도 없다 여겨진다. 트루히요는 염소 외에, 병마개, 자선가, 총통, 수령님, 각하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운다. 이와같은 도미니카에서 벌어진 독재 정권에 대한 역사적인 정보를 알고 있다면 이 책은 훨씬 이해하기 쉬워진다.
<염소의 축제>는 트루히요 본인, 트루히요를 암살하려는 사람들, 우라니아 카브랄이라는 여주인공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한사람의 시점이 아닌 이렇게 다양한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보니, 그 시절을 훨씬 다각적인 면에서 관찰 할 수 있다.
독재정권시절은 끔찍했다. <염소의 축제>는 그때 벌어진 잔악한 일들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담담한 다큐멘터리같기도 하다. 소설을 그냥 쭉 읽다보면 어째서 마법에 씌인 것처럼 독재를 받아들여선 안되는지, 독재를 그리워해서도 안되는지 가슴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트루히요의 시점에서 말하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신처럼 군림했지만, 결국엔 세월 앞에서 자신의 방광마저도 마음대로 다스릴 수 없어져버린 초라한 모습의 사내를 발견하게 된다. 이 무슨 아이러니일까. 모든게 다 그가 저지른 일에 대한 ‘벌’이겠지만, 완벽함을 추구했던 -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모든이에게 그것을 강요했던 이에게 벌어진 일을 보면서 씁쓸함을 감출수 없다. 그런 수령님이라도 끝까지 모시겠다며 아부하고 그를 위해 더러운 일도 서슴치않는 각료들이라니. 독재자들과 그 추종자들은 어쩜 그렇게 비슷비슷하게 연극적인지.
그런 트루히요를 암살하려는 사람은 다름 아니라 트루히요가 믿었던 경비대원이나 각료들이었다. 트루히요를 옹호했던 그들이 어느날 갑자기 그와 그의 정권에 대한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서 자유의지를 갖고 더 나은 것을 갈구하게 만들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성공이었지만 곧 배신이 뒤따르고 그들은 이제 쫓는 자에서 쫓기는 입장이 되버렸다.
우라니아 카브랄. 그녀는 이 책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다. 그녀가 있기에 트루히요 정권이 벌인 악을 가장 절실하게 피부로 느낄 수 있다. 35년 동안 아버지를 찾지 않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고통의 비밀에서 벗어나고 싶어 그녀는 도미니카로 돌아온다.
어쩌면 이후에 들어선 정부들이 너무나 엉망이어서 많은 도미니카 사람들은 트루히요를 그리워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1권 p168)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은 독재정권 시절을 서서히 잊어간다. 오히려 왜곡하여 그 때에 모두에게 일자리가 있었고, 범죄가 더 적었다며 그리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독재에 대한 이런 왜곡이나 막연한 생각은 우라니아의 이야기에 스며들자 바뀌게 된다. 독재라는 것이 얼마나 잔악한 것인지, 한사람의 일생을 바꿔놓을 수 있는지, 왜 우리는 그것을 경계해야만 하는지 그녀가 보여준다.
2권에 걸친 긴 이야기가 끝나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우라니아, 그녀에 대한 걱정때문이다. 그녀는 이제 어린 시절 그 기억의 잔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가족들에게, 자신을 그렇게 만든 아버지에게 고백함으로써 상처가 치유되고 사람들 속으로 한걸음 내딛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녀가 조카인 마리아니타에게 답장을 보내기로 결심한 것에서 희망을 보았다고 말해도 될까 싶다. 도미니카로 돌아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다시금 돌아보고,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던 그녀를 둘러 싸고 있던 얼음이 서서히 녹아버리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