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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미터 - 너와 내가 닿을 수 없는 거리
임은정 지음 / 문화구창작동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이강찬, 37세.
교통사고로 인한 과다출혈에 따른 뇌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 처음 사고가 나고 항상 옆을 지키던 가족과 아내가 있었지만, 어느 순간 이틀에 한번, 일주일에 한번, 한달에 한번, 두달에 한번으로 뜸해지더니 아무도 옆에 없고 누구도 말걸어주지 않는 3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런 그에게 드디어 ‘죽음’ 이 선고된다. 무의미한 연명 치료의 중단이 선언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 강찬은 일반 병실로 옮겨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못하지만 강찬에게는 의식이 있었다. 그래서 주변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다만 그가 하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은 들을 수 없다. 외로움과의 싸움을 이제 그만할 수 있겠구나, 안도하게 되었는데 강찬은 인공 호흡기 없이도 살고 있었다.
정해진 수순처럼,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하나둘 강찬의 곁을 떠난다. 가족이 떠나고 아내가 떠나고 종합병원에서 입구도 찾기 힘든 행복요양원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곳에서 강찬은 서길자, 소연, 석천, 상혁, 칠현과 기정 부부를 만난다. 같은 병실의 찬강과도 만나는데, 놀랍게도 그녀와는 영혼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외로운 종합병원에서 강찬은 누군가와든 대화만 나눌수 있게 되길 기도했는데, 막상 가능하게 되자 오히려 찬강에게 차갑게 대한다. 하지만 마음 따스한 찬강과 다른 환자들, 그리고 아늑한 행복 요양원에서의 생활이 그를 바꾸어 놓는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죽음에서 자유로울수 없다고 누군가 말했는데, 이 책은 그런 죽음에 대해 아주 담담히 이야기한다. 죽음을 앞두고 모여 있는 행복 요양원 사람들. 하지만 강찬이 힘을 얻고 삶의 의미를 찾은 것은 거창하고 큰 것이 아니라 작고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고, 서로를 보듬어 살가운 정을 나누는 그들 때문이었다. 하루살이에게마저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찬강이 옆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죽음에서 자유롭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덤덤히 그것을 받아들이고, 작은 행복에 감사할 줄 알았던 요양원 식구들의 존재의미가 잔잔히 마음에 와닿는다. 욕심 부리지 않고 적당한 만큼, 찬찬히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고 있는 작가의 이야기에 조용히 귀기울이게 된다.
직접 겪고 다친 상처가 아물지 않으면 알수 없는게 인생.
인생에는 지름길이 없다. 딱 아픈만큼 그만큼만 세상을 안다. 아무리 똑똑하고 머리가 좋아도 미리 알수 없는 길, 그게 바로 인생길이다. (p302)
죽음을 통해 인생에 대한 정의도 내리고 있고, 요양원 사람들의 생활을 그냥 보여줌으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모습도 따스하고, ‘적당’히 감동적이다. 저자 스스로도 이 책을 쓰면서 많은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찾아내지 않았을까 싶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따스한 또 다른 작품을 기대해 본다. 죽음에 관해서도 이렇게 잔잔하고 따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무엇이라도 같은 시각을 갖지 않을까 기대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