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동안의 과부 1
존 어빙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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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의 내용과는 상관이 없을 수도 있지만,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면 쓸수록 이상하게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다. (서평을 쓴다는 것이) 우선은 서평이라는 것을 쓸 때 내 마음 안에서 특별하게 기준을 세우고 있지 않다는게 큰 문제이기도 하고, 지금까지는 그저 막연하게만 서평에 대해 생각해 왔다는 것도 역시 그러했다. 그러다가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생각이 세상살이에 어떤 기준이 없는 것처럼 서평을 쓰는 것 또한 어떤 기준이 없이 그저 마음가는대로.. 느끼는 그대로 쓰면 되는 것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쓰고자 하는 서평은 글을 읽고 난 후 내 안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적어보는 것.. 그 정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드디어 나만의 기준이라는 것을 만들어 본 것인가..)

  그렇게 나만의 기준을 세운 뒤 새로운 기분으로 책을 읽고 써보는 서평인데... 솔직히 만만치 않은 적을 만나 당혹스런 기분으로 시작된다. 지금까지 나는 도대체 어떤 책을 읽어 온 걸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이 책- [일 년 동안의 과부]는 뭐랄까... 단호한 단정을 할 수 없는.. 어디로 튈지 모르겠는 펄떡이는 생선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까 나의 범위 안에서는 모든 걸 파악하고 수비할 수 없을 것 같은, 허를 찌르는 그런 상대라고나 할까? 그러면서도 나는 그런 상대에게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다. 오랜만에, 당혹감, 책을 읽는 즐거움, 지루함, 앞으로의 전개가 궁금해 미칠 것 같은 감정 등... 오만가지 감정이 들게 하는 독특한 상대를 나는 만난 것이다.

대체 이 책은 뭐지?

  이 책의 모든 것이 시작되었을 당시, 1958년에 루스 콜은 네 살, 에디 오헤어는 열 여섯 살, 매리언 콜은 서른 아홉 살, 그리고 테드 콜은... 뭐 알고 싶지 않은 나이였다. 콜 부부에게는 두 명의 아들(티모시, 토마스)이 있었는데, 안타까운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그 일은 둘 중 매리언에게 큰 상처를 주어 그녀를 시름에 잠기게 만들었다. 그녀는 또 다른 아이를 낳는 것으로 그 슬픔을 이겨보려고 했지만, 그녀의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그렇게 태어난 루스에게 매리언은 사랑을 줄 수 없었다. 이런 콜 가족에게 테드 콜의 조수로서 에디 오헤어가 나타난다. 어디까지나 테드의 계획 아래 이루어진 이 일은 결국 모든 가족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게 무엇인지는 책을 통해 확인하시길)

  네 명의 인물이 중심이 되어 끌고 가는 이야기는 어처구니 없는 웃음을 안겨주기도 하고, 허를 찌르는 감동을 주기도 하며, 이를 바득바득 갈게 하는 에피소드를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무조건 테드가 싫다)




 드디어 1권이 끝났는데...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이런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작가는 나에게 루스 콜의 이런 대답도 들려 주었다. 아마 내가 ‘이 책은 뭐지?’ 하고 궁금해 하는걸 알아차린 듯 하다.

“ 보세요.. 그건 단지 소설이에요. ”

“ 다른 무엇에 ‘관한’ 소설이 아닙니다. 그냥 좋은 이야기죠... ”

 그 좋은 이야기는 다음 2권에도 이어진다. 어떤 이야기들이 가득 차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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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권을 보는 순간 떠오른 생각은

“ 아! 1권보다 훨씬 얇구나! ” 라는 안도감 섞인 그것이었다.

책이 너무 지루해서 라기보다는 책 안에 담겨 있는 오만가지 감정에 휘둘릴 생각을 하니 조금 아득해져서 그런 것이다.

  

  2권은 아직 1990년이다. 1990년의 이야기가 한동안 진행된 후, 1995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1권을 읽으면서도 생각했지만, 이 책은 왠지 앞으로 작가가 되고픈 사람에게 어떤 지침이 될 수도 있는 책이다라고 느껴진다.  우선 주인공 네 명의 직업이 모두 작가이다. 네 명의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또한 그들의 작품의 내용도 이야기해준다.  1990년 서른 여섯 살이 된 루스 콜은 < 불긋푸릇한 에어 매트리스> < 아이들에게는 안돼 > < 사이공 함락 전에 > <나의 마지막 나쁜 남자 친구> 라는 작품을, 테드 콜은 < 벽 사이로 기어다니는 쥐 > < 마룻바닥의 문> < 누가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소리> 라는 작품을, 에디 오헤어는 < 예순번 > <커피와 도넛 > 등의 작품을 지었고, 매리언의 경우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소개를 접어둔다. 다른 작품들이 주로 내용 위주로 소개가 된다면 루스 콜의 작품 < 나의 마지막 나쁜 남자 친구 >의 경우는 작가가 어떻게 소설을 구상하고, 그것을 위해 조사하고, 이야기를 고치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일련의 과정을 하나하나 보여준다. 가끔 이렇게 어떤 팁과 같은 말도 살짝 살짝 남겨주고...

 “ 소설은 논쟁이 아니다. 이야기는 그 나름의 장점에 따라 통하거나 통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세부 묘사가 실제처럼 보이는지 여부이며 그것이 소설적 상황에 적합한 가장 훌륭한 세부묘사인지 여부이다. ” (P80)

 

  하지만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사람이라면...  마음 단단히 먹고 이 책을 봐야 할 듯 싶다.  이 책을 뛰어넘는 작품을 쓰려면 말이다. 작가는 정말 나를 가지고 놀았다. 이야기가 지루해질 때쯤이면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 하나씩을 펑펑 터트려 주고, 한 사람을 지독하게 미워하게도 했다가, 당황스럽게도 하고, 그러다가 갑자기 눈물이 고일만큼 감동을 주기도 한다. 그렇게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막아버리는 것이다. 도대체 이러다 어떻게 마무리를 할까 궁금했는데, 그 이상 좋은 마무리가 없을... 그런 결론을 내려버리고..

하여튼... 이 책을 다 읽은 나는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이런 망할 소설같으니라구!

이 책은 물론 작가들을 위한 책이 아니다. 소설은 이렇게 쓰세요~하는 교본도 아니다. 책에는 인생이 있고, 사랑이 있다. 과장되지 않은 삶이 있는 것이다. 과거의 것들은 미래의 것과 하나하나 들어맞는다. 시간이 지나 미래에 어떤 일을 보면서 ‘ 아’ 하는 탄성을 지르게 될지도 모른다. 작가는 그 어떤 것도 허투루 넘어가지 않는다. 모든 것은 작가의 계획대로 착착 맞아 떨어진다. 그 절묘함에 얼마나 감탄을 했던가..

 “ 그건 단지 소설이에요... 그냥 좋은 이야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하다니.. 얄밉다.

이건 그냥 좋은 이야기가 아니잖아! 이 사람아!




적어도 나에겐 이건 ‘그냥 좋은 이야기’ 정도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당신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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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흉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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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는 이름이 없다. 그녀의 과거도 모른다. 외국인이라며 말도 없앴다. 그저 그녀의 모습은 묘사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 이 녀석인가...... 준야는 숨을 멈췄다. 갈색 피부, 표범같이 예리한 눈, 야성적이며 또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멋진 근육에 감싸인 장신. 그는 순간 이 적을 아름답다고 느꼈다. ” P 198

  제목의 <아름다운 흉기>는 그녀의 또다른 표현일 뿐이다.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그 여자는 제목처럼 흉기일 뿐이었다. 복수의 화신일 뿐이었고, 그저 괴물이라고만 느껴졌다.

작가는 친절하지 않다. 그녀에 대한 많은 걸 알려주지 않는데다가 왜 그녀가 복수를 해야만 하는지, 그리고 마지막에 그녀가 머뭇거리는 이유도 알려주지 않는다. 독자는 그저 모든 걸 자신의 생각으로 알아내야 하고,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고 움직여야하는 열차처럼 이야기는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다. 가장 불친절한 것은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그걸 믿을 수가 없게 만드는 엔딩이란 생각이다. 

   요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꾸준히 읽고 있다.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시작해서 <비밀> <방과후> <게임의 이름은 유괴> <호숫가 살인사건> <레몬> <11문자 살인사건> <탐정 갈릴레오> <회랑정 살인사건>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까지...  하지만 첫 작품이었던 <용의자 X의 헌신>을 뛰어넘는 작품은 아직까지 없었다. 또한 그 책만큼 깔끔한 마무리를 가진 작품 또한 없었다. 다른 여타의 책들이 내게 보여준, 좋게 말해서 열린 결말이고, 어찌보면 어색한 마무리라고도 느껴지게 만드는 엔딩은 언제나 나에게 뭔가 숙제를 남겨주는 것 같은 찜찜한(?) 감정을 남겼다. ( 그러니까.. 아... 이제 끝났다... 하고 홀가분하고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자, 근데 숙제가 있어... 하며 뭔가를 던져주는 기분이라 설명하면 될까? )

 <아름다운 흉기> 또한 그랬다. 처음부터 그 여자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센도의 계략이었을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지만 그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숙명과도 같은 쇠사슬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했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의지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쇠사슬이 마지막에 툭 끊겨버려 그녀를 혼란으로 몰아갔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녀가 어쩌면 의문을 가졌을 수도 있다. 나는 왜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거지? 하면서. 작가는 독자를 그 여자가 되게도 했다가,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이 되게도, 쫓기는 네 명의 살인범이 되게도 한다. 하지만 유독 그녀의 입장일 때 더 객관적이 되어버리고 그저 사건이 일어난 대로만 설명해주며 쌀쌀맞게 군다. 그녀의 입도 닫아버리고, 알려주는 것은 없고... 그래서 더 그녀의 존재는, 그녀의 입장은, 그녀의 생각은 내게 숙제처럼 남아버렸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책들처럼 숨가쁘게 읽었다. 한번 손에 잡으니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처럼, 나역시 그러했으니까.

반전에 반전을 보면서, 마지막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도, 사건이 끝났어도 나는 그 여자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 이렇게 온통 그녀 얘기만 늘어놓고 있다. 그녀는 정말 그렇게 끝이 난걸까? 어쩌면 그녀에게 사로잡혀 버린 내가 이야기를 끝내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안타까운 마지막이 너무 애처로웠는지도 모르겠고.  

  그 여자는 <아름다운 흉기>가 아니었다. 괴물도, 복수의 화신도 아니었다. 단지 세상이 그렇게 불렀을 뿐이고,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없는 흉칙한 괴물들이 그렇게 규정했을 뿐이다.

‘여자’이고 싶었을 그녀를 과연 비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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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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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친구와 통화 중 각자 읽고 있는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 에쿠니 가오리 책 좋아해? ” 하는 친구에게

“ 글쎄... <도쿄 타워>랑 <냉정과 열정 사이>는 좋았은데... 그 외 소설들은 좀 별로였던 것 같아... 왜? ” 하고 대답했다.

“ <반짝반짝 빛나는> 봤어? ” “ 아니..”

“ 그거 볼래? 거기... 네가 예전에 말했던... 네가 하고 싶다는 결혼...그런 얘기던데..”

그래서 흥미를 가졌다. 내가 원했던 결혼이라...

그래... 한때 친구에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듯 싶다. ‘게이’랑 결혼하고 싶다고.. 사정이 있어 결혼해야하는 게이랑 결혼해서 그냥 친구처럼 살아가고 싶다고..

어린 마음에 그저 내게 주어지는 책임이 없기만 하다면, 그리고 나를 ‘집’에만 있게 해주면서 아무런 방해를 안해주기만 한다면... 이렇게 갖은 이유를 갖다대면서 얻은 결론이었다. 그런 생각을 소설로? 호기심이 안 생길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 쇼코는 무츠키씨와 결혼하는데, 그닥 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니, 쇼코는 무츠키씨를 많이 좋아한다. 거기에 무츠키씨의 애인 곤도 좋아져 버린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알코올 중독이지만 독특하고 아이마냥 순진한 쇼코에게, 한없이 다정한 무츠키씨에게, 어리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필 줄 아는 곤에게 반해버렸다. ‘결혼’이라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취향, 다양한 모습들 때문에라도 그 의미는 분명 더 넓어지고 더 관대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냥 단순히 남자와 여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닌게 되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단순하고, 오히려 쌀쌀맞게도 느껴지는 문체지만 오히려 상황을 더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들었다. 단순한 일상을 쫓아가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큰 내용이 숨어 있었다. 두 사람의 마음을 숨김없이 보여주어서 쇼코와 곤의 선택이,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는 무츠키씨의 마음이 예쁘기만 하다. 내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진다는 것, 숨김없는 나의 모습을 보여줄 사람을 만나 기뻐하는 것, 스스로 행복을 찾아낸 것... 나는 쇼코를 통해 행복을 보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은 나에게로 온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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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속을 걷다 - 이동진의 영화풍경
이동진 지음 / 예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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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필름 속을 걷다’란 약간은 아련하게 느껴지는 제목과 코발트빛 사진을 보고 있자니 얼마나 감성적일까.. 약간은 몽환적일 수도 있겠고... 신비롭기까지 한 글들로 가득차 있을까.. 그 글 때문에 또 다시 나는 떠나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되면 어쩌나..걱정도 되고, 영화 속의 도시를 직접 찾아가 보았을 때 저자가 느꼈을 약간의 흥분, 그 떨림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나름 기대했다. 하지만 지금 이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실망감’이란 적절하지 않은 듯 하고, ‘분노’는 절대 아니고, ‘허탈감’ ? 화가 나나? 기대에 어긋났다고 허무한가? 모르겠다.

 

영화 속의 장소를 찾아다니는 여행기지만, 영화에 대한 설명이 거의 대부분이란 생각에 평론집이라고 해야하나 싶기도 하고, 글을 읽으면서 드는 단 하나의 단어는 ‘직업병’ 이라는 것이었고, 그리고 우습지만 읽는내내 ‘ 하~ 이 사람이랑 여행을 다니면 정말 재미없겠구나..’ 하는 엉뚱한 상상만 했다.

여행을 갔는데, “ 여기는 **영화에 나온 장소이고, 그 영화에는 **랑**가 나왔고, 그 영화 중에서 이런이런 장면에 나온 곳이라고... 감독은 **고 %$%^&ㅛ$##$%ㅆ$^ㄸ@#@@” 하며 여행 가는 곳마다 설명해준다면 처음이라면 몰라도 가는 곳마다 이런 식이라면 재미있으려나? 아니 이 정도 얘기해주는 ‘한국남자’라면 괜찮은 사람이려나?

난 전적으로 싫다. 어떤 영화 장면에 나왔던 장소란 사실만이 그렇게 중요한가? 그보다 그 장소와 연관된 영화를 보면서 본인의 느낌이 어떠했는지 그걸 말해주는 사람이 더 좋다는 생각이다. 이런걸 여자와 남자의 시각차, 생각차라고 말해도 될런지.

이 책은 그렇게 ‘감정’을 빼버리고, ‘사실’과 ‘어려운 단어(예를들어 한자어)’ , ‘왜 이 사진이 여기에?’ 있는지 잘 모르겠는 사진과 더불어 글을 무미건조하게 만들어 버린다. 감정을 말해도 읽는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 못하겠는 면도 있고. 여행기라고 생각하고 산 이 책은 가이드북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여행’은 어쩌면 ‘일탈’과 동의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여행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건, 예상치 못했던 것의 발견, 혹은 새로움, 또는 내가 아닌 나의 모습, 내 안의 새로움을 찾는 기쁨이 아닐까 하는데, 이 책에선 그런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거의 없다. 어쩜 이렇게도 한결같은 사람이 있을까... 그의 글도 마치 그처럼 한결같기만 하다.

책을 읽으면서 여행지보다는 영화에 더 많이 관심이 갔다. 나니아 연대기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터널 선샤인이란 영화도 찾아봐야할 듯 싶어졌고...

그리고선 화들짝 놀랐다. 이 책은 여행을 가라고 부추기는 책이 아니라 어쩌면... 이렇게 영화를 찾아보게 만드는... 그런 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거였나? 내가 저자의 의도를 잘못 알아챈거였나?

제기랄... 낭패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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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천사의 도쿄 다이어리 - 캐릭터 디자이너 서윤희의 일본 캐릭터 & 디자인 여행
서윤희 지음 / 길벗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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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는 나와 무슨 운명의 빨간 끈으로 이어진 양 이젠 좀 그만 생각해야지... 할 때쯤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 나 여기 있어 ” 하고 내게 손을 내민다. 그러면 난 어김없이 내미는 손을 외면하지 못한채 맞잡고는 행복해한다. 처음 도쿄에 다녀왔을 때의 흥분을 아직 잊지 못한다. 아직도 ‘도쿄’란 말만 들으면 귀가 솔깃하고, 몸이 따라 움직인다. 마음을 허락해 버린다.

어쩌냐.. 이젠 거의 자동 반사적이다.

역사적 사실 때문에라도 일본이 싫었던 적이 있었다. 아직도 주변에 ‘일제 시대’하면 치를 떠는 어른들이 있기에 일본은 거리상으론 가깝지만 마음으론 먼나라였다. 별로 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러다... 우리 나라 정서상 왠지 떳떳하게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아라시’란 그룹이 좋아져 버렸다. 일본 드라마도 좋아져 버렸다. 호기심이 생기고... 직접 가보기까지 했다. 결과는... 지금은 일본이 좋다. 아니 더 정확하게 도쿄가 좋다. 아라시도 좋고... 오노 사토시는 완전 좋다!!! ^.^

아마 다들 이런 수순을 밟아 일본이 좋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크게 내색하기는 그런게 아직도 일본이 좋다고 얘기하면 제일 먼저 달리는 리플에 ‘일빠’라는 말이 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칫, 그 리플을 단 사람은 분명 일본에 갔다 온 적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라고 생각해본다..

얘기가 너무 이상해지는데...^.^ 그렇게 도쿄를 좋아하게 되었고, 가끔 도쿄의 달콤한 맛이 떠오를 때면... 모든 걸 제쳐 두고서라도(역사적 사실은 오히려 도쿄에 다녀온 뒤로 더 많이 생각하게 만들고... 나를 갈등하게 만든다... 그리고.. 생각의 정립을 나에게 요구하고 있다..)떠나버리고픈 마음이 불끈불끈 솟아 생활하기 힘들어지기도 한다.

도쿄에 대한 책이 많이 나오고 있다. 아니 여행기를 담은 책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해야하나? 요즘의 추세는 남들이 안 가본 나라를 소개하거나, 아님 그 나라에서 살면서 경험했던 에피소드들을 모아 출간하는게 붐인 듯 싶기도 하다. 그 중 가장 나의 주목을 끈 것은 바로 이 책 ‘비비천사의 도쿄 다이어리’였다. 당연하지 않은가! 도쿄 이야기를 담았다는데...

화려한 외관의 책을 보며 솔직히 내용에 대한 기대는 많이 안한 것도 사실이다. 얼마전 출간된 한 아나운서의 도쿄 이야기에 많은 기대를 했다 실망한 기억이 있어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책같은 경우 소개하는 곳이 거의 비슷비슷한데 처음이야 유익한 정보가 되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뭔가 부족한 갈증을 느끼게 만든다. 신주쿠, 하라주쿠, 오다이바, 시부야, 우에노, 아사쿠사, 지유가오카, 다이칸야마, 에비스...... 가이드북이나 여행기를 담은 책 속의 도쿄는 딱 이정도? 2008년이 되어서도... 그리고 도쿄에 관한 책들이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특별히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은 가뭄에 콩나듯 흔한 일이 아닌게 되버려서 솔직히... 실망이 컸었다. 도쿄의 다른 데는 없어? 좀 새로운 건 없니? 왠지 욕구불만까지 생긴다. 그러던 차에 보게된 이 책은 가뭄에 단비와도 같다. 새롭고...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고.. 살아본 사람많이 알 수 있는 일본의 정서가 조금이나마 담겨 있다. 비비천사... 그녀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자연스럽고 깜찍하고 귀엽고 흥미진진하고 새롭기에 책을 읽는 내내 나를 흥분 상태로 만들었다. 재미난 옛날 이야기에 안달난 꼬마 아이처럼...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에도... 더해주세요... 더해주세요... 하고 부탁하고 싶어질 정도였으니..

금세 읽을 줄 알았던 책은 다 읽는 데만 이틀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도쿄 지도를 옆에 놓고 책에서 추천하는 곳의 지하철역을 하나하나 찾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지도로는 역부족이었다고나 할까? 결국 아직도 찾지 못한 역, 장소가 몇 남아 있을 정도다. 머릿속으로는 일정을 짜고 근처에는 어떤 숙박이 있을까.. 궁리하고 있다. 아무래도.. 제대로 바람든 것 같다. 이래서 이 책이 서점에서 여행기 코너에 있지 않고 가이드북 코너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책속에 마냥 여행에 대한 설레임과 부추김만이 있느냐... 그렇지 않다. 내용 중 저자의 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나를 숙연하게도 만든다.

‘ 일본 사람들은 친구라 해서 많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해야 하고 그래야 친구로 규정된다고 믿기 보다는, 개인의 시간과 공간에 철저한 울타리를 치고 서로의 울타리 너머로 반갑게 오가는 것이 친구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

‘ 요즘 빠져 있는 것은 한국 전통 자수와 바느질이다. 여기에 빠져 들게 된 데에는 지난 2년 반동안 했던 일본 생활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 좀 더 훌륭한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 더 깊은 문화적 경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

‘ 여행자의 시선과 체류자 혹은 생활인의 시선은 역시 다를 수 밖에 없다 ’ 는 그녀의 말에 공감한다. 그래서 도쿄에 대해서만큼은 나도 생활인의 시선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왠지 나의 생각과 비슷한 걸 말하는 저자에게 많이 공감했다. 그리고 나도 무작정 그냥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뭔가 생각을 가지고 깊이 있는 자세로 일본을 대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그나저나... 5월에 도쿄에 갈때는 이 책을 꼭 가지고 가서 책에 소개된 많은 곳을 직접 눈으로 볼 생각이다. 과연 도쿄는 또 어떻게 나에게 다가와 어떤 인상을 남길지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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