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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동안의 과부 1
존 어빙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책의 내용과는 상관이 없을 수도 있지만,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면 쓸수록 이상하게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다. (서평을 쓴다는 것이) 우선은 서평이라는 것을 쓸 때 내 마음 안에서 특별하게 기준을 세우고 있지 않다는게 큰 문제이기도 하고, 지금까지는 그저 막연하게만 서평에 대해 생각해 왔다는 것도 역시 그러했다. 그러다가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생각이 세상살이에 어떤 기준이 없는 것처럼 서평을 쓰는 것 또한 어떤 기준이 없이 그저 마음가는대로.. 느끼는 그대로 쓰면 되는 것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쓰고자 하는 서평은 글을 읽고 난 후 내 안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적어보는 것.. 그 정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드디어 나만의 기준이라는 것을 만들어 본 것인가..)
그렇게 나만의 기준을 세운 뒤 새로운 기분으로 책을 읽고 써보는 서평인데... 솔직히 만만치 않은 적을 만나 당혹스런 기분으로 시작된다. 지금까지 나는 도대체 어떤 책을 읽어 온 걸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이 책- [일 년 동안의 과부]는 뭐랄까... 단호한 단정을 할 수 없는.. 어디로 튈지 모르겠는 펄떡이는 생선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까 나의 범위 안에서는 모든 걸 파악하고 수비할 수 없을 것 같은, 허를 찌르는 그런 상대라고나 할까? 그러면서도 나는 그런 상대에게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다. 오랜만에, 당혹감, 책을 읽는 즐거움, 지루함, 앞으로의 전개가 궁금해 미칠 것 같은 감정 등... 오만가지 감정이 들게 하는 독특한 상대를 나는 만난 것이다.
대체 이 책은 뭐지?
이 책의 모든 것이 시작되었을 당시, 1958년에 루스 콜은 네 살, 에디 오헤어는 열 여섯 살, 매리언 콜은 서른 아홉 살, 그리고 테드 콜은... 뭐 알고 싶지 않은 나이였다. 콜 부부에게는 두 명의 아들(티모시, 토마스)이 있었는데, 안타까운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그 일은 둘 중 매리언에게 큰 상처를 주어 그녀를 시름에 잠기게 만들었다. 그녀는 또 다른 아이를 낳는 것으로 그 슬픔을 이겨보려고 했지만, 그녀의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그렇게 태어난 루스에게 매리언은 사랑을 줄 수 없었다. 이런 콜 가족에게 테드 콜의 조수로서 에디 오헤어가 나타난다. 어디까지나 테드의 계획 아래 이루어진 이 일은 결국 모든 가족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게 무엇인지는 책을 통해 확인하시길)
네 명의 인물이 중심이 되어 끌고 가는 이야기는 어처구니 없는 웃음을 안겨주기도 하고, 허를 찌르는 감동을 주기도 하며, 이를 바득바득 갈게 하는 에피소드를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무조건 테드가 싫다)
드디어 1권이 끝났는데...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이런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작가는 나에게 루스 콜의 이런 대답도 들려 주었다. 아마 내가 ‘이 책은 뭐지?’ 하고 궁금해 하는걸 알아차린 듯 하다.
“ 보세요.. 그건 단지 소설이에요. ”
“ 다른 무엇에 ‘관한’ 소설이 아닙니다. 그냥 좋은 이야기죠... ”
그 좋은 이야기는 다음 2권에도 이어진다. 어떤 이야기들이 가득 차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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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을 보는 순간 떠오른 생각은
“ 아! 1권보다 훨씬 얇구나! ” 라는 안도감 섞인 그것이었다.
책이 너무 지루해서 라기보다는 책 안에 담겨 있는 오만가지 감정에 휘둘릴 생각을 하니 조금 아득해져서 그런 것이다.
2권은 아직 1990년이다. 1990년의 이야기가 한동안 진행된 후, 1995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1권을 읽으면서도 생각했지만, 이 책은 왠지 앞으로 작가가 되고픈 사람에게 어떤 지침이 될 수도 있는 책이다라고 느껴진다. 우선 주인공 네 명의 직업이 모두 작가이다. 네 명의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또한 그들의 작품의 내용도 이야기해준다. 1990년 서른 여섯 살이 된 루스 콜은 < 불긋푸릇한 에어 매트리스> < 아이들에게는 안돼 > < 사이공 함락 전에 > <나의 마지막 나쁜 남자 친구> 라는 작품을, 테드 콜은 < 벽 사이로 기어다니는 쥐 > < 마룻바닥의 문> < 누가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소리> 라는 작품을, 에디 오헤어는 < 예순번 > <커피와 도넛 > 등의 작품을 지었고, 매리언의 경우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소개를 접어둔다. 다른 작품들이 주로 내용 위주로 소개가 된다면 루스 콜의 작품 < 나의 마지막 나쁜 남자 친구 >의 경우는 작가가 어떻게 소설을 구상하고, 그것을 위해 조사하고, 이야기를 고치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일련의 과정을 하나하나 보여준다. 가끔 이렇게 어떤 팁과 같은 말도 살짝 살짝 남겨주고...
“ 소설은 논쟁이 아니다. 이야기는 그 나름의 장점에 따라 통하거나 통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세부 묘사가 실제처럼 보이는지 여부이며 그것이 소설적 상황에 적합한 가장 훌륭한 세부묘사인지 여부이다. ” (P80)
하지만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사람이라면... 마음 단단히 먹고 이 책을 봐야 할 듯 싶다. 이 책을 뛰어넘는 작품을 쓰려면 말이다. 작가는 정말 나를 가지고 놀았다. 이야기가 지루해질 때쯤이면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 하나씩을 펑펑 터트려 주고, 한 사람을 지독하게 미워하게도 했다가, 당황스럽게도 하고, 그러다가 갑자기 눈물이 고일만큼 감동을 주기도 한다. 그렇게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막아버리는 것이다. 도대체 이러다 어떻게 마무리를 할까 궁금했는데, 그 이상 좋은 마무리가 없을... 그런 결론을 내려버리고..
하여튼... 이 책을 다 읽은 나는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이런 망할 소설같으니라구!
이 책은 물론 작가들을 위한 책이 아니다. 소설은 이렇게 쓰세요~하는 교본도 아니다. 책에는 인생이 있고, 사랑이 있다. 과장되지 않은 삶이 있는 것이다. 과거의 것들은 미래의 것과 하나하나 들어맞는다. 시간이 지나 미래에 어떤 일을 보면서 ‘ 아’ 하는 탄성을 지르게 될지도 모른다. 작가는 그 어떤 것도 허투루 넘어가지 않는다. 모든 것은 작가의 계획대로 착착 맞아 떨어진다. 그 절묘함에 얼마나 감탄을 했던가..
“ 그건 단지 소설이에요... 그냥 좋은 이야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하다니.. 얄밉다.
이건 그냥 좋은 이야기가 아니잖아! 이 사람아!
적어도 나에겐 이건 ‘그냥 좋은 이야기’ 정도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당신에게도 그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