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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흉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그 여자는 이름이 없다. 그녀의 과거도 모른다. 외국인이라며 말도 없앴다. 그저 그녀의 모습은 묘사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 이 녀석인가...... 준야는 숨을 멈췄다. 갈색 피부, 표범같이 예리한 눈, 야성적이며 또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멋진 근육에 감싸인 장신. 그는 순간 이 적을 아름답다고 느꼈다. ” P 198
제목의 <아름다운 흉기>는 그녀의 또다른 표현일 뿐이다.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그 여자는 제목처럼 흉기일 뿐이었다. 복수의 화신일 뿐이었고, 그저 괴물이라고만 느껴졌다.
작가는 친절하지 않다. 그녀에 대한 많은 걸 알려주지 않는데다가 왜 그녀가 복수를 해야만 하는지, 그리고 마지막에 그녀가 머뭇거리는 이유도 알려주지 않는다. 독자는 그저 모든 걸 자신의 생각으로 알아내야 하고,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고 움직여야하는 열차처럼 이야기는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다. 가장 불친절한 것은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그걸 믿을 수가 없게 만드는 엔딩이란 생각이다.
요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꾸준히 읽고 있다.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시작해서 <비밀> <방과후> <게임의 이름은 유괴> <호숫가 살인사건> <레몬> <11문자 살인사건> <탐정 갈릴레오> <회랑정 살인사건>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까지... 하지만 첫 작품이었던 <용의자 X의 헌신>을 뛰어넘는 작품은 아직까지 없었다. 또한 그 책만큼 깔끔한 마무리를 가진 작품 또한 없었다. 다른 여타의 책들이 내게 보여준, 좋게 말해서 열린 결말이고, 어찌보면 어색한 마무리라고도 느껴지게 만드는 엔딩은 언제나 나에게 뭔가 숙제를 남겨주는 것 같은 찜찜한(?) 감정을 남겼다. ( 그러니까.. 아... 이제 끝났다... 하고 홀가분하고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자, 근데 숙제가 있어... 하며 뭔가를 던져주는 기분이라 설명하면 될까? )
<아름다운 흉기> 또한 그랬다. 처음부터 그 여자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센도의 계략이었을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지만 그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숙명과도 같은 쇠사슬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했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의지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쇠사슬이 마지막에 툭 끊겨버려 그녀를 혼란으로 몰아갔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녀가 어쩌면 의문을 가졌을 수도 있다. 나는 왜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거지? 하면서. 작가는 독자를 그 여자가 되게도 했다가,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이 되게도, 쫓기는 네 명의 살인범이 되게도 한다. 하지만 유독 그녀의 입장일 때 더 객관적이 되어버리고 그저 사건이 일어난 대로만 설명해주며 쌀쌀맞게 군다. 그녀의 입도 닫아버리고, 알려주는 것은 없고... 그래서 더 그녀의 존재는, 그녀의 입장은, 그녀의 생각은 내게 숙제처럼 남아버렸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책들처럼 숨가쁘게 읽었다. 한번 손에 잡으니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처럼, 나역시 그러했으니까.
반전에 반전을 보면서, 마지막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도, 사건이 끝났어도 나는 그 여자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 이렇게 온통 그녀 얘기만 늘어놓고 있다. 그녀는 정말 그렇게 끝이 난걸까? 어쩌면 그녀에게 사로잡혀 버린 내가 이야기를 끝내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안타까운 마지막이 너무 애처로웠는지도 모르겠고.
그 여자는 <아름다운 흉기>가 아니었다. 괴물도, 복수의 화신도 아니었다. 단지 세상이 그렇게 불렀을 뿐이고,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없는 흉칙한 괴물들이 그렇게 규정했을 뿐이다.
‘여자’이고 싶었을 그녀를 과연 비난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