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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 (보급판 문고본)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일본, 특히 도쿄를 좋아하지만... 가끔 문학 작품 속에 흐르는 묘한 일본의 정서는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 그저 유명한 대중 소설이라고.. 무리없이 평범한 사람들이 읽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던 작품 속에서 변태스런 성, 살인, 강도, 이지메 등등의 소스라칠 상황을 정말 아무렇지 않게 묘사한 일련의 글을 읽었을 때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그 느낌을 이 책 <퍼레이드>를 읽으며 다시 한번 느꼈다. 어째 된통 당한 느낌이다. 내게는 ‘일상성의 작가’ 인 그인데... 그리고 평범한 듯, 아닌 듯한 사람, 상황의 묘사가 참 잔잔한 사람이었는데.. 조금 특이한 사람들의 일상 속 마지막에 아무렇지 않게 숨겨둔 그것(?)을 발견하곤 나는 정말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설마... 이게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 맞아?
그 곳.. 401호에는 두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가 함께 살고 있다.
스기모토 요스케(남) 선배의 여자를 짝사랑하는 대학생. 미워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가졌다.
오코우치 코토미(여) 인기 배우 ‘ 마루야마 토모히코’와 열애중.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의 전화만 목하 기다리는 중
소우마 미라이(여) 음주 후 기억 상실.. 그래도 끝까지 마시는 파.
이하라 나오키(남) 독립 영화사에 근무하는 영화광. 어찌어찌 하다보니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어주는 역할
그리고 여기에 우연히 끼어들게 되는 - 미라이가 술을 먹고 공원에서 데려왔다고 하는데.. - 18세, 자칭 밤일에 종사하신다는 고쿠보 사토루가 있다. 네 명의 주인공이 번갈아가면서 1인칭 시선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소설은 전개된다. 여기까지는 왠지 지난번에 읽은 < 캐러멜 팝콘 >과 비슷한 듯 싶다.
하지만 책장을 덮은 지금...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 다시 한번 생각해 봐라 ’ 가 아닐까 싶어진다. 네 옆에 있는 친구, 가족,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을 ‘ 다시 한번 생각해 봐라’. 이렇게. 지금 행복하다고? 지금 불행하다고? 정말 그런지 ‘ 다시 한번 생각해 봐라’ , 또 이렇게.
많은 대화를 나누고, 함께 희노애락을 겪어내고, 내 옆에서 나를 지켜내주고 있는 누군가도 어쩌면 나에게 말하지 않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당신이 바라보고, 평가해낸 누군가, 또는 어떤 상황이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라..
어쩐지 섬뜩하다. 어떤 내용일까? 어떤 따뜻한 마무리가 있을까? 하고 즐겁게 읽어 내리다가 헉! 하고 놀랐다. 배신감마저 느껴진다. ‘똑바로 봐... 세상은 믿을 수가 없어.. ’ 이렇게 말하는데, 믿을 수 없는 세상이지만, 내 옆의 누군가가 있어서 나를 지켜줘... 하고 얘기해줄거라 생각했던 작가에게 된통 당한거... 이거 맞는거지?
그래도 역시나 시간이 갈수록... 혹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세히는 말하지 못하겠으나... 왠지 네 명이서 그를 감싼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보다 내 옆에 있는 그 사람이 그들에겐 더 중요할테니... 이런건 어떤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여하튼 나 역시 조심해야겠다. 그냥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쓰는 작가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생각을 바꿔야 하니까.. 요시다 슈이치의 다음 작품을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