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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야
김윤 지음 / 예담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고등학교 때 국사 시간에 백제, 고구려, 신라와 함께 6개의 나라가 합쳐진 ‘가야연맹체’ 라는 국가가 있음을 배운게 생각이 난다. 금관가야, 대가야, 아라가야... 그리고는 잘 모르겠지만, 예술을 숭상하는 나라여서 머나먼 왜국에 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기억된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도 잊혀져버린 나라..
분명 존재했던 나라였지만 지금의 우리는 기억하는데 너무 인색한 것은 아닌가 반성해본다.
은야(恩倻). ‘가야의 은혜’라는 의미를 지닌 여자의 이름이다. 그녀의 일생을 담은 동명의 소설은 바로 ‘대가야’를 배경으로 한다. 대가야, 금관가야, 신라의 진흥왕, 백제의 성왕...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었던 나라와 인물들이 소설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나 사랑을 하고, 예술을 즐기며, 정복하고, 정복당한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머나먼 옛날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고, 널리 알리려 하는 시절은 아니겠지만, 그래서 더 흥미로웠고, 더 애틋했다.
이야기는 대가야의 지리적 위치와 역사적 위치를 설명하면서 시작을 한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 태어나 ‘하늘에서 내린 예인’이라 칭송받는 우륵이 등장한다. 우륵은 하늘이 내린 솜씨를 가졌으나, 나라를 염려하는 마음이 깊어,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는 것을 주저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 나라꼴은 엉망인데 젊은 사람이 악기나 뚱땅거리며 세월을 보내는 것이 견디기 힘들어서였다. 그런 내 앞에 현인이 나타나 모든 속세의 가치를 뛰어넘는 예술의 숭고한 의미와 하늘이 부여한 나의 소임을 일깨워 주었지. ’ (p186)
후일 자신의 제자가 된 은야에게 한 우륵의 말은 그의 심정을, 상황을 모두 대변하는 말이 될 것이다. 그 고뇌가 깊고 깊어 우륵은 가르침을 얻으려 길을 나서게 된다.
한 여인이 있다. 슬픈 눈망울을 지닌 그 여인은 우륵의 도움으로 노선 선생의 제자가 될 수 있었고, 그를 마음에 품었다가 그의 아이를 갖게도 된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가 은야이다. 하지만 자신을 욕보이려는 남자들에게서 도망치다 죽음을 당하게 되고, 은야는 때마침 그 길을 지나던 월부인에게 구출이 되어 그녀의 양녀가 된다.
자신의 아이가 태어난 것도 모르고 우륵은 오랜 수행을 마치고 대가야에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을 기념하는 연회에서 우륵은 은야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녀도 우륵처럼 가야금에 있어서는 하늘이 내린 솜씨를 타고 나 그저 듣기만 하고도 그 음을 가야금으로 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야금을 두고, 부녀 관계라는 것을 모르는 우륵와 은야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예술을 지켜가는 것을 선택하고, 예술이 영원해 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우륵과 은야의 모습은, 신라와 백제와 고구려가 호시탐탐 노리며 침략을 감행하는 그 중간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대가야의 모습처럼 위태롭기만 하다.
‘정치와 군사와 통치 제도가 그 어떤 모습을 갖더라고...... 예술은 영원하다’ (p82)
우륵과 은야가 가지고 있던 예술에 대한 생각은, 문득 전에 읽었던 가야금의 명인 황병기 선생님의 책을 생각나게 했다. 하나에 빠지고 그것을 지켜나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 느낌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왠지 하늘이 선택한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자신의 재능을 널리 알리려 하는 사람의 의미를 알겠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묵묵히 이겨나가고, 살아나가는 사람은 왠지 존경스럽기까지 해진다.
예술이 영원한 것은 그렇게 선택받은 사람들이 있고, 아니면 선택받지 못했더라도 예술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 있어 그 마음을 나누어 가지면서 후대로 후대로 전할 수 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륵이 있고, 그의 가르침을 받은 은야가 있고, 또 다시 은진이에게로...
그런 사람들 때문에 ‘예술의 영원’은 가능해졌다.
약한 나라에서 태어나서 안타까운 사랑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가야금에 대한 열정으로 그 시절을 버티고 살아갔던 두 사람, 우륵과 은야의 일생을 지켜보는 것은 즐겁기도 하지만,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해줘서 뜻깊기도 했던 시간이었다.
조선이나 고구려, 고려와 같은 나라만큼 텔레비전이나 소설 등의 매체에서는 자주 찾지 않는 나라, 대가야의 모습을 살짝 엿본 것 또한 그러하였다. 오랜 기억 속에 묻혀 있던 나라를 떠올려 보는 것이 즐겁기도 했다. 앞으로도 우리의 역사를, 예술인의 열정을 이렇게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