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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의 레시피 - 한여름의 프로방스, 사랑이 있어도 나는 늘 외로운 여행자였다
김순애 지음, 강미경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처음에는 무서우리만큼 침착한 어투에 지레 겁을 먹고 책을 덮어버렸다.
밑바닥까지 훑어 버릴 것만 같은 진중함, 우울에 가까운 차가움… 책은 그렇게 다가왔다.
이봐, 지금은 내가 너에게 읽히고 싶지 않아, 저리 가라구!
왠지 책이 나를 밀어내는 듯한 기분이 느껴진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갔다. 가끔 책장에 꽂힌 책에 눈길을 보냈지만, 여전히 새초롬한 모습에 그냥 고개를 돌려버렸다.
책이 다가온 것은 그로부터 또 며칠이 지나서였다.
이젠 나를 읽어도 돼.
허락을 받고 나서였을까? 무섭도록 빨리 책이 읽힌다. 책이 가진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레시피’라는 단어 때문에 요리와 여행에 관한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맛있는 요리를 떠올리면 우선 기분이 좋아진다. 요리가 가진 힘이 아닐까 싶은데, 요리법, 그 요리가 있는 도시 이야기를 들으며 마냥 행복해질 것 같다. 내가 지금 그 요리를 먹고 있는 것처럼, 깊은 포만감을 느끼고, 따스한 프로방스가 주는 아름다움에 푹 빠졌다 헤어나오면 되겠지 싶기도 했다.
음… <서른 살의 레시피>는 그냥 단순한 여행서, 혹은 요리책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김순애’라는 이름을 가진,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이 아닌, 그래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끊임없이 질문해야했던, 버려지기 싫지만 그렇다고 너무 깊이 들어와 자신을 흔들어 놓는 것이 싫어 독립적인 여성이 되고팠던 한 사람의 일생이 담긴 소설 같은 책이다.
이 책의 장르를 도대체 뭐라고 정의해야할까… 고민이 된다.
현실의 실명 이름이 그대로 사용되어 소설이라 하긴 뭐하지만,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소설처럼 읽어나가도 상관이 없겠다 싶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게 과연 어떻게 해야 좋은 건지 고민하게 만들 때가 있다. 그녀는 올리비에를 사랑하지만 그의 완벽한 속박을 견디지 못하고 떠난다. 그에게 다가오는 남자들은 유뷰남일 경우, 이혼을 약속하고 다가오지만, 결코 이혼하지 못하고, 결국은 그녀를 떠난다. 발과 사랑에 빠졌지만, 발에게는 기아나의 정글이 있다.
“ 힘들지만 난 미래를 보면 살고 싶어요. 과거가 아니라. 그게 내가 바라는 전부예요. “ (p481)
남녀 관계에서 타이밍은 가장 소중한 것이고 상황이 달랐다면 아마도 우리가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p529)
그나마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각각의 상황에 어울리는 추억이 담긴 요리 레시피들이 아닐까 싶다.
할아버지만의 특별한 레시피, 그녀를 힘나게 했던 요리의 레시피, 따스한 프로방스의 향이 날 것만 같은 레시피… 레시피들.
푹 빠져들어 읽긴 했지만 혼란스러운 그녀의 마음만은 받아들이기 거절하고 싶었던 책 <서른 살의 레시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