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타레즈 서클 1
로버트 러들럼 지음, 김양희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영화 역사상 최장기 시리즈이자 가장 성공한 첩보 영화가 바로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라고 하지만 요즈음에는 예전의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제임스 본드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소련의 KGB가 소련 붕괴와 함께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주적(主敵)인 KGB가 몰락하고 나니 서방 진영의 첩보기관 - 제임스 본드가 소속되어 있던 영국의 MI6, 미국 CIA 등 - 들도 무기력증에 빠졌는지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유명 정치인 사생활 조사와 같은 흥신소 역할을 하지 않나, 기껏해야 산업스파이 색출, 동남아·중남미 마약조직 소탕 - 실제로 지난 2005년에 영국 “로빈 쿡” 외무장관은 자국의 첩보기관인 MI6을 동남아를 무대로 활동 중 인 국제 마약 밀매조직들과 싸우는 최전선에 배치하겠다 "고 밝힌바 있었다고 한다 -에나 나서고, 테러와의 전쟁에서도 변변한 실적 하나 못 올리고 여전히 헛다리만 짚고 있는 퇴물 취급당한 지가 오래 되었다. 역시 실제이든 허구이든 “첩보(스파이)”물의 전성기는 선(서방진영)과 악(공산진영)의 구별을 뚜렷하게 할 수 있었던 “철(鐵)의 장막(iron curtain)”이라고 불리던 소련을 위시한 공산진영이 건재했던 “냉전(冷戰, Cold-War)"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그런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근사한 첩보 소설을 만났다. 바로 007 시리즈 이후 최고의 첩보 스릴러 영화 시리즈로 평가받고 있다는 “맷 데이먼” 주연의 <본 시리즈>의 작가로 알려진 “로버트 러들럼(Robert Ludlum)의 <마타레즈 서클(원제 The Mataresse Circle / 노블마인 / 2011년 11월)>이 바로 그 작품이다.

 

미국과 소련이 패권을 다투던 냉전시대의 어느 해 크리스마스 이브, 미국의 합동참모본부의장인 “앤서니 블랙번” 장군이 뉴욕 도심가 비밀 사창가 저택에서 킬러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대책 회의에 나선 미국 대통령과 CIA 국장, 국무장관은 KGB의 소행으로 의심하지만 "적색 전화(핫라인)“으로 긴급히 연락해 온 소련 수상은 자신들의 연관성을 극구 부인한다. 얼마 후 소련 최고의 핵물리학자인 “유리예비치”가 휴가 중에 역시 암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역시나 미국 대통령이 즉시 소련 수상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들은 관여하지 않았음을 밝힌다. 서로의 소행이 아니라고 하면 도대체 어떤 간 큰 국가가 세계를 양분하는 국가인 미국과 소련의 주요 인사를 암살하는 만행을 저질렀을까? 미 합참의장 살인 사건 제 일 용의자로 거론되기도 했던 소련 KGB 최고 요원 “바실리 바실로비치 탈레니예코프”는 죽어가는 옛 스승에게서 엄청난 비밀을 듣게 된다. 바로 현 소련 수상이 자신의 아들이라는 말과 함께 세계 곳곳에서 테러와 암살 - 미국 제 32대 대통령인 루스벨트의 죽음과 스탈린의 죽음도 이들의 짓이라고 한다 - 을 저지르는 비밀 단체 “마타레즈 서클”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이 지금 단순히 테러와 암살이 아니라 뭔가 거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막을 사람은 탈레니예코프와 서방 진영 최고의 첩보 요원이라 할 수 있는 “브랜던 스코필드” 밖에 없으니 둘이 손을 잡고 그들의 음모를 막으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탈레니예코프는 난감함을 느낀다. 스코필드가 누군가. 동베를린에서 근무할 당시 자신이 한때 사랑 했던 여인이 서방측 첩보원들에게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자 보복으로 자신의 킬러팀을 보내 스코필드의 아내를 죽이지 않았던가. 또한 스코필드도 보복으로 역시 탈레니예코프의 친동생을 죽여 버린, 둘의 관계는 그야말로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몇 몇 원로들에게 마타레즈 서클의 존재를 확인한 탈레니예코프는 원한 관계를 잠시 접고 스코필드와 손을 잡기로 하고 그에게 연락한다. 그런데 마타레즈 서클이 이를 알아챘는지 KGB를 조정해 그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한편 스코필드는 제거하라는 이중 스파이를 놓아주었다가 본부로 소환되고 은퇴를 종용 당한다. 그리고 그에게도 제거 명령이 내려지고 유럽의 킬러들이 그를 제거하기 위해 모이기 시작한다. 절대 절명의 위기를 넘기고 마침내 만난 미국과 소련 최고의 첩보원인 두 사람은 마타레즈 서클의 음모를 막기 위해 가슴 속 원한을 잠시 묻어두고 손을 잡게 된다. 마타레즈 서클이 태동했던 “코르시카 섬”에서부터 조사를 시작한 그들은 점점 더 음모의 실체에 다가서고 그럴수록 수차례의 위험한 죽음의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기지만 탈레니예코프는 그들에게 잡히고야 만다. 그를 구출하기 위해 마타레즈 서클 회합에 잠입한 스코필드는 마침내 “양치기 소년”으로 불리는 마타레즈 서클의 숨은 지배자를 만나게 되고, 미국과 소련을 지배하는 주요 인물들이 서클의 멤버였음을 알게 되고 경악한다. 과연 둘은 서클의 음모를 분쇄할 수 있을까? 서클과 두 첩보원과의 마지막 전투가 숨 가쁘게 전개된다.

 

대표적 첩보소설 작가인 “프레드릭 포사이드”, “이언 플레밍”, “톰 클랜시”의 몇 몇 작품은 읽어봤지만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못해서 첩보물은 역시 소설보다 영화가 더 낫다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 보니 처음 1, 2권 800 여 페이지가 넘고 작은 글씨로 빽빽한 책을 받아 들고서는 이 책 언제 다 읽나 싶어 난감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책 첫 도입부부터 미소 양국의 중요 인물의 암살과 최고의 첩보원의 만남이라는 시선을 확 끄는 설정을 배치하여 흥미와 기대를 절로 불러일으켜 난감함은 어느새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리고 책에 금세 몰입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었던 장면이라 할 수 있는 두 남자의 만남 장면 - 마치 액션 영화의 한 장면을 절로 연상케 할 정도로 스펙터클하다. 세세한 소개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생략한다^^ - 에서의 액션은 긴장감과 스릴을 최고조로 이끌어 절로 손에 땀을 쥐게 하고 호흡이 가빠지게 만들어 책장 넘기는 속도를 점점 빨라지게 하지만 중반 부분에서 음모를 밝혀내는 과정에서는 너무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어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 않기도 했다. 이 부분은 작가가 한때 ‘전직 CIA 요원’이라는 소문이 돌았을 정도로 첩보원들의 세계를 현실감 있고 개연성 있게 그려내기로 유명했다고 하니 장점이 될 수 도 있지만 빠른 이야기 전개를 즐겨하는 독자들이라면 꽤나 답답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법도 한데, 그런 대목들은 살짝 살짝 스킵(SKIP)하면서 읽어서 그런지 나에게는 그다지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야기가 전개될 수 록 점점 거대한 음모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는 첩보 소설 특유의 전개 때문인지 결론이 궁금해서라도 도저히 책에서 쉽게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드는데, 마침내 결말에 이르러 마타레즈 서클과의 최후의 싸움을 벌이는 장면에서 다시 한번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리고 통쾌하고 화려하게 마무리한다. 마치 장편의 서사시(敍事詩) 한 편을 읽은 느낌이라고 할까? 서로 원수인 최고의 첩보원 두 남자가 협력해서 세계 질서를 위협하는 비밀단체와 맞선다는 기발하고 흥미로운 설정과 이야기 전개 - 지금이야 이런 설정들을 흔하게 만날 수 있어 식상함마저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 책의 출간년도가 30년도 훨씬 전인 1979년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고인이 된 작가가 괜히 억울하게 느낄 법도 한 놀랍고 신선한 설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사실감 넘치는 첩보 세계의 묘사, 긴장과 스릴을 자유자재로 변주해내는 글솜씨 등 첩보 소설의 장점들을 모아놓은 이 책 만 읽어봐도 “로버트 러들럼”이 왜 “첩보 소설의 거장”이라고 평가 받는지 여실히 증명해주는 그런 책이라 하겠다. 첩보 소설의 재미를 맛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유하고 싶을 정도로 참 재미있는 책이었다.

 

끝으로 사족 하나 붙여본다. 이 책 소개글을 보면 “톰 크루즈”와 “덴젤 워싱턴”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는데, 개인적으로는 우선 두 배우와 이 책의 두 주인공의 이미지가 쉽게 매칭이 되지 않고 현실에 맞춰 미국과 러시아로 설정해 각색을 한다면 냉전시대의 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어정쩡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 다소 우려가 된다. 차라리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냉전의 긴장감이 살아있는 한반도를 배경으로 하면 어떨까 생각해봤는데 이런이런 이미 이와 비슷한 구도인 드라마인 <아이리스>가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마타레즈 서클과 비슷한 비밀 단체 “아이리스”도 그렇고 남북한 첩보원들이 연합해서 아이리스의 음모를 막아내는 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 면에서 유사한 점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드라마 <아이리스>가 이 책을 모티브로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어쩌면 그만큼 이 책의 설정이 지금은 흔히 만나볼 수 있을 정도로 후대의 첩보물 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그런 작품이라는 방증일 수 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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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1. 고구레 사진관 (미야베 미유키 / 네오픽션 / 2011-11-29)

 

일본 추리소설계의 거장 "미야베 미유키" 여사(약칭으로 미미 여사 라고들 부릅니다^^)가 책 표지에 "신인 미야베 미유키"라는 홍보문구로 출간했다는 작품입니다. 그동안 어느 매체에서도 발표된 적 없는 전작 장편소설이었고, 기존의 미야베 미유키 작품 세계와 확고하게 다른 세계관을 선보였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데뷔한지 20년이 넘은 중견 작가가 그동안의 작품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선보인다는 것이 위험스럽기까지 한 일일텐데 2010년 서점 직원들이 뽑은 가장 재미있으며 추천해주고 싶은 책 1위에 올랐다고 하니 그 시도가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동안 미미 여사의 참 많은 책들이 출간되면서 실망스러운 작품들도 많았는데 이 작품이 그런 실망스러움을 한번에 날려줄 멋진 책으로 기대가 되어 신청해봅니다. 알라딘 신간 평가단 사상 2권 분량의 책은 선정이 되지 않았는데 이번만큼은 그런 징크스(?)를 꼭 깨길 바랍니다^^  

 

2. 고구레 빌라 연애 소동 (미우라 시온/은행나무 / 2011-11-17

 

묘하게도 1번으로 추천한 미미 여사 책이나 이 책이나 제목에 모두 "고구레"라는 말이 들어가는 공통점이 있네요^^ 알라딘 소개글을 보니 70대 노인이 주인으로 있는 허름한 목조 빌라를 주 무대로, 그곳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과 그 주변 인물들의 사랑과 성(性)을 테마로 한 일곱 가지 에피소드가 엮인 연작 소설집이라고 합니다. 노인의 성을 다룬다니 조금은 불손하고 조금은 기발하면서도 독특한 소설이 될 것 같아 기대가 되는 작품이네요.  

 

3. 활자잔혹극(루스 랜들/ 북스피어 / 2011-11-25) 

 

작가인 루스 렌들, 영국 미스터리 소설계에서 거장의 대접을 받는 작가라고 하는데 저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네요. 예전에 국내에 <유니스의 비밀>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가 이번에 새롭게 번역해서 나왔다고 합니다. 주인공이 문맹이라는 설정과 문맹이기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다는 설정이 꽤나 독특하고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11월 신간 목록 검색해보니 추리소설들이 참 많이 보이는데 이제 추리소설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읽는 인기있는 장르가 된 것 같습니다^^ 

 

이번 달에도 작품성 따지지 않고 사심(私心) 가득한 소설들 추천해봅니다^^ 2012년 1월에 만나게 될 저 책 - 물론 선정된다는 보장은 하나도 없지만^^ - 때문에 내년 1월도 가슴 설레이는 재미와 행복을 맛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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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1
허영만 지음 / 월드김영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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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난 2003년 1권이 출간된 이래로 9년여 동안 우리의 눈과 입을 즐겁게 고문(?)했던 허영만 화백의 <식객(食客)>이 2010년 5월 27권 <팔도 냉면 여행기>를 끝으로 아쉽게 막을 내렸다. 최근에 출간된 이야기들을 지역별로 묶은 일종의 “베스트 컬렉션(Best Collection)"인 <식객, 팔도를 간다> 편이 출간되고 있지만 아무래도 한번쯤 읽어봤던 이야기들인지라 새로운 즐거움은 없었다. 그런데 그가 드디어 1년 여 만에 새로운 만화 시리즈를 선보였다. 포털 사이트 다음(Daum) 웹툰 <만화 속 세상>에 연재 중인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가 바로 그 작품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광활한 영토를 점령했던 몽골의 영웅 “칭기즈 칸”을 그린 역사(歷史) 만화인데, 허 화백 작품 중에서 역사 만화라면 <각시탈(1974)>이나 <쇠퉁소(1982)> 정도이고 그것도 근세인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라 900 여 년 전의 중세 시대, 그것도 우리나라가 아닌 몽골을 배경으로 한 역사 만화라니 의외로 느껴졌다. 연재 소식은 들어 알고 있어서 한 두 편 읽어본 적이 있긴 하지만, 온라인보다는 종이책을 선호하는지라 제대로 챙겨보지 않았는데, 이번에 단행본으로 엮어 나온 시리즈 1권인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1(월드김영사/2011년 11월)>으로 만나보게 되었다. 아직 첫 권이라 좀 더 후속권들을 읽어봐야겠지만 이 작품도 <식객> 못지않게 인기를 끌 것 같다는 예감이 들게 하는 그런 작품이었다.

시리즈의 도입부라 할 수 있는 1권에는 키야트보르지간 부족의 수장이었던 “예수게이”의 아들이자 이 책의 주인공인 “테무진”의 이름이 그가 태어나던 날 마침 부족을 쳐들어왔다가 포로가 된 적대 부족인 타타르 족의 장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었다는 이야기, 테무진이 10살이 되던 해, 예수게이가 테무진의 혼인을 위해 이웃 부족을 방문하고 돌아오던 길에 타타르 족 암살자들에게 그만 죽임을 당하자 몽골의 전통인 형사취수(兄死娶嫂)를 거부한 탓에 몽골 부족에서 쫓겨나 초원을 떠돌게 된 테무진과 가족들, 테무진의 약혼자인 “부르테”의 부탁으로 위기에 빠진 테무진을 돕기 위해 나선 자다란 족 수장의 아들 “자무카”와의 만남이 차례대로 그려진다. 

“칭기스 칸” 이야기는 개인적으로는 위인전(偉人傳) - 물론 몽골에게는 “위인(偉人)”이겠지만 이웃 국가들에게는 “원수(怨讐)”였을 것이다 - 으로, 소설로, 드라마와 영화로 여러 번 만나본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익숙한 이야기이다. 이처럼 익숙한 소재를 허 화백이 새삼스럽게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출판사 소개글을 보니 “칭기스 칸은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묘한 매력이 있는 인물”이며 “냉정한 전략전술가로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 탁월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를 무서워했고 겁도 많았다. 대제국의 통치자이면서도 무척 인간적”이었고 “만화가로서 이렇게 재미있는 소재를 놓칠 수 없었다. 칭기스 칸은 내 만화 인생에서 반드시 그리고 싶었던 작품”이라고 포부를 밝혔다고 한다. 뿔뿔이 흩어져 한번도 제대로 통일을 이루지 못했던 몽골의 부족들을 통일하고 아시아와 유럽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칭기스 칸의 “영웅적” 업적보다도 그 업적에 가려져 있던 인간적인 면이 바로 허 화백의 창작욕을 자극한 셈이다. 그리고 이번 기획이 그저 <식객> 연재를 완료하고 후속작으로 급히 기획된 그런 작품이 아니라 첫 구상에서 본격적인 취재까지 10여 년이 걸릴 정도로 장기 프로젝트였다니 작품에 쏟아 부은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미뤄 짐작케 해준다. 그림 또한 선이 거칠지 않고 명료한 만화선(漫畵線)과 웹툰 특유의 컬러풀한 색채, 그리고 시원스러운 몽골의 초원 풍경들 덕분에 이미지가 뚜렷하게 각인되는 효과를 느껴볼 수 있었다. 스펙타클한 스토리 라인과 그 이야기를 올곧이 살려낸 뛰어난 작화(作畵)의 시각적 효과가 제대로 어우러져 우리 만화계에 또 다른 걸작의 탄생을 알리는 작품이라고 평가해도 좋을 듯 하다. 

예순을 훌쩍 넘겨 이제 “노화백(老畵伯)”의 반열에 들었음에도 아직도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허영만 화백의 열정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나에게는 이 시리즈도 <식객> 못지 않게 계속 찾아보게 될 그런 만화가 될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든다. “정복자” 칭기스 칸이 아닌 “인간” 칭기스 칸이 그의 손끝에서 멋지게 부활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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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를 팝니다 - 대한민국 보수 몰락 시나리오
김용민 지음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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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정치 시사 분야에서 단연 화제가 되고 있는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인 “나는 꼼수다” 의 PD이자 시사평론가인 “김용민” - “나꼼수”에서는 “목사 아들 돼지”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 씨가 우리나라 보수의 정체를 폭로(?)하는 책을 출간했다. 바로 <보수를 팝니다; 대한민국 보수 몰락 시나리오(퍼플카우/2011년 11월)>이 바로 그 책 인데 최근 “나꼼수” 방송을 들어보면 출간한지 채 한 달도 안 되어 “5쇄” - 그의 다른 책들의 인쇄수와 합쳐서 욕설로 승화(?)시킨다 - 를 했다니 꽤나 인기가 있는 것 같다. “보수”라는 민감한 정치적 주제를 “나꼼수” 방송처럼 그들만의 방식으로 유쾌하고 즐겁게, 그러면서도 촌철살인의 핵심을 정확히 집어낼 것이라는 기대가 절로 들게 하는 이 책, 다 읽고 나니 “나꼼수”만큼 낄낄 거리며 웃게 만드는 그런 책은 아니었지만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책이었다.

사실 이 책의 저자이자 시사평론가인 “김용민”씨를 알게 된 것은 “나꼼수”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분 책 첫머리에서 자신이 보수에서 전향했다며 자신의 이력을 먼저 털어놓는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조선일보 라인업 신문을 정치적 스승으로 배워온 그는 한때 PC 통신 “청와대 한마당” 게시판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글을 올려 논쟁에 가담했을 정도로 “청년 보수”로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이런 보수의 자양분을 먹고 산 덕에 극동방송 PD에 입사했지만 여의도 순복음 교회 조용기 목사 비판글을 썼다가 쫓겨나고 몇 달 후 CTS 기독교 TV PD로 입사했지만 노동조합에 가입했다가 구조조정 당하면서 ‘그들(보수)은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보수에 대한 환상을 드디어 깨뜨리고 진보에 전향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진보논객의 총아로 떠올랐다가 지금은 수구 논객의 대표 주자가 되어버린 “누구”하고는 정 반대인 셈이다.

제목인 “보수를 팝니다”는 무슨 의미일까? 하나는 물건을 사고 팔듯이 보수를 파는 것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한국의 현대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고, 지금도 가장 잘 팔리고 있는 히트상품인 “보수”, 돈과 기득권을 가진 이들은 오랫동안 그것도 성공적으로 팔아 왔으며 이들은 보수를 팔아 자신들의 이익을 챙겼지만 정작 보수의 진정한 가치나 철학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이제 경제학자와 같은 눈으로 이들의 세일즈 전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파들어 간다"는 의미라고 한다. 생물학자처럼 보수를 여러 가지 종류로 분류하여 각각의 종이 어떤 먹이사슬과 공생 관계를 이루고 있는 지 따져봐야 한다. 즉 보수를 경제학적, 생물학적 관점에서 샅샅이 분석하고 파헤쳐보자는 그런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보수에는 어떤 종(種)이 있을까? 작가는 부 집안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보수가 되어버린 “모태 보수”와 보수의 반대편에서 활동했거나 또는 기득권인 보수에 편입되기를 열망해온 사람들인 “기회주의자 보수”, 자신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데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무지몽매 보수”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 보수 위의 보수인 “자본가 보수”가 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들 재벌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바로 그들인데 이들은 보수 뿐만 아니라 진보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특별히 더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보수들을 이어주는 커넥션이자 사상적 근간이 되는 것이 바로 수구 언론인 “조중동”이며 또한 보수를 위해서라면 하나님을 팔아먹는 모 종교 세력도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보수에는 여러 다양한 스펙트럼의 세력들이 있는데, 이들에게는 진보처럼 “당위성”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에 의해 뭉쳐진 그런 세력인 것이다.

선거에서 종종 상위 기득권층의 대변하는 보수를 찍는 서민들의 행태가 영 이해가 가지 않았었는데 작가는 서민들이 보수를 찍는 이유가 김대중 노무현 정권들과 진보 세력들이 서민층을 충성도 높은 정치적 기반으로 확보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부유세 문제를 보면 그 뜻은 부자들에게 많은 세금을 걷어서 이를 서민 복지에 쓰자는 것이지만, 부자건 서민이건 누구도 세금을 더 내라고 하면 순순이 받아들일 사람은 없으며, 이처럼 세금에 대한 반발 심리는 조건반사에 가깝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너희들은 결국 우리들에게 빌어먹는 존재"라는 자본가들의 논리에 영향 받은 측면도 있다고 말한다. 고용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고 실직이 곧바로 생계 위협으로 내몰리면 서민들은 권력이 자본가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살아남기 위해서 자본가의 논리를 충실하게 따라다닐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진보를 하면 서민들도 잘 먹고 잘산다는 것이 상식으로 여겨질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끈질긴 설득과 타협의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이처럼 보수의 정체와 그 대처법, 그리고 2012년 스스로 몰락하게 될 이유를 설명하고 "나가는 글(Outto)"에서 당당하게 싸우고 유쾌하게 웃자고 말한다. 표정이 비장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가 속으로는 더 겁을 먹고 있다는 증거이며 보수와 진보가 서로 경쟁하듯이 더 심각하고 더 험악한 구호를 외치면 가지고 있는 돈과 권력을 비롯해서 써먹을 수 있는 무기가 많은 보수가 유리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상대가 내일 세상이 끝장이라도 날 것처럼 험악하게 주먹을 휘두르는 데 이쪽에서는 여유 있게 껄껄 웃고 있다면 심지어 주먹 한방을 맞고서도 피식 하고 웃는다면 상대의 공포심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어진다고 말한다. 그러면 상대방(보수)은 그 공포를 이기기 위해서 더욱 주먹을 휘둘러 대겠지만, 그런 주먹은 헛방이 많고 촛점이 없어 제풀에 지쳐버리지만 이쪽(진보)은 유쾌하고 즐겁기 때문에 에너지가 오히려 계속해서 솟아난다는 것이다. 작가는 <나는 꼼수다>를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주는 이유가 바로 즐겁고 유쾌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만약 같은 내용을 심각하고 진지하게, 웃음기 없는 말투로 방송했다면 이렇게 사람들이 좋아해 주었을까라고 반문하며 이명박 정권과 자본주들의 언론 탄압과 장악으로 방송도 신문도 할 말 하기 힘든 시대에 '탄압할 테면 탄압해봐라 웃겨서 원!'하듯이 방송 내내 흐르는 출연자들의 당당함과 유쾌함이야말로 이 방송이 가진 가장 큰 힘이라는 것이다. 최근 “나꼼수”가 민주언론상을 수상했는데 주최측인 “민주언론”이 시상 이유를 지난 4월부터 8개월간 현 정권의 부도덕성을 폭로하고 거침없는 독설과 재미를 줬으며 주류언론이 권력 감시 등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안언론으로 훌륭한 역할을 했다고 밝히고 있으니 작가의 말과 일맥상통하다고 할 수 있겠다. 아뭏튼 이 정권은 농담을 이해하지 못해서 웃음이 없고, 그래서 언제나 더 강한 힘으로 더 무자비하게 억압하려고 들기만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에이 재미없어 얼굴 좀 펴라!"하고 크게 한 번씩 웃어 주자고 말한다. 

“나꼼수”에서 조현오 경찰청장 흉내를 내면서 욕설을 내뱉는 그를 연상하면 이 진지한(?) 책을 그가 썼다는 것이 전혀 믿기지가 않지만 그의 본업이 “시사평론가”임을 생각해보면 이내 수긍이 되기도 한다. 그가 말하는 “보수”가 지금 정치 시사 분야에서 통용되는 주류 이론인지 아니면 김용민식 보수 해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나 적어도 보수의 내력과 여러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보수를 분류하고 그 대처법을 깔끔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만큼은 꽤나 가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작가의 말대로 당당하게 싸우고 유쾌하게 웃어 준다면 철옹성 같은 저 보수의 벽도 통쾌하게 허물어 버릴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바로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나꼼수”에서 “쫄지 말자”는 말이 슬슬 족쇄를 채우려는 현 정권과 기득권 세력들의 방해와 탄압에 대해 혹시라도 쫄지 말자고 하는 자신들의 마음 다짐이기도 하겠지만 보수 기득권 계층에게 가슴을 활짝 펴고 좀 더 당당히 그리고 좀 더 유쾌하게 맞서라는 국민들에 대한 당부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 이제 쫄지 말고 가슴을 활짝 펴서 당당하게 맞서자. 고리타분하고 이념적이기만 하다는 정치 혐오에서 벗어나 정치야말로 내 생계가 걸린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그리고 그런 정치 참여가 참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느껴 보자. 재미있다면 금세 싫증내지도 않을 것이고 오랫동안 공부도 하고 참여도 하다 보면 우리들의 삶 자체가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지지 않겠는가. 그래서 예전에 자주 듣던 말인 "깨어 있으라"라이 아직도 유효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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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의 성분 - 미국 드라마를 이해하는 15가지 코드
최원택 지음 / 페이퍼하우스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요즈음 케이블 TV를 보면 “미드(미국드라마)”가 나오지 않는 시간대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참 많은 미드를 방영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즐겨보지 않는 편이다. 그렇다고 미드에 대해 거부감이 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어릴 적 <600만 불의 사나이>, <초원의 집>, <A특공대>, <에어울프>, <맥가이버>, <전격 Z 작전>, <헐크> 등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드라마들이 십 여 편이 넘고, 나이가 들어서 본 <머나먼 정글>, <X-FILE>, <닥터 후(정확히는 영드이겠지만)> 등이나 최근 <히어로즈>와 <슈퍼내추럴> 등은 참 재미있게 본 드라마이니 미드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미드나 한국 드라마를 막론하고 드라마라는 장르에 흥미를 잃어버렸고 시즌제로 계속 이어지는 한 편 한 편을 시간 맞춰 챙겨보기가 영 부담되기 때문이다. 물론 단편 단편으로 끝나는 <CSI 과학수사대> 등의 작품들도 있지만 정통 추리물을 좋아하는 내 취향에 맞지 않을뿐더러 드라마 전반에 깔려 있는 미국의 정치, 사회, 문화적 배경이 영 낯설기만 해서 그저 한 두 편 시청해 봤을 뿐 지금은 이내 채널을 돌려버리고 만다. 드라마 전문 잡지 <드라마틱>의 기자로 미드 관련 분야를 담당했던 “최원택”의 <미드의 성분(페이퍼하우스/2011년 10월)>을 선택한 것은 굳이 미드를 꼭 봐야만 할 필요는 없겠지만 미드의 열광적인 팬인 아내와의 공감대 -거의 하루 종일 미드를 시청하고 있는 아내와 채널 선택권을 가지고 다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 를 형성하기 위해서라도 미드의 바탕이 되고 있는 미국의 전반적인 정치, 사회, 문화적 배경(성분(成分))를 이해하면 드라마 시청에 조금은 유익할 까 싶어서였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책 덕분에 미드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는 없지만 - 아무래도 당분간 더 아내와 리모컨 쟁탈전을 벌여야 할 것 같다 - 미드를 통해서 미국을 “이해”하는 것이 꽤나 쏠쏠한 재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는 <펴내는 말>에서 한국 사회가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 접어들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사회 현상과 이슈를 공유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 미드가 다루는 사회 이슈들이 미국 사회만의 이슈에 그치지 않는, 바로 우리의 이슈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미드 속의 힘든 경제 상황은 전 세계를 비롯해 한국 역시 겪고 있고, 정치 드라마나 법정물, 시트콤에까지 등장하는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의 보혁 갈등은 한국의 정치를 돌아보게 하며, 동성애나 낙태와 같은 이슈는 이제 한국의 이슈이기도 하고, 미드 속에서 유행이 되는 패션이나 상품들은 이제 한국에서도 거의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드가 미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를 되돌아보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드라마야말로 그 시대의 사회상을 가장 잘 반영한다는 방송계의 속설을 다시금 입증한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본문에 들어서면 미드를 이해하는 15가지 문화를 코드(Code)별로 나누어 해설하고 있는데, “대중문화”, “코미디”, “직장”, “로맨스”, “사회계층”, “인종문제”, “정치”, “지역” 등 가히드라마 속에 담겨 있는 미국 사회 전반에 걸친 현상들을 총망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방대한 내용들을 꼼꼼히 설명하고 있다. 모두 소개하기는 힘들 것 같고 이중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있었던 <베버리힐스 아이들>등과 같은 하이틴 로맨스물에 등장하는 10대 청소년들의 분류 명칭을 잠깐 소개해보자. 우선 하이틴 드라마에 보면 운동 선수로 여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부류가 등장하는 데 이들을 “족(Jock)"이라고 부른단다. 원 뜻은 미식축구를 비롯한 구기 종목 선수들이 국부를 보호하는 데 사용하는 “국부보호대(Jockstrap)”에서 비롯된 말로 드라마에서는 남자다움, 사나움, 거침 등을 최선의 가치고 여기고, 이와는 거리가 먼 개성을 지닌 학생들에게는 괴롭힘을 가하는 부류로 묘사되고 있다. 스포츠에 열광하고 스포츠 선수를 우대하며 스포츠 활동을 권장하는 미국 특유의 문화가 바로 “족”에 해당하는 학생들에게 비뚤어진 선민의식을 갖게끔 한다고 한다. 이와 반대되는 부류로 “공부벌레”,“(모)범생”, “책벌레” 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 “너드(Nerd)"를 들 수 있겠다. 원래 동화작가 닥터 수스의 그림책 <내가 동물원을 운영한다면>에서 상상의 동물로 처음 등장해 이후 좀 덜떨어진 사람들을 의미하는 단어로 자리 잡았다고 하며, 현재는 "지적인 목적이나 학문적 목적에 맹목적으로 헌신하여 사회적으로 대인 관계에는 서투르고 바보같은 사람"으로 주로 사용된다고 한다. 종종 “족” 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샌님 등을 일컫는 말인데 대표적인 예로 영화 <스파이더맨>에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피터 파커”를 연상하면 될 것 같다. 이와 유사한 부류지만 상대적으로 덜 괴팍하며 사회성을 갖춘, 일본의 “오다쿠”와 유사한 의미로 쓰이는 “긱(Geok)”, “너드”와 “긱”에서 지적인 면을 들어낸 종종 “멍청이”, “머저리”, “왕따”로 번역되는 “도크(Dork)” 부류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학생들은 어떻게 분류할까? 우선 여자판 “족”이라 할 수 있는 “치어 리더”를 들 수 있겠다. 금발 머리에 빼어난 외모, 리더십이 뛰어난 캐릭터로 학교에서 스포츠 선수들만큼 인기 있는 집단으로 학교생활의 여왕이라 부를 수 있지만 때로는 머리가 나쁘고 문란하며 오만한 성정을 지닌 조역 캐릭터로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학교 뿐 아니라 사교계에서 미모와 지성 및 정치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기 있는 여성을 지칭하는 “잇 걸(It Girl)"도 있는데, 대표적인 드라마가 바로 <가십걸>이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아이돌 그룹인 ”에이핑크“의 <잇걸>이라는 노래가 바로 이 부류를 지칭하는 단어로 유명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외에도 잇걸 아래로 지나치게 극적인, 즉 사소한 일도 지나치게 크게 받아들이고, 세상을 너무 극적이고 드라마틱하게 받아들이며 사는 사람을 뜻하는 "드라마 퀸(Drama Queen)"이라는 부류도 있다고 하는데, 드라마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지나치게 감수성이 예민하거나 좀 푼수끼가 있는 그런 여학생들이 이 부류에 속할 것 같다. 문제아들을 지칭하는 단어들도 있는데, 주로 어두운 계통이나 아예 검은색의 옷을 입고 데스 메탈이나 헤비메탈을 주로 듣는 청소년들인 고쓰(Goth)"나 비슷한 개념의 ”이모(Emo)", 거의 10대 갱 과도 같은 공격적이고 반사회적인 행동들로 영국 TV 프로그램과 드라마에서 청소년 문제아의 대명사로 등장하는 “채브(Chav)"가 바로 그들이다. 또한 옷차림이나 행동이 남학생처럼 거칠거나 털털한 여학생을 ”톰보이(Tom Boy)" 또는 걸가이(Girl Guy)"라고 부른다니 10대를 지칭하는 말이 참 다양하고 많다. 물론 이런 단어들을 외울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다만 청소년 드라마들을 볼 때 저런 부류들을 찾아보면 더욱 재미있을 그런 상식 쯤으로 알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이 외에도 미국 정치체계의 근간인 “공화당”과 “민주당”, 헌법에 있어서 우리처럼 전면개정이 아닌 조항 수정을 하는 “미국 수정헌법”, 지역마다 사회적, 문화적 환경이 다르게 그려지는 “지역” 기반 드라마 해석법, 미드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경찰, 보안관, FBI, CIA 등의 법집행자들과 법원에 대한 정보 등 미국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알토란같은 정보들이 한껏 담겨 있으니 잘 챙겨보길 바란다. 

미드 열성 팬인 아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맞아 맞아”를 연발하는 것을 보면 미드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 - 아내의 미드사랑이 이 책 덕분에 더욱 커질 것 같다. 에효 리모콘을 되찾아오기가 갈수록 힘들어질 것 만 같다 - 이겠지만 나처럼 미드를 즐겨보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미국 사회 전반을 이해하는 “문화 코드”로써 충분한 값어치가 있는 정보들이어서 꽤나 유익한 책읽기였다. 다만 그나마 즐겨 본 SF, 판타지 드라마들에 대한 소개는 별로 없어 다소 아쉬움이 들었다. 혹 작가가 다음편을 쓴다면 <X-FLIE>이나 <브이(V)>, <히어로즈>, <슈퍼내추럴> 등에 깔려있는 서구 신화와 전설, 종교들과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영드(영국드라마)”나 캐나다, 호주 등 영연방권 드라마들에 대해서도 짚어봐 주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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