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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1
허영만 지음 / 월드김영사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2003년 1권이 출간된 이래로 9년여 동안 우리의 눈과 입을 즐겁게 고문(?)했던 허영만 화백의 <식객(食客)>이 2010년 5월 27권 <팔도 냉면 여행기>를 끝으로 아쉽게 막을 내렸다. 최근에 출간된 이야기들을 지역별로 묶은 일종의 “베스트 컬렉션(Best Collection)"인 <식객, 팔도를 간다> 편이 출간되고 있지만 아무래도 한번쯤 읽어봤던 이야기들인지라 새로운 즐거움은 없었다. 그런데 그가 드디어 1년 여 만에 새로운 만화 시리즈를 선보였다. 포털 사이트 다음(Daum) 웹툰 <만화 속 세상>에 연재 중인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가 바로 그 작품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광활한 영토를 점령했던 몽골의 영웅 “칭기즈 칸”을 그린 역사(歷史) 만화인데, 허 화백 작품 중에서 역사 만화라면 <각시탈(1974)>이나 <쇠퉁소(1982)> 정도이고 그것도 근세인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라 900 여 년 전의 중세 시대, 그것도 우리나라가 아닌 몽골을 배경으로 한 역사 만화라니 의외로 느껴졌다. 연재 소식은 들어 알고 있어서 한 두 편 읽어본 적이 있긴 하지만, 온라인보다는 종이책을 선호하는지라 제대로 챙겨보지 않았는데, 이번에 단행본으로 엮어 나온 시리즈 1권인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1(월드김영사/2011년 11월)>으로 만나보게 되었다. 아직 첫 권이라 좀 더 후속권들을 읽어봐야겠지만 이 작품도 <식객> 못지않게 인기를 끌 것 같다는 예감이 들게 하는 그런 작품이었다.
시리즈의 도입부라 할 수 있는 1권에는 키야트보르지간 부족의 수장이었던 “예수게이”의 아들이자 이 책의 주인공인 “테무진”의 이름이 그가 태어나던 날 마침 부족을 쳐들어왔다가 포로가 된 적대 부족인 타타르 족의 장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었다는 이야기, 테무진이 10살이 되던 해, 예수게이가 테무진의 혼인을 위해 이웃 부족을 방문하고 돌아오던 길에 타타르 족 암살자들에게 그만 죽임을 당하자 몽골의 전통인 형사취수(兄死娶嫂)를 거부한 탓에 몽골 부족에서 쫓겨나 초원을 떠돌게 된 테무진과 가족들, 테무진의 약혼자인 “부르테”의 부탁으로 위기에 빠진 테무진을 돕기 위해 나선 자다란 족 수장의 아들 “자무카”와의 만남이 차례대로 그려진다.
“칭기스 칸” 이야기는 개인적으로는 위인전(偉人傳) - 물론 몽골에게는 “위인(偉人)”이겠지만 이웃 국가들에게는 “원수(怨讐)”였을 것이다 - 으로, 소설로, 드라마와 영화로 여러 번 만나본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익숙한 이야기이다. 이처럼 익숙한 소재를 허 화백이 새삼스럽게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출판사 소개글을 보니 “칭기스 칸은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묘한 매력이 있는 인물”이며 “냉정한 전략전술가로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 탁월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를 무서워했고 겁도 많았다. 대제국의 통치자이면서도 무척 인간적”이었고 “만화가로서 이렇게 재미있는 소재를 놓칠 수 없었다. 칭기스 칸은 내 만화 인생에서 반드시 그리고 싶었던 작품”이라고 포부를 밝혔다고 한다. 뿔뿔이 흩어져 한번도 제대로 통일을 이루지 못했던 몽골의 부족들을 통일하고 아시아와 유럽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칭기스 칸의 “영웅적” 업적보다도 그 업적에 가려져 있던 인간적인 면이 바로 허 화백의 창작욕을 자극한 셈이다. 그리고 이번 기획이 그저 <식객> 연재를 완료하고 후속작으로 급히 기획된 그런 작품이 아니라 첫 구상에서 본격적인 취재까지 10여 년이 걸릴 정도로 장기 프로젝트였다니 작품에 쏟아 부은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미뤄 짐작케 해준다. 그림 또한 선이 거칠지 않고 명료한 만화선(漫畵線)과 웹툰 특유의 컬러풀한 색채, 그리고 시원스러운 몽골의 초원 풍경들 덕분에 이미지가 뚜렷하게 각인되는 효과를 느껴볼 수 있었다. 스펙타클한 스토리 라인과 그 이야기를 올곧이 살려낸 뛰어난 작화(作畵)의 시각적 효과가 제대로 어우러져 우리 만화계에 또 다른 걸작의 탄생을 알리는 작품이라고 평가해도 좋을 듯 하다.
예순을 훌쩍 넘겨 이제 “노화백(老畵伯)”의 반열에 들었음에도 아직도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허영만 화백의 열정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나에게는 이 시리즈도 <식객> 못지 않게 계속 찾아보게 될 그런 만화가 될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든다. “정복자” 칭기스 칸이 아닌 “인간” 칭기스 칸이 그의 손끝에서 멋지게 부활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