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의 수상한 여자들
브리짓 애셔 지음, 권상미 옮김 / 창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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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책 이벤트에서 “당신은 죽음 앞에서 사랑한 기억을 떠올릴 것인가 사랑받은 기억을 떠올릴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 질문에 나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내가 사랑했고 나를 사랑해준 부모님, 아내가 먼저 떠오르고 마음 속 깊이 꼭꼭 숨겨둔 오래전 사랑의 얼굴 또한 떠오르면서 “당신도 안녕”이라고 마음 속 인사를 건넬 것이라고 답변을 썼었다. 만약에 마음 속 인사가 아니라 아내에게 오래전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사람을 죽기 전에 한번만 보고 싶다고 털어놓는다면 과연 어떨까? 아내는 영원한 이별을 앞에 두고 모든 것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을 불러줄 수 있을까? 아니면 나의 뻔뻔함과 배신감에 치를 떨까? 브리짓 애셔의 “내 남편의 수상한 여자들(창해, 2010년 5월)”는 죽음을 앞둔 남편이 옛 애인들을 불러 모으는 기상천외하면서도 재밌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여주인공 루시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아티 쇼어맨과 결혼한 뒤 남편의 ‘바람’에 대해 알게 되고는 몇 달 동안 별거 생활에 들어간다. 어느날 어머니에게서 남편이 불치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온 루시는 남편에게서 죽기 전에 옛 애인들과 오랫동안 숨겨놓은 아들을 불러달라는 말도 안 되는 부탁을 받는다. 남편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던 루시는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 마음으로 전화번호부에 나와 있는 옛 애인들에게 전화를 하고 숨겨논 아들의 주소를 알아내 그에게 아버지 아티를 소개시키기로 한다. 연락한 지 하루 만에 아티가 자신의 생명을 구했다는 젊은 여인 엘스파, 루시와 결혼 직전 사귀었다는, 전화 받자 마자 폭언을 퍼붓던 과부가 속속 들이 닥치면서 기상천외한 옛 애인 맞아들이기가 시작된다. 번호표까지 배부해야 할 정도로 줄줄이 나타나는 여인들, 루시는 그녀들을 만나면서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과 함께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되고 처음으로 달려왔던 엘스파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며, 그녀의 부모에게 맡겨놓았던 딸을 찾는 여행에 동참하게 된다. 그 와중에 아티의 숨겨놓은 아들이라던 존과의 미묘한 애정이 싹트게 되지만 존의 정체를 알게 되고서는 분노하게 되고, 아티 앞에서 털어놓는 존의 이야기에 그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마침내 아티는 숨을 거두고 아티의 장례식에는 아내 루시와 그가 사랑했고 그를 사랑했던 수많은 아티의 여인들이 모두 모이는 기묘하지만 결코 우스꽝스럽지만은 않은, 그를 추억하는 흥겨운 자리가 된다. 

 책 읽는 내내 이 기상천외하고 기발한 전개에 입가에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결말이 모두 용서하는 훈훈한 분위기가 될 것이라는 뻔한 결론이지만 이런 황당한 사건을 겪으면서 때론 분노하고 때론 공감하는 루시의 복잡한 속내를 그려내는 작가의 글 솜씨에 뻔한 결론조차 모두 용서가 되는 그런 책이었다. 다 읽고 나서 문득   내가 루시 입장이라면 죽음을 앞에 두고 뻔뻔스럽게 자신의 옛 연인들을 불러 모으는 내 아내를 용서할 수 있을까, 나도 루시처럼 그 남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해서 아내의 장례식장에서 아내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며 웃고 떠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이 책과 같은 소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비현실적인 상상이긴 하겠지만 루시처럼 굴 자신이 영 없다.  위에서 이벤트 질문에는 마음 한켠으로 옛 사랑을 떠올린다면서 내 아내의 옛사랑에는 지극히 엄격한 그런 이중성을 가진 어쩔 수 없는 이기적인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책의 이야기는 그저 남의 이야기라면 재밌겠지만 내가 닥친 현실이라면 말도 안되게 싫을 그런 이야기인 셈이다. 이 책이 지금 헐리우드에서 영화화하고 있다니 시끌벅적하고 유쾌한 아티의 장례식을 이제 영화로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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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1
마크 레비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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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00만부의 판매고를 올린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마크 레비를 만난 것은 책이 아니라 위더스푼 주연의 헐리우드 영화 “저스트 라이크 헤븐(Just Like Heaven)"이었다. 아파트에 이사 온 남자가 벽장에서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유령을 만나서 벌이는 로맨틱 코메디 영화였는데 그 설정이나 스토리 전개가 독특하면서도 재밌었던 가볍게 즐길만한 그런 영화로 기억된다. 그 후에 우연찮게 서점에 가서 책을 둘러보던 중 같은 제목의 소설을 발견하고는 영화가 흥행 성공하면서 책으로도 엮어 나왔겠거니 하고 들춰보다가 소설이 원작이었고 이 소설을 쓴 작가인 마크 레비가 꽤나 인기 있는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데 그쳤었다. 이번에 그의 작품을 드디어 책으로 만났다. 천체물리학자와 고고학자가 우주와 인류의 기원을 찾아 벌이는 모험을 그린 “낮 1,2(열림원, 2010년 5월)”이라는 소설이다.  

 해발 6,000 미터가 넘는 칠레 고산지대 천문관측소에서 일하던 “나”(아드리안)은 고산병으로 인해 일을 포기하고 영국 런던으로 되돌아온다. 한편 에티오피아 오지에서 원시인류 화석을 발굴하던 키이라도 사막의 폭풍 때문에 발굴 장비와 현장을 모두 유실하고는 현장에서 만난 원주민 소년 “아리”가 준 보석 목걸이를 간직하고 프랑스 파리로 철수하고야 만다. 키이라는 언니의 박물관에서 일하던 “이보리” 박사에게 목걸이의 분석을 의뢰하고 분석결과 각종 최첨단의 연대 측정 장비로도 측정할 수 없는 보석이라는 결과를 듣게 되고 번개 치던 밤 목걸이에서 놀라운 비밀을 발견한다. 그 후 두 사람 다 다시 현장으로 되돌아갈 궁리를 하던 중 “나”는 소속 대학의 학술재단의 재정 보조를 위해, 키이라는 발굴 비용을 후원받기 위해 학술 위원회의 연구지원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되고, 키이라는 공동 1등을 수상하게 된다. 수상발표 후 오래전 연인이었던 둘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과거를 회상하며 하룻밤을 보내면서 키이라는 “나”에게 소년에게서 받은 보석 목걸이를 선물하고는 에티오피아 현장으로 떠나고, “나”는 어머니가 계시는 그리스 섬으로 휴식을 떠나게 된다. 천둥번개가 몰아치던 밤 역시 키이라가 보았던 그 비밀을 목격하게 된다. 한편 보석의 존재를 예의 주시하던 세계 각국의 정체불명의 단체는 이 보석 목걸이를 노리고 그리스에서 위기를 넘긴 “나”는 키이라를 찾아 에티오피아로 떠나게 된다. 이때부터 보석의 비밀을 밝히기 위한 아드리안과 키이라의 모험은 영국, 독일, 프랑스, 중국, 인도네시아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으로 이어지게 된다. 중국에서 키이라를 사고로 잃는 “나”는 상심에 빠지게 되나 당시 찍은 사진에서 키이라가 살아있을 수 도 있다는 사진을 발견하고는 중국으로 다시 여행을 떠나며, 즉 새로운 모험의 시작을 예고하며 책은 끝을 맺는다.

 두 권 700여 페이지의 이 소설은 우선 쉽고 빠르게 읽힐 정도로 재미가 있다. 소설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 설정 부분인 도입부와 두 주인공이 만나는 시점까지인 1권 후반부까지는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 않지만, 두 주인공이 만나고 목걸이 보석이 담고 있는 비밀이 드러나면서부터는 속도감이 느껴지더니 두 주인공이 세계 곳곳을 누비는 모험 부분에서는 목걸이의 정체와 비밀이 궁금해서 더욱 읽는 속도가 빨라진다. 마침내 목걸이의 보석과 같은 종류를 인도네시아 외딴 섬에서 발견하고는 한층 거대하고 신비로운 보석의 비밀이 드러나고는 중국으로 되돌아와서 그만 사고로 여주인공이 죽어버리는 장면에서는 “어?”라는 당혹감이 느껴지더니 모든 것이 끝나고 이대로 비밀은 묻어지는 허무한 결론인가 하는 실망감이 들던 책 말미에서 남자 주인공이 다시 중국으로 떠나면서 끝을 맺는 장면에서는 이런이런 책 소개 글에서 연작소설인 “밤”이 곧 출간될 것이라는 출판사 광고 글이 뒤늦게야 생각나서는 좀 허탈해졌다. 결국 이 만만치 않은 분량의 두 권의 책은 모험의 끝이 아니라 본격적인 모험은 이제부터를 알리는 시작이라고나 할까? “새벽은 어디에서 시작되나요”라는 어린 시절 주인공의 물음에서 시작된 이 모험은 결국 “밤”까지 읽고 나서야 끝나고 모든 비밀은 거기서 밝혀질 것 같다. 개성있는 캐릭터와 - 특히 “나”의 동료이자 대학 행정관인 “월터”가 일종의 개그 캐릭터로 재미와 웃음을 준다. 물론 마지막에는 반전을 주긴 하지만. 반전의 내용은 스포일러이므로 생략한다 - 읽어갈 수록 속도감을 더해가는 빠른 전개로 쉽게 재밌게 읽히는 책이지만 마크 레비에 대한 평가는 2부 격인 “밤”을 읽고 난 후 로 보류해야겠다. 과연 보석에 담겨있는 비밀은 무엇인지, 그들의 모험을 위협하는 한편으로는 조종하는 도시 이름으로 불리우는 정체 불명의 단체는 누구인지, 그들이 미래 세대를 위협할 수 있는 진실이기에 감추려고 하는 비밀은 무엇인지, 결국 우주와 인류의 기원에 대한 비밀은 어떻게 밝혀지는지  2부 “밤”을 빨리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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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 여자, 당신이 기다려 온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1
노엘라 (Noella) 지음 / 나무수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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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엘라의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나무 수, 2010년 3월)”는 서로 다른 장르이면서도 같은 감동을 담아내는 두 예술을 통해서 비록 직업을 가지지 않은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라도 예술“적” 삶을 꿈꿔볼 수 있게 하고 싶다는 작가의 바램을 담은 작품이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그림과 음악에서 다양한 사랑의 모습과 감정을 느끼고 종종 함께 보고 들으면 감정이 배가되는 것을 발견한다고 이야기한다. 서로 다른 화가와 음악가, 그러나 서로 비슷한 메시지를 전하는 그들의 작품과 인생을 알아가는 설레임을 통해서 삶이 한층 더 농밀해지길, 그리고 예술적 삶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녀는 베를리오즈의 음악과 들라크루아의 그림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작가가

사람이 마치 알코올에 중독된 것처럼 날 지배할 때, 

그것에서 헤어나지 못해 허우적 거릴 때,

내가 사랑에 집착하고 있음을 알았을 때.

만났다는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은 베를리오즈가 평생 사랑했던 여인 헤리어트 스미드슨에 대한 광적인 러브스토리를 음악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죽이는 것도 모자라 마녀로 둔갑시키는 이 작품에서 그가 얼마나 사랑에 집착했는지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결국 3년 후 그는 스미드슨과 결혼을 했지만 10년 만에 별거하게 되고 다시 10년 후 그녀는 쓸쓸히 죽고 만다. 동시대를 살았던 로맨티시즘을 대표하는 화가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루스>라는 그림에서는 자신의 여인들과 말이 죽어가는 모습을 한판을 베고 누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오히려 즐기는 것처럼 바라보는 고대 바빌로니아의 왕을 묘사하는 그림을 보며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소유물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았던, 죽음으로써 그들을 완전히 소유할 수 있다고 믿었던 또 다른 집착을 느끼게 된다. 결국 들라크루아의 색처럼 강렬하게, 베를리오즈의 음악처럼 현란한 사랑의 유혹에, 사랑에 취해, 사랑에 물드는 감성이 자신을 지배하는 그 순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 외에도 강렬한 색채와 거친 붓터치로 유명한 “뭉크”의 그림 <절규> 장조와 단조 같은 조성이 없는 무조음악을 통해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쉰베르크의 음악 <달에 홀린 피에르>를 통해 꿈과 현실을 분간할 수 없는 악몽과 공포, 환상을 이야기하고, <최후의 심판>, <다비드>상의 미켈렌젤로와 <압살롬 내 아들아>의 천재작곡가 “조스캥 데프레”를 보고 들으면서 완전할 수 없기에 더욱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하고, 완벽을 추구한 그들의 노력과 변화보다는 지키려는 열정 그리고 과함보다는 절제된 미를 추구한 부그로의 그림과 브람스의 음악들은 더욱더 깊은 내면의 세계로 이끌며 진정한 의미의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깊은 내면과 만나는 경험을 하게 하며, 전통예술을 부정하고 예술에 대한 가치를 재조명하며 예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다다이즘의 뒤샹의 그림과 조각, 사터의 음악을 통해서 나에게서 자유로워지고 진정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창조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그림과 음악들, 한번쯤은 보고 들었을 작품들인데 이렇게 음악과 그림을 어우러져 감상을 하니 색다르고 새로운 감동이 느껴진다. 고야의 그림을 보면서 베토벤의 음악을 떠올리고, 비제의 카르멘을 들으면 로트레크의 그림을 떠올리는 것, 어찌보면 서로 반대되는 감각을 통해 예술작품을 이해하는 것, 제목 그대로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그런 순간은 피상적인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이 느껴지는 전율과 같은 감동, 감성이 자신을 올곧이 지배하는 그런 순간이 아닐까? 이 서평을 쓰면서 틀어놓은 책 속 부록인 CD에서 9번째 곡 드뷔시의 <바다> 1악장 ‘바람과 바다의 대화’의 선율이 흘러나오면서 햇빛에 따라 전혀 다른 이미지로 다가오는 클로드 모네의 “루앙 대성당”이 떠오른다. 마치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들으면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플래툰”에서 두 손을 들어 절규하는 병사의 모습을 떠올리듯이.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떠올리면 스타라우스의 교향시 “차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귓전을 맴돌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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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쇼핑 - 아무것도 사지 않은 1년, 그 생생한 기록
주디스 러바인 지음, 곽미경 옮김 / 좋은생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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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풍요의 신(神)이 천상(天上)을 떠나 이 세상에 강림하면서 - 물론 이 무자비하고 편협한 신의 은총은 지구 곳곳에 내리지 않고 일부 지역에만 그 자비를 베풀었다. 은총이 미치치 못하는 세상의 절반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다.-, 세상 곳곳에서는 팔고자 하는 사람과 사고자 하는 사람의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판매자는 온갖 감언이설로 대중들을 유혹하고 있으며 구매자는 그런 허위와 과장된 광고의 홍수 속에서도 지갑의 돈을 지키기 위해 상품들로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눈을 애써 질끈 감고, 자석처럼 백화점으로 마트로 끌려가는 두 다리를 멈추게 하기 위해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고 있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항상 패배는 우리들 소비자의 몫. 냉장고 냉동실에는 언제 샀는지도, 무슨 물건인지도 모를 각종 식품들이 꽉꽉 채우고 있으며, 계절마다 사들인 옷들은 옷장의 보관 능력을 벗어나 박스에 담겨 흉물스럽게 베란다 뒷 켠에 탑처럼 쌓여가고 있으며, 한 달에 한번 씩 어김없이 찾아오는 월급날은 즐거움보다는 뒤이어 날아올 카드 영수증 때문에 한숨이 나오는 오히려 고통스러운 날이 되곤 한다. 매월 초면 “이번 달만큼은 좀~~~” 하면서 다짐을 하건만 TV 홈쇼핑 광고는, 백화점 세일 전단지는, 인터넷 쇼핑몰 할인쿠폰은, 우리 동네 중국집 신장개업 광고지는 어찌 그리 한 번도 거르는 법이 없이, 배달 사고 없이 내 앞에 차곡차곡 쌓이는 지.....결국 단단히 먹은 마음은 와르르 무너지고 다시 가벼워진 지갑과 늘어나는 카드 영수증에 땅이 꺼져라고 한숨을 쉬어댄다. 사람의 2대 기본 욕구라는 식욕(食慾), 성욕(性慾)을 능가한지 오래된 이 구매욕(購買慾)은 과연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그런 욕구일까? 하루라도 하지 않으면 입안의 가시 수준을 벗어나 마치 그대로 쓰러져 죽을 것 만 같은 이 무시무시한 쇼핑 욕구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욕구일까? 여기 결단코 아니다라고 선언하면서 하루 이틀도 아닌 1년 동안 쇼핑을 끊고 그 처철한 투쟁기를 책으로 엮은 사람이 있다. “굿바이 쇼핑(좋은 생각, 2010년 4월}”의 저자 “주디스 러바인”이 바로 그 사람이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그녀는 2003년 12월 중순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쇼핑을 하고 두 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돌아오는 길에 눈 섞인 물 웅덩이에 장갑 한 짝을 빠뜨리고 주으려다가 종이 쇼핑백이 진창에 닿으면서 쇼핑한 물건들이 와르르 쏟아지고 신발이 물에 젖는 경험을 하게 된다. 누구나 한번쯤은 흔히 겪는 이런 상황에서 그녀는 “난 이제 사지 않겠어!”라는 전혀 황당한 결심을 하고서는 남편인 폴과 2004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식료품이나 당뇨병을 앓는 고양이한테 필요한 인슐린, 화장지, 인터넷 사용료처럼 오로지 생계와 건강 그리고 업무에 필요한 것, 즉 생필품 이외에는 아무 것도 사지 않을 것이다 라고 약속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린다. 이 때부터 이 부부의 처절한 전투가 시작되고 참기 힘든 유혹들, 즉 퇴근길에, 공원 산책길에 만나게 되는 길거리 음식들에 대한 유혹, 저널리스트로서 새로 나온 것이라 읽고 싶고, 읽어야 한다고 까지 여기게 되는 지적 결핍, 각종 공연이나 콘서트 등의 품위 유지를 위한 욕구 등과 벌이는 부부의 구구절절한 전투 기록은 일기처럼 요일별로 기술하고 있다. 특히 사회 생활을 하면서 겪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상황, 조카의 졸업식, 부모님의 생신 등 각종 기념일에 주고 받게 되는 선물에 대해서 작가는 선물교환은 사회적 맥락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선물을 주는 것에도 사회적인 규범과 규칙이 있으며, 문제는 우리의 시장 문화에서 선물 교환의 규칙은 모호하고 은밀하면서 양면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이다 라고 이야기하며 한 해동안 아무것도 줄 수 없으며 인색할 뿐만 아니라 무력하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교환가치로서 주고 받는 것이기 때문에 받게 되면 당연히 보답해야 하는 선물이기에 줄 수 없으면 받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약속이지만 시장의 이기적인 자식들이기에 받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며 자신들은 가치체계의 틈바구니에 끼여 있고 우리 자신이 규정한 임무 사이에 갇혀있다고 토로한다. 주변사람들은 이런 그들 부부의 처지(?)를 십분 이해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아낌없는 선물을 함으로써 부부의 임무 수행을 거들어 준다.

과연 이 두 부부는 일년 동안 아무것도 사지 않았을까? 그녀 스스로가 “타락”이라고 부른 몇 번의 약속 위반도 물론 있었다, 중고품 할인점에서 “난 옷이 없어. 봄인데 입을 게 하나도 없다고!” 소리치며 구입한 갈색 셔츠와 붉은 색 바지. 범죄를 미리 계획하고 치밀하게 실행을 옮긴 것이라고 자책하는 옷가게 코먼스레드에서의 구입, 고양이발 중고욕조 구입, 요양원으로 들어가는 아버지의 옷 구입 등 갑작스런 충동에, 필요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금기를 넘어서기도 했지만 일년동안의 아무것도 사지 않겠다는 약속은 대체적으로 잘 지켜온 셈이다.

 

1년 동안 처절한 싸움을 성공리에 마치고 부부는 그동안의 과정을 돌아보면서 자신들의 겪은 놀라운 변화를 발견한다. 쇼핑을 안 하는 것 덕분에 무언가를 사거나 기뻐하는 의무감에서 해방된 주말 선물을 얻었고, 전년에 비해 8,000 달러를 절약하는 성과에 함께 이제는 현금을 건네기 전에 세 번 생각해보는, 어쩌면 평생토록 가리라 믿는 버릇이 생겼으며 무엇보다도 쇼핑을 참은 1년 동안 흔히들 벌이는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두고 옥신각신 하는 일, 돈 때문에 생기는 심각한 논의(싸움)을 단 한번도 하지 않게 되었단다.

 

 책 말미의 인터뷰의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단순히 쇼핑을 참아내는 개인적인 경험만을 기술한 책이 아니라 쇼핑을 하지 않으면서 내면보다는 오히려 바깥 세상으로 눈을 돌리게 되고 공공의 현실과 가치도 함께 고민해보는 그런 책이다. 작가는 도서관에서, 길거리에서, 산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재미와 자극과 의미를 찾으면서 돈과 열정을 개인의 상품 소비에 써버리지 않는다면 공공의 이익을 위해 훨씬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그럴 때 모두가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쇼핑 중단의 실험은 어찌보면 과잉생산, 과잉소비가 반복되는 현대 사회에 있어서 지극히 개인적인 욕구 충족에 그칠 수 밖에 없는 쇼핑의 이기심을 극복하고 개인 한사람의 범주를 벗어나 공공의 이익과 가치 추구를 위한 공공성의 실현으로까지 해석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의미있는 실험을 성공리에 마친 두 부부는 그들의 처철한 전투기록을 가감없이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당신들도 이런 의미있는 일에 동참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이 부부처럼 성공하기는 불가능하고 오히려 섣불리 시도했다가는 어렵게 시도한 다이어트가 요요현상에 의해 실패하듯이 쇼핑 금단 증세를 못이긴 나머지 더 깊은 쇼핑 중독에 빠져들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부처럼 1년이라는 장기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1개월 쯤은, 아니면 짧게라면 1주일이라도 쇼핑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시도해 볼만 한 일이 아닐까? 무소유의 행복이라는 법정 스님의 말씀이 굳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사거나 기뻐하는 의무감에서 해방되는 주말을 맞이해보는 것도 참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 TV에서 가증스러운 목소리로 우리를 유혹하는 홈쇼핑 광고부터 리모컨을 과감히 돌려본다면, 하루에도 몇 장씩 문에 붙어 있는 할인 광고 전단지부터 바로 분리수거함에 버리는 습관을 들인다면, 오늘만 특가라고 반짝이는 인터넷 배너 광고를 차단한다면 한 달이 지나도 별로 줄지 않은 지갑과 오히려 카드 결제일을 기다리게 되는 즐거움과 마트에서 쇼핑카를 끌고 다니며 정신없어 하지 않는 여유로운 휴일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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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다락방 - <마음 가는 대로> 두 번째 이야기
수산나 타마로 지음, 최정화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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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수산나 타마로의 “엄마의 다락방(밀리언하우스, 2010년 5월)”을 읽기 시작할 때는 부모를 모르고 자란 어린 소녀가 다락방에서 부모의 젊은 시절의 사진과 편지를 발견하면서 가족에 대한 소중한 사랑을 깨닫게 되는, 가슴 따뜻해지는 일종의 가족 소설로 생각을 했었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처음의 생각과는 다른 이 책에 약간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이 책을 뭐라 분류할 수 있을까? 작가의 말처럼 작가의 경험을 소재로 한 성장소설? 소설의 형식을 빌린 자기계발서적? 책 후반부에 주인공이 이스라엘에 머물면서 깨닫게 되는 종교 소설? 작가가 책 첫머리에서 “이 책은 자신의 정체성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는 소녀의 여행”을 그리고 있으며 “우리는 왜 세상에 태어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나로 인해 타인의 삶이 더 아름다워질 수 는 없는 것일까?”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소설이라고 소개한 것처럼 어쩌면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장르를 다 포함하고 있는, 독자에게 결코 가볍지 않은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그런 소설이라 생각된다. 

 엄마를 네 살 때 교통사고로 잃고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채 할머니와 살고 있는 소녀 마르타는 어느 날 할머니가 자신이 아끼던 호두나무를 베어버리자 큰 상실감을 겪고 할머니를 미워하게 된다. 미국 유학 후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만 할머니에 대한 미움은 사그러들 줄을 모르고, 결국 치매를 앓던 할머니는 돌아가시게 된다. 어느날 다락방에서 발견한 어머니의 일기장과 아버지의 편지를 통해서 어머니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자살했고, 아버지는 그저 하룻밤의 사랑 정도로만 여기고 자식인 마르타의 존재조차 부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버지를 찾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저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아버지와의 만남 후 자신의 뿌리를 찾아 이스라엘까지 여행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의 물음인 삶의 의미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해답을 찾아가게 된다. 그녀가 찾은 해답은 무엇일까? 명쾌한 답은 없지만 그녀가 독백으로, 또는 여행을 통해 알게된 사람들과 나눈 대화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내가 믿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태어나는 어린 아이들은 이 두 질문이 적힌 종이를 받고 답을 적어야 해요. 나중에 생이 다한 후에야 그 질문지의 답을 적게 되겠죠”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 

(중략) 두 손을 꼭 쥐면서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요. "계속 앞으로 나아가요. 절대 멈추지 말아요"

“신께서는 우리가 성장하고 변하고 참회하길 바래. 그리고 날 때부터 우리가 그 안에 살고 있듯이 우리 마음속에 신이 깃들기를 바라지. 신이 우리와 나누고 싶어 하는 건 힘이 아니야. 우리가 가진 나약함이지.”

“인간이 결코 전지전능하지 않고 나약하며 문제가 많은 존재라고 인정하면 수많은 질문이 떠오르죠. 그 질문에서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이 자라나게 되죠. 하지만 인간이 전지전능한 존재라고 믿으면 과연 무슨 질문이 필요할까요? 질문하지 않는 인간은 탐욕스럽고 만족할 줄 모르는 소비자가 될 뿐이에요.”

“마음을 열고 신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죠. 우리 마음속을 차지하고 있는 자신만을 위한 생각을 버려야 해요. 그리고 다른 사람과 맺은 서약을 지켜야 해요. 그 서약을 통해서만이 사랑이 커 갈 수 있죠.”

여행중에 그녀의 아버지는 결국 자살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면서 딸에게 마르타를 꼭 보고 싶다는 말과 함께 다음과 같은 회한의 유언을 남긴다.
 

“네가 막 태어났을 때, 네가 어렸을 때, 네가 한참 자라고 있을 때, 그때 해주지 못한 포옹을 모두 담아 마지막으로 한번 널 안아주고 싶구나. 그리고 내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닐 때 네가 필요로 할지도 모를 포옹까지 거기에 담고 싶구나.”

결국 할머니와 부모에 대한 미움과 버림받았다는 슬픔에서 시작된 마르타의 긴 여행은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면서 할머니와 부모의 실수와 같은 삶이 오히려 자신의 앞으로의 삶에 있어 보물과 같은 것이 될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할머니가 자신에게 남긴 편지를 꺼내 읽는다. 

 어쩌면 마르타는 자신이 찾고자 했던 삶의 의미에 대해 아직 완전히 깨닫기에는 아직은 어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할머니와 부모에 대한 미움은 더 이상 그녀를 괴롭히지 않는, 그들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아가 자신의 보물로 여길 수 있을 만큼 성장한 것임에는 분명하다. 어쩌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은 것이야말로 그녀가 찾고자 했던, 앞으로의 그녀의 삶을 이끌어나갈 의미가 아니었을까? 비록 소설 속이지만 앞으로의 그녀의 삶이 좀 더 따뜻하고 아름다워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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