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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쇼핑 - 아무것도 사지 않은 1년, 그 생생한 기록
주디스 러바인 지음, 곽미경 옮김 / 좋은생각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풍요의 신(神)이 천상(天上)을 떠나 이 세상에 강림하면서 - 물론 이 무자비하고 편협한 신의 은총은 지구 곳곳에 내리지 않고 일부 지역에만 그 자비를 베풀었다. 은총이 미치치 못하는 세상의 절반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다.-, 세상 곳곳에서는 팔고자 하는 사람과 사고자 하는 사람의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판매자는 온갖 감언이설로 대중들을 유혹하고 있으며 구매자는 그런 허위와 과장된 광고의 홍수 속에서도 지갑의 돈을 지키기 위해 상품들로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눈을 애써 질끈 감고, 자석처럼 백화점으로 마트로 끌려가는 두 다리를 멈추게 하기 위해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고 있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항상 패배는 우리들 소비자의 몫. 냉장고 냉동실에는 언제 샀는지도, 무슨 물건인지도 모를 각종 식품들이 꽉꽉 채우고 있으며, 계절마다 사들인 옷들은 옷장의 보관 능력을 벗어나 박스에 담겨 흉물스럽게 베란다 뒷 켠에 탑처럼 쌓여가고 있으며, 한 달에 한번 씩 어김없이 찾아오는 월급날은 즐거움보다는 뒤이어 날아올 카드 영수증 때문에 한숨이 나오는 오히려 고통스러운 날이 되곤 한다. 매월 초면 “이번 달만큼은 좀~~~” 하면서 다짐을 하건만 TV 홈쇼핑 광고는, 백화점 세일 전단지는, 인터넷 쇼핑몰 할인쿠폰은, 우리 동네 중국집 신장개업 광고지는 어찌 그리 한 번도 거르는 법이 없이, 배달 사고 없이 내 앞에 차곡차곡 쌓이는 지.....결국 단단히 먹은 마음은 와르르 무너지고 다시 가벼워진 지갑과 늘어나는 카드 영수증에 땅이 꺼져라고 한숨을 쉬어댄다. 사람의 2대 기본 욕구라는 식욕(食慾), 성욕(性慾)을 능가한지 오래된 이 구매욕(購買慾)은 과연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그런 욕구일까? 하루라도 하지 않으면 입안의 가시 수준을 벗어나 마치 그대로 쓰러져 죽을 것 만 같은 이 무시무시한 쇼핑 욕구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욕구일까? 여기 결단코 아니다라고 선언하면서 하루 이틀도 아닌 1년 동안 쇼핑을 끊고 그 처철한 투쟁기를 책으로 엮은 사람이 있다. “굿바이 쇼핑(좋은 생각, 2010년 4월}”의 저자 “주디스 러바인”이 바로 그 사람이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그녀는 2003년 12월 중순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쇼핑을 하고 두 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돌아오는 길에 눈 섞인 물 웅덩이에 장갑 한 짝을 빠뜨리고 주으려다가 종이 쇼핑백이 진창에 닿으면서 쇼핑한 물건들이 와르르 쏟아지고 신발이 물에 젖는 경험을 하게 된다. 누구나 한번쯤은 흔히 겪는 이런 상황에서 그녀는 “난 이제 사지 않겠어!”라는 전혀 황당한 결심을 하고서는 남편인 폴과 2004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식료품이나 당뇨병을 앓는 고양이한테 필요한 인슐린, 화장지, 인터넷 사용료처럼 오로지 생계와 건강 그리고 업무에 필요한 것, 즉 생필품 이외에는 아무 것도 사지 않을 것이다 라고 약속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린다. 이 때부터 이 부부의 처절한 전투가 시작되고 참기 힘든 유혹들, 즉 퇴근길에, 공원 산책길에 만나게 되는 길거리 음식들에 대한 유혹, 저널리스트로서 새로 나온 것이라 읽고 싶고, 읽어야 한다고 까지 여기게 되는 지적 결핍, 각종 공연이나 콘서트 등의 품위 유지를 위한 욕구 등과 벌이는 부부의 구구절절한 전투 기록은 일기처럼 요일별로 기술하고 있다. 특히 사회 생활을 하면서 겪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상황, 조카의 졸업식, 부모님의 생신 등 각종 기념일에 주고 받게 되는 선물에 대해서 작가는 선물교환은 사회적 맥락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선물을 주는 것에도 사회적인 규범과 규칙이 있으며, 문제는 우리의 시장 문화에서 선물 교환의 규칙은 모호하고 은밀하면서 양면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이다 라고 이야기하며 한 해동안 아무것도 줄 수 없으며 인색할 뿐만 아니라 무력하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교환가치로서 주고 받는 것이기 때문에 받게 되면 당연히 보답해야 하는 선물이기에 줄 수 없으면 받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약속이지만 시장의 이기적인 자식들이기에 받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며 자신들은 가치체계의 틈바구니에 끼여 있고 우리 자신이 규정한 임무 사이에 갇혀있다고 토로한다. 주변사람들은 이런 그들 부부의 처지(?)를 십분 이해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아낌없는 선물을 함으로써 부부의 임무 수행을 거들어 준다.
과연 이 두 부부는 일년 동안 아무것도 사지 않았을까? 그녀 스스로가 “타락”이라고 부른 몇 번의 약속 위반도 물론 있었다, 중고품 할인점에서 “난 옷이 없어. 봄인데 입을 게 하나도 없다고!” 소리치며 구입한 갈색 셔츠와 붉은 색 바지. 범죄를 미리 계획하고 치밀하게 실행을 옮긴 것이라고 자책하는 옷가게 코먼스레드에서의 구입, 고양이발 중고욕조 구입, 요양원으로 들어가는 아버지의 옷 구입 등 갑작스런 충동에, 필요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금기를 넘어서기도 했지만 일년동안의 아무것도 사지 않겠다는 약속은 대체적으로 잘 지켜온 셈이다.
1년 동안 처절한 싸움을 성공리에 마치고 부부는 그동안의 과정을 돌아보면서 자신들의 겪은 놀라운 변화를 발견한다. 쇼핑을 안 하는 것 덕분에 무언가를 사거나 기뻐하는 의무감에서 해방된 주말 선물을 얻었고, 전년에 비해 8,000 달러를 절약하는 성과에 함께 이제는 현금을 건네기 전에 세 번 생각해보는, 어쩌면 평생토록 가리라 믿는 버릇이 생겼으며 무엇보다도 쇼핑을 참은 1년 동안 흔히들 벌이는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두고 옥신각신 하는 일, 돈 때문에 생기는 심각한 논의(싸움)을 단 한번도 하지 않게 되었단다.
책 말미의 인터뷰의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단순히 쇼핑을 참아내는 개인적인 경험만을 기술한 책이 아니라 쇼핑을 하지 않으면서 내면보다는 오히려 바깥 세상으로 눈을 돌리게 되고 공공의 현실과 가치도 함께 고민해보는 그런 책이다. 작가는 도서관에서, 길거리에서, 산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재미와 자극과 의미를 찾으면서 돈과 열정을 개인의 상품 소비에 써버리지 않는다면 공공의 이익을 위해 훨씬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그럴 때 모두가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쇼핑 중단의 실험은 어찌보면 과잉생산, 과잉소비가 반복되는 현대 사회에 있어서 지극히 개인적인 욕구 충족에 그칠 수 밖에 없는 쇼핑의 이기심을 극복하고 개인 한사람의 범주를 벗어나 공공의 이익과 가치 추구를 위한 공공성의 실현으로까지 해석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의미있는 실험을 성공리에 마친 두 부부는 그들의 처철한 전투기록을 가감없이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당신들도 이런 의미있는 일에 동참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이 부부처럼 성공하기는 불가능하고 오히려 섣불리 시도했다가는 어렵게 시도한 다이어트가 요요현상에 의해 실패하듯이 쇼핑 금단 증세를 못이긴 나머지 더 깊은 쇼핑 중독에 빠져들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부처럼 1년이라는 장기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1개월 쯤은, 아니면 짧게라면 1주일이라도 쇼핑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시도해 볼만 한 일이 아닐까? 무소유의 행복이라는 법정 스님의 말씀이 굳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사거나 기뻐하는 의무감에서 해방되는 주말을 맞이해보는 것도 참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 TV에서 가증스러운 목소리로 우리를 유혹하는 홈쇼핑 광고부터 리모컨을 과감히 돌려본다면, 하루에도 몇 장씩 문에 붙어 있는 할인 광고 전단지부터 바로 분리수거함에 버리는 습관을 들인다면, 오늘만 특가라고 반짝이는 인터넷 배너 광고를 차단한다면 한 달이 지나도 별로 줄지 않은 지갑과 오히려 카드 결제일을 기다리게 되는 즐거움과 마트에서 쇼핑카를 끌고 다니며 정신없어 하지 않는 여유로운 휴일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