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의 수상한 여자들
브리짓 애셔 지음, 권상미 옮김 / 창해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어느 책 이벤트에서 “당신은 죽음 앞에서 사랑한 기억을 떠올릴 것인가 사랑받은 기억을 떠올릴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 질문에 나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내가 사랑했고 나를 사랑해준 부모님, 아내가 먼저 떠오르고 마음 속 깊이 꼭꼭 숨겨둔 오래전 사랑의 얼굴 또한 떠오르면서 “당신도 안녕”이라고 마음 속 인사를 건넬 것이라고 답변을 썼었다. 만약에 마음 속 인사가 아니라 아내에게 오래전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사람을 죽기 전에 한번만 보고 싶다고 털어놓는다면 과연 어떨까? 아내는 영원한 이별을 앞에 두고 모든 것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을 불러줄 수 있을까? 아니면 나의 뻔뻔함과 배신감에 치를 떨까? 브리짓 애셔의 “내 남편의 수상한 여자들(창해, 2010년 5월)”는 죽음을 앞둔 남편이 옛 애인들을 불러 모으는 기상천외하면서도 재밌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여주인공 루시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아티 쇼어맨과 결혼한 뒤 남편의 ‘바람’에 대해 알게 되고는 몇 달 동안 별거 생활에 들어간다. 어느날 어머니에게서 남편이 불치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온 루시는 남편에게서 죽기 전에 옛 애인들과 오랫동안 숨겨놓은 아들을 불러달라는 말도 안 되는 부탁을 받는다. 남편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던 루시는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 마음으로 전화번호부에 나와 있는 옛 애인들에게 전화를 하고 숨겨논 아들의 주소를 알아내 그에게 아버지 아티를 소개시키기로 한다. 연락한 지 하루 만에 아티가 자신의 생명을 구했다는 젊은 여인 엘스파, 루시와 결혼 직전 사귀었다는, 전화 받자 마자 폭언을 퍼붓던 과부가 속속 들이 닥치면서 기상천외한 옛 애인 맞아들이기가 시작된다. 번호표까지 배부해야 할 정도로 줄줄이 나타나는 여인들, 루시는 그녀들을 만나면서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과 함께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되고 처음으로 달려왔던 엘스파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며, 그녀의 부모에게 맡겨놓았던 딸을 찾는 여행에 동참하게 된다. 그 와중에 아티의 숨겨놓은 아들이라던 존과의 미묘한 애정이 싹트게 되지만 존의 정체를 알게 되고서는 분노하게 되고, 아티 앞에서 털어놓는 존의 이야기에 그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마침내 아티는 숨을 거두고 아티의 장례식에는 아내 루시와 그가 사랑했고 그를 사랑했던 수많은 아티의 여인들이 모두 모이는 기묘하지만 결코 우스꽝스럽지만은 않은, 그를 추억하는 흥겨운 자리가 된다. 

 책 읽는 내내 이 기상천외하고 기발한 전개에 입가에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결말이 모두 용서하는 훈훈한 분위기가 될 것이라는 뻔한 결론이지만 이런 황당한 사건을 겪으면서 때론 분노하고 때론 공감하는 루시의 복잡한 속내를 그려내는 작가의 글 솜씨에 뻔한 결론조차 모두 용서가 되는 그런 책이었다. 다 읽고 나서 문득   내가 루시 입장이라면 죽음을 앞에 두고 뻔뻔스럽게 자신의 옛 연인들을 불러 모으는 내 아내를 용서할 수 있을까, 나도 루시처럼 그 남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해서 아내의 장례식장에서 아내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며 웃고 떠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이 책과 같은 소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비현실적인 상상이긴 하겠지만 루시처럼 굴 자신이 영 없다.  위에서 이벤트 질문에는 마음 한켠으로 옛 사랑을 떠올린다면서 내 아내의 옛사랑에는 지극히 엄격한 그런 이중성을 가진 어쩔 수 없는 이기적인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책의 이야기는 그저 남의 이야기라면 재밌겠지만 내가 닥친 현실이라면 말도 안되게 싫을 그런 이야기인 셈이다. 이 책이 지금 헐리우드에서 영화화하고 있다니 시끌벅적하고 유쾌한 아티의 장례식을 이제 영화로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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