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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제임스 - 나사의 회전 외 7편 ㅣ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31
헨리 제임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4월
평점 :
전혀 읽을 생각이 없었던 헨리 제임스(Henry James 1843~1916)의 책을 내가 2024년 첫 책으로 고른 이유는 지난 달에 읽은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에서 저자 테리 이글턴이 헨리 제임스의 작품을 거론하며 그 문체의 난해함을 이야기한 데 기인한 것이다. 예전에 <워싱턴 스퀘어>를 별 어려움 없이 재미있게 읽었던 나는 '헨리 제임스가 그렇게 어려운 작가인가?'라는 호기심이 생겼고, 이번 기회에 한 번 읽어보자고 결심한 것. 그의 몇몇 작품들의 번역이 안 좋다는 말을 들어서(이제는 왜 번역이 그렇게 말이 많았는지 이해가 감) 어떤 책으로 읽을까 고민하다가 '나사의 회전'을 비롯한 7편의 작품이 실려있는 가성비 갑인 현대문학의 세계문학 단편선31 <헨리 제임스>로 결정했다.
헨리 제임스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112편의 중단편을 썼는데 이 책에는 총 8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비교적 읽기 쉬운 초기작부터 쓰여진 순서대로 작품을 배치하여 시기에 따른 작풍의 변화를 총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이 중에는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긴 <데이지 밀러>와 <나사의 회전>도 있는데, 이 두 작품은 다른 출판사에 단 권으로 나와 있기도 하다.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8편의 이야기를 읽은 소감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지루하다'이다. '소설을 읽으며 이렇게 지루함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중간에 포기할 뻔 했지만 '이게 헨리 제임스의 마지막이 될 거다'라는 희망으로 결국엔 끝까지 다 읽어냈다.
헨리 제임스의 출세작 <데이지 밀러>도 1879년 초판본이 아닌 헨리 제임스가 대대적으로 수정하고 보완한 1909년 뉴욕본을 번역한 것으로, 초판본보다 더 설명이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모호하면서도 장황한 묘사로 인해 오히려 더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니 <데이지 밀러>를 읽고 싶으신 분들은 펭귄 출판사에서 나온 초판본을 읽으시기를 추천한다. 물론 초판본과 뉴욕 수정본을 두고 비평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초기작이 더 명쾌하고 직설적이라 좀 더 설득력이 있다고 한다.
내가 8편의 이야기 중 가장 재미있게 읽은 이야기는 역시 <나사의 회전>이었다. 만약 이 작품을 단 권으로 읽었다면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을 텐데, 워낙 앞의 6개의 이야기에 지쳐 있었기에 그에 비해 흡입력이 있는 이 작품은 재미있게 다가왔다.
<나사의 회전>은 20대 초반의 가정교사가 부모를 잃은 두 남매가 사는 저택에 오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고 있는데 역시나 인물의 심리와 의식에 대한 묘사로 소설이 전개된다. 근데 그 묘사가 쌓여갈수록 인물의 상태를 알기가 더 힘들어진다는 게 이 작품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라고 할까...
이 소설에서 가장 많이 논란이 되는 '가정교사가 정말 유령을 보았을까, 유령이 정말 있는 것일까'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왜 이 가정교사는 유령을 보게 되었을까?'에 주안점을 두고 읽는 게 이 소설을 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여덟 번째 이야기<정글의 짐승>을 앞두고 '오 이것만 읽으면 끝이구나!'하고 뿌듯했다.
근데 정말이지 나의 독서 인생에 이렇게 고통을 안겨준 이야기는 없었다. 작가가 1903년에 발표한 후기 작품으로 아무리 읽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으니 테리 이글턴이 헨리 제임스의 문체를 두고 왜 그렇게 난해하다고 반복해서 말했는지 이해가 갔다. 그러니 헨리 제임스의 책을 읽게 된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뒤에 역자 해설에서 '캐밀 파야'라는 평론가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어찌하여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제임스의 소설을 읽다가 비명을 지르며 그 책을 갈가리 찢어 버리고 도서관에서 달려 나가지 않을까, 나는 그게 궁금하다."(p.644)
역자는 오히려 고통스럽게 원서를 읽는 영미권의 독자보다 번역본으로 읽는 한국의 독자가 차라리 낫다고 위로 아닌 위로까지 덧붙인다.
게다가 내가 욕을 하며 읽었던 <정글의 짐승>은 헨리 제임스가 자신이 쓴 112편의 단편 중 가장 잘 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고 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재미도 없고 지루하며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이 책에 별 4개를 준 것은 그래도 인물들의 내면을 언어로 표현하기 위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묘사해 모더니즘 문학의 선구가 된 작가의 업적과 번역하느라 고생하신 역자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