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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 - 쇼스타코비치와 레닌그라드 전투
M. T. 앤더슨 지음, 장호연 옮김 / 돌베개 / 2018년 4월
평점 :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은 미국의 소설가이자 클래식 음악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는 M.T. 앤더슨(1968~ )이 2015년 발표한 책이다. 부제는 '쇼스타코비치와 레닌그라드 전투'로 쇼스타코비치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역사상 가장 긴 포위전으로 기록된 레닌그라드 전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1906년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가 다스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나 1917년 혁명을 거쳐 레닌, 스탈린, 흐루쇼프로 이어지는 격동의 세월을 살다 갔다. 저자는 70년에 걸친 쇼스타코비치의 생애를 좇아가며 2차 세계대전 중 가장 길고 처참한 전투였던 레닌그라드 포위전과 그런 레닌그라드에서 폭격을 견디며 그가 작곡한《교향곡7번》에 얽힌 극적인 이야기를 생생한 130컷의 도판과 함께 유려한 문장으로 서술한다.
이 책의 주인공은 참혹한 레닌그라드 전투 속에서 탄생한 일명 '레닌그라드 교향곡'으로 불리는《교향곡7번》이다. 1941년 6월 22일 독일은 소련을 침공하고 9월에는 레닌그라드를 공격, 역사상 가장 긴 포위전을 벌인다. 독일군의 872일 동안의 포위는 100만 명이 넘는 레닌그라드 사람들을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게 만들었는데, 1942년 1월과 2월에만 대략 20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시체를 끌고 갈 기력이 없어 거리에는 시체가 버려진 채로 방치되었고 '아파트 건물 전체가 시체 세입자들로 가득했다.' (p.375)
그렇지 않아도 스탈린의 공포정치로 고통을 받던 레닌그라드 시민들에게 독일의 공격은 그야말로 또 다른 혹독한 시련이었다. 처음에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같은 소비에트 위성국에서는 나치의 침략을 돕기까지 했다고 하니 스탈린의 폭정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다.
쇼스타코비치는 1941년 7월 19일 독일이 레닌그라드로 진격해 올 때 《교향곡7번》의 작곡을 시작한다.
["나는 《교향곡7번 레닌그라드》를 아주 빠르게 썼다.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사방이 전쟁이었다. 나는 인민들과 함께 있어야 했고, 궁지에 몰린 조국의 이미지를 만들어서 음악에 새기고 싶었다."(p.275)]
9월 3일 첫 악장을 완성하지만 그 날 이후로 독일군의 폭격기가 도시를 덮었고 화염에 휩싸인 도시에서 쇼스타코비치는 9월 8일, 2악장의 작곡을 시작한다. 그가 새 교향곡을 작곡하고 있다는 소식이 권력자의 귀에 들어가고 그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레닌그라드 시민들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전한다.
["한 시간 전에 최근에 작업하고 있는 대규모 관현악곡의 2악장을 마무리했습니다. (...) 내가 왜 이 사실을 여러분에게 말할까요? 그것은 지금 라디오를 듣고 있는 레닌그라드 인민들이 우리의 도시에서 삶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 나의 삶과 작품은 레닌그라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 새 작품을 들고 다시 방송에 나와 나의 노력에 대한 정당하고 다정한 평가를 기다리겠습니다." (p.302)]
폭탄이 쏟아지는 포위된 도시에서 쇼스타코비치가 레닌그라드를 위해 곡을 만들고 있다니 당시 레닌그라드 시민들에게 이 사실은 얼마나 큰 감동으로 다가왔을까...
쇼스타코비치는 고사포가 불을 뿜고 폭탄이 떨어지는 가운데 밤낮없이 작곡에 매진하여 9월 29일 3악장 아디지오를 마무리한다. '죽은 자를 위한 레퀴엠처럼' 들리는 3악장은 '폭격기들이 레닌그라드를 화염과 먼지와 죽어가는 사람들의 울음으로 채웠을 때 쇼스타코비치가 쓴 음악'(p.319)이다.
그리고 쇼스타코비치 가족은 당국으로부터 대피명령을 받고 10월 1일 레닌그라드를 탈출한다. 쇼스타코비치는 레닌그라드를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가족을 위해 떠나기로 하고 모스크바를 거쳐 쿠이비셰프에 도착 그곳에서 4악장을 작곡한다. 그리고 마침내 1942년 3월 5일,《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초연이 사무일 사모수트의 지휘로 쿠이비셰프에서 열린다.
청중은 압도되고 '당국은 신이 났고 지식인들은 감동했다. 전 세계 지휘자들이 앞다투어 연주하겠다고 했다.' (p.405)
《교향곡7번》의 악보가 서방에 전달되는 과정은 이 책의 프롤로그에 나오는데,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한다. 252페이지 악보는 30미터 길이의 마이크로필름에 담겨 독일의 포위망을 뚫고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거쳐 대서양을 지나 브라질에서 미국으로 건너간다. 그리고 《교향곡7번》은 1942년 런던과 뉴욕에서 초연되는데, '포위된 레닌그라드 이야기와 여러 대륙을 넘어온 마이크로필름 이야기가 미국인들을 쇼스타코비치 열병'(p.422)으로 들끓게 만들었다.
수백만 가정이 라디오로 연주를 들으며 전쟁에 나간 아버지, 남편, 아들을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들었다.' 한 전기 작가는 '러시아 어머니의 눈물인 동시에 미국 어머니의 눈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교향곡7번》덕분에 미국의 원조는 가파르게 늘었고 이제 소련은 적이 아니라 힘을 합쳐야 하는 동맹국이라는 인식이 싹트게 된다.
1942년 8월 9일, 전 세계를 감동시킨《교향곡7번》이 드디어 레닌그라드에서도 울려 퍼졌다.
그날의 연주는 확성기를 통해 독일 군 적진까지 퍼져 나갔다. 세월이 흐른 뒤 당시 독일 군이었던 군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에게 느리지만 강력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가 결코 레닌그라드를 차지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서서히 들었습니다."(p.450)
《레닌그라드》교향곡은 모든 사람들에게 각기 다르지만 어떤 소중한 의미로 다가왔다. 미국인에게는 동맹국으로서의 연대감을, 러시아인들에게는 승리의 희망과 레닌그라드 주민으로서 자긍심을 갇게 했고 이는 생존을 향한 의지로 이어졌다. '교향곡으로 인해 레닌그라드 주민들의 희생은 러시아의 자부심이 되었다.'(p.451)
소비에트 당국은《교향곡7번》을 '반(反)나치 투쟁의 찬가'로 치켜세웠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가 《교향곡7번》에 담은 메세지는 파시즘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스탈린에 대한 저항을 담고 있다는 주장이 솔로몬 볼코프가 쓴 쇼스타코비치 회고록 <증언>에 나온다. 그 책에서 쇼스타코비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이 주제를 작곡할 때 인간성을 위협하는 또 다른 적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 히틀러가 범죄자임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은 스탈린도 마찬가지다 …… 사실 나는 《7번》을 《레닌그라드》교향곡이라고 부르는 것에 불만이 없지만, 포위된 레닌그라드를 그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스탈린이 파괴했고 히틀러는 그저 마무리했을 뿐인 레닌그라드에 관한 것이다.(p.366)]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곡을 하나의 주제로 한정지으려 하지 않았다. 쇼스타코비치가 말했듯이 '이 음악은 온갖 형태의 공포, 예속, 영혼의 속박에 관한 것'(p.365)이었고, 반히틀러, 반스탈린의 주제를 넘어선 인간의 영혼을 말살하는 모든 악에 대한 것이었다.
쇼스타코비치는 1975년 8월 9일에 세상을 떠났다. 1942년《교향곡7번》이 레닌그라드에서 초연된 바로 그날이었다.
"내 교향곡은 대부분이 묘비다" (p.485)
그가 죽기 직전에 남긴 말이다.
책 제목처럼 그의 곡들은 죽은 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독일군의 공격과 포위로 죽거나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곡이었다. 그러나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곡이기도 했다. 레닌그라드에 갇힌 사람들에게 현실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줬고, 결국 그들은 레닌그라드를 지켜냈다.
굶주림과 추위로 죽어가던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이 곡에서 희망을 봤고 '하나 된 일체감'을 느꼈다. 절망이 희망으로, 죽음의 도시가 생명의 도시가 되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저자는 이것을 이야기의 힘이라고 말한다. 나치의 눈에 인간 이하로 보였던 사람들이 이렇게 멋진 이야기를 만들고 그 위력을 보여줬다.
쇼스타코비치는 “너무도 많은 우리 인민들이 죽었고, 심지어 친척들도 모르는 곳에 묻혔다. 내 친구들도 많이 그런 일을 당했다. 메이예르홀트나 투하쳅스키의 묘비를 어디에 세우겠는가? 오로지 음악만이 그들을 위해 그렇게 할 수 있다." (p.485)고 말한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쇼스타코비치보다는 레닌그라드 전투때문이었다. 쇼스타코비치가 누군지도 잘 몰랐고 그의 교향곡은 더더욱 몰랐다. 그런 내가 유투브에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을 찾아듣고 심지어 듣다가 눈물이 차오르기까지 했다.
예술가들의 생애는 늘 그 시대에 내가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하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며 포위된, 공습경보가 울리고 폭탄이 떨어지는 레닌그라드의 한복판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지는 상상을 했다.
당시 사람들이 들었을 그의 음악, 그가 레닌그라드에 바치는 그 음악이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을지는 글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저자의 말대로 '말은 주제를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p.185) 이 책을 읽으면 쇼스타코비치의《교향곡7번》이 무조건 듣고 싶어진다. 그리고 계속 반복되며 점점 소리가 커지는 1악장의 침략 에피소드는 잠이 드는 순간까지 머리 속에서 울린다.
조만간 줄리언 반스의 <시대의 소음>을 읽으려고 한다.
1912년 쇼스타코비치 삼남매 (조야, 드미트리, 마리야 쇼스타코비치)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정장을 차려입고 작곡을 한 쇼스타코비치
1942년 8월 9일, 《교향곡7번》레닌그라드 초연에서 카를 엘리아스베르크가 레닌그라드 라디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다.
말년의 쇼스타코비치. 그는 총 15곡의 교향곡과 15곡의 현악4중주를 작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