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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평점 :
작년 12월 국내에서 출간 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요즘 자주 눈에 띈다. 근데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단지 평이 좋아서가 아니라 처음 이 책의 제목과 표지를 봤을 때부터 그냥 무조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내용인지, 소설인지 에세이인지도 모르지만 그냥 끌렸다. '내가 아는 그 물고기가 물고기가 아니란 말인가? 정말 그렇다면 참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2020년 미국의 과학 전문 기자 룰루 밀러(Lulu Miller)가 쓴 책으로 '2020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 여러 언론 매체와 작가들에게서 많은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이 책이 그녀의 데뷔작이라는 사실이다. 책을 펼치면 이 책에 쏟아진 수많은 찬사의 글들이 4페이지에 걸쳐 나오는데, 제일 처음에 나오는 <더 내셔널 북 리뷰>의 평이 짧으면서도 인상적이다.
"책의 모양을 한 작은 경이."
도대체 어떤 내용의 책이길래 이렇게 다들 칭찬 일색인지 첫 장을 넘기면서부터 설레이기 시작했는데, 이야기는 19세기에 활동한 과학자(분류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David Starr Jordan)의 소개로 시작된다. 그는 '모든 동식물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밝히기 위해 평생을 바친 과학자로 '당대 인류에게 알려진 어류 중 5분의 1이 모두 그와 그의 동료들이 발견한 것'(p.16)이었다. 그는 거의 천 종에 달하는 물고기를 잡아 각각 이름을 지어 주었고, 에탄올이 담긴 병에 이름표와 함께 물고기를 넣어 보관하고 분류, 이 작업에 30년이라는 시간을 바친다. 그러나 1906년 일어난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그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집한 수백 마리의 물고기들이 깨진 유리와 함께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대참사가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이 책의 저자인 룰루 밀러가 이 집요한 과학자에게 깊은 인상을 받게 되는 일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이런 절망 속에서도 전혀 낙담하지 않고 어디선가 바늘을 가져와 형체가 온전한 표본에 이름표를 꿰매며 다시 자신의 일을 하는 바로 그 모습이었던 것이다.
당시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 처해 있던 저자는 이런 데이비드의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모든 게 사라지고 부서지고 희망이라곤 없는 최악의 날에 조차 어떻게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밖으로 나가게 한 것'(p.126)인지 강한 호기심을 갖는다. 그리고 절박한 자신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워 줄 그 어떤 비결을 그로부터 얻을 수 있다 생각하고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해 파고들기 시작한다.
이쯤에서 나는 '아 이 책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사람에 대한 전기문이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근데 3장부터 저자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오면서 자전적인 성격의 에세이로 흐르다가 다시 데이비드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조던의 삶과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저자는 조던을 이해하기 위해서 '왜?'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며 과학, 철학, 심리학에 관한 분석과 그 지식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데, 처음에는 편안하게 받아들였던 이야기에 독자는 점점 강하게 빨려들게 된다. 또한 중간부터는 추리스릴러 소설을 읽는 것처럼 긴장이 고조되면서 조금씩 진실에 다가가게 되는데... 더 이상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먼저 책을 읽으신 많은 분들이 이 책은 절대로 그 어떤 내용도 미리 알려고 하지 말고 그냥 읽으라고 했는데, 다 읽고 나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사실 이 책에서 저자 룰루 밀러가 전하고 싶은 메세지는 겸손하고 생각이 있는 독자라면 이미 알고 있는, 적어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이 나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온 이유는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방식이 신선했고 그만큼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보여준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저자가 말한대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p.264)하는 마음에서 100퍼센트 다 믿지는 못한다 하더라도(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늘 어느 정도 윤색이 가해지는게 아닐까?) 과학과 개인의 삶을 오가며 보여준 저자의 글쓰기는 충분히 매혹적이고 '경이'롭다.
이 책의 부제는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이다.
'숨어 있는 삶의 질서'가 궁금하신 분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 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 P227
그 좋은 것들, 그 선물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량함은 노려보게 해주고, 그것을 더 명료히 보게 해준 요령을 절대 놓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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