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의 결탁 - 퓰리처상 수상작
존 케네디 툴 지음, 김선형 옮김 / 도마뱀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그네이셔스 J 라일리, 서른 살의 고학력 뚱보 백수이자 스스로 말하길 '시대착오적인 존재'로 입만 열었다하면 궤변에 사실을 과장, 왜곡하는 그야말로 별종 중의 별종이다. 

이 심상치않은 인물의 묘사가 첫 장부터 시작되는데, 예사롭지 않다. '살덩어리 풍선같은 머리통 윗부분을 쥐어짜듯' 덮고 있는 초록색 사냥모자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 '검은 콧수염', '두툼한 입술', '거들먹거리는 파랗고 노란 두 눈', '육중한 엉덩이', '부픗부픗한 살들', 양쪽 입 주면의 '포테이토칩 부스러기' 등이 그를 묘사하는 단어들이다.


수시로 트림을 하고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 유문! 유문이 또 닫히고 있어!" 라며 가스로 부푼 배를 끓어 안고 끙끙 앓으며 침대 위에서 난리를 친다. (유문-사진 참조)

또한 뻔뻔하고 매우 이기적이며 때로는 교활하기까지 하다. 

더 웃긴 건 그는 석사학위까지 받은 고학력자로 중세철학에 해박하고 그 시대를 신봉하기까지 하는데, 그의 이런 해박한 지식과 과대망상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말과 행동들이 정말 기가 차게 웃기다. 그는 중세 체제가 붕괴하면서 '고결했던 인류가 이토록 저열하게 타락'했다며,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이 세기를 몹시도 혐오'하며 홀로 악으로 가득찬 세상과 싸운다. 


그의 방에는 '신학과 기하학'이 사라진 타락한 현대문명을 비판하는 글들로 가득찬 노트들이 바닥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는데, 그에게 이 노트들은 '지성의 조각들'이며, 언젠가는 이 글들이 '역사에 길이 빛날 위대한 비평 작업'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런 거만한 과대망상에 빠져 입만 벌렸다하면, "인류의 미래를 위해 너희 모두가 불임이기를 바란다."(p.86) 와 같은 독기서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내고, 유일한 가족인 엄마에게도 "어머닌 고해실에서 채찍으로 좀 맞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p.98)라며 패륜적인 말도 서슴치 않는 그의 고약한 언변에 나는 또 책 위로 얼굴을 파묻고 얼마나 'ㅋㅋㅋㅋㅋ' 했는지... 


자신의 방에 들어오려는 엄마에게 말하는 이그네이셔스를 보자.


"대체 지금은 왜 들어와 계신지 모르겠군요. 어째서 갑자기 제 성역을 침범하겠다는 강박을 갖게 되신 거랍니까? 이 성역이 낯선 영혼의 침입이라는 트라우마를 겪고서 다시는 예전 상태로 돌아가지 못할까봐 심히 우려스러운데요." 


"어머니, 지금 제 노트를 밟고 계시잖습니까. 제발 좀 비켜서 주시겠습니까? 소화기능을 망친 걸로도 모자라 두뇌의 결실마저 망쳐버려야 만족하시렵니까?"


"맙소사, 이렇게 전적으로, 이렇게 철저하게 습격당하고 포위당한 인간이 역사상 또 있을까. 대체 어머니를 이토록 광적인 흥분 상태로 몰아간 게 뭐란 말입니까? 지금 제 콧구멍을 공격하고 있는 이건 혹 싸구려 와인 냄새인가요?" (p.80)


아들과 단지 이야기 나누려고 들어온 엄마에게 '습격', '포위' 라는 단어를 쏟아내는 저 냄새나는 뚱보를 어쩌면 좋은가...대학원까지 나와 집에서 뒹굴거리며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이상한 글들이나 써대는 주제에 수시로 엄마에게 잔소리해대며 말대꾸하는 그가 얄미워 주둥이를 한 대 때려주고 싶기도 하지만...'아, 이그네이셔스! 널 어쩌면 좋니' 알 수 없는 애정과 측은한 마음에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다.


음주운전으로 건물을 파손한 엄마에게 건물주가 배상액 $1,020 을 청구하자, 참다못한 엄마는 백수 아들에게 이젠 나가서 돈을 벌어오라고 요구한다. 엄마와 실랑이를 벌이다 마지못해 백수 생활을 청산하고 자신이 그토록 경멸한 자본주의 체제와 '정면 대결'을 벌이게 되는 이그네이셔스. '은둔하고 명상하고 연구하는 일'에서 잠시 떠나 취업전선에 뛰어든 그는 가는 곳마다 사건,사고를 일으키며 욕을 먹고 무시당하며 조롱받지만, 끝까지 자신의 벨탄샤웅(세계관)을 고수, 이 과정에서 만나는 '뉴올리언스의 하류 인생들'과 어우러져 한바탕 벌이는 난장판은 큰 웃음을 선사한다. 


1960년대 초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바보들의 결탁>은 1981년 퓰리처상 수상, 뉴욕타임즈 선정 '지난 25년간 출간된 최고의 미국 소설'로 격찬을 받은 책이다. 

뉴올리언스는 작가 존 케네디 툴(1937~1969)의 고향으로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하고 싶다. 왜나하면 이 작품은 그의 사후 11년만에 세상에 나오게 되었고 엄청난 상업적 성공과 함께 퓰리처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컬럼비아 대학에서 문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박사 과정을 밟던 중 군대에서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강한 확신이 있었으나, 출판사에서 계속 거절을 당하자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큰 실망을 하게 된다. 거기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기대를 걸었던 어머니'와의 갈등과 '이런저런 삶의 무수한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차츰차츰 심각한 편집증과 우울증'(p.554 작품해설)에 빠지게 되고, 결국 1969년 어머니와 크게 싸우고 가출한 후 자신의 차에서 사체로 발견, 32살의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러나 훗날 그의 어머니 셀마는 아들의 원고를 들고 백방으로 나서고, 1976년 당시 로욜라 대학에서 강의하던 워커 퍼시에게 아들의 원고를 읽어달라고 간절히 부탁, 귀찮은 마음에 몇 페이지 읽어보고 형편없다며 거절하려던 퍼시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이 원고의 경우는 계속 읽었다.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처음에는 그만 읽어도 될 만큼 형편없는 원고가 아니어서 낙심한 채로,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짜릿한 흥미를 느끼면서, 그러다 점차 강도를 더해가는 흥분상태로, 급기야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심정으로 나는 읽고 있었다. 이렇게 훌륭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p.7 서문)



아마 이 워커 퍼시라는 작가는 뉴올리언스 특유의 사투리를 '걸쯕하고도 생생하게, 아주 풍부하고도 가장 정확하게 구사한'(p.558 작품해설) 이 소설을 자신의 언어로 읽었기에 더욱 재미있고 문학적인 면에서도 걸작으로 다가왔을것이다. 번역으로 읽어야 하는 나는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역자가 후기에서 아쉬워하는 점도 그 부분이다. 너무나 풍부한 뉴올리언스 사투리를 도저히 번역본으로는 살릴 수 없었다며, 개중에는 보통 미국인도 이해하기 힘든 문장도 있었다고 한다. 


그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유일무이한 캐릭터 이그네이셔스. 그가 빚어내는 갖가지 소동과 1960년대 뉴올리언스 도시가 간직한 독특한 분위기와 삶의 모습들이 코믹하게 펼쳐지지만, 그 웃음 뒤에는 알 수 없는 슬픔과 가슴저림이 따라오는데, 그건 작가의 이런 삶이 이그네이셔스와 겹쳐지기 때문일 것이다. 죽은 아들의 소설을 읽은 엄마의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


뉴올리언스에 가면 실재로 이그네이셔스의 동상이 작품 속에 나오는 커낼 거리에 세워져 있다고 한다. 동상이 여러번 도난당할 뻔해 전시된 자리를 바꿔야 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색다른 코미디 걸작을 만나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한다. 

이 작품은 웃기는 거 하나만으로도 별 5개 받을 자격이 된다!


참고로 이 소설은 북플 친구 폴스타프님의 2017년 독서 시상식에서 "웃다가 오줌쌌어 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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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4-08 16: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앗!
그 사이에 이 책이 품절이네요!!
아이고 아까워라. 정말 웃다가, 웃다가 그만 발 뻗고 한바탕 울어버리고 싶은 책인데요!!!

coolcat329 2021-04-08 19:13   좋아요 1 | URL
품절인데 가끔 중고서점에서 보이더라구요. 최고의 블랙 코미디 소설이에요~!

새파랑 2021-04-08 17: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쿨캣님 극찬에 폴스타프님상 받은 책이어서 관심이 가는데 품절이라니..

coolcat329 2021-04-08 19:18   좋아요 1 | URL
중고서점에서 몇 번 봤네요. 기회되시면 꼭 읽어보세요. 출판 거절 이유가 소설에 요점이 없다고 했다는데 저는 이 캐릭터에 열광한 쪽이었습니다. 호불호가 나뉜다고 역자가 그러네요.

미미 2021-04-08 19: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저런상도 있었나요?!! 해당글 궁금하네요! 일단 찜하고 다 뒤져봐야겠어요. 제발..

coolcat329 2021-04-08 19:20   좋아요 2 | URL
네 ㅋ 이 작품과 경쟁작들도 있답니다ㅋㅋ

scott 2021-04-08 2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걸작 코메디 넘 잘팔려서 완판!
품절 된걸 까요??
저도 일단 찜 ㅎㅎ

coolcat329 2021-04-09 07:09   좋아요 1 | URL
잊혀져가는 책 중 하나같아요. 기회되시면 읽어보셔요~^^

페넬로페 2021-04-08 2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재미 있을것 같아요^^
검색하니 도서관에 있네요
저도 찜합니다**

coolcat329 2021-04-09 07:10   좋아요 2 | URL
재밌게 읽으시길요~~

얄라알라 2021-04-08 23: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 부픗부픗한: 이 단어 오늘 처음 보았어요^^ 네이버까지 검색했네요.
2. 유문: 이 단어 중학교인가 고등학교 교과서 이후 처음 보았어요.
3. 이그네이셔스: (제 눈엔) 넘나 얌체 캐릭터.

리뷰만 봐도 진짜 재미있을 것 같아요!^^

coolcat329 2021-04-09 07:17   좋아요 0 | URL
저는 유문이 뭔지 이 책 읽고 알았네요 😬 이 소설 키워드 중 하나가 ‘유문‘일 정도로 많이 나오거든요. ㅎㅎ

레삭매냐 2021-04-17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말 아주 오래 전에 이 책
을 사두었는데 아직도 못 읽고
있네요. 이제 심지어는 어디에 두
었는 지도 모르겠더라구요.

읽고 싶어지는 마음, 뿜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