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세계문학세트>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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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 중국 ㅣ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스져춘 외 지음, 이욱연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평점 :
문학 작품을 고를 때 작가나 특정 계보를 많이 따지는 편이지만, 유독 중국문학만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무조건 손이 간다. 특별히 중문학에 일가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중국 문화에 대해 열광하며 추종하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중국문학에 유독 눈길이 가는 이유는 중국문학만이 가지고 있는 어떠한 특질과의 궁합 때문이라고 해 두자.
중국은 전통적으로 장편 서사문학이 발달했고, 그와 동일한 토양에 뿌리를 드리운 문학인만큼 현대에도 풍부한 서사를 담은 작품들이 유독 많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중국 문학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소탈하고 진솔하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민초들의 삶을 때로는 적나라하게,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때로는 질펀하게 그려 놓는다. 민중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진솔한 육담 속에는 중국 근대사에 대한 예리하고 신랄한 비판이 있는가 하면, 어김 없이 비루한 민초들에 대한 동정과 애정이 스며있다. 관념보다는 주로 생활에 치중하기 때문에 술술 잘 읽히는 것 또한 중국 문학의 매력이다.
현대 중국문학을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루는 이러한 특징들은 중국 근대로부터 형성된 것이다. 창비세계문학전집 중국편인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에는 이런 중국 근대문학의 흐름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단편들이 실려있다. 중국 근대문학의 시작을 알린 루쉰의 <아Q정전>을 비롯해, 위따푸, 쳔중원, 빠진, 마오뚠, 스져춘, 랑오셔, 띵링의 단편 9편이 실려있다.
아시아 대부분 국가의 근대문학이 그러하듯이 중국의 근대문학 또한 격변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탄생했다. 아편전쟁을 통해 싹트기 시작한 반봉건 의식은 신문화운동, 신해혁명을 거치며 보다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이러한 역사적 위기의식 속에서 루신과 같은 작가는 <아Q정전>, <고향> 등의 작품을 통해 반봉건의 기치를 강하게 내보이고 있다. <아Q정전>은 신해혁명을 배경으로 하여 아Q라고 불리는 한 무지한 백성의 파멸 과정을 그리며 중국인의 노예근성과 혁명의 무용함에 대해 통렬히 풍자한다. 위따푸는 <타락>이란 작품에서 청년들의 내면을 통해 중국인의 민족성의 회복하려는 시도를 보여주는가 하면, 라오셔는 <초승달>이란 작품을 통해 빈곤의 문제를 여성의 시각으로 담담하게 보여준다. 아나키즘을 내걸고 있는 빠진의 <노예의 마음> 또한 중국인의 정신적 전근대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편 쳔충원의 <샤오샤오>같이 역사와 민족에서 한 걸음 물러나 인간의 자연성 자체를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도 있으며, 표제작인 스져춘의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처럼 비 내리는 저녁 나절동안 벌어지는 한 남성의 심리를 파헤치면서 도시적 감성을 내비치는 감각적인 모더니즘 계열의 작품도 실려 있다.
중국 근대문학은 서구 문화와의 접촉을 계기로 위기 극복과 반성의 일환으로 촉발되었으나, 전통적으로 장편 서사문학이 발달했던 토양에서 싹튼 중국 문학만의 고유한 특질을 찾아볼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근대 문학의 다양한 문예 사조를 망라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당대 중국의 세태 및 역사 의식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위화나 쑤퉁, 모옌 등 중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이러한 특질은 변함없이 발견된다. 이들의 작품 간의 영향관계를 추측하며 중국 근대문학의 대표작들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