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시선>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한낮의 시선
이승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부재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과 달리 인식하기 어렵다. 그러나 인식하지 않는다고 해서 부재한다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 속의 결핍은 어떤 계기를 통해서든 표면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결핍이 드러나는 순간, 그것이 모르는 사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지배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된다. 

이승우의 <한낮의 시선>은 내면의 부재를 깨닫고 그 빈 자리를 찾아 나선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때 아닌 결핵으로 요양을 하고 있는 29세 대학원생인 주인공은 우연히 노교수의 방문을 받게 되고, 그와의 대화를 통해 내면 깊숙이 감추어진 아버지의 부재를 인식하게 된다. 그 동안은 인식할 필요가 없었던, 그래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에 대한 최초의 인식은 결핵균과 함께 표면으로 드러난다.

주인공을 둘러싼 두 개의 불완전함-육체적 불완전함과 정신적 불완전함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소설적 장치가 아니라 상호 밀접한 연관을 가진 채 작품 속에 기능한다. 폐병과 함께 아버지의 부재를 인식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불완전한 육체는 내면의 불안을 일깨우는 법이다. 아버지의 부재는 결국 자아의 일부가 결핍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며,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여정은 결국 자아의 완전함을 추구하는 본능에 다름 아니다. 요컨대 문제는 아버지가 아닌 자기 자신인 것이다. 그에게 결핍된 것도, 그가 찾아 나서는 것도 온전한 자기 자신이다. 작품 말미에 주인공은 토혈과 동시에 글로써 자신의 내면 의식을 가열차게 쏟아낸다. 어렵게 찾은 아버지에게 자신의 존재를 거부당하는 것은, 오히려 주인공의 내면을 정화하는 계기가 된다. 일방적인 부정이 아닌 상호 간의 부정이라는 깨달음이 막연한 불안을 잠재우게 된다. 불완전한 부재가 완전한 부재가 됨으로써 주인공의 내면은 오히려 더욱 견고해진다.

이러한 역설은 작품 첫 머리에 인용한 말테의 수기 중 한 문장과도 이어진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이 도시로 모여든다. 하지만 내게는 도리어 죽기 위해 모인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에게 '휴전선에서 가까운 인구 3만의 작은 도시'는 결국 부재를 메우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부재를 분명히 하기 위한 공간인 것이다.

소설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그러하듯 지극히 사색적이고 철학적이다. 작가는 서사보다는 인물의 내면의식에 깊이있게 천착한다. 누구나 내면에 언젠가 한번은 맞닥뜨려야 하는 속사정을 지니고 산다. 그 감추어진 내면의식은 어떠한 계기로든 한번은 분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존재에 대한 증거일 때는 더더욱. 그러나 줄곧 부정하던 자신의 의식을 스스로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작가는 그 과정을 치밀하게 보여주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소설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하루에 한 줄씩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에서처럼 작가는 주인공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사고를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포착하려는 치밀함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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