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토머스 하디 지음, 서정아.우진하 옮김, 이현우 / 나무의철학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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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하디의 초기 출세작이며 '최초의 페미니스트 문학'이라는 찬사를 등에 업은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Far from the madding crowd)>는 19세기 영국의 농촌을 배경으로 한 전원 소설이다. <테스>를 기억한다면 목가적인 풍경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와 함께 인물의 운명에 대한 치밀한 탐구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웨식스 소설'의 계보를 이루는 작품인 만큼 전원의 낭만이 한껏 느껴지는 묘사가 일품이다. 농부들이 낡은 선술집에 모여 싸구려 술을 걸치며 몸을 녹이는 모습이나 구슬픈 피리 소리가 퍼지는 해질녘의 서쪽 하늘의 쓸쓸한 풍경이 눈에 들어올 듯 서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배경이 소설의 분위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이 소설은 무엇보다 인물에 집중한다. 소설은 <테스>와 마찬가지로 주체적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주인공 밧세바 에버딘과 그녀를 둘러싼 세 남자의 사랑이야기라는 플롯을 가진 이 책은 인물의 성품을 묘사하는데 유독 공을 들인다. 흥미로운 것은 밧세바와 그녀를 둘러싼 세 명의 남자가 오늘날까지도 러브 스토리 속에 꾸준히 반복되는 인물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밧세바를 사랑하는 세 명의 남자는 지금도 텔레비전을 켜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전형성을 뚜렷하게 띤다. 이는 시간의 내압에도 살아남은 고전의 힘을 다시 확인시킨다.


가브리엘 오크는 뛰어난 배경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재능이 있고 성실하다. 강한 남성성에 어필하지는 못하므로 처음에는 늘 히로인으로부터 외면당한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마다 안팎으로 큰 도움을 발휘하며 조금씩 신뢰를 쌓는다. 이러한 성실함과 우직함으로 마지막에는 사랑을 쟁취하고야마는 대기만성형 인물이다. 혹은 사랑을 끝내 쟁취하지 못할 때는 그 애틋함으로 인한 동정이 히로인에 대한 비난으로 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트로이는 가브리엘 오크와는 대척점에 놓인 나쁜 남자의 전형이다. 근사한 배경과 외모 때문에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편이고, 강한 남성성을 보인다. 이성으로서 치명적인 매력이 있어 히로인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제격인 인물이다. 이러한 인물은 그 사랑이 진실할 경우 많은 지지를 얻지만, 대개는 '나쁜 남자'라는 오명대로 여자를 불행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많다. 볼드우드 같은 경우는 여자 앞에서 서툰 쑥맥의 이미지를 가지는데, 그 때문에 여자에게 휘둘리기 쉽고 한번 사랑에 빠지면 망상과 집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인물은 유약함이라는 결점 때문에 결코 히로인을 차지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는 이처럼 뚜렷한 성격을 보여주는 세 유형의 남자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차례대로 등장과 퇴장을 반복하며 소품처럼 소모되고 있지는 않다. 소설은 히로인을 둘러싼 구애와 거절의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이들 간의 얽힌 관계는 단조로운 사랑 놀음에 그치지 않고, 인물들이 적재적소에 부각되어 역동적인 플롯을 완성한다. 한 여자를 둘러싼 각기 다른 남자들의 구애는 여자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 이상으로 기능한다. 사랑이라는 큰 주제 아래에 욕망과 질투, 체념과 인내 등의 인간 감정을 두루두루 보여주고 있으며 그 일련의 감정들이 개연성있게 흘러가며 스토리를 유기적으로 조직한다. 성격과 환경이 하나의 상황을 만나 어떻게 운명을 이끌어 가는지에 대한 치열한 탐구가 드러난다.


고전이 그리는 세계는 낡고 오래된 것이 아니라 현실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신선하다. 그래서 변하지 않는 가치를 이야기하는 책들이 결국 살아남는다. 그것은 다양하게 변형되고 변질되기 이전의 모습을 담고 있어서 그 형태를 더 분명히 드러낸다.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는 일견 바람직한 배우자상에 대한 진부한 논점을 드러내는 것 같지만 그 가치가 오늘날까지도 유효하다는 점에서 상당한 진보성을 보여준다. 과연 거장의 작품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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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5-07-11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이 그리는 세계는 낡고 오래된 것이 아니고 현실을 새로 그린다는 말 정말 감동이네요 :) 이말 밑줄 안 그어도 잘 기억될 거 같습니다.
책도 장바구니에 넣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