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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전... 너무 못생겼어요."
코믹물에나 어울릴 것 같은 고백 아닌 고백을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뜻밖에도 본격 연애물이다. 유쾌하고 발랄하기보다 진지하고 어둡다. 그러나 로맨스의 여주인공으로 '너무 못생긴' 여자를 택했다고 해서 대단한 발상의 전복을 이루어 내었다고 감탄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한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박민규가 인터넷 연재 소설의 형식으로 발표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결핍'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의 구체적인 화두인 '못생겼다'는 것은 결핍의 한 종류일 뿐이다. 잘생기고 섬세한 '나'에게도, 관조적이면서 여유로운 요한에게도 결핍은 있다. '그녀'의 결핍이 외모에 있다면 '나'의 결핍은 아버지에게 버림당한 아픔에 있고, 요한의 결핍은 뒤틀린 가족관계와 어머니에 대한 연민에 있을 뿐. 그래서 이 소설을 '못 생긴 여자를 사랑한 한 남자의 이야기'로 규정하는 것은 너무 협소하다. 이 소설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기만의 '결핍'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그 결핍은 다른 무엇으로 채워질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이다.
박민규는 그 해답을 그들 간의 '관계' 속에서 찾고 있다. '내'가 '그녀'에게 느끼는 기묘한 끌림과 요한에게 느끼는 의지의 감정에서 비롯되는 세 사람 간의 유대, 그것이 작품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나'와 '그녀'의 사랑이 아니라. 이들은 '켄터키 치킨'에서 맥주잔을 기울이며 인생에 대해, 사랑에 대해 끊임 없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치유되어 간다. '관계'란 타인의 불완전함을 채워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완벽해 지는 것이다. '나'와 '그녀' 그리고 요한의 관계처럼.
이 책의 제목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라벨이 벨라스케스의 그림 속 왕녀 마르가리타의 모습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피아노곡의 제목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라벨과 달리 그 '왕녀'가 아닌 못생긴 시녀에 집중한다. 누구도 눈여겨 보지 않았던 구석진 곳에 서 있는 보잘것 없는 시녀는 곧 저마다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청춘들의 자화상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포커스는 결국 저마다 자기만의 삶의 무게를 떠안고 있는 젊은이들에 대한 연민의 시선으로 옮겨진다. 작품 속 그들이 즐겨 찾던 '켄터키 치킨'의 호프(HOPE)가 그들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이 책은 작가가 건네는 결핍된 청춘에 대한 따뜻한 위로인 셈이다.
이러한 연민의 시선을 따라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작가는 말미에 예상치 못한 반전을 마련한다. 얼핏 이언 매큐언의 <속죄>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러한 반전은 라이터스 컷(Writer's cut)을 삽입한 독특한 서사 구조에 의해 드러난다. 라이터스 컷을 읽다보면 소위 '방심하다 당했다'싶은 기분이 드는데, 사실상 여기에서 이 소설의 참된 매력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