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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 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 1
츠츠미 미카 지음, 고정아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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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나라의 허상이 솔솔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마이클 무어라는 다큐영화감독의 영화들을 하나둘 보기 시작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미국내 총기소지, 9.11테러에 대한 정치권의 배후,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 의료보험제도의 현실에 이르기까지 그가 다룬 주제들은, 미국이란 거대한 이미지뒤에 감춰진 실제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듯 위대하거나 결토 낭만적이지 않다는 걸 일깨워 주었다. 미국의 비만인구에 대한 반성과 패스트푸드 식습관을 고발한 모건 스퍼록의 '수퍼사이즈 미' 역시 또하나의 이면을 드러내주는 자료영화라 할 것이다.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적인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요즘에는 마구잡이 신용팽창이라는 미국의  경제적 부실과 직면하여, 케네디시절의 프론티어 정신이 무색해진 취약한 나라의 뒷모습이 처량하기만하다. 마침 이즈음 일본인 작가의 미국 르뽀는 현실감과 함께 시의적절성을 띠고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빈곤대국 아메리카...... 미국이 빈곤하다는 말에 몇프로 정도가 동의할까? 달러보유고로 한 나라의 경제기반이 평가되는 시절에 그 달러의 종주국인 미국이 가난하다면 말이 되는가. 물론 빌 게이츠도 워렌 버핏도 미국국적이다. 그리고 뉴욕의, 엘에이의 명품가에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일년 생활비의 옷값 가방값이 즐비하지 않는가. 명품구매자들은 비싼 의료보험에도 가입하고 마음껏 그 혜택도 누릴 것이다. 그러나 미국내 빈곤계층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나. 한 나라가 국민 생활의 기초를 보장하고 사회적 재분배를 통해 빈곤층을 끌어 안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에 따라 국가의 기본 소임을 다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미국은 자본주의가 가장 성공적으로 실현된 나라이자 자본주의의 가장 큰 폐단도 몸소 겪고, 아니 앓고 있는 나라이다.

 

<빈곤대국 아메리카>가 꼽고 있는 빈곤 미국의 요소들은 크게 5가지이다. 비만, 재난의 민영화, 의료보험, 청년층의 학자금대출과 모병비리, 그리고 전쟁의 민영화가 그것들이다.

 

비만이란 소득이 높은 계층에서 발생하는 질병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란 것이 저자의 견해다. 실제로 고소득층의 자녀들은 가정에서 질좋은 재료로 만든 슬로 푸드와 영양가 있는 음식들로 적당한 체중을 유지하는 반면 빈곤층의 자녀들은 푸드스탬프로 겨우 한끼 때우는 방식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햄버거와 피자등 고열량, 저영양의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적은 돈으로 수퍼마켓에서 구입할 수 있는 재료는 저가에 요리가 간편한 냉동음식들 뿐이다. 이렇다보니 빈곤층의 아이들중에 비만아가 많아지는 것이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쑥밭이 되어버린 뉴올리언즈는 사실 좀더 일찍 재난 방재를 준비할 숟 있었음에도 재난이라는 중대한 사안마저 민영화라는 자본주의적 발상에 노출되어 뒤늦은 처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극단적인 자본주의의 폐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도대체 국가란 무엇이고 정부의 일은 어디에 있는가?

 

민영화의 폐단은 의료보험제도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영화 '식코'에는 넷째 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절단당하는 사고를 입은 환자가 어마어마한 치료비때문에 가운데 손가락의 치료를 포기하고 넷째 손가락만 잇는 수술을 받았다고 피력하며 절단된 가운데 손가락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처럼 고가의 보험료를 부담할 수 없는 중류층이하의 사람들은 그저 살아있는 동안 아프지 않기만을 간절히 고대하며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아이를 출산한 산모가 당일 퇴원이라는 무리수까지 무릅써야 한다니 이 무슨 비극인가. 호주 정부는 임산부의 건강을 위해 국가차원에서 영양제(초유같은)를 공급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비교되는 현실이다.

 

학생들까지 학자금대출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고 빚을 갚기 위한 방편으로 전쟁에 파견될 군인 모집에 어쩔 수 없이 응하게 된다는 보도는 또다른 놀라움을 자아냈다. 얼마전 우리나라에도 대학졸업자의 학자금대출 신용불량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짧은 뉴스를 접한 적이 있는데 무엇이든 미국만 따라하는 우리나라의 슬픈 현실의 한 단면인 것같아 우울해졌다. 미국이 아프간과 이라크에 군대를 파견할 수 있는 근거는 애국심에 불타는 젊은이들이 많아서가 결코 아니었다. 한계상황에 도달한 청년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것이었고, 대출금 전액 상환과 전장파견불가라는 계약조건을 위반하면서 전쟁터로 학생들을 가게한 정부의 술수로 가능한 것이었다. 심지어 낙오된 고등학생들에게도 군대는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곳으로 꾸며진다.

 

젊은이들을 모병한다면 민영화된 전쟁관련 파견회사들은 전장에 수급되는 물자를 나르는 운송트럭의 기사를 모집한다. 전국을 다니며 궁지에 몰린 사람들을 물색해 조건을 제시한다. 핵에 노출된 시신은 고국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풀어낸다. 그만큼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부유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파견회사와의 계약으로 전 세계 약소국에서 모여든(아니 팔려온) 계약자들은 군인들이 마시는 생수조차도 얻어마실 수 없고 최악의 조건에서 계약기간을 버텨낸다. 아프다고 말하는 것은 곧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스스로에게 인식시키는 일이 된다. 참으로 모든 영역이 비즈니스가 된 미국사회를 바라보면서 이러한 잔인한 거래가 테러에 버금가는신형 공포가 아니고 무얼까 곰곰히 생각해본다.

 

아직도 유학하면 미국을 떠올리고 세계비즈니스의 현장하면 월가를 염두에 두고 세계 학문이 몰딩되고 다듬어져 세계인의 표준치로 거듭나는 곳이라고 생각되는 미국이다. 미국비자가 면제되면 미국에 쉽게 입국할 수 있을 것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기도 하다.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한편 땡기고 헐리우드작 영화로 맛을 돋구고 보스톤으로 날아가 아이비리그 대학들을 순회해보고... 미국하면 가서 경험해보고 싶은 게 셀 수 없이 많아진다. 그런데, 정작 미국의 보도되지 않았던  이면에 눈을 돌리고 그들의 삶의 노곤함도 헤아려 볼 수 있어야할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로 집잃은 서민이 늘어가고 있다고 한다. 홈리스 텐트촌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어제의 멀쩡한 중산층이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렇듯 신자유주의의 방만이 낳은 병에 호되게 시달리고 있는 미국이 우리가 더 궁금해야할 미국의 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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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과 육식 - 사육동물과 인간의 불편한 동거
리처드 W. 불리엣 지음, 임옥희 옮김 / 알마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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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고 하고 한동안 광우병에 관한 괴담들이 인터넷화두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곡류등 작물뿐 아니라 육류제품역시 대규모 축산업으로 생산될 것이고, 철창속에서 갖은 항생제와 영양제(스테로이드?)를 주입당하며 오로지 육질만을 위해 비인간적인(아니 비동물적인, 아니 부당한) 방법으로 사육되고 있다는 소문은 익히 나 있었다. 최근에 읽은 미국인 가정의학 전문의가 쓴 남자아이 바로 기르기를 다룬 한 책에서는 미국에선 이미 30년전부터 소에게 스테로이드를 먹여왔다고 되어 있었다. 광우병은 둘째치더라도 스테로이드 먹인 소고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먹게되는 것 아닌가 염려스럽다. 미국국내 소비되는 육우에게도 스테로이드를 마구 먹이는지 알 수 없다. 오로지 수출용에만 그런 건 아닐지. 푸에르토리코의 여아들이 7-8세에 벌써 초경을 하는 등 신체적 조숙이 나타나자 스테로이드 먹인 소고기( 이 나라에 수출된)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나 의심해보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다.
 

최근에 로하스를 사표로 삼은 한 식품기업은 자사가 운영하는 친환경매장에 동물의 권리를 보호하는 이념에 호응하며 자사의 매대에서 판매되는 육류는 동물 권익 보호의 규울을 지키고 있노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야생동물보호니 자연환경보존의 차원에 멸종위기에 놓인 동물을 살리자라는 구호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가축으로서의 동물, 우리가 식용하는 사육동물의 권익에 대해 생각하자는 주장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적어도 국내의 사람들에게는) 약간 낯설게 다가오는 점도 없지 않다.

 

컬럼비아대학 역사학과 교수인 리처드 불리엣이 쓴 이 책은 최근에 부각되고 있는 이러한 주제에 대한 한 역사학자의 답변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야생에 있던 동물이 사육화되어 오늘날에 이른 과정을 자세하고 방대한 자료를 통해 역사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우리가 잊고 있던 인간과 동물의 본래적 관계를 상기시키고자 한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포스트 도메스틱 post- domestic(역자는 '후기사육시대' 라고 옮김) 시기이며 이 시기는 이전의 사육시기와 그 이전의 프리 도메스틱 pre- domestic('전기사육시대'라고 옮김)의 단계를 거친 후에 도래한 단계로 설명한다. 즉 사육시기란 마치 지금 성인들이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보았던 형태인 가축을 기르고 잔치때 소나 돼지를 직접 잡아 육식하던 행위가 당연시되었던 시기이다. 반면 포스트도메스틱의 시기(내 생각에는 이 말은 사육시대 다음시대라는 느낌이 강해 후기사육시대라고 할 때 연상되는 사육시대안의 후반부를 가리키는 의미와는 다르다고 본다)는 실제 사육동물의 도살을 목격하지 않으며 제품하되어나온 육류를 통해 사육동물에 관한 정서나 이미지를 연상하지 못하는 시기를 일컫는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고기, 동물가죽, 실험동물을 완전히 거부하지 못하면서 이것이 제공하는 제품들과 문화적 서비스이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부적인 일들을 알게되면서 반발도 히게 된다. 그리고 프리 도메스틱은 사육시대 이전의 시기로 동물과 자신을 어렴풋이 구별하게 된 호미니드 조상들이 인간/동물관계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생활 형태에 눈뜨고 동물과 관련된 미적 감수성을 보여주거나 영적 명상(제의)을 실행에 옮기던 시기였다.

 

저자는 현재 포스트도메스틱의 시기가 프리도메스틱시기의 정서를 재연하고 있다는 데 주목한다. 그 정서란 수천년의 사육시대 동안 억눌려왔던 정서, 즉 인간에게 이익을 주지만 인간화할 수 없는 동물들에게 죄의식을 느낀다거나 멸종위기의 야생동물과 다시 접촉하고싶은 갈망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정서들이다.

 

사육이전 시기에서 사육화가 진행된 과정은 인간의 의도적인 행위의 결과라고 보통 생각되어왔다. 그러나 저자 불리엣은 이 과정이 반드시 의도의 결과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이것을 자연스럽게 발생된 공생관계로 취급하고 싶어한다. 돼지의  사육화를 예로 들어보자. 사람들은 자신의 정착지에서 돼지가 음식쓰레기를 처치하도록 내버려두거나 새끼돼지를 애완용으로 받아들여 사람들이 먹는것과 같은 식물뿌리와 덩이줄기를 주었을 것이고 몇십세대를 거듭하면서 돼지들은 자발적으로 사람사는 마을로 찾아들어 음식물 찌거기를 먹어치우면서 가축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집돼지가 된 돼지들은 희생동물로서 종교적 제의에 사용되기도 하였다.

 

불리엣은 사육시대로 이행하면서도 살아남았던 상상적이고 영적인 용도로서의, 인간/동물 관계가  가축화가 보다 더 진전됨으로써 마침내 쇠퇴의 길을 걷는 과정을  제 8장 정서적 상징의 추락이란 장에서 다루고 있는데, 이 장은 마치 당나귀에 관한 재미있는 책속의 책같은 느낌을 자아내었다. 저자는 자신이 낙타이용 경제에서 당나귀가 담당한 역할에 관한 연구를 하던 중에 알게된 당나귀에 대한 신적인, 악마적인, 멍청한 바보같은 모습을 많은 실제 인용 이야기들을 통해 들려주었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에서 당나귀로 변한 멍청한 닉 바텀의 이야기를 읽어가다보니 자꾸 영화<슈렉>의 똑똑한 당나귀가 생각났다. 포스트 도메스틱 시기의 인간화된 동물모습의 하나인......

 

저자가 제시하는 또하나의 중요한 지적은 동물을 바라보는 미국식 정서에 관한 것이다. 강력한 종교적 뿌리를 가진 농업국가로서 과학적 연구및 보호단체가 이제 막 싹트려고 하는 미국에서는 픽션작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동물을 인간화하려는 경향이 더욱 강했다는 점이다. 무수한 동물 종 중 인간을 오직 한가지 종으로 생각하는 새로운 교리가 암시하듯, 인간을 동물화하기(이것은 다윈의 영향을 받은 영국과 유럽 풍토에서 나타난 경향)보다는 " 동물을 인간화하는 경향"을 띠었다는 것이다. 피터 래빗과 도널드 덕의 성격을 비교해봐도 짐작이 간다.

 

불리엣은 애드리언 프랭클린이 <동물과 현대문화>에서  해리엇 리트보와 키스 테스터의 입장을 비교하고 있는 것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입장이 리트보의 편에 서 있음을 시사했다. 역사적 문화적 변동의 의미를 인정하면서 사회인류학과 푸코에 기초한 테스터의 분석을 더 예리하다고 평가한 프랭클린은 레비스트로스, 사르트르, 부르디외, 푸코, 엘리아스 보드리야르를 언급했지만 이들 중 누구도 동물 문제에 몰두한 사람은 없었다고  불리엣은 강조한다. 따라서 자신은 "변화가 지닌 지역적이고 문화적인 우연한 성격을 가까이서 면밀히 들여다보는 것이 우리가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리트보의 입장이 호소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이 책이 다양하고 방대한 지역적 문화적 자료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일본인의 동물에 대한 생각을 통해 사육이전 시기의 정서를 찾아내고자 했는데 어떤 기회에 어떤 연유로 일본의 자료와 접하여 이러한 결론을 이끌어내었는지 좀더 개인적인 고백이 필요해 보였다. 일본에 대한 단순한 반감이라기보다, 혹여 서양인의 시각에서 동양( 그는 맹자와 공자의 사상도 언급한다)- 신비화하기에는 너무 다양한 음식을 즐기는 중국인들을 포기하고나니 남은 것이 일본의 음식문화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은 동양인인 우리가 보기에는 객관적이지 못한 부분도 있어 보이는 걸 어쩌랴. 미야지키 하야오의 <원령공주>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양을 둘러싼 모험>은 서양에도 널리 알려진 일본 문화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저자가 찾은 "행복한"-적어도 저자에게는 그럴 듯 싶어 붙여본다- 상상력의 미래는, 다시 말해 동물의 정령화를 보여주는 상상력의 산물은 서구에서는 아직까지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얼마전 TV에서 구마모토 지방의 한 말농장 주인은 잘 팔리는 말고기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농장(이는 곧 공장이었는데)의 한 곳에 말의 영혼을 위로하는 비석을 세우고 매일 직원들과 함께 기도하는 예식을 거행하고 있었으며 집에 돌아와서도 자신의 사업을 번창시켜준 말들의 영혼을 위해 향을 피우고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육시기의 잔상과 정령에 대한 감성을 깨우지 못한 포스트도메스틱 시기의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좀 독특한 행동이긴 하였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것은 동물에 대한 감수성이라기 보다 사업에 대한 일본인들의 꼼꼼한 태도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불리엣은 구마모토 말고기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아마 그가 이 내용을 알았다면 하야오나 하루키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책 전체가 던져주는 메시지는 과격하지 않은 방법으로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관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포스트 도메스틱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육가공품으로만 만나는 사육동물의 격하된 위치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상상의 영역에서 퇴출당한 산업상품으로 변질되어 버린 그들을 창조적 심성으로 되살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불리엣은 진정한 천재가 나타나 프리 도메스틱 시대의 마법을 재발견해 주길 원한다.  "동물이 신과 교감하고 반인반수가 존경받던 시대, 동물을 죽이는 것이 경외감과 죄의식이 들게 만들었던 시대의 마법을 재발견하려면 진정한 상상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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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된 건축, 건축이 된 그림 1- 신화와 낭만의 시대
김홍기 지음 / 아트북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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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26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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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진화
데이비드 버스 지음, 전중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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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와 철학자는 어떻게 다른가?

이 책을 읽어가는 내내 머리속에 맴돌았던 질문이다. 저자 자신도 서두에서 설명했듯이 이른바 진화심리학에 대한 개괄적 이해 없이 이 책을 읽어 나간다면 저자가 적나라하게 밝히는 인간 짝짓기에 있어서의 약탈적 면모에 이르러 한숨을 쉬게 되고 허탈감을 느끼게 된다. 이기적 차원을 넘어서 우리사회가 범죄로 다스리고 있는 강간과 성희롱등이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연구대상이 되어 설명되고 서술되는 것이 참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이 책은 과학자가 쓴 책이며 그는 단지 사실의 객관성을 추구하는 치밀한 의도에서 이것을 기획한 사람이었다는 결론에 이르면 이따금씩 그가 제시하는 사실의 배후를 과학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제대로된 문제의 해결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위로와 함께 너그러이 용서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남녀간의 갈등이란 인간 본성을 드러내 주는 좀더 심오한 그 무엇이 관련된 문제라고 말한다. 모든 문화권의 사람들이 사랑을 체험하며 사랑을 뜻하는 단어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상대에 대한 헌신, 다정, 열정을 포괄하는 이 감정에는 상당한 모순적 속성이 내재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인간의 짝짓기가 지닌 모순적 속성을 정확히 이해함으로써 남녀간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저자의 말대로 왜 우리는 사랑을 얻고 관계를 지속하는데 인생의 상당기간을 희생하는가? 왜 우리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여자들은 아이양육을 위해 자신의 직업도 포기하는가, 왜 아이의 교육을 위해 좀더 나은 교육환경이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이사도 마다하지 않는가? 중학교 생물시간에 생물의 종족보존의 본능과 개체유지의 본능에 대해 들었을 때 당최 그 말의 속뜻을 알 수 없었다. 그저 생명체의 본능이려니, 그이상의 어떤 것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첨부터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하면 간단할 지 모르나 과학인데 종교가 아닌 이상 무슨 근거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게 진화론이고 자연선택의 과정에서 이루어진 유전자의 이기성때문일 줄이야.

 

저자에 의하면 다윈의 성선택이론은 진화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두가지 핵심과정인 배우자에 대한 선호와 배우자를 얻기 위한 경쟁을 밝혀줌으로써 짝짓기 행동을 효과적으로 설명한다. 우리역시 주류 과학자들의 생각처럼 이 이론이 인간의 본성을 주로 본능적인 행동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보며 인간의 특별함과 유연성이 중요하지 않게 다루어지고 있음에 반발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진화의 영향하에 있으며 우리가 당연시하는 근원적인 심리기제들(여기서는 남성과 여성의 짝짓기 전략과 인간행동의 대단한 유연성을 설명할 수 있는 심리기제)또한 유구한 진화과정의 산물인 것에 놀란다.

 

진화 심리학, 새로운 분과학이지만 참으로 다양한 학문영역을 넘나드는 분야이다. 전 세계지역의 남성 여성들을 상대로한 설문들에 기초하였기에 어떤 때는 마치 인류학 서적을 읽는 기분도 들고 자세한 통계수치때문에 사회학적 데이터로 다가오기도 하였다. 또, 여성 남성의 구애전략에서는 참으로 유용한 실용서의 감각도 갖추었다. 저자 데이비드 버스는 수많은 설문데이터를 통해 방대한 진화심리학의 한 분야를 개척한 심리학자이다. 때로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분류가 획일적인데 대하여 심한 버거움과 압박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의 말대로 이 분야에 대한 사고의 전환과 인식은 그렇게 생겨 먹은 걸 어떡해식의 지레 포기와는 다른, 어떤 가능성으로 열려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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