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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후드 - Robin Hood
영화
평점 :
현재상영
"이렇게 하여 전설은 시작되었다. " 영화의 맨 마지막에 뜨는 자막이다.
로빈 후드를 소재로 한 많은 영화들이 있지만 이번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는 좀 다른 데가 있다고 했다. 그 다름을 찾는 게 영화감상의 포인트다. 먼저 이 영화는 이미 숲속의 로빈이 된 모습을 그리고 있지 않다. 마지막의 자막처럼 바로 로빈 훗의 전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평민 석공의 아들 로빈 롱스트라이드가 사자왕 리처드를 따라 십자군 전쟁에 출정한 후 영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마지막 길목의 전쟁을 프랑스에서 치르며 왕의 죽음을 목격한다. 왕관을 고국에 가져가는 임무를 맡은 로버트 럭슬리가 습격으로 사망하자 유언대로 그의 부친인 월터경에게 칼을 돌려주고자 기사로 변장해 영국으로 돌아온다. 로버트의 아내 마리온은 결혼 일주일만에 남편을 전장에 보낸 처지인데다 억울하게 매번 세금으로 흉작의 곡식마저 빼앗기면서 직접 농사를 짓는 억척여인이 되어있다. 아들의 죽음을 전해들은 월터경은 로빈에게 아들이 되어주길 바라고 로빈은 노팅엄령에 쳐들어온 존왕의 부하를 무찌르는 등 나아가 각 지역에서 모인 연합군을 진두지휘하며 프랑스 필립왕의 진격을 해안전투에서 막아내는 공을 세운다. 그러나 무지랭이 존왕은 그를 반역자로 몰아 그에게 동조하는 모든 무리를 처단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두번째는 마리온의 성격이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역이 아니라는 것. 케이트 블란셋은 질기고 강인한 여성의 모습과 동시에 진심으로 로빈을 이해하는 여성상을 잘 소화해냈다. 마리온은 농사일뿐 아니라 프랑스에 대항해 갑옷을 입고 전장에 나타나 용맹스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동안 로빈 훗의 이미지는 명랑하고 활기차고 유머러스한 캐릭터였다면 러셀 크로우의 로빈 훗은 다분히 장중한 로빈 훗이다. 마치 글래디에이터의 주인공처럼, 어린 시절 아버지를 비참하게 잃은 기억을 가진 그는 동료들과 어울리는 장면에도 혼자 골똘하게 생각을 거듭한다.
등장인물뿐 아니라 감독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역시 사극의 공식을 잘 밟아가는 정공법을 쓰고 있다. 현대적 감각이나 해석이나 변화와 도약보다는 전투씬의 비장미를 살리는 데 더 중점을 둔 것같다. 그래서 이 영화에도 글래디에이터의 냄새가 많이 풍긴다. 칸느에서 상영되었다면 물론 국경을 초월하는 것이 예술이고 영화지만 프랑스인들의 시각에선 찜찜한 면도 있었겠다.
월터 경으로 나온 막스 폰 시도우는 정복자 펠레의 그 할아버지인데 왠지 반갑다. 영화가 끝나고 출연 제작진의 이름이 올라갈 때 영화장면을 페인팅으로 다시 만들어 보여주는데 마치 이미 본 영화를 한번 더 보는 느낌이 들게 했다. 감상자분들은 마지막 음악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말고 이 멋진 시간을 누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