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블랙 장르의 재발견 1
오스카 와일드 지음, 서민아 옮김 / 예담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운좋게도 화가가 그려준 젊은 날의 자신의 초상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나이가 들어가면서 쭈그렁탱이가 되는 얼굴,  나날이 늘어가는 검버섯, 그리고 세파에 찌든 피곤한 눈빛,  약간은 오만과 버젓함이 스며있는 야릇한 입가의 미소 등등 현실의 모습에 비해, 초상화속의 2,30대 자신은 마냥 풋풋하고 열망과 호기심에 찬 얼굴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늙어 보기 흉한 외모는 그 젊은 초상화를 질투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와는 정반대 경우를 상상한다면 어떻게 될까.  현실의 노화대신에 초상화가 대신 늙어 간다면. 뿐아니라 현실의 악행과 비리가 현실의 얼굴에는 드러나지 않고 대신 초상화에 나타난다면...... 영혼을 팔아서라도 늙지 않는 방법을 택할 사람들이 제법 있을지도 모르겠다.  누가 보아도 한결같이 칭송할 미모를 가진 미소년, 미청년 도리언 그레이. 그는 바질 홀워드가 그려준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영원한 청춘을 빌었다.  사랑의 감정을 느낀 연극배우 시빌 베인과 결혼을 마음먹었으나 사랑의 유혹에 프로의식을 포기한 그녀의 연기에 배신감을 느끼고 무참히 여인을 버린다.  사랑때문에 자신의 직업도 포기할 수 있었던 여인은 냉혹한 남자 도리언의 결별선언에 자살하고 만다. 

책에는 주인공 도리언 그레이의 비행이 상징적으로 묘사되고 비리와 얽힌 내용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그는 영혼이 없는 인간으로 설정되고 악한 마음의 결과는 차츰차츰 초상화를 핏빛으로 물들여간다. 오스카 와일드의 탐미주의 정신의 꽃이라 할 이 작품은 젊음과 미모를 맹신한 한 인간의 비참한 말로를 보여준다. 하지만 곳곳에 작가의 미적 탐험심에 대한 존경이 가득하다. 도리언 그레이는 '단테가 묘사한 이른바 미를 숭배함으로써 스스로 완벽해지기 위해 애쓰는 부류'였으며 '고티에가 언급한 것처럼 그는 가시적인 세계가 존재해야할 이유가 되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묘사된다. 도리언 그레이는 생각했다. '좋은 사회가 지켜야할 규범은 예술이 지켜야 할 규범과 같거나 같아야 한다고. 특히 형식은 규범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이며 격식같은 비현실성과 동시에 위엄도 갖추어여하고, 낭만주의 연극의 허위적특성과 함께 그런 연극에 즐거움을 느끼게하는 재치와 아름다움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리언 그레이와 바질의 마지막 대화에서 도리언은 외친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그는 초상화에 역겨움과 흉측함을 싣는 대신 영혼을 팔아 아름다운 얼굴을 소유하고자 했다. 바질을 죽이고 살인을 은폐하는 과정에 흐트러짐 없은 행동을 보이나 사냥에서 몰이꾼(정작 확인후에 시빌 베인의 남동생인 제임스 베인임을 알게된다)이 사고로 사망하자 심리적 혼란과 더불어 죄의식을 느끼기도 하는 그는 착한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런 마음 마저도 허영과 호기심과 위선이었음을 알아차린다. 

냉소적인 세계관으로 도리언에게 젊음과 미모에 빠지게 한 헨리경은 작가의 또다른 생각의 통로일 것이다. 그는 도리언에게 마가복음 8장 36절의 '사람이 온세상을 다 얻고도 제 영혼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라는 말을 인용해 들려준다. 그러나 헨리를 통해 듣는 작가의 말은 '예술에는 영혼이 있지만 인간에게는 영혼이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더이상 영혼을 믿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인간 도리언은 보잘 것없는 가면인 미모와 거짓인 젊음의 노예가 되어 피폐한 최후를 맞았지만 작가는 이 책에서 19세기의 위선적 도덕주의에 반대하는 "예술자체의 형식적 우월성에서 찾을 수 있는 진실"이라는 꿈을 그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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