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에서 옷을 벗고 바다에 뛰어드는 마지막 장면에서 무심코 나온 말 " 이아저씨 또 상받겠네... 상복도 많네..."
클린트 이스트우드, 작곡까지 했다, 감독과 제작도 모자라서.
황야의 무법자나 아우트 로같은 영화에서 볼땐 이 사람 길게 갈까 할 정도로 기대 많이 안한 사람인데 나이들어
깊은 잔잔한 영화로 성공하고 있다.
미국인들이 보면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영화일 수 있을 테지만 우리가 볼 떄는 미국인들이 제발 알아야 할 내용같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배경으로 한 것이어서 더욱 실감이 나지만 인간세상에는 저처럼 왜곡된 현실을 진실인 양 믿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실뒤에 감춰진 진짜 현실을 찾을 수 있는 눈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 내러에이션처럼 영웅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세상에는 영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기금마련을 위한 채권수매를 홍보하는 전령사 말하자면 '도구'가 되어야 했던 세 영웅 그들도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인물이다.
언론은 대중을 조작하고 대중은 언론에 잘 길들여진 양들처럼 전쟁이 끝나고 깨끗하게 그들을 잊어준다.
세 명의 조작(?)영웅들 중에서 과연 나라면 그 세명들 중 어떤 유형에 속할까?
레니, 닥, 아이라... 닥처럼만 살 수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리라... 그런데 닥의 방식조차도 온건한 순응주의라는 생각이 머리를 친다.
나같으면 아이라처럼 괴로워하고 현실의 비현실성에 대해 구토를 거듭했을 것같다. 물론 비참한 말로로 삶을 저버리지는 않을테지만...... 인디언이라는 출신성분은 미국인들에게 자연성이 남아있는 어떤 보루의 이미지로 형상화되고 있나보다.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객사하고 마는 그는 패배적 인물처럼보이게 만들었는데 더 철저하고 처절한 반성위에 만들어진 영화라면 아마도 주인공은 아이라같은 입장을 취했을 것이다.
이 지점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현실과의 타협점이다. 그는 아이라보다는 존 닥 브래들리라는 인물로 대중에게 접근한다. 파격보다는 제너럴한 시각을 우선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레니같은 인물도 악한 인물은 아니다. 기회주의적 성향은 타고 났다할지라도 보통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법한 그런 기회주의이기도하다. 그 역시 전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힘없는 한 사람의 병사인 것이다.
현실은 본디 모습의 현실을 많은 부분 왜곡하고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어떨때는 언론에 의해 어떨때는 정치적 의도에 의해 현실은 많이도 굴절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만을 진실이고 현실이라 믿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점만이라도 관객이 알게 된다하더라도 영화는 성공한 것이다.
아카데미상후보에 이 영화가 아니라 같은 감독의 이오지마에서온 편지가 후보에 올랐다고한다.
무척 시각이 궁금해지는 영화다. 일본군의 입장에서 본 같은 전쟁은 어떻게 표현되고 있을까?
아마도 미국인들은 아버지의 깃발에서는 약간의 치욕을 느낄지 모른다. 반면 이오지마에서의 편지에서는 현재 그 관계과 거의 밀월에 이르고 있는 미일관계라는 측면에서 내 입장이 아닌 적의 입장에서의 지난 전쟁의 회고라는 주제가 그다지 밉지 않았을터이다.
일본의 이차대전역사가 아직도 우리에겐 상처로 남아있기에 일본시각의 전쟁영화는 우리에게는 여전히 낯설지 모르겠다.
그러기에 개봉일도 정해져있지 않다.
이건 아마 일본이 제작한 일본영화보다도 더 껄끄러운 소재일터이다. 그래도 용기있는 결정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일본은 위안부라는 형식으로 자국군대의 성생활까지 조직적 관리를 했다는 측면에서 지독한 아니 상식으로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국민성을 가진 나라이다. 한국과 동남아, 호주 뿐 아니라 심지어는 네덜란드여성 100명도 위안부로 몰았다는 사실을 나는 최근에 알았다. 전시상황에서 이런 측면까지 철저히 계획하고 관리하고자한 그들의 정신상태가 기이하게 생각된다. 전체 국민이 아니라 천황을 받들고 제국주의에 눈이 멀었던 권력계층의 지도이고 공모였다하더라도 그 영향력은 너무나 컸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제국주의의 망동을 걱정한 일부지식인계층만이 외로운 일본인이었는지 모른다. 과연 당시에는 그런 사람들도 있었을까...
파티석상에서 세명의 전쟁영웅에게 주어지는 깃발사진모형의 아이스크림케잌,
요리사는 초콜렛크림을 원하는지 딸기시럽을 원하는지 묻는다. 케익위에 빨갛게 퍼지는 딸기시럽은 마치 전쟁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동료들의 피색처럼 닥에게 다가온다. 전쟁의 잔혹성과 무의미함,, 현실의 불합리성,, 역사의 조류에 희생되는 힘없는 인간들,, 세상은 한 인간의 운명을 너무나 쉽게 쥐고 흔들어버린다.
이런 경우는 우리 근현대사에서도 손쉽게 찾을 수 있고 문학은 그 소재를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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