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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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츠이치의 단편집 <ZOO>는 2005년에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장편소설도 아닌 단편집이 영화로 제작되었다.... 단편집의 특성과 대중적 인기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덕분에 새로운 책읽기를 해보았습니다. 단편집 <ZOO>에는 모두 10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습니다. 이중 5편을 영화로 제작하여 묶어놓은 것이 영화판 <ZOO>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소설과 영화를 동시에 손에 넣게 되었고, 재미삼아 교차 감상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니까 단편소설 'SEVEN ROOMS'를 읽고, 단편영화 ‘SEVEN ROOMS'를 보고, 단편소설 'ZOO'를 읽고, 단편영화 'ZOO'를 읽고... 이렇게 말이죠.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소설집 <ZOO>가 영화 <ZOO>보다 훨씬 재미있습니다. 만약 저처럼 소설과 영화를 교차 감상을 해보실 생각이라면 말리고 싶습니다. 영화만 보시다면 더욱 말리고 싶습니다. 그냥 소설만 읽으세요. 소설의 행간에서 읽을 수 있는 긴장과 재미가 영화보다 훨씬 풍부하니까요. 

SEVEN ROOMS
왜 영어로 제목을 지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일곱 개의 방’과 ‘세븐 룸’의 차이는 뭘까요? 일본 작가들 간혹 영어로 제목을 지어 작품의 분위기를 묘하게 무국적화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근데 그게 때때로 패션이나 치기로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암튼 단편집의 오프닝으로 적절한 작품입니다. 적절한 긴장감과 깔끔한 뒷맛이 느껴지는 공포소설입니다. 그런데 뒤에 수록된 작품들을 읽어보니 다른 작품들과 색깔이 조금 다르더군요. 영화판 <ZOO>에 실려있습니다.

So-far
영어제목 퍼레이드는 계속됩니다. 나름 의미가 있는 듯 합니다. 수록된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심리묘사와 재치 있는 반전이 숨어있는 단편입니다. 게다가 반전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단순한 기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정신적 상처와 분열을 설명하는 좋은 장치입니다. 영화판에 실려 있습니다.

ZOO
패션에 가까운 영어 제목입니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집의 공통된 키워드는 살인(죽음)과 분열, 죄의식, 불신, 고립, 열등감으로 억눌린 자아 뭐 이런 것들인 것 같습니다. 키워드에 충실한 작품입니다. 특히 살인자의 죄의식과 분열을 재치 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영화판에 실려있습니다.

양지의 시
난 데 없는 SF로 보이지만, 사실 동화입니다. 동화적 상상력 역시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의 공통점이죠. 영화판 <ZOO>에서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더군요. 다소 소녀 취향입니다.

신의 말 / 카자리와 요코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쌍둥이 같은 작품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키워드에 충실한 작품들이며 작가의 상상력을 지탱해주는 근간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흥미로운 설정의 이야기들이지만 반복된다는 느낌이 슬슬 들기 시작합니다. ‘카자리와 요코’는 영화판에 실려 있습니다.

Closet / 혈액을 찾아라 / 떨어지는 비행기 안에서
세 작품 모두 블랙 코미디 풍의 범죄극입니다. 의외로 소란스럽고 우화적입니다. 역시 작품들의 공통된 키워드는 유효합니다. 살인, 불신, 열등감, 억눌린 자아... 등등. 참 'Closet', 그냥 말 그대로 ‘장롱’입니다. 제목은 패션이죠.

차가운 숲의 하얀 집
전형적인 잔혹동화입니다. 우화적인 느낌 없고, 그냥 동화라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작가의 의식(혹은 무의식) 속에 내재된 여러 풍경 중 하나를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역자는 후기에서 이치오츠의 소설이 영화적이라고 했는데... 저는 어쩐지 만화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소설의 주인공들이 원체 혼자 주절거리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영화화된 작품들을 봐도 원작의 맛을 살리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고요.

한가지 덧붙이면, 제가 구입한 책의 제본 상태가 심히 헐겁습니다. 뭐 책을 두 번 읽을 일은 없겠지만 두 서너번 읽게 되면 책장이 쪼개져 흩어질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 책도 그러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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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이의 목 동서 미스터리 북스 17
조르주 시므농 지음, 민희식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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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두 편의 소설(<사나이의 목>과 <황색의 개>)이 실려 있습니다. 두 편 모두 살인사건이 일어나며, 메글레 경감이 등장하고, 사건은 당연히 메글레 경감이 해결합니다. 두 편 모두 전형적인 추리소설의 틀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작품을 읽은 후 감상은 여느 추리소설과는 조금 다릅니다.

심농의 작품은 여느 추리소설에서 보기 힘든 심리묘사가 돋보입니다. 적어도 이 책에 실린 두 편의 소설에서는 말이죠. 작가는 시종일관 메글레 경감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독자들의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범행에 대한 정보(혹은 단서)가 아닙니다.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반응이 보입니다. 살인사건의 용의자 혹은 주변인물의 심리가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거죠.

이 두 편의 작품을 조금 단순하게 설명하면, 전형적인 추리소설과 하드보일 탐정소설의 중간쯤되는 것 같습니다. 무뚝뚝하고, 냉소적이며, 고집불통이며, 직관에 의존하여 사건을 수사하는 메글레 경감은 하드보일 소설의 주인공과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작품 전체에 감도는 우울하고 스산한 분위기도 그렇고요.

반면 작품의 말미 용의자들을 모아놓고 사건을 친절하게 복기해가며 범인을 밝혀내는 장면은 우리가 추리소설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것들입니다.  

하지만 작품을 읽고 며칠이 지난 후 머리 속에 남는 건 ‘사건’보다 ‘분위기’입니다. 심농의 매력적인 묘사로 표현된 우울하고 스산한 분위기말입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시큰둥한 태도로 사건을 수사하는 메글레 경감의 캐릭터도 잊을 수 없습니다. 메글레 경감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벌써 잘 기억나지 않지만 말입니다.

당연히 이 작품들(<사나이의 목>, <황색의 개>)의 관전 포인트는 여느 추리 소설과는 조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작품을 읽다보면 추리소설의 '이성'보다 범죄소설의 '감성'이 앞서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살인사건을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는 거죠. 심농의 다른 작품들도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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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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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전통 추리물을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전 생각하는 추리물의 주인공보다 행동하는 하드보일 소설의 캐릭터를 좋아하는 듯 합니다. 그러니까 셜록 홈즈보다 필립 말로우를 더 좋아하고,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보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더 좋아합니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시계관의 살인>은 전통 추리물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 유명한 작품을 충실하게 답습한 작품이죠. 밀실 살인, 뜻밖의 범인, 완전범죄를 위한 트릭, 이를 추궁하는 ‘탐정’ 등 전통 추리물의 전형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그런데도 웬일인지 제법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시계관의 살인>는 540여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술술 읽힙니다. 앞서 리뷰를 올린 어느 분의 지적처럼 무수히 등장하는 인물들이 주는 압박만 견뎌내면 편안한 독서가 가능합니다.(전 정말이지 일본 소설을 읽을 때마다 등장인물의 이름 때문에 매번 고생합니다. 이 남자가 저 이름 같고, 저 여자가 이 이름 같고...???)

솔직히 이 작품은 작가와 머리싸움을 하기 위해 초반부터 꼼꼼히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트릭을 위한 복선이 도처에 깔려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복선일 뿐입니다. 그것만 가지고 주인공처럼 논리적인 추리를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입니다. 그래서 골치 아프게 단서들을 찾아 추리를 해가며 읽기보다 술술 읽은 뒤, 등장인물이 후반부에 친절하게 복기를 해주는 것을 ‘그렇구나.’하면 읽으면 됩니다. 그것만으로도 재미는 충분합니다.

전체 사건을 지배하는 ‘아이디어’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단순히 사건을 위한 트릭에 머무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단순히 ‘트릭’을 위한 설정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좀더 깊이 있는 성찰이 담겨있었다면 좋았을 뻔 했습니다. ‘시간’이라는 소재는 충분히 지금 이상의 지적인 재미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니까요. 지나친 욕심인가요? 하긴 모든 추리소설이 <장미의 이름>처럼 될 필요는 없지요.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작품의 분량입니다. 이야기에 비해 너무 길어요. 이야기의 전개가 늘어지는 건 아니지만 장황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특히 범죄를 재구성하며 트릭을 밝혀내는 후반부는 필요이상으로 친절하고 깁니다. 무려 80페이지가 넘어요. 저처럼 성격이 급한 독자들은 분명히 사선으로 읽을 겁니다. 사실 그래도 무방한 것 같습니다. 사건의 해결을 위한 엔딩이지, 감정의 고조를 위한 클라이맥스는 결코 아니니까요. 모든 추리소설이 <장미의 이름>처럼 지적일 필요가 없는 듯, <장미의 이름>처럼 길어질 이유도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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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경감 듀 동서 미스터리 북스 80
피터 러브제이 지음, 강영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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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미스터리북스’에 간혹 보석이 숨어있죠? 200여권이 넘는 시리즈 중 ‘숨은 보석 베스트 20’을 꼽는다면, 아니 베스트 10을 꼽는다 해도 <가짜 경감 듀>는 반드시 들어갈 것 같습니다.

일단 <가짜 경감 듀>에는 유쾌합니다. 비정한 살인사건을 다루는 추리극이 유쾌하다니! 그런데 이게 가능합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건 아마도 피터 러브시가 만들어낸 사랑스러운 캐릭터 덕분일 겁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남녀 주인공은 탐정물보다 희극에 어울리는 캐릭터들입니다. 하나같이 귀여운 허영심이 찰랑찰랑 넘치는 인물들이죠. 게다가 정말이지 철이 없는 소녀(혹은 소년)같습니다. 이런 인물들이 살인계획하고 실행하려합니다. 대서양을 횡단하는 호화유람선에서 완전범죄를 꿈꾼 거죠. 그런데 상황이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그리고 뜻밖의 ‘해프닝’이 발생합니다. ‘사건’이 아니고 말입니다.

추리소설의 기본인 트릭도 제법 흥미롭습니다. 뭐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작품 전체 분위기에 어울리는 깜찍한 엔딩도 마음에 듭니다. 잔뜩 분위기만 잡다가 허망한 ‘반전’으로 읽는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작품보다 훨씬 품격 있습니다.

아무튼 가짜 경감 월터 듀와 함께 뉴욕행 호화여객선 여행은 유쾌하고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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