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전통 추리물을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전 생각하는 추리물의 주인공보다 행동하는 하드보일 소설의 캐릭터를 좋아하는 듯 합니다. 그러니까 셜록 홈즈보다 필립 말로우를 더 좋아하고,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보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더 좋아합니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시계관의 살인>은 전통 추리물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 유명한 작품을 충실하게 답습한 작품이죠. 밀실 살인, 뜻밖의 범인, 완전범죄를 위한 트릭, 이를 추궁하는 ‘탐정’ 등 전통 추리물의 전형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그런데도 웬일인지 제법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시계관의 살인>는 540여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술술 읽힙니다. 앞서 리뷰를 올린 어느 분의 지적처럼 무수히 등장하는 인물들이 주는 압박만 견뎌내면 편안한 독서가 가능합니다.(전 정말이지 일본 소설을 읽을 때마다 등장인물의 이름 때문에 매번 고생합니다. 이 남자가 저 이름 같고, 저 여자가 이 이름 같고...???) 솔직히 이 작품은 작가와 머리싸움을 하기 위해 초반부터 꼼꼼히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트릭을 위한 복선이 도처에 깔려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복선일 뿐입니다. 그것만 가지고 주인공처럼 논리적인 추리를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입니다. 그래서 골치 아프게 단서들을 찾아 추리를 해가며 읽기보다 술술 읽은 뒤, 등장인물이 후반부에 친절하게 복기를 해주는 것을 ‘그렇구나.’하면 읽으면 됩니다. 그것만으로도 재미는 충분합니다. 전체 사건을 지배하는 ‘아이디어’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단순히 사건을 위한 트릭에 머무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단순히 ‘트릭’을 위한 설정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좀더 깊이 있는 성찰이 담겨있었다면 좋았을 뻔 했습니다. ‘시간’이라는 소재는 충분히 지금 이상의 지적인 재미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니까요. 지나친 욕심인가요? 하긴 모든 추리소설이 <장미의 이름>처럼 될 필요는 없지요.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작품의 분량입니다. 이야기에 비해 너무 길어요. 이야기의 전개가 늘어지는 건 아니지만 장황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특히 범죄를 재구성하며 트릭을 밝혀내는 후반부는 필요이상으로 친절하고 깁니다. 무려 80페이지가 넘어요. 저처럼 성격이 급한 독자들은 분명히 사선으로 읽을 겁니다. 사실 그래도 무방한 것 같습니다. 사건의 해결을 위한 엔딩이지, 감정의 고조를 위한 클라이맥스는 결코 아니니까요. 모든 추리소설이 <장미의 이름>처럼 지적일 필요가 없는 듯, <장미의 이름>처럼 길어질 이유도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