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2권 - 6.25 전쟁에서 4.19 전야까지 한국 현대사 산책 4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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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과 함께 우리의 1950년대를 훑어보며 발견한 흥미로운 대목 중 하나는 한국의 기독교에 관한 기록들이다.

한국 개신교에 대해 염증을 느끼는 이유는 노골적인 보수성, 만연된 물주주의, 기복신앙에 탈피하지 못하는 종교의식 때문이다. 한국 개신교의 지독한 보수성은 기독교라는 종교의 태생적 특징으로만은 설명하기 힘들다. 도대체 한국의 개신교는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강준만은 이런 궁금증의 실마리를 강인철, 김흥수, 함석헌의 글을 토대로 짚어보고 있다.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인물들의 저작을 직접 읽어보야겠지만 핵심은 대략 이러하다.

우선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기독교 장로인 이승만은 제헌국회도 식순에 없는 기도로 시작하고,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정할 정도였다. 호불호가 불명했던 이승만은 기독교에 엄청난 특혜를 주었다.(반면 다른 종교를 노골적인 박해했다.) 해방 후 한국 기독교는 이승만이 집권한 15년간 정권의 축복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다.

이승만이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6.25 전쟁 때문이다. 이승만은 반공과 북진통일론을 내세우며 여론몰이를 했고, 이에 반하는 세력들은 모두 ‘빨갱이’로 몰아 처단했다. 당연히 이승만을 적극 지지하던 기독교인들은 누구보다 열렬한 반공주의자가 되었다. 게다가 6.25전쟁 직후 남한에는 북한에서 월남한 기독교인들이 수가 적지 않았다. 빨갱이 색출에 혈안이 되어있던 남한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들은 북한에서 박해받은 기독인이라는 신분을 이용했다. 또한 이북 출신이라는 ‘약점’을 지우기 위해 누구보다 격렬한 반공주의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공산주의자를 ‘사탄’, ‘마귀’로 표현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공고히 했던 것이다.

한국 개신교의 교세 확장은 6.25 이후 급속하게 이뤄진다. 가난에 굶주린 한국인들에게 “교회는 미국의 은혜와 풍요가 배급되는 주요 채널이었다. 그래서 교회에서 무료로 주는 미국 밀가루를 얻기 위해 교회에 다니는 이른바 ’밀가루 신자‘들도 많이 나오게 되었다.”(p.110)
이 당시 한국 개신교회는 미국의 선교 단체로부터 막대한 물자 및 현금을 원조를 받았다. 이는 한국 개신교의 교세 확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한국 개신교의 친미주의를 증폭시키는 밑바탕이 되었다. 이렇게 친미주의와 물질주의, 반공주의가 한국의 개신교를 물들였다.

그럼 기복(祈福)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전쟁 후 몸과 마음이 황폐해진 한국인들에게 교회는 엄청난 풍요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미국에 대한 동경과 숭배, 물질에 대한 한(恨)의 종교적 표현이 바로 기복신앙”이었으며, “그런 점에서 기복신앙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로서의 성격마저 갖게 되었다.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특별한 한국의 기복신앙은 마찬가지로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특별했던 한국의 역사적 상황이 낳은 산물”라고 설명한다.

당시 함석헌의 비판은 신랄하고 통렬한 한편 섬뜩하게 와 닿는다. 당시 개신교에 만연한 기복, 물질주의, 타종교에 대한 배타성, 정치권력과의 유착 등의 모습이 지금과 너무나 닮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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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산책 2011-03-24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리즈라서 내용이 아주 자세하겠어요.
관심이 생기네요, 한국 개신교에 대한 내용도 흥미롭구여^^

lazydevil 2011-03-24 22:49   좋아요 0 | URL
그해마다 110여페이지 조금 넘는 분량으로 요약하고 있어요.
조금 숨가쁘게 달리는 느낌이지만 연대기별로 일별하는 데 도움이 되더군요.
무엇보다 재미있네요, 정신은 없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