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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한 할리우드 - 악동 감독 케빈 스미스의 미국 문화 뒤집기
케빈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방사능 물질이 섞여있다는 비가 부슬부슬 내린 터라 프로야구 경기도 취소되고, 당연히 프로야구 중계는 물론 프로야구 하이라이트도 취소되어 마음 편히 뒹굴 거리며 케빈 스미스의 <순결한 할리우드>를 읽었다. 그렇다고 해야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 일을 딱히 싫어하지도 않으면서 ‘일’이라는 생각에 미루고 또 미루는 아둔함과 불성실함을 언제나 고칠수 있을까? <순결한 할리우드>는 이런 게으르고 한심한 자책감에 사로잡혔을 때 읽기에 적당한 책이다.
할리우드의 영화감독 케빈 스미스가 쓴 이 책은 유익하지도 유해하지도 않다. 어쩌면 유익한 쪽에 가까울 지도 모른다. 적당히 재미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유익하지도 유해하지도 않지만 그럭저럭 재미있는 농담들로 가득 한 케빈 스미스의 영화와 닮아있다.(개인적으로 <체이싱 아미>를 꽤 재미있게 보았다.)
‘악동 감독 케빈 스미스의 미국 문화 뒤집기’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이 책의 원제는 'Silent Bob Speaks'다. 사일런트 밥은 케빈 스미스의 영화에 늘 등장하는 캐릭터로 케빈 스미스가 직접 연기한다. 이름처럼 대사 없이 스크린만 채우는 캐릭터다.(아니 한두 마디 대사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감독 케빈 스미스는 원래 타고난 수다쟁이이고, 이 책은 감독의 할리우드 생활에 대한 시시껄렁한 농담과 뒷이야기를 모아놓은 신변잡기 수다 모음집이다.
국내 출간 제목인 ‘순결한 할리우드’는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게다가 케빈 스미스를 악동 감독으로 추켜세우는(깎아내리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그의 영화를 보나 이 책을 보나 케빈 스미스는 악동하고는 3만 광년쯤 떨어진 인물인데 말이다. 오타쿠적인 농담과 들어줄 만한 음담패설, 상스러운 비속어로 관객들을 웃겨준 (한때) 비주류 영화감독일 뿐이다. 그의 유머는 썰렁하기는 해도 밉살스럽지 않고, 저속하기는 해도 혐오스럽지는 않다. 그냥 수다쟁이일 뿐이다.
게다가 이 책에서 케빈 스미스는 미국문화를 뒤집어 보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냥 자기 할리우드 생활과 자기 성생활과 자기 친구와 자기가 좋아하는 만화책과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를 지껄일 뿐이다. ‘케빈 스미스는 이 쓰레기 글로 돈을 받고 있다.’(p.41) 심지어 책으로 출간하고, 게다가 대한민국에 번역되어 출간되기도 한다. ‘케빈 스미스는 아주아주 운이 좋은 개자식이다.’(p.91)
하지만 모두 용서할 수 있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남는 게 없으면 어떠랴? 적어도 무해한 재미가 있는 걸. 게다가 오늘은 방사능 물질이 섞인 비가 내리는 어두컴컴한 2011년 4월의 봄날이 아니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