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국내 소설에 대한 관심이 점점 옅어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외국 소설만 읽고 있는 걸 깨달았습니다. 흥미를 잃은 것이고 다른 이야기를 찾아 나선 결과입니다.

원체 책 읽는 속도가 느린 편입니다. 집중력 부족과 독해력 빈곤 때문이죠.
번역서를 읽을 때 조금 더 고생하는 편입니다. 특히 쌀겨처럼 까칠한 번역을 만나면 두 세 배로 힘겨워합니다. 그래도 외국 소설만 계속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나무토막 같은 둔탁한 번역투 문장으로 중무장한 외국 소설도 조금씩 소화하는 능력이 생기더군요.

최근 어쩌다보니 보니 국내 소설을 네 편이나 읽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 모두 최근에 출간된 여자 작가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네 작품 모두 글 읽기가 즐거웠습니다. 오랜만에 진짜 우리글을 읽은 거죠. 내용이야 어찌되었든 정말 편안하게 술술 읽었습니다.

공선옥의 <내가 제일 예뻤을 때>도 그 가운데 한 작품입니다. 앞서 읽은 네 편의 작품 중에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포함되어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모두 90년 초에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작가들이군요.
그래서 일까요? 두 작품은 비슷한 점이 많아요. 일상 속에 숨어있는 섬세한 감정을 간결하고 단단한 문장으로 포착하는 작가의 노련한 솜씨가 드러납니다. 두 작품 모두 사투리의 아름다움을 멋들어지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공선옥은 여전히 80년 광주와 투쟁의 기억과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더군요. 신경숙의 작품에서 여전히 ‘깊은 슬픔’이 감지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건 두 작가의 상처이자 창작의 근간이겠죠.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두 작품 모두 ‘테레비 연속극 같다’는 겁니다. 이건 칭찬입니다.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수많은 드라마에서 익히 보아온 이야기와 크게 다를 바 없고, <내가 제일 예뻤을 때>는 추억을 되새김질하게 만드는 7,80년대 배경의 드라마에 어울리는 에피소드가 빈번히 등장합니다. 그래서 두 작품은 ‘테레비 연속극’처럼 익숙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동시에 두 작가의 작품은 통속극의 수준에서 한참을 뛰어넘는 울림을 줍니다. 단순한 감정의 자극이 아닌 공감할 수 있는 속 깊은 무엇이 느껴집니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 설명하긴 힘들지만, 작가의 역량과 문학성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예전처럼 국내 소설을 열독하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국내 소설을 읽고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기도 뭣하고, 별점을 주기에는 더욱 부담스럽습니다. 역시 생각나는 대로 막말하기에는 외국 소설이 편합니다. 특히 최근 즐겨 읽는 장르 소설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도 종종 국내 소설을 읽을 작정입니다. 문장읽기의 즐거움과 편안함을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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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릴레이] 나의 독서론
    from My own private affairs 2009-06-14 10:57 
    [릴레이] 나의 독서론 규칙입니다. 1. 독서란 [ ]다. 의 네모를 채우고 간단한 의견을 써주세요. 2. 앞선 릴레이 주자의 이름들을 순서대로 써주시고 3. 릴레이 받을 두 명을 지정해 주세요. 4. 이 릴레이는 6월 20일까지만 지속됩니다. 기타 세칙은 릴레이의 오상 참조    독서란 [문(門)]이다.  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던, 모르던 간에 저는 처음 문을
 
 
Forgettable. 2009-06-12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여성작가들 글을 참 좋아했었는데, (그러니깐 대표적으로 신경숙이나 전경린 등..)
근데 자꾸 읽으니까 왠지 뻔한.. 뭐랄까 모녀간 혹은 고부간의 갈등, 자매간의 질투, 의미혹은 사랑없는 섹스, 밑도 끝도 없이 우울하거나 차가운 남자캐릭터;; 운동의 로망(?) 이런 것이 지겨워져요 ㅎㅎ
너무 일반화했나^^;
그래도 분명 한국적인 감성이나 다듬어진 문장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란 건 인정해요. 국내 소설이나 드라마는 왜 이야기가 외국 작품에 비해서 빈약할까요..


lazydevil 2009-06-13 00:4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포겟님의 일반화에 상당부분 동의합니다.
그래서 우리 소설 읽기에 흥미를 잃었을 겁니다.
조만간 이야기의 힘을 보여주는 우리 소설도 등장하겠죠.
아니 포겟님과 저만 모르게 벌써 등장했을 지도 몰라요...!!

카스피 2009-06-13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쟝르 소설을 좋아하다보니 국내 작가의 책들을 읽어본지 꽤 오래됬네요.뭐 근자에 있은 책은 늦었지만 최인호씨의 상도 정도....
여성 작가분의 책들은 너무 개인적인 관점으로 흘러선지 잘 안 읽혀지는것 같네요^^

lazydevil 2009-06-13 00:53   좋아요 0 | URL
'상도'라면, 읽어보지 못햇지만,
그래두 이야기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저두 비슷한 생각입니다.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 자의식이 강하게 드러나는 거...요^^;

쥬베이 2009-06-14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lazydevil님하곤 통하는게 있어요!ㅋㅋ
[언제부터인가 국내 소설에 대한 관심이 점점 옅어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외국 소설만 읽고 있는 걸 깨달았습니다.] <--- 초공감!!^^
저도 국내소설은 잘 안 읽게 되더라고요...

lazydevil 2009-06-15 12:35   좋아요 0 | URL
무슨 말씀을... 그래도 근간에는 국내소설도 종종 읽으시잖아요~
암튼 쥬베이님, 굿 투 씨유 어게인입니다~~^*^

Forgettable. 2009-06-14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빌님-0-

괜찮으시면 트랙백 달아놓은 것 부탁드려요 ㅋㅋ
숙제에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