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을 읽다 ㅣ 득수 읽다 1
권정현 외 지음 / 득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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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음악을 듣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읽어내, 소설과 시로 탄생시킨 '득수 읽다' 시리즈.

그 첫 책이었습니다.

​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쇼팽'

그는 폴란드의 시인 아담 미츠키에베치의 서사시를 읽고 그것으로부터 발라드 4곡을 작곡했다고 합니다.

서사시라는 언어를 음악의 언어로 바꾸었던 쇼팽.

이제 4명의 소설가와 4명의 시인이 쇼팽 발라드를 듣고 썼다고 하니 그 느낌은 어떨지...!

​

8명의 작가가 들려주는 쇼팽 발라드

​

『쇼팽을 읽다』


얼핏 보더라도 책의 두께는 상당히 얇았습니다.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마냥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 흐름에 몸을 맡겼고 마음을 맡기다 보니 어느새 쇼팽의 발라드와 글은 선율을 따라 조화를 이루며 흐르고 있었습니다.

​

쇼팽 발라드 1~4번에서 찾아낸 이야기들.

쇼팽 발라드 1번에서의 유희란 소설 <그 한 가지>에서 '준수'와 쇼팽의 닮은 모습이,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은 그 마음'이

잔잔하지만 때론 몰아치는 깊은 감정에 잠시 휘둘리곤 하였습니다.

쇼팽 발라드 2번에서는 시인 이소연의 시 <금목서, 금목서>에서 

​

꾹꾹 눌러쓴 별자리

쇼팽의 음표 같았어요

​

라는 구절로 발라드 2번을 풀어냈는데...

서정적인 듯하지만

그래서 더 치명적이었던...

​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사이드미러 속엔 꽃과 향기의 거리가 들어 있지요

​

금목서

​

마음을 끌다가

끌다가

누가 그랬죠

치명적이라고

...

창문에 그려진 그림이, 푹 꺼졌어요

닫힌 창문이 코피를 흘렸어요

치명, 죽을 지경에 이름

그러나 죽지는 않죠

​

쇼팽 발라드 3번에서는 권정현 소설 <노이즈 캔슬링>에 직접적으로 언급되면서 노래가 녹아져있었습니다.

​

어떤 인연은 헤어진 뒤 원수가 되기도 하고 어떤 인연은 헤어져 아쉬움이 남고 어떤 인연은 담담하다. 내게 아버지의 기억은 그 모든 감정이 혼합된 형태다. 나를 버린 친아버지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증오로 남았다가 어느 순간 잊히는 기억이 됐고 키워준 아버지의 대한 기억은 애증으로 남아 조금씩 희석되고 있다. 가끔 그들이 생각나면, 장마철 시멘트 다리 앞에 서서 망설이던 날이 떠오르면, 혼자 아프게 웃고는 한다. 그들도 사느라 참 힘이 들었겠구나. 다시 그들을 만나게 된다면 어깨를 두드려 주며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나이가 됐다. 쇼팽이 연인 조르주 상드와 헤어진 뒤에도 계속 아름다운 음악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아쉽거나 쓸쓸했던 기억의 힘일 것이다. 그 힘의 다른 이름은 사랑이겠지. - page 101

​

4개의 발라드 중에 깊은 아름다움이 느껴졌던 발라드 3번이었습니다.

쇼팽 발라드 4번에서는 시인 유종인 시 <물결치는 유리창들>이 저에게 이 음악과 너무나 닮은 것 같았습니다.

​

물결치는 유리창들

유종인

​

가령, 이런 일이 있다고 치자

그것은 단단히 붙박인 건물의 유리창이 그날따라 노을에 설레는 것

노년의 응석이라고 해두자

​

저 봐라, 노을이 창세기의 기억으로 빗발치면

단단했던 외벽의 유리창들의 어깨가 술렁이는 것

어깨를 겯고 물결치는 노래의

첫 악장은

탄성을 위한 비워둠이 제격인 것

​

그럴 때면 따라오라 이 도시에

날아든 표범이 퇴근 중인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

토막난 정원을 큐빅처럼 펼쳐 초원으로

한두 발짝씩 내딛게 하는 것

은밀한 과감함은 한두 발짝 바람의 시음에서 비롯된 것

​

아 영원의 응석은 봄일까

하루마다 찾아드는 겨울날에도 볕 든 모래 반 줌을 쥐는 버릇은

영원의 무진장한 천안에 흩뿌려

감정 없는 눈물을 쥐어짜 보려는 오래된 버르장머리,

이중적 삼중적 사중적 그러나 하나의 다면체인

사랑의 천수관음의 물결들,

저 고딕체 빌딩의 유리창을 일렁이는 거북 등짝으로

영원의 점괘를 불태워 보려는 것

​

거두절미, 미처 거두지 못한 술잔에

몰락과 갱생의 몰약이 고요한 입술을 부르듯

​

이번을 계기로 알게 되었던 쇼팽 발라드.

서사적으로 때론 평화롭게 속삭이는 듯했지만 때론 격정적이었던...!

이 음악이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로 탄생된다는 점에서 나름 흥미로웠습니다.

여러 이야기로 다양한 감정을 마주했다면...

다시 음악으로 돌아가 내 느낌과 감상을 마주하고 싶었습니다.

오늘 하루는 쇼팽의 피아노 선율에 저를 맡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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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장 밝은 밤에 헤어졌다 - 도스토옙스키 단편 백야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윌마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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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소설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이 소설은 도스토옙스키가 대문호로 불리기 전,

​

20대 청년 시절에 쓴 청춘의 연가

​

라 하였습니다.

​

사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라 하면...

『죄와 벌』, 『카리마조프가의 형제들』 등과 같이

이름도 어렵고 방대한 양에 주제도...

선뜻 접근하지 못했었는데...

(그래서 저는 아직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

이 소설을 마주했을 때 선뜻 용기가 났습니다.

소설의 두께도 이 정도면 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무엇보다

​

'서툰 첫사랑의 기록'​

​

이라는 점에서 보다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제서야 대문호의 작품을 읽게 된 이 순간!

설렘을 안고 읽어보았습니다.

​

대문호 도스토옙스키가 26세에 쓴,

가장 투명하고 순수한 연가!

​

『우리는 가장 밝은 밤에 헤어졌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그런 밤은, 친애하는 독자여, 젊은 날에나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 page 8

​

이름은 모르겠고 스스로를 '몽상가'라 부르는 이 소설의 화자.

밤이 깊어서야 그는 시내로 돌아오고, 집으로 발길을 향하던 중 저만치에서 어떤 여인을 발견하게 됩니다.

​

"... 사실,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두렵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오늘 참 행복했습니다. 길을 걸으며 노래를 부를 정도였죠. 교외에 다녀왔거든요. 오늘처럼 행복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당신이, 어쩌면…… 음, 혹시 괜한 일을 상기시키는 거라면 죄송합니다만, 당신이 울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저는 차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가슴이 미어지듯 아파서……. 세상에나! 네, 그래요, 제가 정말 당신에게 형제의 연민을 느끼는 게 죄라도 되는 걸까요? 연민이라는 말을 용서해주세요……. 하지만 그래요, 한마디로, 제가 저도 모르게 당신에게 다가가려 한 것이 당신을 모욕하는 일이었을까요……?" - page 27 ~ 28

​

떨고 있던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던 몽상가.

그녀의 이름은 '나스텐카'로 1년 전 마음을 빼앗긴 남자가 있었는데 1년 뒤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났고, 사흘이 지났지만 나타나지 않았던 그...

이런 사정을 묵묵히 들어주었던 몽상가에게 그녀는 오지 않은 그에게 편지를 대신 전해 달라고,

(조금은 이기적이지 않나...)

몽상가는 그녀를 향해 커져가는 마음을 애써 숨기며 그녀의 곁을 지켜주게 됩니다.

결국

​

"그 사람이에요!" 그녀는 떨리는 몸을 내게 더 바싹 붙이며 속삭였다……. 나는 버티고 서 있기가 힘들었다.

"나스텐카! 나스텐카! 당신 맞지!"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리더니 거의 동시에 젊은 남자가 우리 쪽으로 몇 발짝 다가왔다. - page 123 ~ 124

​

다음날 아침, 나스텐카로부터 편지를 받아들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진 몽상가의 고백...

​

그대의 하늘이 언제나 맑기를, 그대의 사랑스러운 미소가 언제나 밝고 구김 없기를, 한없이 기쁘고 행복한 순간에 그대에게 축복이 넘치기를, 그대는 어떤 이의 외로운 가슴에 기쁨과 행복의 순간을 안겨 주어 감사한 마음을 가득 품게 했으니!

그래! 한순간이었던 지극한 행복이여! 한 사람의 일생에서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 page 130

​

순수하였고 찬란했던 청춘의 한 페이지...

비록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다시 고독한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이 찰나의 행복으로도 인생을 살아갈 힘이 되어준다는 점에서...

저도 지난날을 회상하며 옅은 미소를 남겨보게 되었습니다.

짧지만 진한 여운을 남겨주었던 이 소설.

『백야』라는 제목보다 『우리는 가장 밝은 밤에 헤어졌다』가 더 깊이 새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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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 가우디, 삶과 일
아르만드 푸치 지음, 송병선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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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카탈루냐의 거장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가우디 타계 100주기인 6월 10일,

그의 평생의 역작인 스페인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준공식이 열렸습니다.

교황 레오 14세가 성당을 직접 찾아 미사를 집전하고,

2월 공사가 끝난 성당에서 가장 높은 첨탑 '예수 그리스도의 탑'에 성수를 뿌리며 축복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가우디에 주목하게 되었는데...

​

여기 이 책에서는 가우디의 삶과 사상을 입체적으로 복원한, 20세기 유일한 가우디 전기라 하였습니다.

그동안 가우디라고 하면 천재 건축가라는 것, 그의 업적들만 알고 자세히는 몰랐었는데...

이번에 한 사람으로서의 삶과 일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

"신화가 아닌 진짜 가우디를 만나다"

​

『안토니 가우디, 삶과 일』

1852년 6월 25일 레우스에서 태어나 1926년 6월 10일 바르셀로나에서 일흔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책은 그의 삶의 여정을 따라가며 그의 인생과 작품, 그리고 사상을 조명하고 있었습니다.

생전에 말과 글 대신 오직 건축을 통해 자신을 표현했던 가우디.

그래서 그를 둘러싼 수많은 신화와 과장, 불분명한 해석들이 반복되었는데

​

레우스의 자연과 빛 속에서 감수성을 키운 어린 시절을 거쳐 바르셀로나에서 젊은 건축가로 성장하던 초기

폭발적인 창작 활동 속에서 사순절의 단식과 정신적 위기를 겪으며 내면의 변화를 맞이하는 중기

점차 신앙과 상징, 전례적 의미에 깊이 몰두하며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삶 전체를 바치게 되는 말년

​

으로 나누어 실증 자료, 동시대 기록과 최신 연구를 바탕으로 보다 가우디의 실제 삶과 사상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

가우디에게 '영성'은 부수적이고 부가적인 것이 아니라, 그의 활동, 다시 말해 창의력의 원동력이자 중심축이었습니다.

그는 믿고 창조하며, 자기가 믿는다고 고백하는 신앙에 따라 창조하였는데...

그 결정체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었습니다.

​

그의 삶은...

그가 이룬 건축물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어릴 때부터 선천성 폐병과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었고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며 사색에 잠기거나 자연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이는 자신만의 건축 스타일을 완성하기도 합니다.

혼자였고 고독을 견디기 힘들어했지만 마지막 가는 길에도 결국 혼자였던...

특히나 6월 9일 위중한 상태에서 실처럼 가는 목소리로

​

"오 하느님, 저의 하느님"

​

이라고 중얼거리며 마지막 숨을 고했을 때 비로소 하느님을 마주했을 그...

​

하느님을 찾으며 하느님을 만나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안토니 가우디.

​

가우디의 성스러움과 관련된 결정체로서 네 가지 요소가 있다. 바로 섭리, 승천, 희생, 영광인데, 이것은 그가 신비주의의 길로 걸어갔음을 보여준다. 그는 "우리를 지켜보고 돌보시는 섭리가 있다"라고 굳게 확신했다. 라몬 류이와 마찬가지로, 가우디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사색이나 기이한 현상에 몰두하는 신비주의자가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의 신비주의자였다. 발로는 땅을 딛고 서 있으면서도 지중해의 빛으로 그의 영적인 통찰력과 현실 체험을 구성했다. 그래서 토라스 이 바제스의 가르침을 따라, 한편으로는 인간 존재의 연약함을 인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꾸준하고 지속적인 노동을 선택하여, 이 두 개를 결합했다. 가우디가 걸어간 신비주의의 길은 "눈으로 보는 마음의 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 page 306

​

이제는 평안하시길 바라봅니다......


건축물은 남겼지만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거의 설명하지 않았던 그.

대신 이 책에서도 큰 틀로 잡았던 세 시기, 세 개의 서명으로 그를 알아보았었는데...

​

첫 번째 시기(1868~1894) 가우디가 열여섯 살에 레우스를 떠나 학생으로서 바르셀로나로 이주해 살면서 시작되고, 1894년의 극단적인 사순절 단식에까지 이어진, 이 시기의 그의 서명1에 대해 조안 베르고스는

"생동감 넘치는 상상력, 미적 취향, 천재성, 그리고 허영심, 확장성, 관능성"

​

이 보인다고 하였습니다.

​

두 번째 시기(1894~1911)는 1894년의 사순절 단식으로 시작됩니다.

이 단식이 초래한 내적 체험은 가우디를 그리스도교 신앙과 무엇보다도 겸손을 중심으로 새로운 지평으로 이끌었는데 이 시기 그의 서명2를 보면 '자아'가 낮아졌으며, 성숙함과 도덕적 힘이 굳건하게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이에 베르고스는

​

"단순함, 직관, 명료함, 그리고 능력의 균형"

​

이라 평하였습니다.

​

세 번째 시기(1911~1926)는 심각한 병, 곧 몰타열 혹은 브루셀라증에 걸리면서 시작됩니다.

세 번째 서명은 두 번째 서명과 상당히 닮아 있고 베르고스는 여기서

​

"끈기, 절제, 그리고 더욱 커진 감성"

​

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가우디는 자기 여정의 끝에 이르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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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황후들 - 제국의 역사를 다시 쓰다
조셉 맥케이브 지음, 김연수 옮김 / 히스토리퀸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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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건...

로마의 '황후'들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색달랐다고 해야 할까...!

​

찬란했던 로마에,

로마의 황제 옆에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했던 황후들,

그들의 이야기는 또 어떨지 기대하며 읽어보았습니다.

​

권력의 이면에 감춰진 로마의 여인들,

로마 제국의 영광과 몰락을 함께 한다

​

고대 유럽 문명의 중심지 로마 제국

광활한 제국을 지배한 황제, ,임페라토르

황제의 옆에는 황후, 아우구스타들이 있었다

군주의 그림자이자 동반자였던

여인들의 시점으로 제국의 역사를 훑어본다

​

『로마의 황후들』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저자는 이 책을 쓴 이유를 밝혔습니다.

​

내가 다루고자 하는 이 익숙한 이야기의 새로운 관점은 로마의 질병을 가속화한 일에 관한 책임이 아니라, 그 진행을 막는 데 실패했던 역대 황제들을 형성하거나 망친 여인들에 관한 연구이다. 여인은 로마의 흥망성쇠에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초창기 여성의 일은 가정 울타리 안에 제한되었지만, 그 어떤 집정관도 로마의 중대한 운명을 이끌지 못했고, 그 어떤 병사도 로마의 독수리 깃발을 세계 끝까지 가져가지 못했다. 하지만 어떤 여성은 그들이 국가의 신념을 읊을 수 있도록 가르쳤다. 그러나 우리 시대가 시작되기 훨씬 전에, 로마 여인의 사상과 힘은 더 넓은 공적 생활의 영역으로 나아갔다. 제국이 건립되고 국가의 막대한 자원이 통치자 한 명의 손에 위임되었을 때, 군주의 아내는 그의 권력을 공유할 수 있고, 분명 우리에게 흥미를 제공하는 존재가 된다. 평범한 로마의 여성일지라도, 어둠과 구별할 수 없는 군중 속에서 왕좌의 빛나는 높이로 솟아오른 독보적인 인물과 전형으로서 그들은 마땅히 검토를 거쳐야 할 가치가 있다. - page 7

​

화려한 전경 속 덧없는 모습으로 그려졌던 황후들을 이제

개별 인물로,

온전한 윤곽으로,

그려나갔습니다.

​

기원전 28년 8월 어느 날 아침, 로마의 백만 시민은 개선 행렬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늘어서서 그들에게 낯선 평화의 축복을 가져다준 이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 page 17

​

시끌시끌한 광장과 반짝이는 주피터 신전을 팔라티노 언덕의 기품 있는 저택에서 내려다보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옥타비아누스의 아내이자 로마의 기틀 형성에 기여한 황후 '리비아 드루실라'

그녀를 필두로

칼리굴라의 폭정을 부추겨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 '밀로니아 카이소니아'

남편 몰래 불륜을 저지르다가 남편 암살을 꾀해 최초로 기록말살형에 처한 '발레리아 메살리나'

네로의 어머니 '소小 아그리피나'

제국의 영토를 최대로 넓힌 트라야누스의 아내 '플로티나'

제국의 내정 개선에 힘써 지칠 줄 모르는 일꾼으로 평가받은 라드리아누스의 아내 '비비아 사비나'

무능한 아들들을 대신하여, 제국의 정국을 주도해 '시리아의 여왕(또는 여제)'로 불린 '율리아 돔나'

적들의 침략과 권신들의 횡포에 맞서 꿋꿋이 서로마 제국을 지켜낸 '갈라 플라키디아'

등

흥망성쇠 로마 제국의 역사 속 다양한 면모를 지닌 여인들의 삶이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

책을 읽으면서...

역시나 인물이 아닌 인물들이 등장하기에,

이름도 익숙하지 않기에 등장할 때마다

당신은... 누구 셨더라...

결국 관계도를 그려가면서 읽었던...!

(마치 공부하는 것 같아서 은근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글이 쉬이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뭔가 문장이 매끄럽지... 않았던... 나의 문해력의 탓일까...

아마 이건 제 탓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황후들'을 바라보며 또 다른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니 소소한 재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한 예를 들어보자면 아그리피나에 대해

​

우리는 나중에 그녀를 향한 훨씬 더 심각한 비난들을 발견할 것이고, 이러한 비난들을 유보하거나 솔직하게 믿지 않아야 할 것이다. 카이사르들의 배우자를 악덕으로 만드는 것은 문화적인 유행이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우리는 아그리피나와 게르마니쿠스의 장녀가 그녀의 혈통을 더럽혔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어머니에게서 정력적인 야망을 물려받았고, 야망을 추구하는 데 더더욱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그녀를 위해 가장 좋게 말할 수 있는 바는 그녀가 그녀 자신보다 아들의 미래를 구축하는 데 목표를 뒀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아들이 자기 어머니를 살해한 황제 네로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우리는 그녀의 기록을 연민의 시선으로 너그럽게 읽게 된다. - page 113 ~ 114

그녀는 아주 특출나고, 뛰어난 능력과 힘이 있는 여인이었다. 미덕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에 살았다면, 그녀는 훌륭하고 고결한 왕비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새롭고 지적인 도덕 기준이 더 오래된고 본능적인 규범을 대체하는 시대에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느라 투쟁해야 했고, 이러한 규범이 이익이 될 것 같으면, 그녀는 이러한 변화가 항상 불러오는 도덕적 회의론을 이용했다. 그녀는 여왕 같았지만, 온전히 명예롭지도 않았고, 순수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로마를 잘 섬겼고, 로마가 행복하고 번역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들의 출세를 위한 그녀의 이타적인 열정, 상처 입은 며느리를 기사도처럼 치명적으로 지켜낸 용기, 아들의 말로 다할 수 없는 잔혹함에 맞선 용기는 오시리스에 비하면, 더 많은 것을 해냈다. - page 144

​

황후들의 모습은 남편들에게는 통했다고 할지라도, 제국의 삶에는 깊거나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제국에서 배제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소신껏 행동하였기에 찬란하게 '로마'가 꽃을 피울 수 있었음을.

(몇몇은 아니었지만... )

​

역사에 대한 해석은

시대적 배경과 목적에 의해 달라지고,

초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왜곡보다는 사실에 의존해야 함을

제 시선도 다시금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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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황후들 - 제국의 역사를 다시 쓰다
조셉 맥케이브 지음, 김연수 옮김 / 히스토리퀸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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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도 ‘황후‘들을 비춰주었던...! 그녀들 역시도 로마의 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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