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보더라도 책의 두께는 상당히 얇았습니다.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마냥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 흐름에 몸을 맡겼고 마음을 맡기다 보니 어느새 쇼팽의 발라드와 글은 선율을 따라 조화를 이루며 흐르고 있었습니다.
쇼팽 발라드 1~4번에서 찾아낸 이야기들.
쇼팽 발라드 1번에서의 유희란 소설 <그 한 가지>에서 '준수'와 쇼팽의 닮은 모습이,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은 그 마음'이
잔잔하지만 때론 몰아치는 깊은 감정에 잠시 휘둘리곤 하였습니다.
쇼팽 발라드 2번에서는 시인 이소연의 시 <금목서, 금목서>에서
꾹꾹 눌러쓴 별자리
쇼팽의 음표 같았어요
라는 구절로 발라드 2번을 풀어냈는데...
서정적인 듯하지만
그래서 더 치명적이었던...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사이드미러 속엔 꽃과 향기의 거리가 들어 있지요
금목서
마음을 끌다가
끌다가
누가 그랬죠
치명적이라고
...
창문에 그려진 그림이, 푹 꺼졌어요
닫힌 창문이 코피를 흘렸어요
치명, 죽을 지경에 이름
그러나 죽지는 않죠
쇼팽 발라드 3번에서는 권정현 소설 <노이즈 캔슬링>에 직접적으로 언급되면서 노래가 녹아져있었습니다.
어떤 인연은 헤어진 뒤 원수가 되기도 하고 어떤 인연은 헤어져 아쉬움이 남고 어떤 인연은 담담하다. 내게 아버지의 기억은 그 모든 감정이 혼합된 형태다. 나를 버린 친아버지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증오로 남았다가 어느 순간 잊히는 기억이 됐고 키워준 아버지의 대한 기억은 애증으로 남아 조금씩 희석되고 있다. 가끔 그들이 생각나면, 장마철 시멘트 다리 앞에 서서 망설이던 날이 떠오르면, 혼자 아프게 웃고는 한다. 그들도 사느라 참 힘이 들었겠구나. 다시 그들을 만나게 된다면 어깨를 두드려 주며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나이가 됐다. 쇼팽이 연인 조르주 상드와 헤어진 뒤에도 계속 아름다운 음악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아쉽거나 쓸쓸했던 기억의 힘일 것이다. 그 힘의 다른 이름은 사랑이겠지. - page 101
4개의 발라드 중에 깊은 아름다움이 느껴졌던 발라드 3번이었습니다.
쇼팽 발라드 4번에서는 시인 유종인 시 <물결치는 유리창들>이 저에게 이 음악과 너무나 닮은 것 같았습니다.
물결치는 유리창들
유종인
가령, 이런 일이 있다고 치자
그것은 단단히 붙박인 건물의 유리창이 그날따라 노을에 설레는 것
노년의 응석이라고 해두자
저 봐라, 노을이 창세기의 기억으로 빗발치면
단단했던 외벽의 유리창들의 어깨가 술렁이는 것
어깨를 겯고 물결치는 노래의
첫 악장은
탄성을 위한 비워둠이 제격인 것
그럴 때면 따라오라 이 도시에
날아든 표범이 퇴근 중인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
토막난 정원을 큐빅처럼 펼쳐 초원으로
한두 발짝씩 내딛게 하는 것
은밀한 과감함은 한두 발짝 바람의 시음에서 비롯된 것
아 영원의 응석은 봄일까
하루마다 찾아드는 겨울날에도 볕 든 모래 반 줌을 쥐는 버릇은
영원의 무진장한 천안에 흩뿌려
감정 없는 눈물을 쥐어짜 보려는 오래된 버르장머리,
이중적 삼중적 사중적 그러나 하나의 다면체인
사랑의 천수관음의 물결들,
저 고딕체 빌딩의 유리창을 일렁이는 거북 등짝으로
영원의 점괘를 불태워 보려는 것
거두절미, 미처 거두지 못한 술잔에
몰락과 갱생의 몰약이 고요한 입술을 부르듯
이번을 계기로 알게 되었던 쇼팽 발라드.
서사적으로 때론 평화롭게 속삭이는 듯했지만 때론 격정적이었던...!
이 음악이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로 탄생된다는 점에서 나름 흥미로웠습니다.
여러 이야기로 다양한 감정을 마주했다면...
다시 음악으로 돌아가 내 느낌과 감상을 마주하고 싶었습니다.
오늘 하루는 쇼팽의 피아노 선율에 저를 맡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