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의 끝에서 너를 기다린 하루
봄비눈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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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누구나 인간은 죽기 마련이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막연히 생각하고...

우리의 인생은 매번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에 후회를 하곤 하는데...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나았을까란...?!

​

이 책의 주인공에게 죽기 전, 원하는 시절로 돌아가 1년을 살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다...

책을 읽기 전 

'나라면 어디로 갈까...'

생각해 봤지만 막상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다시금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

언제나 후회로 점철됐던 삶.

죽기 전, 당신에게 원하는 시절로 돌아가 1년을 살 기회가 온다면

인생의 어느 순간에서 어떤 1년을 보낼 건가요?

​

너와 함께했다면, 

내 삶은 더 반짝였을까?

푸른 여름의 끝,

너를 다시 만나러 갈게

​

『파랑의 끝에서 너를 기다린 하루』

​



"니체는 지금 살고 있는 이 인생을 영원히 반복한다고 말하죠. 오직 한 번뿐인 이 삶을 후회하는 삶으로 만들 것인가, 다시 살고 싶은 삶으로 만들 것인가는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또다시 살아도 괜찮을 만큼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을 사세요. 이번 학기 수업은 오늘이 마지막이네요. 겨울 방학 잘 보내세요." - page 9

​

새로 임용된 교수님이 있어 강의실을 떠나야 하는 '백여름'.

몸과 마음이 지쳐 집으로 가고 싶지만 오늘은 웨딩드레스를 고르기로 한 날이라 바삐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

"태형 씨, 출발했어? 난 지금 마쳤어."

"출발? 아, 그게 오늘이었나? 깜빡했네. 회의 있어서 못 갈 것 같은데 그냥 혼자 다녀올래? 드레스 뭐 별거 있나, 뭘 입어도 어울릴텐데."

"그러자, 태형 씨. 혼자 보면 나도 편하지 뭐. 일 봐요." - page 12 ~ 13

​

1년 전 소개팅으로 만나 무난한 만남을 이어 가다가 그가 마흔이 된 올해, 당연하다는 듯 양가 부모님께 인사드렸던...

애정도 기대도 없는...

뭐...

무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평범함에서 얻는 안정감이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상관없다는 식으로 걸음을 걸어가던 여름에게...

​

"어…? 어떻게 된 거지?" - page 17

​

눈 떠보니 전체적인 골조가 목재로 되어 있어 싱그럽고 편안한 분위기의 카페 안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카운터로 가서 이곳이 어디인지, 오늘이 며칠인지부터 물어보려 하는데 70대로 보이는 백발의 여인이 여름에게로 오는 것이었습니다.

​

"먼저, 조의를 표합니다. 백여름 님은 금일, 교통사고로 사망하셨습니다. 이 카페는 이승에서 죽은 사람들이 완전한 죽음의 세계, 저승으로 가기 전 머무는 공간입니다."

...

"이곳은 BCD 카페 4호점입니다. 혹시 '인생은 B와 D 사이 C이다.'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

"이승에서는 BCD를 인생은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의 선택Choice이라고 해석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해석입니다. C는 'Choice'가 아니라 'Chance'입니다. 우리에겐 삶이 끝나고 죽음으로 가는 사이, 단 한 번의 기회가 있습니다." - page 18 ~ 19

​

이곳 BCD카페라는 곳은 고인이 마지막으로 자신이 살고 싶은 시절로 돌아가서 1년간 지내는 기회를 얻게 된다고 합니다.

갑작스럽게 주어진 과거 1년의 삶...

젊고 다정했던 부모님의 모습, 부모님께 짜증 내던 기억, 친한 친구와 다른 학교에 가게 되어 울던 자신의ㅣ 모습과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하던 추억, 그리고 생을 마감하기 직전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약속한 모습까지.

행복해 보이지 않은 자신을 직면한 여름은 문득 첫사랑이었던 '안유현'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때도 사귀던 사람을 사랑하기보다는 그 상황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 자신의 감정을 감출 수밖에 없었던 여름.

그때 좀 더 솔직하고 용기 냈었더라면...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을까...?!

그리하여 여름은 유현이를 처음 만난 그 순간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과연 유현과 함께 여름의 인생은 더 반짝이게 될까...?!

​

내일의 나는,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까. 내가 머문 시간은 고작 1년뿐이지만,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몸에 밴 습관들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바라며 핸드폰을 열었다. - page 352

​

그때 그 시절...

첫 번째 삶의 후회를 만회하기 위한 여름의 풋풋하고도 당찬 모습은 읽는 내내 피식 웃음을 자아내게도 했는데...

눈부시고도 찬란했던 이야기...

하지만 책의 결말은 이미 첫 문장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니체의 철학이 전한 메시지...

​

"아모르파티, 삶의 어려움까지 즐겨라.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라! 우리가 한 학기 동안 배울 프리드리히 니체의 기본 정신이야. 니체의 철학은 우리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들지." - page 193

​

"여름아, 니체의 영원 회귀 알지?"

"수만 번 다시 태어나도 이 모습 이대로 똑같이 산다는 말이요?"

"그래. 똑같이 반복되는 삶이라면, 그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모습 그대로를 긍정하는 일밖에 없을 거야."

"하지만 전 지금 제 모습이 만족스럽지가 않아요."

"지나온 과거와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게 살아 보면 어떨까. 니체에 따르면 지금 이 순간은 무한히 반복되는, 영원한 시간이야. 우리의 삶은 죽은 후에 다시 반복되니까. 네가 여든까지 산다고 해 보자. 지금 이 순간이 영원히 반복되면 네가 산 80년보다 길 거야. 그렇기에 니체는 지금 이 순간을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단다."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 전체보다 더 중요하다고요?"

"그래. 그러니 이 순간을 또 겪어도 좋을 만큼, 행복하게 즐겨야 해. 이번 강의 첫 시간에 한 말 기억나지? 아모르파티." - page 218

​

니체의 말은 다른 책을 통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또다시 마주하게 되니 더 강한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니체의 영원 회귀...

아모르파티...

​

"응. 널 행복하게 만드는 거면 시간을 투자해도 좋다고 생각해. 행복하려고 사는 건데 한 번뿐인 인생, 후회 없이 보내야지. 내가 오래 산 건 아니지만, 딱 하나 느낀 게 있다면 좋아하는 일을 미루지 말자는 거야. 언젠가는 하겠지, 하고 미루면 결국 못하게 되더라고." - page 200

​

새삼 그동안 미루고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아니, 그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사랑 표현하기!

저도 성격상 못했었는데...

이 밤이 지나기 전 '사랑해'를 외쳐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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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위의 만찬
이용재 지음 / 푸른숲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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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에게도 유독 영화의 내용보다는 음식이 떠오르는 작품들이 있곤 하는데...

워낙에 유명한 <올드 보이>에서는 '군만두'가,

<웰컴 투 동막골>에서는 '팝콘'이,

<황해>에서는 '김'이,

...

많이 회자되었기도 했지만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었습니다.

​

여기 음식을 통해 영화를 기억하는 독특한 시선의 무비 에세이가 있었습니다.

단순한 영화 리뷰를 넘어, 음식이 인물의 심리를 비추는 거울이자 서사의 결정적 단서가 되는 순간들을 세밀하게 포착해 생각지 못한 감상 포인트를 선사한다는데...

과연 어떤 영화에서, 어떤 음식이 존재감을 뽐내며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가 무엇일지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어떤 영화는 음식으로 기억된다"

​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마음을 사로잡은 장면 속 음식 이야기

​

『필름 위의 만찬』


20여 년간 영화를 탐닉해온 음식 평론가인 '이용재'

<조선일보>에 4년간 연재해온 동명의 칼럼 중 엄선한 글들을 1년 넘게 다듬고 엮어

​

이처럼 익숙한 영화도 음식을 렌즈 삼아 더 재미있게, 나아가 더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제시하는 에세이 58편을 한데 모았다. <필름 위의 만찬>은 영화 혹은 음식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촉매 역할을 할 것이다. 영화를 본 이들에게는 음식 위주 재감상의 동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며, 안 본 이들에게는 세심한 팸플릿 역할을 해줄 것이라 기대한다. - page 9

​

영화를 보다 맛있게 즐길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

소개된 영화를 거의 보지 않은 저에게는 앞으로 찾아볼 영화 목록을 제시해 주었고

보았던 영화에서는

​

'어? 이런 음식이 있었나?'

'이걸 이렇게까지 의미를 확대할 수 있다고?!'

​

음식이 단순히 배경을 채우는 장식이 아닌,

캐릭터의 심리·관계·세계관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보다 장면의 현실감과 몰입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영화 속 음식에 관한 뒷이야기 그 이상의 다채로운 지식과 정보를 다루고 있어 저에게는 마치

'영화 잡학사전'

과도 같았습니다.

​

포문을 열어준 건 <황해>였습니다.

많은 영화 가운데서 음식이 주인공과 벌이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 영화로

이런 퍼포먼스는 앞으로도 만나기 힘들다고 하였는데...

신스틸러 할 만한 음식 셋 - 김, 황해 정식, 감자-이 소개되었습니다.

그러고는

​

초인에 가까울 정도로 열렬히 먹어가며 끈질기게 살아남은 구남이 고향을 앞에 두고 죽어야만 했는지, 그에게 몰입한 나머지 받아들이지 못할 뿐이다. 중국으로 향하는 먼 뱃길, 무엇보다 허기에 지쳐 결국 굴복해버린 건 아닐까. 그러고 보니 배를 탄 이후로 그가 무엇을 먹었는지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 page 21

​

처절한 대서사적 먹방을 보여주었던 구남.

그의 마지막 식사는 무엇이었을까...

괜스레 가슴이 찡하면서 궁금해졌습니다.

​

그리고 영화 <신세계>를 또 다른 시선으로 해석했던...

​

"먹어, 먹어. 여기 송아지 고기 아주 연하고 좋아. 게다가 이거, 한우야 한우."

​

이중구(박성웅 분)가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수하에게 음식을 권한다는데...

저자는 이 장면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고 합니다.

아니, 왜...?

​

송아지 고기라고? 그것도 한우라고? 송아지 고기를 먹는 행태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한우로는 구하려야 구할 수도 없다. 한우는커녕 육우조차도 송아지 고기는 식용으로 나오지 않는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송아지 고기 판매처가 딱 두 군데 나오는데 모두 호주산이다. 어차피 허구니까 상관없거나, 실제로 한우 송아지 스테이크가 존재할 수도 있다고 치자. 스테이크의 초라한 풍모는 이중구가 발산하는 허세와는 격이 전혀 맞지 않는다. - page 133

​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

"죽기 좋은 날이군."

위스키 한잔을 끝으로 이중구는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어떤 후폭풍이 닥칠지 뻔히 알면서 미련하게 '칼춤'을 춘 대가를 치른 셈이지만 나는 좀 다르게 생각했다. 이중구는 송아지 스테이크를 탐욕해 벌을 받은 것이다. 말이 안 된다고? 너무 가혹하다고? 그래도 신의 손에 의해 죽은 셈이니 조폭의 파벌 싸움에서 밀려 맞아 죽은 것보다는 차라리 낫지 않을까. 어쨌거나 소고기는 먹을지언정 송아지 고기까지 탐하지는 말자. - page 136

​

음...

솔직히 영화들 이야기를 하시면서 이렇게 색다른 시선을 이야기해 주셔서 그 영화를 봤을 때 나의 감흥이 살짝 떨어지기는 했지만...

피식!

신선했었습니다.

(그래도 만약 내 친구가 같이 영화를 보고 저렇게 이야기한다면... 친구야, 잘 가, 안녕......)

​

마지막을 장식한 영화는 <왕과 사는 남자>였습니다.

어린 왕 이홍위가 노산군으로 강등된 뒤 유배길에 오르게 됩니다.

처음에 노산군은 먹지 않을 뿐더러 스스로 목숨을 끊을 시도마저 하지만 차츰 마음이 열리면서 광천골 사람들이 준비한 밥상을 받아 열심히 먹는데...

​

한편 음식도 꾸준히 등장하지만 의외로 이야깃거리가 잘 우러나지 않는다. 상당 부분 존재가 희미하달까? 밥상이 자주 등장하지만 내용물을 카메라가 그다지 열심히 잡아 보여준다는 생각이 안 든다. 그런 가운데 분위기 전환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끼니가 이야기를 끌어나가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어진다. '과연 저 시대에 저렇게 먹었을까?'라는, 고증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 page 370

​

그렇게 음식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어느새 죽음을 위한 음식 '사약'에 대한 이야기로 마치게 되었습니다.

​

<왕과 사는 남자> 초반에서 보여주는 사육신들처럼 원래 중죄를 지은 자는 교수 혹은 참수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사대부의 경우 마지막 순간까지 품위를 지켜준다는 명분으로 사약을 내렸다. 죽는 사람 입장에서도 '신체발부 수지부모'에 입각, 부모에게 물려받은 신체를 온전히 지키고 죽는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었다.

그렇기에 죽을 사(死)자가 아닌 내릴 사(賜)자를 쓰는, 말하자면 선택 받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죽음의 음식이 사약이었다. - page 372

​

왕위에 올랐던 몸으로 차마 사약을 받을 수 없다며 엄흥도에게 자신의 마지막을 위탁했던 노산군.

또다시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나왔습니다.

​

오감으로 즐길 수 있었던 영화 이야기.

​

"당신은 무엇으로 영화를 기억하나요?"

​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크게 음식에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는 음식이, 소품이, 음악이 허투루 지나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러다 영화가 감상이 아닌 분석이 되는 건 아닐까......

뭐,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겠지만 관람자가 아닌 감독의 시선으로 확장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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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약국의 딸들 (박경리 큐레이션 리커버) ㅣ 박경리 탄생 100주년 기념 큐레이션 리커버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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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ㅋ1950년대, 여성 독자의 등장과 함께 연애소설이 범람하던 시기

전형적인 연애 서사를 벗어난 소설로 자신만의 문학적 위치를 구축했던 작가

'박경리'

​

사실 작가님의 작품을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토지』는 방대한 양에 겁이 났었고

『김약국의 딸들』은 읽어야지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었었고...

(이 모든 게 핑계입니다만...)

​

그러다 이번에 박경리 탄생 100주년을 맞아 다산북스에서 '이 시대의 낭만성'이라는 주제 아래 장편소설을 새로운 표지로 재구성한 <박경리 큐레이션 리커버> 프로젝트를 선보였기에 이번을 놓치면 또다시 기약 없을 것 같아 읽어보았습니다.

'이 시대의 낭만성'이라는 하나의 주제 아래 세 작품

​

『김약국의 딸들』, 『애가』, 『표류도』

​

그중에서도 대표작을 우선 만나보려 합니다.

​

"저의 아버지는 고아로 자라셨어요.

할머니는 자살을 하고 할아버지는 살인을 하고,

그리고 어디서 돌아갔는지 아무도 몰라요.

아버지는 딸을 다섯 두셨어요."

​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몰락하는 가문과

각자의 욕망으로 몸부림치는 다섯 딸의 운명

​

『김약국의 딸들』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만큼 바다 빛은 맑고 푸르다. - page 9

​

남해의 미항 통영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김봉제'.

그에게는 부자지간처럼 연령의 차이가 있는 동생 '김봉룡'이 있는데 첫 번째 부인을 때려 죽였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광폭한 성정으로, 아름다운 둘째 부인 숙정과의 사이에 아들 '김성수'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숙정을 사모하던 욱이 도령이 통영에 들어서고,

아내의 부정을 의심한 봉룡은 살인을 저지르고 달아나게 되고,

숙정은 오해에 맞서 비상을 먹고 자결하게 됩니다.

남겨진 아들 성수...

​

성수는 김봉제와 그의 부인 송씨의 손에 자라게 되고, 약국을 물려받아 '김약국'으로 불리게 된 성수.

이제는 어장 사업으로 부를 얻고, 한실댁과 혼인해 딸 다섯을 두게 됩니다.

샘이 많은 큰 딸 '용숙'은 일찍이 과부가 되고 큰 스캔들에 휘말리지만 대금업 등으로 부자가 되고 가족과는 연을 끊고 살아가며

서울에서 공부하는 둘째 딸 '용빈'은 다른 자매처럼 결혼하지 않고 직업을 가지며 스스로 돈을 벌고

빼어난 미모를 가진 셋째 딸 '용란'은 욕구에 충실한 성품에 머슴의 자식인 한돌이와 성추문을 일으켜 아편쟁이에게 떠밀리듯 시집을 가게 되지만 다시 찾아온 머슴과 달아나며 김약국댁을 몰락으로 이끌게 되고

손끝이 야문 신실한 기독교 신자 넷째 '용옥'은 집안의 어장 사업을 도맡던 서기두와 혼인하지만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을 하다가 씁쓸히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할아버지 봉룡의 노란 머리칼을 닮은 막내 '용혜'는 김약국이 아끼며 사랑받는...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

결국...

김약국의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면서 김약국도 위암에 걸려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용란은 서기두에게 용빈을 부탁하며...

왜 이제서야 이 책을 읽게 된 건지...!

흡입력이 장난 아니었고 1962년에 출간되었음에도 지금 읽어도 손색없었던!

정말 안 읽어본 사람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

한 집안의, 그 안에 살아간 여성들의 이야기.

자신의 운명과 환경, 주위의 시선 등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했던 용숙

자신을 초극하여 더 나은 자아를 만들어 가고자 했던 용빈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지만 사회적 차별과 편견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광녀가 된 용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였던 용옥

비극 속에서도 지지 않았던 이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에게도 지지 않는 생명력을 눈뜨게 해주었습니다.

​

"자신이 없어요.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어요."

"그런 소리 하면 못써요. 인생이란 사철이 봄일 수는 없잖아? 가을이 오면 잎이 떨어지고 한겨울이 오명 헐벗고 떨어야 하지만, 이내 봄이 오지 않니? 희망을 잃어서는 안 돼요."

"제가 잘못하여 희망을 잃었겠어요? 누군가가 저의 희망을 앗아가지 않았습니까? 케이트 선생님."

"용빈은 절망하고 있군."

"절망밖에 남은 게 없어요."

"기다려라. 기다려봐라. 겨울이 지나면 더욱 화창한 봄이 온다는 것을 생각해요. 더 많은 가지를 뻗은 나무가 행인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을 생각해봐요. 용빈은 그 싱싱한 나무야. 알겠니? 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아이라는 것을 명심해. 모든 일을 너를 위하여 있는 시련이라 생각하구……." - page 266 ~ 267

​

그렇게 앞으로 나아갔던 이들.

이들의 발걸음에 응원의 박수를 건네며...

박경리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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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약국의 딸들 (박경리 큐레이션 리커버) ㅣ 박경리 탄생 100주년 기념 큐레이션 리커버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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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에도 지지 않는 생명력으로 가득한 박경리 문학의 원형. 묻지 말고 꼭 읽어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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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방 (초판 한정 양장) ㅣ 특서 청소년문학 48
뤼도비크 르콩트 지음, 장소미 옮김 / 특별한서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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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실험적인 문체와 구성, 지금의 청소년의 어려움과 마음을 대변하는 프랑스 대표 청소년 소설가

'뤼도비크 르콩트'

이번 특별한 서재 청소년 문학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소개하는 프랑스 소설로 국내에 선보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목을 보면...

어떤 이야기일지 조금은 감이 잡히지만...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하며 읽어보았습니다.

​

'캐빈증후군, 히키코모리, 은둔형 외톨이'

​

문 앞에서 멈춰 버린 몸과 마음에 대한 이야기

단절과 불안의 시간을 지나 다시 세상으로!

​

『나만의 방』


드디어

오늘이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빠르게 두 번, 멈췄다가 다시 빠르게 두 번, 멈췄다가 또

다시 빠르게 두 번…….

​

5월 14일 - page 7

​

열여섯 살 소년.

어느 날 평소처럼 학교에 가기 위해 옷을 입고, 가방을 챙기고, 현관 앞에 섰는데...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싸여 문 앞에서 몸이 굳어 한 발짝도 뗄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가슴을 짓누르던 돌덩이...

방이 은신처가 되었고 그렇게 그의 은둔 생활이 시작됩니다.

​

병명은 치료의 출발점이다.

병을 알면, 치료법도 찾을 수 있다. - page 36

​

그리하여 정신과 의사 '제르맹 선생님'과 전화 상담을 하게 되었고

​

"제가 우울증인가요?"

내겐 간이 쪼그라드는 단어였다.

선생님은 진단을 내렸다.

"캐빈증후군이야."

내 병은 종종 볼 수 있는 알려진 병이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 page 58

​

병명을 알았으니,

해결책이 있는 병이었으니,

소년은 다시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187일간의 도전을 시작하게 됩니다.

과연 그는 현관문을 열고 정원을 지나 대문 밖으로 나가 길가 모퉁이까지 걸었다 돌아올 수 있을까...?!

​

나라고 안 될 게 뭐야? - page 117

​

이야기는 5월 14일 도전을 두 시간 남짓 앞두고 그간의 일들을 떠올리는 식의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집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된 첫날, 그로 인한 가족의 불행과 노력, 정신과 의사 상담, 처음엔 그를 도왔으나 점점 자연스럽게 멀어진 친구들, 마농과의 온라인 소통, 캐빈증후군의 원인 분석과 극복을 위한 프로그램 실행, 그리고 찾아온 디데이, 짧은 외출을 감행할 두 시간 전.

그 두 시간 남짓 동안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어지는 소년의 독백은 잔잔하지만 간간이 파장을 일으키곤 하였습니다.

​

그렇지 않아도 이 책이 의미 있었던 건 학교와 관계,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버티는 청소년들에게 와닿을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건네는 부모의 사랑과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려준 정신과 전문의의 인내...

무엇보다 같은 아픔을 먼저 겪어 본 친구 마농의 공감과 응원이 있었기에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던 아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

이 짧은 말 한마디가 큰 울림을 선사할 줄이야...!

책을 덮고 난 이 순간까지도 자꾸만 되뇌게 된 이 말.

오늘은 저도 아이에게 이 말을 건네며 '이해'와 '기다림'의 미학을 새겨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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