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속도에서 깊이로 (리커버 에디션) - 철학자가 스마트폰을 버리고 월든 숲으로 간 이유
윌리엄 파워스 지음, 임현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4월
평점 :
참으로 숨가쁘게 살고 있습니다.
뭐가 그리도 바쁜지 뒤돌아볼 틈도 없이, 잠깐의 여유를 가질 새도 없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나의 일상이 되어버린, 아니 나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이 있습니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닳을까봐 보조배터리까지 들고 다니면서 초단위로 검색에, 업데이트되는 소식에 손가락과 눈은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활한지 오랜 세월이 흐른 것이 아닙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일.
반대로 생각해보니 스마트폰이 없을 때는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의문마저 들곤 합니다.
조금은 그 속도를 늦추고 싶었습니다.
이미 지쳐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던 찰나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철학자가 스마트폰을 버리고
월든 숲으로 간 이유
『속도에서 깊이로』

이 책은 저를 이렇게 이끌었습니다.
그때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따라왔다고 화내지 않으실 거죠?"
익숙한 목소리다. 밀짚모자를 쓴 젊은 여자가 기어오르며 말한다.
"내 손을 잡아요."
"고마워요."
여자가 당신 옆에 선다.
"나는 더 이상 못 버티겠어요.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오직 이것뿐이에요."
젊은 여자는 마치 무대 위의 가수와 같은 몸짓으로 우주를 향해 팔을 뻗는다.
"준비됐나요?"
당신이 묻자 여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당신과 그녀는 눈을 감고 무릎을 약간 굽힌 다음 밖으로 힘차게 뛰어오른다! - page 14
그렇게 첫 걸음은 시작되었습니다.
디지털 도구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는 디지털 도구를 이용해 인간관계를 풍요롭게 하고 감정적, 사회적, 정신적인 갈증을 해소하며 자신을 창조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잘 활용하기만 한다면 디지털 도구는 삶의 매 순간을 더 풍요롭고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 - page 49
하지만 왜!
우리의 삶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디지털 도구로부터 조금은 벗어날 필요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있었습니다.
전화 통화와 그 '결과' 사이의 시간은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그 시간은 디지털 경험이라는 실질적인 측면과 꼭 필요한 '의미 있는' 측면을 연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을 대하는 지금의 사고방식, 즉 네트워크는 절대 끊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근거 없는 믿음은 시간의 공백이 가진 중요성을 완전히 간과하고 있다. - page 51
즉, 시간의 공백.
시간의 공백은 디지털 도구를 실용적인 도구에서 창조성, 깊이, 초월성의 도구로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시간의 공백은 사람들을 줄 서게 만든 마법의 핵심이다. 시간의 공백 덕분에 나는 지극히 평범한 경험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디지털 도구를 사용하는 모든 일이 마찬가지다. 시간의 공백이 없다면 가치 있는 경험도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공백을 만들기는커녕 점점 더 없애고 있다. - page 55
이 공백으로 하여금 우리의 삶이 보다 깊이있는 삶이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7명의 철학자 - 플라톤, 세네카, 구텐베르크, 셰익스피어, 벤저민 프랭클린, 소로, 매클루언-들을 통해 시간의 숲으로의 여행을, 깊이 있는 삶을 향해 가는 길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기록'에 대한 이야기.
디지털 스크린 역시 선별의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스크린은 막아내고 걸러내는 다소 대응적인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종이 수첩은 디지털 세상과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방어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가 없다. 종이 수첩에 기록할 정보를 선별하는 것은 자주적이고 자발적인 행동이다. 내 자신이 바로 검색엔진이고 알고리즘이며 필터인 것이다. (그렇다고 힘들다는 뜻은 아니다. 가끔 딴 생각을 하며 아무거나 끼적거리기도 한다.) - page 215
종이 수첩으로의 기록만으로도 시간의 공백을, 나의 '깊이'를 채울 수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저자의 월든 숲으로의 여행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금요일 밤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모뎀을 크는, '인터넷 안식일'을 실행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차츰 적응이 되면서 그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고 몇 달이 지나면서 앞에서 언급한 많은 일들이 큰 불편에서 사소한 불편이나 대수롭지 않은 일로 바뀌었다. 우리는 스크린에 달라붙어 있던 마음을 점차 떼어내고 있었다. 가족끼리 더 충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다들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생각도 느긋해지고 여유로워졌다. 우리는 바로 그 순간 그곳에 존재하며 한 가지 일에 집중하고 즐길 수 있었다. - page 313 ~ 314
디지털 세상에서도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다 같이 춤을 춘다. 하지만 그 춤은 소로가 말했던 시드남 무도병에 더 가깝다. 환희에 의한 춤이 아니라 광기에 의한 춤이다. 금요일 밤에 더 많은 모뎀이 꺼지면 마치 정전이 될 때처럼 집집마다 창문이 활짝 열리고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좀처럼 만나기 힘든 이웃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때가 오면 정말로 거리에서 한희의 춤을 추는 사람도 볼 수 있지 않을까. - page 320
책을 읽고난 뒤 나에게 '시간의 공백'이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역시나 그 공백이 두려워 자꾸만 디지털 세상을 찾고 또 찾으며 그렇게 내 삶의 깊이를 없애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책을 읽는 그 시간이 저에겐 '깊이'로 다가간 시간이었습니다.
조금은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나를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 디지털 세상에서 살아나갈 우리의 자세가 아닐까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