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정면과 나의 정면이 반대로 움직일 때
이훤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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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의미심장한 제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이 책의 소개글.

"위태로운 것들이 마음을 제일 많이 만진다"

사물의 지나간 마음을 찍고

최소의 언어로 써내려간 이훤 시인의 첫 산문


당신의 정면과 나의 정면이 반대로 움직일 때

 


책을 펼치니 저자 '이훤'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사물의 입장을

사진으로 읽고 싶었다.

시 아닌 형식으로 시에 가까운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사물의 지나간 마음을 사진과 간략한 텍스트로 모으기로 했다.

사람의 음성으로 읽히기도 하는 고백들을. - page 4

시인 이훤의 바람처럼 오롯이 사진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백 마디의 문장보다는 한 장의 사진이, 그 순간이, 그 사물이 전하고자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비 내리는 풍경.

그리고 그 속을 뛰어가는 한 사람.

이어진 이야기.


우리로부터 뛰어가던 건

비의 다리였을까

빗나간 안부였을까

비가 그치기 전 몰래 두고 온 말들이었을까


까닭 없이 뛰는 날도 있다


마음이라 불렀던 것들이 황급히 사라지는 거리


비가 오면 누군가 열람되는 소리가 난다. - page 119

비가 내리는 날.

웅덩이마다 고인 물.

그리고 내리는 비.

막연히 '나'의 입장에서만 생각했던 것이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럼 빗물에겐 어떤 느낌이었을까?'

새삼 궁금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고인 물에 내리는 빗방울과 지나간 이의 흔적인 동그란 파장.

언젠가 비가 오는 날이면 그 빗물에 귀를 기울여 보아야겠습니다.


이 말도 참으로 오랫동안 가슴에 맴돌았습니다.

마음 없는 것들도 맘을 포기하는

선택을 한다


등 뒤로 어제의 돌기를 가리거나


이미

외우고 있는


어제의 구조를 반복하며 지내거나,

아무도 알아차리지 않는 방식으로


폐허에도 다정이 있다,


자신만 이해하는 방식으로 성립할 뿐


배제되는 방식을 선택할 뿐 - page 296 ~ 297

​아무도 알아차리지 않는 방식......

한때는 누구에게나 알려졌었기에 더 씁쓸함이 묻어져 나왔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문뜩 떠오른 시인이 있었습니다.

'나태주' 시인.

그의 시 중에 <풀꽃>이 떠올랐습니다.

풀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그저 무심코 지나쳤었습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물들.

나의 일상의 장면들.

'내 위주'로 생각하기 급급했었습니다.

그들이 전하는 목소리에 귀를 닫고 눈을 감아버렸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보니 이제는 듣고 싶어도 들을수도 볼 수도 없게 된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이제라도 조금씩 눈을 뜨려 합니다.

그리고 귀를 기울여보려 합니다.

그들이 그곳에서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들.

'내'가 아닌 '그들'의 시선에선 어떤 모습이 그려질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과 나의 시선이 맞닿을 그곳을 향해 가보고 싶었습니다.


한 장의 사진.

짧은 글.

긴 여운을 남긴, 그런 산문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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