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가 만만해지는 책 - 한 번 배우고 평생 써먹는 숫자 감각 기르기
브라이언 W. 커니핸 지음, 양병찬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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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가 일상 속에서 제일 많이 접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숫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단순해 보이는 '숫자'가 우리를 움직인다는 사실이 문뜩 소름이 끼치기도 합니다.


이번에 읽게 된 이 책.

이 책이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이 한 문장이었습니다.


"몇 가지 계산만 할 줄 알면 세상이 훤히 보인다"


그 어떤 복잡한 공식으로도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이 세상이 단 몇 가지 계산만으로 보인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과연 이 책을 읽고나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지 기대해보며 읽어보았습니다.


『숫자가 만만해지는 책』

 


우리가 숫자에 관심을 가져야하는 이유를 저자는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일러주었습니다.


그러나 '숫자를 외면하는 것'은 '나쁜 전략'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숫자는 우리를 설득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방식으로 행동하게 하거나 어떤 정치인을 믿게 하거나 어떤 제품을 구매하게 하거나 뭔가 먹게 하거나 어떤 주식에 투자하게 하거나 등등. - page 6


이건 마치 '눈 뜨고 코베이는 일'이 되다니!

오류, 뻔한 거짓말, 미묘한 허위진술, 과장이 난무하는 이 세상 속에서 정신 차리며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숫자'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다짐을 하며 본문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사실 '숫자'와 관련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혹시나 공식이라든지 여기저기에서 등장하게 되는 미지의 수들이 등장하지 않을까라는 조심스러운 걱정도 하였지만 책에서는 공식이 등장할 타이밍에 그림과 함께 이야기로 풀어나갔기에 오히려 더 이해하기가 쉬웠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장점이라 느꼈던 것은 각 장의 이야기마다 들려주는 수학적 이야기에 대해 <요점 정리>를 해주면서 다시 한 번 더 독자들이 그 전까지 이해했던 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요점만 꼬집어 알려주었습니다.


저자가 이 책을 내게 된 이유를, 우리가 숫자게 관심을 가져야하는 이유가 본문 속에 있었습니다.


믿을 만하고 책임 있는 소식통이 '큰 숫자'를 들이대며 정책을 제안하면, 다른 소식통들은 거기에 따라 행동하거나 아무 생각 없이 이를 퍼 나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사를 한 ㅜ기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므로, '누군가가 나서서 무슨 행동을 해야 해'라는 막연한 느낌 외에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는다. 이는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일로, 자칫하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큰 손해를 초래할 수 있다. - page 35


그렇기에 우리는 숫자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이치에 맞는지 아닌지에 대해 '머리'를 쓰고 '관심'을 가져야함을 저자는 각 장마다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굳이 어려운 공식을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계산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대략적인 수치와 어림 계산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숫자들을 평가하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나니 세상을 보다 재밌게 흥미롭게, 때론 분석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책의 마지막에 저자는 우리에게 과제를 제시하였습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하라. '그 숫자가 너무 크거나 너무 작지 않을까? 아니면 대충 적당할까? 이게 말이 될까? 만약 사실이라면, 시사하는 바가 뭘까?'

여러분 나름의 근삿값을 추정하라. 아무리 개략적이라도 다른 사람들의 말을 평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연습을 하면 실력이 향상되며, 그런 과정에서 재미를 붙일 수도 있다. - page 255


그래서 저도 책을 덮고 신문을 펼쳐 보았습니다.

세상에!

예전같았으면 무심코 지나쳤을 숫자들이 이렇게나 많이 존재하고 있을 줄이야......

그리고 숫자를 어떻게 표기하는지에 따라 우리 말의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중 하나인 '숫자'.

숫자에 휘둘리는 내가 아닌, 숫자로부터 나를 지키기위해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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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 동서양을 호령한 예술의 칭기즈칸 ㅣ 클래식 클라우드 18
남정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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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관련된 책들은 시중에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특히나 우리의 예술가보다는 서양의 예술가들에 대한 책들을 더 많이 접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들이 이루어낸 업적이 대단하다는 것은 익히 알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도 그들보다 더 뛰어난 업적을 지닌 이들이 있기에 종종 우리의 예술가들과 관련된 책이 보이면 버선발로 다가가곤 합니다.


아마 이 분에 대해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비디오아트'

벌써 여기저기에서 '아! 그 분!'이라고 외칠 것입니다.


이름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장르가 된 예술가!

미디어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며

예술의 역사를 새로 쓴 현대예술의 혁명가, 백남준!


『백남준』

 


그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저에겐 의아하면서도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텔레비젼이 겹겹이 쌓여있고 저마다 다른 영상을 보여주는데......

솔직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고 사람들은 왜 이 작품에 큰 찬사를 보내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 그에 대해 잘 몰랐기에 '무지'에서 그 의미를 '이해'하리라는 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었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책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이제야 그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술 작품에는 예외 없이 작가의 철학적 사고와 인생관 그리고 체험 등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법이다. 따라서 작가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작품에 담긴 참된 의미를 알아채기 어렵다. 그래서 작품을 감상하는 데 그 작가가 어떤 삶의 궤적을 그렸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page 15


한국 최초의 재벌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거부였던 아버지 밑에서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경제적으로 여유로웠기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홍콩과 일본과 독일로 유학을 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쌓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그는 잔병치레가 많은 몸이 약한 아이였기에 밖에 나가 마음껏 뛰어놀 수 없었기에 어릴 적부터 책을 가까이 하였고 그의 큰누이인 백희득 덕분에 음악에 대한 재능을 얻게 되면서 그의 비디오아트에 적합한 예술가로써의 자리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집이 부유하였다고 그의 삶이 평탄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전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났던 고국에 다시 돌아오기까지 34년에 걸친 '방랑자의 삶'엔 불운의 시작을 알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예술적 재능은 두각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고 특히나 그의 인생의 커다란 전기를 맞이하게 된 건 '케이지'와의 만남으로부터였습니다.


1957년과 1958년에 열린 '다름슈타트 국제 신음악 여름 강좌'에서 독일 작곡가이자 전자음악의 개척자인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과 케이지를 만난 것이다. 인생의 갈림길에 놓여 있을 때 누구를 만났는지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고 이야기한다. 새로운 사상을 통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변하기 때문이다. 백남준은 케이지를 만남으로써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 page 98 ~ 99


케이지와의 만남을 통해 그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에 대해 깨달을 수 있게 되고 이는 그의 작품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그의 <살아 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 작품이 전한 의미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습니다.


인간의 본능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일반적으로 수치스러운 것으로 통하는 나체, 배설, 성관계 모두가 부끄러움을 느낄 일이 아님을 알 것이다. 옷을 벗으면 남녀의 몸이 그렇게 생겼음을 누구나 안다. 배설을 하지 않는 인간은 없으며 우리 모두 남녀 간의 성관계로 태어난 존재다. 왜 우리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본질적 형태와 행위를 감추고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참으로 모순된 생각이기에 많은 위대한 사상가가 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초개처럼 내던져버렸다. 무어먼과 백남준 역시 이처럼 가식적인 생각을 진즉에 버렸을 것이 틀림없었다. - page 161


그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백남준은 모름지기 예술가란 미래를 사유할 수 있어야 하며, 소통의 기획자로서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 page 185


백남준!

그가 대한민국의 예술가라는 점이 너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특히나 '예술'이란 영역에서 '비디오아트'란 분야가 '백남준' 이 세 글자의 이름인 그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

 


그가 예술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이제는 작품을 바라보며 가슴으로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향해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 중에서도 마지막 작품 <엄마>는 그가 세상에 전하고자하는 이야기가 아닌, 자신이 자신에게 전하고자했던 메시지는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의 마지막을 직감한 듯 어디에도 보이지 않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 애잔한 느낌을 주었던 이 작품이 그의 기나길었던 예술가로써의 여정의 마무리를,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전하는 듯하였기에 다른 작품들보다 언젠가 이 작품만은 꼭 눈으로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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뮬란 새로운 여정 ㅣ 디즈니 오리지널 노블
엘리자베스 림 지음, 성세희 옮김 / 라곰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디즈니 만화' 속 여주인공들을 보면 하나같이 예쁘고 착한 공주였습니다.

그러다 이 만화를 만났을 땐 조금 놀랐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공주 드레스가 아닌, 더군다나 남장까지 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또다른 매력을 느꼈었습니다.

그래서 여느 디즈니보다 더 인상깊게 남았었고 이 캐릭터에 흠뻑 빠지곤 하였습니다.


다시 만난 그녀!

이번엔 애니메이션이 아닌 소설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기억 속 그녀를 떠올리며 그때 그 감동을 다시 만나보려 합니다.


"역경을 이겨내고 핀 꽃이

가장 아름다운 꽃이니라"


『뮬란 새로운 여정』


불과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그녀의 가장 큰 관심사는

갑옷이 아닌 비단옷,

무기들이 주렁주렁 달린 벨트가 아닌 비단 띠,

추위와 수분 부족으로 튼 입술이 아닌 연지를 바른 입술,

추위를 녹이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닌 석탄으로 눈썹을 그리던

그런 '소녀'였습니다.


그런 그녀의 손에 이제는 광이 나는 칼날을 간직한 검을 들고 적군들과의 대치 상황 속에 있습니다.

오직 한 발의 대포만 남은 상황.

훈족의 움직임을 살피며 그녀는 샹의 명령이 계쏙 신경이 쓰였습니다.


"야오, 산유에게 대포를 겨눠라."

샹이 차분하게 말했다.

'대포라기보다는 폭죽에 가깝지. 샨유를 죽인다 해도 다른 훈족의 병사들이 우리를 몰살해버릴거야.' - page 8


더는 지체할 수 없는 상황 속 뮬란에게는 좋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 생각대로 하는 것은 샹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것이 되는데......


샨유가 뮬란을 겨누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뮬란은 무슈를 잡고 목을 졸랐다. 무슈가 불을 뿜었다. 대포에 간신히 불을 붙일만한 불꽃이었다.

산 정상의 돌출부를 향해 포탄이 발사되는 동안 뮬란은 쪼그리고 앉아 대포를 단단히 붙잡았다. 거대한 진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 벼랑 아래로 눈이 쏱아져 내리며 무시무시한 흰색 덩어리들이 쓸려 내려갔다. 눈사태였다! - page 10


작전은 그녀의 예상대로 성공을 했지만 결국 대장 샹은......


"자책하지 마."

그가 다시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미소는 위안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이 되었다.

"계속 싸워야 합니다. 며칠 후면 제황성에 도착할 거예요. 조금만 견뎌요, 샹. 제발."

"적어도 이제 나는 안다..."

그가 숨을 모으기 위해 말을 멈추고, 두 눈을 다시 감았다.

"이제...난 알아...중국은 안심해도 된다는 걸." - page 44


이렇게 대장을 보낼 수 없었던 뮬란.

머리에서 발끝까지 녹청색 빛을 뿜어내며 푸른색 군복을 입은 어떤 이를 보게 됩니다.


"제발 죽지 말거라. 아직은 너의 때가 아니야." - page 55


샹에게 이야기하는 그, 바로 샹의 아버지 리 장군이었습니다.

돌아가신 분을 보게 되다니 현실을 부정하지만 조심히 유령에게 말을 건넵니다.

샹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방법이 있지만 불가능한 일이야."

"말씀해주세요."

"유일한 방법은 염라대왕의 마음을 바꾸는 거다. 하지만 샹의 이름은 이미 염라대왕의 심판 명부에 올라가 있어. 거기서 이름을 지울 수는 없다."

"해보겠습니다."

"보기 드문 용맹함을 가진 사내로구나, 핑." - page 59


그렇게 뮬란은 지하세계로 뛰어들어 지옥을 다스리는 염라대왕과 일생일대의 내기를 하게 됩니다.

보름달이 초승달이 될 때까지의 시간 속에서 그녀는 과연 샹을 구해낼 수 있을까!


이 소설 속에서 그녀를 표현한 문장은 단연코 이 문장이었습니다.


"꽃, 역경을 이겨내고 피어난 그 꽃이 가장 귀하고 아름답다." - page 374


이 매력적인 소녀 '뮬란'.

그녀의 당당한 외침이 또다시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나는 파뮬란이다. 가족과 중국을 위해 목숨을 거는 소녀. 죽어가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온 소녀. 마침내 거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해 전투에 전투를 거듭한 소녀. 이제 난 알았어." - page 368


그녀를 알게 되어서 무척이나 행복하였습니다.

자신의 뜻을 향해 당당히 걸어나가는 그녀에게서 나의 위축된 모습이 부끄럽기만 하였습니다.

이 여운을 다시 애니메이션 <뮬란>을 보며 또다른 매력으로 채워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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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사라진 밤
루이즈 젠슨 지음, 정영은 옮김 / 마카롱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책의 표지를 보자마자 조금은 충격이었습니다.

얼굴에 빨간 색으로 마구 어지럽힌 모습.

그리고 강렬했던 문구.


토요일 밤,

모두의 얼굴이 사라졌다


『얼굴이 사라진 밤』

 


일요일 아침.


뭔가 잘못됐다.

탁한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그 생각부터 들었다. 관자놀이를 조이는 듯한 두통이 찾아오기도 전에 순간적으로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부터 들었다. - page 11


여느 때와는 사뭇 다른 아침.

정신은 멍하고 머리가 울렸습니다.

그보다도 방 안에서 무슨 냄새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시큼한 냄새가 나면서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섬뜩한 느낌마저 드는 앨리슨.


매트와 별거중인 앨리슨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 친구 크리시와 줄리아는 문득 데이트 앱에 가입해보는 게 어떻냐고 말합니다.

아직 완전히 그와 이혼을 하지 않았기에, 그리고 그와 다시 합치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에 내키지 않았지만 결국 낯선 이를 만나러 갑니다.

상대에게 이 만남이 진짜 데이트라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아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소란스러운 장소 프리즘 클럽에서 만나기로 하고 차를 가지고 간 것까지, 술은 마시지 않았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몸을 일으키자 머리가 쪼개지는 것 같은 날카로운 두통과 함께 머리 옆쪽엔 혹이 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손에 묻은 피.

아무리 술에 취해도 핸드폰은 늘 협탁 위에 놓고 자는데 협탁 위 어디에도 핸드폰도, 가방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조심스레 바닥에 발을 딛고 일어서지만 앞으로 고꾸라지며 바닥에 무릎을 찍고마는 앨리슨.

눈물이 울컥 올라왔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거지? - page 17


가까스로 욕실에 간 그녀.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내려 아무리 애써봐도 번쩍이던 색색의 불빛과 쿵쿵 울리던 저음 외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자 흐르는 물에 불길한 생각을 씻어내고자 떨리는 손을 가져다 대곤 세면대 위의 거울로 시선을 옮깁니다.


거울 속 내 모습을 본 나는 혼란과 공포에 빠졌다. 목이 조여오며 숨이 꽉 막히더니, 막혔던 숨이 마침내 긴 비명이 되어 터져 나왔다. 이건 분명 꿈이다. 악몽이다. 그래야 말이 된다.

하지만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니었다. - page 19


이건 분명 꿈일거라 믿고 싶지만......

그런데 초인종이 울립니다.

현관 밖을 볼 수 있는 작은 창문을 통해 보았는데 같이 사는 친구 크리시라기엔 덩치가 너무 큰 낯선 남자.

온몸의 땅구멍에서 식은땀이 흘러나왔고 무서움에 떨고 있는데 그 남자는 문을 두드리며 반응이 없자 그 남자는 문을 열고 들어온 것입니다.

주방에 숨은 그녀에게 들려온 목소리.


"누나?" 동생의 목소리였다.

"벤!"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다 식탁에 머리를 부딪쳤다. 아픔이 밀려오며 눈앞이 하얘졌다. "벤, 이 집에 어떤 남자가..." 칼을 내리고 조금 작아진 목소리로 말을 잇는데 흐려졌던 시야가 다시 맑아졌다. 뭔가 이상했다. 목소리는 분명 동생이었는데, 내게 손을 뻗고 있는 것은 낯선 남자였다. - page 26


정신을 잃은 그녀.

다시 눈을 떠보니 병원의 차가운 철제 침대 위에 누워있었습니다.


"MRI와 CT를 포함한 모든 검사 결과를 종합하여 판단해볼 때, 이미 말씀드린 바 있는 기억상실증 외에도 상모실인증이 거의 확실시됩니다. 상모실인증을 실제로 목격하는 건 저도 처음이군요." 의사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흥분에, 마치 이 모든 것이 의사의 잘못이기라도 한 것처럼 비이성적으로 화가 벌컥 치밀었다.

"그게 무슨 의미죠?" 벤이 물었다.

"환자분의 뇌가 이제 얼굴의 특징을 인식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의 얼굴도 구분하지 못한다는 거죠." - page 49


의사는 환자에게 우선 휴식과 회복이 먼저라며 퇴원을 권하게 되고 벤과 함께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현관에 다가가보니 문간에 분홍색 장미꽃이 한 다발 놓여 있었습니다.

누가 갖다놓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꽃다발을 집어 들어 집 안으로 들어온 앨리슨.

아직도 친구 크리시는 돌아오지 않았고 무심히 꽃다발을 바라보니 자신의 이름이 손글씨로 쓰인 작은 카드 봉투가 있었습니다.

꺼림칙한 마음으로 봉투를 열어 카드를 꺼내니 빳빳한 흰 종이 가자아아리에 노란 장미 장식이 그려진 카드에 적힌 두 문장.


데이트는 좋았어? 이 나쁜 년. - page 56


조금씩 앨리슨 앞으로 도착하는 협박 편지에 그녀는 토요일 밤 프리즘 클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리고 왜 친구 크리시는 연락도 없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누구의 얼굴도 알아볼 수 없는, 기억마저도 잃어버린 그녀는 과연 그 날의 사건의 퍼즐 조각들을 맞출 수 있을지에 대해 9일간의 고군분투가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다 업보지." 그 사건이 일어난 후 옆집 사람이 고소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알았다. 어두운 밤에 어두운 일이 벌어진다. 결국은 모두 돌아온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이 저지른 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는 내가 늘어놓은 거짓말의 실 안에서 엉켜버렸고, 그 과정에서 어디선가 코를 빠뜨렸다. 행한 대로 되돌아온다고 했던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혹시 예전 그 일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데이트는 좋았어? 이 나쁜 년. 어떤 끔찍한 일이 생긴다고 해도 결국은 하늘이 내리는 벌일 것이다. 탓할 사람은 나 자신뿐이었다. 앞으로 닥칠지도 모르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일었지만, 이상하게도 한편으로는 기꺼이 받아들이고픈 마음도 들었다. 누군가 나를 아무리 증오한다고 해도 나 자신만큼 나를 증오하지는 못하리라. - page 104


소설 속 매트는 의미심장한 말을 앨리슨에게 건넵니다. 

​

 


이 한 마디가 책을 덮는 순간까지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보이는 걸 다 믿으면 곤란해."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던 이 『얼굴이 사라진 밤』.

심장을 조여오는 긴박함과 두려움은 어느새 한 줄기 눈물로 끝을 맺게 되었습니다.


강렬했기에 더없이 긴 여운이 남았던 『얼굴이 사라진 밤』.

빙산의 일각만으로 무언가를 판단하려는 나에게도 큰 울림을 남겨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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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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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왈칵 쏟게 만드는 단어가 있습니다.

'엄마'

이젠 내가 '엄마'라는 위치에 있어서일까......

그땐 미처 몰랐던 그 심정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인지 그냥 눈물부터 쏟아지곤 합니다.


그렇게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이 소설을 받자마자 문뜩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나의 '할머니'.

저 역시도 어릴 적 할머니께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었는데......

이 문구가 저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해주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여자 어른의 이야기"


그래서 꼭 읽어야했습니다.

내가 기억해야할 나의 할머니를 떠올리며 여성 작가 6명이 들려주는 이야기.

『나의 할머니에게』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작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전한 '할머니' 이야기는 저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이었지만 결국은 하나의 모습이 그려지곤 하였습니다.

그녀들이 남겨둔 발자국에 우리도 그렇게 조금씩 걷고 있다고......


소설 중 <선배드>에서 너무 많은 눈물을 흘리곤 하였습니다.

나의 할머니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원치 않았지만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싶지 않으셨던 우리 할머니.

그렇게 싫어하시던 요양병원에 가셨고 가끔 안부전화를 하면 꼭 우리에게 당부하시는 이 한 마디가 떠오를 때마다 눈물이 쏟아집니다.

"내 걱정은 말고! 난 잘 지내고 있으니까! 네 걱정이나 해!"


소설 속 할머니는 알츠하이머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토록 아끼던 손녀를 이제는 기억하지 못하는......

그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손녀의 소리없는 울부짖음이 가슴이 미어지게 아팠습니다.


나는 할머니의 손을 그대로 잡아끌었다.

"집에 가자. 할머니."

나는 할머니를 휠체어에 앉혔다. 다 필요 없어. 이런 데 있어서 뭐 해. 밥도 많이 안 주는 곳에서. 내가 할머니 돌봐줄게. 일은 그만두면 되지. 그만두면 돼. 그렇지 할머니? 하지만 무서웠다. 이상했다. 내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았다. 이러고 싶지 않은데. 이러면 안 될 것 같은데. 하지만 손을 멈출 수 없었다.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막을 수 없었다. 어떤 경계를 넘어버린 것 같았다. 어디론가 확 뛰쳐나가고 싶고, 뛰어내리고 싶은...... - page 95 ~ 96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흑설탕 캔디> 소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섬'과도 같았던 프랑스 파리에서 손주들과의 생활 속에서 '외톨이'였던 그녀에게 빛처럼 다가왔던 브뤼니에 씨와의 만남과 이별은 아름답고도 슬프게 다가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할머니가 전한 이야기.

​

 


'늙어간다'는 것이 참으로 애석하였습니다.


잊어서는 안 될 그녀를 잊고 있었던 제 자신이 부끄럽고도 죄송스러웠습니다.

할머니도 꿈 많던 소녀였었고 자식들을 위해 잠시 자신의 꿈을, 마음을 접을 수 밖에 없었음을, 그래서 그녀의 존재를 잊지 말아야함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책을 읽고나서 문득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떠올랐습니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아름다웠고 멋졌던 그들.

다시 이 영화를 보며 이 소설에서 남긴 여운을 채워보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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